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이창호 9단(75년생)-이세돌 9단(83년생), 중국에 구리 9단(83년생), 일본에 장쉬 9단(80년생)이 있다면 대만에는 저우쥔쉰 9단(80년생)이 있다.


2월 12일 광주시에서 벌어진 제11회 LG배 세계기왕전 준결승전에서 저우9단이 한국의 홍민표 5단을 꺾고 결승전에 진출했다. 10여년간 부동의 대만 랭킹1위를 차지하며 98년 대만 최초의 9단이 된 저우쥔쉰 9단은 생애 첫 세계대회 결승을 달성한 날 어머니에게 가장 먼저 전화를 걸어 기쁜 소식을 전했다.

대만은 수십년 전 바둑환경이 좋지 않아 린하이펑, 왕리청, 왕밍완이, 가깝게는 장쉬 9단, 천스위엔 7단 등이 일본, 한국으로 건너가 바둑활동을 해야 했다. 저우9단은 6세 때 처음 바둑을 접하고 9세 때부터 정규교육을 포기하고 따이지아선 문하에서 바둑을 배워 11세 때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후 추천 케이스로 대륙(중국)으로 유학해 송쉬에린에게 잠시 배웠다.

13세 때 프로기사가 되어 9단(1998년)이 될 때까지 각종 세계대회에서 수십 차례 대만대표로 참가했던 저우9단은 대만바둑사상 유일한 9단이자 세계대회 출전 경험이 가장 많은 기사이다. 대만 국내대회에서 2000,2004년 중환배 우승, 2001,2006년 동강배 우승, 2004년~2006년 천원전 우승, 95년~06년 명인전 13연패 등 총 28회 국내 타이틀 획득 기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화려한 국내성적과는 달리 그의 실력은 세계무대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제14회 후지쯔배 4강진출이 가장 좋은 성적으로 세계무대 주변을 빙빙 돌 뿐이었다. 대만 바둑계는 중환배 세계바둑대회를 개최하는 등 성장을 해왔지만 역시 한-중-일에 밀려 들러리 노릇을 하는데 그쳤다.

따라서 이번 저우9단의 LG배 결승진출은 대만바둑계로서는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다. 저우9단의 세계대회 결승진출을 계기로 또 한번 바둑붐을 조성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대만은 최근 5~6년 사이에 프로제도확립 ,바둑병역특례, 고스트바둑왕 등으로 바둑붐이 일어 학생 수가 2000~3000명에 이르는 초대형 바둑도장이 생기는 등 전성기를 맞았다. 이런 상황에서 저우9단의 세계대회 결승진출은 대만 바둑팬들의 관심과 시선을 잡기에 충분하다.

이 때문에 LG배 결승전을 대만에서 유치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지만 뜻대로 될지미지수다. 결승상대가 중국의 후야오위 8단이라는 점이 걸린다. 양국의 미묘한 정치적 관계가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중국이 대만에서 결승전이 치러지는 걸 거부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만 내부 사정도 복잡하다. 저우9단은 이번 LG배에 응창기바둑교육기금의 추천기사로 출전했는데 현재 대만바둑계를 대표하는 기관은 대만기원이다. 저우9단을 둘러싼 이들의 보이지 않는 주도권 다툼도 변수다. 중국-대만 양안(兩岸)이 벌이는 최초의 세계바둑대회 결승 장소를 놓고 이래저래 LG배 주최측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어쨌든 저우9단의 LG배 결승진출은 대만바둑사상 최대의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게다가 우승까지 한다면 1989년 한국이 조훈현 9단의 응씨배 우승을 계기로 한 계단 올라섰듯 대만바둑계도 바둑붐이 크게 일어 한-중-일 못지않은 기반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저우쥔쉰 9단이 2004년 중국갑조리그에서 후야오위 8단에게 승리를 거둔 적도 있어 대만의 세계대회 최초 우승이 전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