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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정 사범이 야구도 해요?“
 

어떤 바둑 팬이 이렇게 물었다. 바둑과 야구는 이미지가 쉽게 잘 매칭되지 않는 이질적 분야다. 바둑이 대표적인 정적(靜的) 두뇌 게임인 반면, 야구는 거의 남성들이 독점한 다이내믹한 육체 운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구인들은 “최정 선수가 바둑도 둔다고?”하며 반문한다. 야구에도, 바둑에도 최정이 존재하면서 생기는 혼란이다.

두 명 모두 발군의 스타다. 야구 선수 최정은 한국을 대표하는 홈런 타자다. 어릴 때부터 ‘소년 장사’란 별명으로 불렸을 만큼 파워가 넘친다. 소속 팀 SK가 선두를 질주하는 이면엔 그의 기여가 엄청나다. 바둑 최정도 못지않다. 아니, 자기 세계에서의 지배도로 따지면 바둑 최정이 더 위쪽으로 보인다. 여성 기사 중 세계 1위일 뿐 아니라, 남성들과의 혼성 기전에서도 세계적 스타들을 펑펑 메다꽂고 있다.

야구선수 최정이 87년생으로, 96년 생 바둑 최정보다 아홉 살 많다. 이성(異性) 동명(同名) 커플은 흔치 않기 때문에 서로의 존재를 잘 알 것이다. 바둑 최정은 언젠가 “프로야구 쪽에서 초청해 야구 선수 최정과 함께 시구(始球)를 부탁하면 응하겠느냐”는 기자 질문에 “물론 곧장 달려갈 것”이라고 했다. 최정은 초등학생 시절 도장의 남자 연구생들 틈에 섞여 종횡무진 볼을 차던 열혈 여성 출신이다. 동명의 스타가 야구장으로 초대한다면 안 갈 이유가 없다.

프로기사 숫자가 300명을 훌쩍 넘다 보니 전혀 다른 분야에도 동명이인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바둑 팬 갑수씨는 얼마 전 나현 9단의 프로필을 확인하려고 인터넷 검색창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통통하고 귀티나는 나현의 얼굴을 기대했는데, 화면에 뜬 사진은 예쁜 아가씨였다. ‘소나무’라는 걸그룹에 속한 가수라고 소개돼 있었다.

이 경우도 최정처럼 이성(異性) 동명(同名) 케이스다. 게다가 이들 둘은 나이까지도 95년생 동갑이다. 프로기사 나현은 2010년 입단했고 2015년 천원전, 2017년엔 국제대회인 TV아시아선수권대회를 제패했다. 한국랭킹 10위권 이내를 꾸준히 지키고 있는 보배 같은 존재다. 가수 나현은 본명은 김나현이란다. 그룹 소나무에서 서브보컬과 리드 댄스를 맡고 있고, 2014년 TV드라마에도 데뷔했던 다재다능한 연예인이다. 둘이 만나면 악수하고 차라도 한 잔 나누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김지석! 이란 이름이 튀어나왔을 때도 환성을 내지르는 것은 두 그룹이다. 우리 바둑 팬들이야 당연히 힘바둑의 대명사 김지석을 떠올리지만, 영화배우이자 탤런트인 김지석을 사랑하고 응원하는 무리도 꽤 많다. 두 사람은 우선 조각처럼 잘 다듬어진 지성적인 얼굴 모습부터가 난형난제로 닮았다.

바둑인 김지석이 가장 애국(!)한 순간은 2018년 제19회 농심배 때였다. 5연승 중이던 당이페이에게 극적 반 집 역전승한데 이어 이튿날 커제에게 완전히 진 바둑을 뒤집고 5년 만의 한국 우승을 이끌었다. 그런데 애국이라면 탤런트 김지석도 할 말이 많다. 할아버지가 항일 운동을 하셨단다. 또 친형 김반석은 영국 수학 올림피아드서 금상을 수상하며 국위를 선양했다. 바둑 김지석의 부친도 유명한 물리학자다.

탤런트 김지석이 81년 생으로 바둑 김지석(89년생) 보다 8살 형이다. 탤런트 김지석의 본명은 김보석이라는데 그거야 아무려면 어떠랴. 바둑 김지석은 한국 랭킹 3~4위권을 꾸준히 지키는 강호이고, 탤런트 김지석은 댄스와 연기에 두루 능한 재주꾼으로 둘 모두 최고의 인기를 누린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박지은은 바둑과 골프 쪽에서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유명한 동명이인이다. 골프 박지은이 79년생으로, 83년생인 바둑 박지은보다 4살 연상이다. 하지만 종목 특성상 둘의 전성기는 거의 비슷했다. 골프 박지은은 2004년 메이저대회인 크래프트나비스코챔피언십 우승을 시작으로 2013년 은퇴하기까지 LPGA 통산 6승, LPGA 톱10 58회를 기록했다.

바둑 박지은은 조영숙 윤희율 윤영선에 이어 한국 여성바둑 리더에 오른 주요 인물이다. 1997년 14살 때 프로 생활을 시작했으니 2000년 LPGA 투어으로 본격 데뷔한 골프 박지은보다 오히려 빨랐다. 바둑 박지은도 여성 국제대회개인전만 5회 우승을 기록했으니 골프 박지은 못지않은 화려한 선수 생활을 이어온 셈이다. 2008년엔 한국 여성 토종기사 최초로 9단에 오르기도 했다.

두 사람은 이름뿐 아니라 연령대와 자기 분야에서 차지하는 위상, 활동 시기 등 많은 부분이 겹친다. 보통 인연이 아니란 뜻이다. 두 명의 박지은 외에도 유명인사 리스트에 올라있는 박지은은 몇 명 더 있다. 드라마 작가 중 박지은씨는 빼놓을 수 없는 유명인이다. 웹툰 작가 겸 일러스트레이터 박지은, 레이싱 모델 박지은도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다. 또 어떤 분야에서 박지은이 두각을 드러낼지 기다려진다.

한국 바둑의 굵직한 봉우리 중 하나인 이창호 9단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1975년생인 그의 데뷔 초기엔 기사 이창호보다 좀 더 이름이 알려진 유명인사가 있었다. 바로 아나운서 이창호였다. 1943년생으로 올해 76세인 그는 KBS 아나운서 실장을 지낸 원로 방송인이다.

아나운서 이창호씨는 바둑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역 시절 아나운서로서 그의 스포츠 중계 특기종목은 탁구였다. 140회나 크고 작은 타이틀을 거머쥔 바둑을 이창호가 가장 즐기는 스포츠가 테니스와 함께 탁구였다. 32세인연 때문에 둘이 함께 조명되는 경우가 꽤 있었다.

바둑계엔 ‘대통령’도 있다. 한때 국가원수였던 김영삼 대통령과 동명이인을 뜻한다. 현재 한국기원 사무총장으로 재직 중인 바로 그 김영삼이다. 활동 영역이 판이하고 연령 차도 많아 함께 어울릴 기회는 없었지만, 바둑계에서 프로기사 김영삼은 정치인 김영삼의 이니셜을 그대로 물려받아 YS로 통해왔다.

김만수(金萬樹) 8단은 동종(同種) 업계에 시대를 달리한 동명이인을 가진 케이스다. 김만수(金萬壽)는 19세기 조선 후기 국수급 강자였다. 대원군의 바둑 선생이자 친구이기도 했다. 고종 황제 앞에서 또 한 명의 국수 백남규와 어전 대국을 했다는 일화도 전해져 온다. 현대인 김만수가 대선배 김만수의 위명에 은덕을 받은 모양새지만, 현대인 김만수도 어린 시절부터 기재(棋才)로 이름을 떨쳤고 요즘엔 최고의 해설자로 각광받고 있으니 선후배끼리 주고받은 셈이다.

같은 이름과 같은 분야에 활동 시기까지 비슷한 동명이인들은 정말 ‘꼼짝 마라‘다. 대표적 케이스가 2명의 이상훈 9단이다. (큰) 이상훈은 73년생, (작은) 이상훈은 75년생이다. 작은 이상훈은 ’이세돌의 형’이라고 해야 비로소 정확한 신분(?)이 전달된다. 큰 이상훈을 소개하는 데는 하호정 2단과 결혼한 국내 2번째 프로기사 커플이란 설명이 가장 잘 먹힌다.

이상훈 외에도 동명 기사커플은 몇 쌍 더 있다. 김학수, 박지훈, 이지현, 강훈, 권효진 등은 자기 이름과 똑같은 또 한 명의 프로기사와 공존한다. 이 중 이지현과 권효진은 성별이 다른 동명이인이다. 한국기원은 동성(同性)일 때는 큰 아무개와 작은 아무개로, 성별이 다를 때는 남녀로 보통 표기한다. 아직 여성 동명 프로기사 커플이 한 쌍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도 흥미롭다.

이밖에도 원로 프로기사 양상국과 개그맨 양상국, ‘송아지 띠‘ 프로기사 이재웅과 다음 창업자 이재웅 등 동명이인 커플이 많다. 프로기사 한승주는 전 외무부 장관과 이름이 같다. 이홍열 9단은 코미디언, 마라토너 등 다양한 직종 사람들과 동명(同名)의 인연을 지녔다(필자도 그와 자주 혼선을 빚는 동명이인 관계다).

인간 세상에 태어나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은 보통 인연이 아니다. 프로기사 사회 종사자는 말할 것도 없고 다른 분야의 동명이인들도 더 없이 귀한 존재다. 동명이인이란 일종의 2인3각이자 분신(分身)처럼 느껴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바둑 팬들은 2중, 3중으로 화려하게 변신하는 같은 이름들을 보며 앞으로도 신기해 하고, 또 즐거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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