2월 25일 강원도 인제군 백담사에서 벌어진 제13회 LG배 세계기왕전 결승3번기 2국에서 구리 9단이 이세돌 9단을 172수 끝 백불계로 물리쳤다. 이세돌 9단은 1국 패배를 이겨내지 못한 채 2국마저 내줘 구리 9단에게 LG배 우승컵을 헌납했다.

결승2국을 간단히 총평한다면?

포석이 나빴다. 우상귀 응수타진이 좋지 않았던 것 같고 좌변 공방에서도 실수를 했다. 점심시간 전까지 이세돌 9단이 괜찮은 흐름이었는데 백대마를 몽땅 잡으려는 모험을 해서 내가 이긴 것 같다. 이세돌 9단이 냉정하게 두었다면 이기기 힘들었을 것이다.

결승 2국에서 나온 우상귀 정석은 구리 9단의 바둑에서 상당히 많이 등장한 패턴이다. 특히 우하귀 2선에 붙인 수는 처음 보는 수다. 특별히 연구한 신수인가?

하루 휴식을 취한 날 이 정석이 떠올랐다. 중국에서 위빈 9단과 정석 과정을 놓고 최선의 응수에 대해 많은 의견을 나눴다. 위빈 9단의 의견과 일치되는 부분이 있어서 똑같은 모양이 등장하면 써먹으려 했는데 실전에선 맘이 바뀌어 새로운 시도를 해본 것이다. 상대방이 어떻게 응수할지 무척 궁금했다.

이세돌 9단이 응수를 아주 잘해 신수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위빈 9단과 함께 준비했던 수보다 못한 것 같다.

이세돌 9단의 실수는 어디인가?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세돌 9단이 초반 포석을 잘 짜 내가 계속 이끌려가는 흐름이었다. 점심시간이 시작되기 바로 전 흑115로 뛴 수가 조금 의문이다. 먼저 공격을 해 조금이라도 이득을 보겠단 생각이었지만 아낄 필요가 있었다. 흑115를 두지 않고 그냥 지켰다면 형세는 여전히 흑이 좋았다.

하지만 이세돌 9단은 내 생각과는 반대로 형세가 불리하다 본 것 같다. 이런 흐름으로 종반 끝내기에 들어간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보고 모험을 감행했다. 결과론적으로 나에게 운이 많이 따라줬다.

이세돌 9단의 컨디션에 문제가 있다고 봤는가?

잘 모르겠지만 LG배 결승 두 판 모두 최선을 다한 내용이었다. 이 두 판으로 모든 것을 평가할 수 없다. 앞으로 우리는 자주 만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세돌 9단과 좋은 내용의 바둑을 많이 뒀으면 한다.

2:0으로 이길 것이라 생각했는가?

결과를 일찌감치 예측할 순 없다. 만약 내가 2국을 졌다면 이세돌 9단이 2:1로 역전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결과를 생각하기 전 1국 때와 똑같이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썼다.

이세돌 9단과 구리 9단의 기풍은 상당히 비슷하다. 앞으로도 이세돌 9단과 만나면 매판 격렬하게 싸울 것인가?

더 심하면 심했지 싸움 없이 평온하게 두진 않을 것이다. LG배 결승 모두 중반 전투에서 승패가 결정 났다. 지난 농심배에서도 똑같은 패턴이지 않았던가.

구리 9단의 약점은 무엇인가? 보완해야 될 부분이 있다면?

부족함을 말하면 끝이 없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다.

언론에서는 구리 9단과 이세돌 9단이 세계 1인자 자리를 놓고 다투는 시점이라 말한다. 구리 9단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1인자의 기준은 애매모호하다. 이세돌 9단이나 나 역시 누구에게도 질 수 있는 법이다. 두 사람 모두 지금의 성적이 좋아 세계 1인자로 보이는 것뿐이다. 1인자는 언제든지 쉽게 바뀔 수 있는 자리다.


앞으로 이세돌 9단과 세계대회에서 많이 만날 것이다. 이세돌 9단과 정상의 자리를 얼마나 다툴 것 같은가? 10년 정도는 갈 것 같은가?

10년? 그렇게 길게 갈 수 있나? 현재 중국이나 한국은 엄청난 경쟁체제에 놓여있다. 경쟁이 매우 심하기 때문에 5년이라도 지금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면 그건 굉장한 행운이다. 이창호 9단은 지금까지 세계대회에서 17차례나 우승을 했다. 나는 이제 5번이다. 이창호 9단만큼 따라갈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결승2국까지 자신의 실력을 충분히 발휘한 것 같나?

1국은 내가 봐도 괜찮았다. 사실 두 판 모두 아주 힘들어서 2:0으로 이긴 것이 믿기지 않는다. 기쁘기만 할 뿐이다.

부담감은 없었는가?

이런 큰 무대를 앞에 두고 부담감이 없는 기사가 누가 있겠는가. 부담은 항상 있는 법이다.

결승전이 시작되기 전 위빈 9단이 좋은 충고를 해줬다. “LG배를 우승하더라도 네가 세계 1인자라 말할 수 없고 지더라도 네가 세계1인자가 아니라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며 내 실력을 최대한 발휘하라 주문했다. LG배를 우승했지만 앞으로 이세돌 9단과의 만남은 많이 남아 있다.

한 마디 덧붙인다면 한국까지 같이 오신 어머니 덕분에 많은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어머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옆에서 듣고 있던 구리 9단의 어머니가 “고맙다, 아들아!”라고 말하자 장내는 한바탕 웃음바다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