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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력향상 길라잡이

  최정, 2019 LG배의 종착역은 어디일까
 

만록총중 홍일점(萬綠叢中 紅一點). ‘푸른 숲속에서 피어난 한 송이 붉은 꽃’이라는 뜻으로, 중국 송(宋)나라 시인 왕안석(王安石)‘의 작품에 나오는 구절이다. 대체로 ’군계일학(群鷄一鶴)과 같은 뜻으로 쓰이지만, ‘많은 남자들 틈에서 돋보이는 여자 하나’란 의미로 인용될 때도 많다.

한국 여자바둑계를 대표하는 최정(23) 9단이 이번에 또 한 번 제대로 홍일점(紅一點) 구실을 했다. 제24회 LG배 조선일보기왕전 통합예선 통과자 16명 명단에 여성으론 유일하게 이름을 올리면서 그녀의 가치는 더욱 올라갔다. 16개의 예선 조 결승서 한국과 중국 기사가 맞겨룬 9판 승자 중 한국 기사는 최정 혼자였다. 여기서도 ‘홍일점’이었던 셈이다.

최정이 여성기사 중 독보적인 존재란 증거는 수시로 발견된다. 올해 LG배 통합예선에선 4연승을 거두고 본선에 올랐는데, 희생자 중에는 구쯔하오도 포함돼 있었다. 구쯔하오라면 2017년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우승자다. 자국 랭킹은 3월에 3위, 4월엔 5위였다. 최정은 통합예선 종료 후 인터뷰에서 “통합예선 대진표를 받아 보니 구쯔하오가 있더라. 반갑다는 생각과 함께 투지가 솟아올랐다“고 했다.

강자를 만나면 탈락할 확률이 높아진다. 되도록 강자와 마주치지 않았으면 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최정이 강자를 오히려 ‘반기는’ 것은 자신감이 넘치고 투지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자신감은 실적에서 나온다. 강자들과 대등한 승부 끝에 얻어지는 승리의 희열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최정은 이미 그런 단계에까지 다다른 것이다.

LG배만 놓고 보더라도 바둑세계에서 여성에 대한 문호가 얼마나 인색한지 실감 난다. 대회 초창기 통합예선이 없던 시절 루이나이웨이가 몇 차례 포함됐을 뿐, 예선 관문을 뚫고 입성한 기사는 최정이 유일하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닌 세 차례나 이뤄냈다. 2016년 21회 때 왕위안쥔 황재연 안국현 저우허시 등 열강들을 제치고 최초의 기록을 세웠다. 본선에 오른 뒤 중국의 중견 고수 판윈러마저 제치고 16강까지 진출했다가 펑리야오에게 막혔다.

22회(2017년) 때도 류수항 옥득진 김미리 최재영을 꺾고 2년 연속 진출했었으니 이번이 3번째 본선 상륙이다. 통합예선은 각국에서 몰려온 350명이 16장의 티켓을 놓고 20대1이 넘는 경쟁률 속에 싸우는 무대다. 이 좁은 문을 여성 기사가 세 차례나 통과했다는 건 홍일점 정도의 표현으론 오히려 크게 부족해 보인다.

최정 9단은 삼성화재배서도 3차례 본선행을 이뤘다. 다만 삼성배의 경우는 여자부 예선을 따로 치르는 시스템이어서 본선행 난도(難度)로 볼 때는 LG배보다 떨어진다. 그런데 삼성화재배 예선 때 최정이 보여준 과정이 또한 무시무시했다. 지난 해 2018년 대회 때는 더블 일리미네이션 방식으로 치러진 32강전서 스웨 9단과 타오신란 7단을 연파하고 16강에 올라 세계에 충격을 던졌다. 스웨는 2013년 제17회 LG배 우승, 올해(2019년) LG배 준우승에 빛나는 중국 간판스타 중 한 명이다.

최정의 강자 사랑(?)은 여성조 편성을 거부하고 일반조 출전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삼성화재배와 몽백합배 통합예선 때 최정은 일반조에 출전 신청을 냈다. 실력 사회에선 남녀 구별이 없으므로 여성이라고 우대를 받아선 안 된다는 게 그녀의 철학이다. 최정에게서 자극받은 결과인지는 모르지만 중국의 여성 강자 위즈잉과 탕이도 몽백합배 일반조에 출전해 화제가 됐었다. 하지만 여성 기사가 일반조를 자원해 예선 통과에 성공한 사례는 아직 없다.

2016년 5월 21회 LG배 전야제 겸 조 추첨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최정은 가장 겨뤄보고 싶은 상대를 묻는 사회자 질문에 "커제"라고 답했다. 이유는 "바둑을 잘 두는데다 귀여워서"였다(최정은 96년생으로 커제보다 1살이 많다). 커제는 지금이나 그때나 중국을 대표하는 거물 기사다. 얼굴을 감싸고 웃음을 터뜨린 커제는 “결승에서 만나요” 하고 화답했다. 최정은 커제의 기원처럼 그 대회 결승까지 오르지는 못했지만 16강 진출이란 대박을 쳤다.

2019년 4월 초 인터넷에서 실제로 커제 대 최정 간의 빅 매치가 펼쳐졌다. 대여섯 판을 겨룬 결과 최정은 1승을 거두는 데 그쳤다. 하지만 그 1승은 최정의 일방적 승리였다. 이 대국 결과가 중국 전역에 화제를 몰고 왔다. 그 직후 중국서 열린 어느 기자 회견서 사회자가 이 이야기를 꺼냈다. 질문을 받은 커제는 “최정 9단은 매우 강하고 탄탄한 바둑이다. 나와 비슷한 실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올해 들어 마음을 비웠더니 좋은 결과가 많이 나온다. 그저 승부를 즐기면서 내가 어느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다.“ 최정의 최근 발언이다. 하지만 그가 진짜로 승부를 초탈했다고 보면 잘못이다. 성적이 오르면서 여유가 생겼을 뿐, ‘싸움닭‘의 본성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그에겐 여전히 뚜렷한 목표가 있다. "나도 루이나이웨이 사범님처럼 세계 4강까지는 올라보고 싶다.” 그녀가 말하는 대회는 1993년 제2회 잉창치배다. 그 때 루이 9단은 이창호를 포함한 뭇 세계 열강들을 잇달아 꺾고 4강에 올랐다. 이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고 있다. 자신이 도달하지 못한 경지에 오르겠다는 분명한 의지가 있는 사람의 “승부를 즐기겠다”는 말은 믿을 수 없다. 그는 아마도 평생 죽기 살기로 싸울 것이다.

최정 9단의 한국 랭킹은 30위. 여자기사만 따지면 66개월째 연속 1위다. 지난 4월말 중국 푸저우서 벌어진 제2회 우칭위안배 세계여자바둑대회서 배탈로 큰 고생을 하면서도 4강에 안착했다. 출전한 한국 기사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최정은 11월 하순 이 대회 준결승 및 결승전에 나간다. “우승을 목표로 자유롭게 질주하겠다.” 올해 프로 10년차인 그는 우칭위안배와 함께 양대 세계 여자 개인전인 궁륭산병성배를 보유 중이다.

그동안 LG배의 국가별 점유 수는 중국이 11회, 한국이 9회, 일본이 2회, 대만이 1회로 집계되고 있다. 한국은 2015년 강동윤 9단의 우승을 마지막으로 3년 연속 중국의 정상 등극을 구경만 하고 있는 상황이다. 꼭 우승이 아니더라도 최정이 여성 바둑사에 남을 만 한 실적을 작성한다면 ‘홍일점’의 가치는 더욱 빛날 것이다. 조선일보사가 주최하고 (주)LG가 후원하는 LG배 조선일보 기왕전은 오는 5월 27일 시작된다. 상금은 우승 3억원, 준우승 1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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