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English LG
LG Home English Chinese

생중계
뉴스
기보보기
기보해설
대회개요
대진표
선수소개
역대 우승자 보기
기력향상 길라잡이

  재확인한 LG배 ‘1년 단임제’
 
▲ 韓변상일-中양딩신(전년도 우승자)

이번에도 예외가 없었다. 전기(前期) 챔피언이 1승도 건지지 못하고 탈락했다. LG배 조선일보기왕전의 이같은 전통은 23년째 이어졌다. 우승자는 그 다음 해에도 또 우승하는 연패(連覇)를 바라보는 것이 정상이지만, LG배는 차기 대회가 곧바로 무덤이다. 역대 어떤 국제대회서도 찾아볼 수 없는 지독한 징크스다.

제24회 LG배 조선일보기왕전 1회전이 지난 5월 27일 김포 마리나베이 호텔서 벌어졌다. 23회 대회 우승자 양딩신은 한국의 만만치 않은 신예 변상일을 상대로 첫 관문을 넘기 위해 죽을 힘을 다 해 맞섰지만 악전고투 끝에 패했다. 그가 LG배를 품에 안은 것이 지난 2월이었으니, 재위 기간은 1년도 아니고 고작 3개월이었던 셈이다.

23회 대회 우승자 양딩신만 망신 당한 것도 아니다. 그와 함께 패권을 다투었던 준우승자 스웨마저 홍일점 출전자 최정에게 무릎을 꿇었다. 전년도 왕조(王朝)가 단 1승도 올리지 못하고 첫 라운드부터 철저하게 풍비박산한 셈이다. 주목할 것은 이 같은 현상이 올해에 국한되지 않고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해까지 배출된 LG배 역대 우승자 23명의 차기 대회 성적을 집계한 결과 첫판 탈락자가 무려 8명(32강전 6명, 24강전 2명)으로 전체의 3분의 1이 넘었다. 2라운드 탈락자(16강) 4명을 포함하면 전체의 절반이 넘는 12명이 2회전 이전에 보따리를 쌌다. 8강 진출자와 4강 진출자는 각 5명씩이었다.

역대 LG배에서 2년을 패키지로 최고의 성적을 올린 기사는 이세돌 9단이었다. 2008년 제12회 대회서 신예 한상훈을 2대1로 물리치고 우승한데 이어 이듬해 13회 때도 준우승했다. 결승서 구리에게 져 LG배 사상 유일 무이한 2연패를 기록할 기회를 놓쳤다. 그래도 전기 챔프의 준우승은 LG배서 나온 최고, 유일의 성적이었다.

전기 우승자의 초반 탈락 현상은 대회 초창기보다 최근 들어 부쩍 많아졌다. 2016년 제20회 우승자 강동윤이 이듬해 1회전서 중국 멍타이링에게, 21회 챔피언 당이페이는 이듬해 이원영에게 한칼씩 맞고 대진표에서 사라졌다. 이어 22회 우승자 셰얼하오와 23회 타이틀 홀더 양딩신도 똑같은 전철을 밟았다. 우승 후 이듬해 32강 현상이 4년 연속 이어지고 있다.

다른 메이저급 국제 바둑대회서 연속 우승은 꽤 자주 연출돼왔다. 삼성화재배만 해도 이창호가 한 차례 3연패를, 조훈현 이세돌 쿵제 커제 등이 각 한 번씩 2연패를 달성했다. 춘란배서도 한 차례 연속 우승자(이창호)가 등장했었고, 지금은 사라진 동양증권배와 비씨카드배, 도요타덴소배도 연패 기사를 배출했었다.

24회까지 이어지다 2011년 중단된 후지쓰배는 다케미야 조훈현 이세돌 등 3명이 2연패(連覇) 챔피언으로 기록되고 있다. 마이너급인 TV아시아선수권의 경우엔 일본 다케미야 마사키 9단이 1989년 1회 때부터 92년 4회 대회까지 4년 연속 우승했는데 이것이 국제대회 최다 연패(連覇) 기록으로 남아있다.

LG배 우승자의 차기 대회 흑역사(黑歷史)를 이끈 것은 한국 보다는 중국 기사들이었다. 98년 유창혁과 접전 끝에 2회 대회 패권을 차지한 왕리청은 뒤이어 벌어진 3회 대회 첫판서 대만 저우쥔쉰에 일격을 당해 탈락했다. 이 대회는 32강 아닌 24강전으로 치러졌고, 왕리청은 첫 판서 물러난 최초의 LG배 우승자로 기록됐다. 5회 때의 위빈 역시 24강(1회전 탈락)에 머물렀다.
▲ 24회 LG배 8강 진출자들

그간 LG배에서 ‘바닥’을 뜻하는 32강에 머문 경험자는 저우쥔쉰을 필두로 17회 우승자 스웨, 20회 챔프 강동윤, 21회 때의 당이페이, 22회 대회 셰얼하오, 23회 챔프 양딩신이었다. 총 6명 중 한국 기사는 강동윤 1명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중국과 대만 기사들이었음에 눈길이 쏠린다.

우승자의 차기 대회 조기 탈락, 그리고 단 한 번의 연패(連覇) 기사도 등장하지 않는 LG배 징크스는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우선 세계 정상권 기사들의 전력 평준화를 가장 큰 이유로 꼽을 만 하다. 누구든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는 실력이 형성되다 보니 모두가 A학점과 F학점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성적표를 받아들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전기 우승자에 대한 집중 견제가 생각보다 강력하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디펜딩 챔프에겐 아무래도 시선이 집중되면서 모든 상대들이 총력전을 감행해오기 마련이다. 지닌 화력(火力)이 월등할 경우 이 같은 도전을 내칠 수 있지만 평준화된 상황에서 적들의 살의 품은 슈팅을 연달아 막아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전기 우승자란 타이틀은 상대방을 주눅 들게 하기 보다는 투지를 불태우게 만드는 수식어로 자리 잡았다.

반대로 디펜딩 챔프의 입장에선 전년도 대회 때처럼 평온하고 냉정한 심리상태 아래서 대국하기 어렵다. 뭔가 전년도 우승자로서의 관록을 보여줘야 할 것 같다. 그러려면 꼭 이겨야 하며 이겨도 멋지게 이기고 싶다…. 그러다 보니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결국 1년 전 보여주었던 평소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초장에 무너지고 만다.

이런 분석들은 사실 설득력이 부족하다. 위에 내세운 이유들이 왜 하필 LG배에서만 적용되느냐고 반문해오면 답변이 궁색해지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창호의 예가 오히려 설명에 도움을 준다. 이창호는 90년대 중반~2000년 대 초반 전성기 시절 다른 대회에선 연패(連覇)를 밥 먹듯 하면서도 LG배에선 징검다리 우승과 격년제 4강을 반복했다. 이럴 때 만만하게 쓰이는 표현이 징크스다.

LG배가 23년 간 지켜온 ‘1년 단임제’ 및 ‘우등생의 낙제’ 징크스는 언젠가는 깨질 것이다. 누가 그 주인공을 맡게 될지도 궁금하다. LG배만큼 개성 강하고 고집스러운 메이저 기전이 또 있을까.
Top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