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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최강 듀엣으로 떠오른 커제-천야오예
 

바둑계에서 중국의 세계 지배가 갈수록 공고해져 가고 있다. 지난 연말 이후 잇달아 벌어진 삼성화재배와 천부배, 바이링배를 중국 기사들이 석권했다. 그 와중에 춘란배의 한국행이 결정되긴 했지만 중국의 위세에 완전히 압도된 형국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1월 말 현재 세계 메이저타이틀 판도는 한국 1개, 중국 7개다. 그 중심에 커제와 천야오예가 있다.

커제는 97년생. 올해 만 22세가 된다. 현재 신아오배, 삼성화재배 및 바이링배를 보유한 3관왕이다. 2016년 1월 몽백합배서 우승하면서 삼성화재배와 바이링배 포함 1차 3관왕에 올랐었다. 이번이 두 번째 트리플 크라운이다. 2010년 이후 세계 3관왕 등극에 성공한 예는 이 두 차례뿐이며 기사 중엔 커제가 유일하다. 그의 메이저대회 통산 우승 회수는 7회로 늘어났다. 구리(8회)에 이은 중국 역대 2위에 해당한다.

커제의 최근 행보는 그가 현재 세계 최강자임을 부인할 수 없게 만든다. 2018년 중반까지만 해도 중국 랭킹 1위 자리를 내놓을 정도로 한 동안 부진했으나 하반기부터 화려하게 부활했다. 안국현과의 삼성화재배 패권 다툼에서 2대1로 승리하고, 올해 연초 벌어진 바이링배서 한국의 호프 신진서를 2대0으로 셧아웃 시켰다. 이 2번의 우승만으로도 커제는 세계 최고봉의 자리에 우뚝 서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5세때 처음 바둑돌을 손에 쥔 커제는 2008년 11세의 나이로 프로기사가 됐다. 초기에만 해도 그는 평범한 존재였으나 2015년 1월 제2회 바이링배서 선배 추쥔을 3대2로 제압, 일약 첫 메이저 봉을 정복하면서 카리스마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이듬해 12월 제20회 삼성화재배 우승 때는 당시 중국 1인자였던 스웨를 결승서 눕혔다. 2016년 제2회 몽백합배 우승(3승 2패) 당시 상대는 한국 이세돌이었다.

중국 공식 랭킹 1위로 컴백한 커제의 세계 톱스타 위치는 당분간 움직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세계 메이저 결승에 8번을 올라 그 중 7번 우승했다. 2016년 제3회 바이링배서 천야오예에게 딱 한 차례 패배(1승 3패)했을 뿐이다. 세계 기전 8개 중 3개로 현재 메이저 점유율이 37.5%에 이른다. 한국의 입장에서도 커제는 좀체 넘기 힘든 준령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기사와 벌인 8번의 준결승-결승 번기(番棋)에서 그는 한 번도 패한 일이 없다.

커제는 포석 감각이 탁월하고 수읽기가 깊다. 공격과 형세판단에도 능해 여간해선 대세의 주도권을 내주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종반이 약하고 가끔 큰 실수가 나오는 등 천재 특유의 약점을 보이기도 하지만 종합 점수에서 누구보다도 앞서 있다는 평이다. 게다가 최대 변수인 연령에서도 22세의 절정기를 맞고 있어 향후 2~3년간은 정상 유지가 가능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천야오예는 커제보다 무려 8살이나 많다. 89년생인 그는 지난 해 연말 천부배 원년대회 결승서 신진서와 대접전 끝에 2대1로 승리, 메이저 세계 챔프의 일원으로 복귀했다. 2013년 6월 제9회 춘란배(대 이세돌 2대1 승리), 2016년 제3회 바이링배(대 커제 3대1 승리)에 이은 3번째 세계 제패였다. 10회 LG배(2005년), 19회 TV바둑아시아(2006년), 제1회 바이링배(2013년) 등 준우승도 여러 번 했다.

천야오예의 이번 천부배 우승에서 가장 의미를 찾는다면 그의 나이다. 이번 우승으로 8대 메이저 우승자 명단에 다시 80년대생 기사의 이름이 오르게 됐기 때문이다. 89년생은 만 30세, 한국식으론 31세헤 해당한다. 그는 한국 김지석 강동윤, 일본 이야마 유타 등과 동갑이다. 모두 국내외 무대에서 뛰어난 활약을 해온 강자들이지만 현역 세계 챔프는 천야오예 뿐이다. 천야오예 이전 80년대 생 기사의 마지막 메이저 제패 기록 수립자도 천야오예 자신(2016년 바이링배)이었다.

80년대 출생 기사로는 이세돌 구리(이상 83년생), 쿵제(82년생), 그리고 한국 송아지 3총사(박영훈 최철한 원성진. 85년생) 등이 꼽힌다. 그들 80년대 출생 그룹의 막내격인 천야오예와, 2000년대 태어난 유망주들 중 선두 주자인 신진서(2000년 출생)가 펼친 이번 천부배는 매우 상징적 의미를 띠고 있었다. 한국 대 중국의 국가 대결 의미에 더해 세대 대결로도 주목을 모은 것. 천야오예가 11세의 간극을 뛰어넘고 승리했다.

천야오예는 2018년 자국 갑조리그서도 80년대 출생 기사들 중 유일하게 5할 이상의 승률을 올렸었다. 중국 바둑계에서 오직 천야오예만이 90년대 이후 출생 기사들과 대등한 전적을 유지했다는 의미다. 2007년 세계 최연소 9단 획득으로 초1류 반열에 오른 이후 12년 동안 그는 한 번도 정상권을 떠나지 않았다. 천원전에선 대회 최장 기록인 8기 연속 우승에 성공하기도 했다.

이 같은 긴 수명(壽命)은 그 특유의 성실성과 노력에 기인한 것이다. 천야오예는 중국 텐센트사가 개발한 인공지능(AI) 대국 프로그램 절예(絶藝)를 자신의 컴퓨터에 심어두고 누구보다 열심히 연구해온 기사다. 한 중국 매체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천야오예는 절예를 상대로 매일 3~4국씩, 20개월 동안 2000여 대국을 갖고 내용을 샅샅이 분석했다고 한다. 절예는 알파고의 ‘은퇴’ 이후 세계 AI 최강자로 군림 중이다.

천야오예는 가정적으로도 유복하다. 천부배 우승 후 귀국할 때 그의 어머니와 부인, 장인, 장모가 100일 된 딸과 함께 공항에 마중 나왔다. 평소 집에서도 그는 가사 일을 돕는다거나 하는데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전담 관리인을 따로 고용하기 때문이다. 커제가 국제대회 우승 후 “상금 일부를 대출금 상환에 쓰겠다”고 했을 때 천야오예는 “나는 어릴 때부터 그런 문제로 신경 쓴 경우가 없었다”고 했다.

커제는 방송이나 쇼 프로그램 등에 자주 초청받아 출연한다. 거의 무대 엔터테이너 수준이다. 커제의 외향적 기질도 이와 부합된다. 하지만 멘털 스포츠로 불리는 바둑에서 이런데 지나치게 시간을 빼앗기면 승부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없다. 이 점에서도 천야오예는 자유롭다. 대중 매체 출연, 과도한 사교 등에 대해 그는 보수적으로 대응한다. 가정과 바둑 공부 쪽에 치중하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이 역시 그의 롱런 비결 중 하나로 꼽힌다.

세계 바둑사상 메이저대회 최다 우승자는 이창호로 총 17회 정상에 섰다. 2위 이세돌이 14개, 3위 조훈현은 9개의 메이저 봉을 정복했다. 그 다음이 구리(8개). 커제(7개), 유창혁(6개)의 순이다. 아직도 통산 우승횟수에선 한국이 중국을 압도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를 2013년 이후 최근 7년만으로 국한해 좁혀보면 얘기가 전혀 달라진다.

최근 7년 기간 동안 중국은 13명의 기사가 우승자 클럽에 가입하면서 총 22개의 타이틀을 손에 넣었다. 반면 같은 기간 한국은 3명이 4개 대회서 우승하는데 그쳤다. 메이저 대회서 우승한 한국기사는 박정환(2회) 김지석 강동윤(이상 각 1회)뿐이다. 중국이 무더기로 세계 챔프를 배출하며 최 융성기를 구가한 이 시기 우승자 명단 맨 위에 커제(7회)와 천야오예(3회)가 있다. 중국이 한국을 뛰어넘던 시기에 두 기사가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이 여기서도 확인된다.

2월 벌어질 제23회 LG배는 양딩신 대 스웨의 중중전, 6월로 예정된 12회 춘란배는 박정환 대 박영훈의 한한전으로 결승이 진행되지만 전체 대세는 변함이 없다. 앞으로 중국의 점유율이 더욱 강화될지, 한국 일본 등이 열세를 만회할 수 있을지 아직은 속단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이 시점 가장 ‘뜨거운’ 바둑 스타는 중국 청년기사 커제와 중년 초입에 접어든 천야오예 두 사람이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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