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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력향상 길라잡이

  열 살 최연소 프로 스미레 양의 미래
 

지난 연말 이후 한 일 바둑계를 뜨겁게 달궜던 나카무라 스미레(仲邑菫) 양이 마침내 4월 1일부터 일본 프로기사로서 공식 활동을 시작했다. 4월 22일 제29기 용성전 예선에서 데뷔전을 갖는다고 한다. 2009년 3월 2일 생으로 만 10세를 갓 넘긴 나이에 프로가 돼 후지사와 리나(藤澤里菜)가 갖고 있던 종전 최연소 입단 기록(11세 6개월)을 멀찌감치 갱신했다.

그러나 후지사와가 공식 입단대회 관문을 거친 반면 스미레의 입단은 ‘특별 채용’이란 점에서 둘은 구별된다. 일본 바둑이 한국과 중국에 밀린지는 꽤 오랜 세월이 지났다. 일본 바둑은 자국내 쇼기와의 라이벌 경쟁에서도 뒤지고 있다. 스미레 양은 침체로부터 헤어 나올 방책을 간절히 찾던 일본기원의 눈에 포착된 회심의 묘수였다.

스미레 양이 지닌 ‘상품성‘은 꽤 높아 보인다. 용모부터가 ’국민 막내딸‘로 손색없을 만큼 귀엽고 깜찍하다. 또한 입단 직전 한국 한종진 도장에서 수업해 한 일 두 나라 팬들에게 모두 친숙한 ’국제성‘도 갖추고 있다. 여기에다 바둑 실력이 출중하다. 순조롭게 성장한다면 일본이 그간 국제무대에서 당해온 수모를 한꺼번에 씻어줄 대형 스타로 클 수 있어 보인다.

스미레의 특별 입단을 결정할 당시 일본기원 부이사장이었던 고바야시 사토루(小林覺) 9단은 “한국과 중국을 보면 여성 기사들의 여건이 좋다. 어릴 때 프로를 만들어 힘을 실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특별 채용 과정엔 형식적이긴 하지만 소정의 절차도 거쳤다. 장쉬(張栩) 명인과의 시험기를 마련한 것이다. 장쉬는 스미레와의 시험기를 무승부로 마친 후 “어린 시절의 이야마(井山裕太)보다 강한 것 같다”고 평했다.

스미레는 그 직후 일본 5관왕 이야마와도 마주 앉는 영광을 안았다. 이 대국을 지켜본 요다 노리모토(依田紀基) 9단은 “100년 만의 기재”라고 극찬했다. 이 바둑 역시 무승부. 이 열 살 꼬마의 실력이 정말 천하의 이야마나 장쉬와 무승부를 기록할 정도로 뛰어난 것일까.

두 시험기의 치수(置數)는 스미레 양이 흑으로 두고, 이야마로부터 6집을 받는 이른바 ‘역덤’ 방식으로 치러졌다. 대등한 조건으로 두는 호선(互先) 바둑에선 흑을 쥔 쪽이 덤을 공제하는데 거꾸로 받았으니 상당한 불평등 조건이다. 무승부로 처리된 것도 이런 시험기에선 중간에 중단하고 화국(和局) 처리하는 관례를 따른 것이었다.

스미레 양은 올해 초 한국 여성 1인자 겸 세계 최고 중 한 명인 최정 9단과도 겨뤘다. 1월 23일 한국기원서 벌어진 이 대국은 스미레의 정선(定先). 이 바둑을 관전한 국내 프로들은 “아직은 2점으로도 부족한 실력으로 보인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이 뒤 TV 주최로 ‘할아버지’ 뻘인 조훈현 9단에게 정선으로 한 판 배울 기회도 있었는데 역시 판이 잘 짜이지 않았다.

일본 바둑계 초일류들이 스미레 양을 칭찬하는 것은, 그녀가 나이에 비해 뛰어난 기재를 갖췄기 때문이다. 현재 스미레 실력의 절대치가 유명 프로들과 대등히 겨룰 만큼 높은 수준이란 의미가 아닌 것이다. 바둑은 나이와 매우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는 종목이다. 재주가 뛰어날수록 어릴 때부터 두각을 드러내고, 어릴 때 재주를 보일수록 대성한다. 조치훈 이창호부터 박정환 최정까지 예외가 없었다.

일본 바둑계가 스미레에게 비원(悲願)에 가까운 기대를 걸고 있는 것도 ‘나이 대비 실력‘ 때문이다. 그리고 스미레는 일본 바둑계의 희망에 부응해 대가로 성장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어 보인다. 재주도 타고 났고, 중요한 대국서 패하면 울음을 터뜨리는 등 승부욕도 누구 못지않게 강하다.

하지만 일본기원이나 일본 매스컴의 지금 방식 영재 육성법은 바람직한 것일까. 지난 연말 이후 만 아홉 살이던 스미레는 대한해협을 건너 여기저기 불려 다니느라 몹시 바빴다. ‘시험기‘란 명분 아래 정신적, 육체적으로 너무 혹사당했다. 일본 특유의 센세이셔널리즘이 작동한 것이다. 아홉 살 스미레는 롤 모델을 묻는 사회자 질문에 한국에선 박정환, 일본서 둘 때는 이야마라고 정답(?)을 맞출 만큼 눈치도 늘었다.

일본 네티즌들도 무조건 열광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한 sns에 실린 댓글난엔 비아냥이나 악플들이 꽤 여러 개 보인다. “한국서 배웠다는데 왜 일본 바둑이라고 호들갑이지?” “한국 할아버지 기사에게 그렇게 참패하고도 천재라고?” “쇼기 천재 후지이와 비교하면 너무 쳐지네” “엄격한 시험을 거쳐 입단한 남자 프로들만 불쌍하군”하는 식이다.

특채 입단이란 특혜를 베푼 것에 대해 찬반양론이 있지만 필자 생각에 그 자체는 정책적으로 잘 한 결정이다. 입단대회 통과를 위해 머리 싸매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승부사로서의 성장 속도는 느려진다. 이를 단축하고 프로에 오면 발전 속도가 훨씬 빨라진다는 게 정설로 굳어져 있다.

다만 ‘월반 입단’의 경우는 초기 일정기간 동안 기대에 어긋나는 성적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식 입단한 선배들에 비해 아직은 실력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칫 패점이 쌓여갈 경우, 스미레가 실망감으로 자신감을 잃을 수도, 의욕이 사라질 수도 있다.

또 패배가 일상화 돼 아픔을 못 느끼고 승부 기질이 거세되는 상황도 두렵다. 스미레의 경우 입단 직전 약 5개월 동안 이곳저곳 불려 다녔지만 거의 이겨본 판이 없다. 입단 후 대국은 서슬 퍼런 공식전뿐이고, 만날 적수들은 모두 만만치 않다. 오뉴월 하루 볕처럼 따가운 게 없는 법이다. 엄청나게 중요한 시기에 돌입하는 스미레는 이제 들 뜬 유랑극단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자신도 프로기사인 스미레의 아버지 나카무랴 신야(仲邑信也) 9단도 딸의 교육에 어지간히 고심해온 흔적이 보인다. ‘바둑 선진국’인 한국에 보내 우수한 맞수들과 경쟁하게 했던 그의 선택은 일단 옳았다. 하지만 입단 이후에도 초등학생 딸을 한 일 양국을 오가게 하고, 한국 여자리그에도 출전시킬 생각이라면 그건 반대다. 어린 나이에 혼란이 계속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현재 스미레 실력으로 한국 여자리그에 들어온다면 1승을 올리기 쉽지 않을 것이다.

스미레 양이 곱게 자라 뛰어난 프로기사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귀여운 바둑 요정 스미레 양 본인과 본인 가족, 그리고 한 발 뒤쳐져 있는 일본 바둑계 모두에게 좋다. 일본 바둑의 발전은 세계 바둑의 균형 발전으로 연결된다. 하늘이 내린 영재를 세계 자산으로 키우는데 국경은 무의미하다.

스미레 양의 이름을 한자로 쓰면 仲邑菫이다. 菫은 제비꽃을 뜻한다. 다른 꽃과 달리 제비꽃은 충매화가 아니다. 벌이 없이도 자립적인 방법으로 가루받이를 한다. 연약하고 귀여운 제비꽃에게 벌 없이도 제 씨를 만들 수 있는 억센 힘이 숨어있는 것이다. 일본 바둑인들에게 조급해 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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