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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정, 루이나이웨이 신화 재현 가능할까
 

최근 바둑계 토픽 중 하나는 여성기사 최정(22) 9단의 눈부신 활약이다. 9월 4일 벌어진 제23회 삼성화재배 1라운드서 최정은 중국 랭킹 6위 스웨와 21위 타오신란을 연파, 패자조를 거치지 않고 무결점으로 16강에 안착했다. 세계대회 16강이 그토록 대단한 성취냐는 반문이 나올 수 있지만 내용을 알고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바둑의 세계에서 여성은 남성에 비해 아직 까마득하게 뒤처져있다고 말해서 과언이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최정은 거물들을 잇달아 제치고 첫 관문을 뚫은 것이다. 스웨(27)는 커제가 등장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세계 최강 실력 보유자로 인정받은 강호였다. 타오신란(24) 역시 한창 기세를 올리기 시작한 중국 최정예 중 한 명이다.

23년 역사의 삼성화재배에서 16강 진출 경험이 있는 여성 기사는 최정을 포함해 네 명뿐이다. 2012년 박지연과 2015년 중국 기사 위즈잉이 기록했고, 그 이전 루이나이웨이가 가장 먼저 이 대회 본선무대를 밟았다. 최정은 삼성화재배가 패자전을 가미한 더블 일리미네이션 방식을 1라운드에 도입한 후 패점 없이 첫 관문을 통과한 첫 여성 기사로 등록했다.

최정의 선전에 갈채를 보내면서 새삼 떠올리게 되는 존재가 루이나이웨이다. 루이는 현재 55세로 전성기가 한참 지난 기사다. 하지만 젊은 시절 그녀가 남긴 업적들은 워낙 찬란해 후배 여성 기사들이 두각을 드러낼 때마다 비교되곤 한다. 이번에도 최정의 쾌거를 보면서 많은 팬들은 그녀가 과연 루이의 경지에까지 이를 수 있을까하는 궁금증을 품었을 것이다.

루이가 위대한 것은, 여성의 바둑 실력이 지금보다 훨씬 취약했던 시절 뭇 남성 강자들 틈에서 성차(性差)를 의식할 수 없을 만큼 큰 활약을 보였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세계 메이저 대회 4강 진출 경력은 그녀의 ‘업적 1호’로 꼽힌다. 1993년 제2회 잉창치배에서 당시 세계 최강으로 발돋움 중이던 이창호 등을 제치고 준결승까지 오른 것.

루이나이웨이는 한국에 정착한 이듬해인 2000년 또 한 번 바둑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한국 바둑 상징적 존재 가운데 한 사람인 조훈현과 겨룬 국수전서 우승한 것이다. 루이는 이 승리를 통해 세계 바둑 사상 최초의 여성 우승, 한국 타이틀전 사상 최초의 외국인 우승 등 여러 기록을 남겼다.

워낙 군계일학 같은 존재이다 보니 여성들만의 국내외 기전은 모두가 루이나이웨이를 위한 행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조혜연 박지은 등에게 간간이 패점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보해배 3연속 우승 등 각종 국제 여성대회 우승컵이 그녀 품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2012년 중국으로 복귀하기 까지 한국서 루이나이웨이가 세운 우승 회수는 무려 27회에 달했다.

바둑의 세계에서 여성의 능력이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가설(假說)은 옳을까. 옳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옳지 않다면 그 가설은 과연 언제 누구에 의해 깨질까. 이런 명제들은 덤의 적정 크기, 중원의 가치 등과 함께 바둑계가 언젠가는 풀어야 할 수수께끼로 분류된다.

루이나이웨이의 세계 혼성 메이저 대회 4강 기록을 쫓아가려면 최정은 곧 이어질 삼성화재배16강전과 8강전에서 2승을 추가로 거두어야 한다. 그 확률은 일단 매우 낮아 보인다. 루이 이후 4반세기째 여성 기사 누구도 못 넘어본 난공불락의 벽이기 때문이다. 최정 스스로도 “1승만 더 따내 8강에 가면 한이 없겠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꼭 불가능하다고 단정 지을 근거 또한 어디에도 없다. 최정은 TV아시아선수권 우승 경력자이자 한국랭킹 7위(9월)인 나현을 꺾는 등 최근 들어 남성 최정상 강호들을 심심치 않게 울릴 만큼 성장했다. 세계 16강 진입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년여 전인 2016년 5월 제21회 LG배 조선일보기왕전서 이 대회 사상 최초의 여성 16강 기록을 작성한 바 있다.

당시 최정의 기세는 엄청났다. 통합예선서 왕위안쥔, 안국현, 저우허시(당시 중국 17위) 등 맹장들을 연파해 대회 첫 본선행을 이뤘다. 뒤이어 벌어진 본선 32강전서 최정은 판윈러(당시 중국 15위) 마저 꺾고 16강 고지를 밟았다. 여성기사끼리 별도로 치르는 삼성화재배와 달리 LG배는 남녀 구별 없이 예선을 거행하기 때문에 본선 진출 난도(難度)가 훨씬 높다.

남성의 절대 아성에 도전 중인 여자 기사로는 최정 외에 중국 위즈잉(於之瑩)도 있다. 올해 21세인 위즈잉은 2014년 뭇 남성 유망주들을 줄줄이 꺾고 중국 신인왕에 올라 각국 관계자들을 경악시켰던 여성이다. 결승서 맞섰던 리친청은 당시 중국 랭킹 35위로, 신인이라지만 이미 세계 4강까지 경험해본 막강한 실력자였다.

이 사건은 2000년대 진입 후 중국 바둑역사상 남녀가 동등하게 겨뤄 여성이 우승한 최초, 유일의 대회로 기록되고 있다. 위즈잉은 지난 3월 열렸던 세계 여자 개인전인 제1회 센코배 결승에서 대만 헤이자자를 물리치고 우승하는 등 국내외에서 중국 간판스타로 군림 중이다.

최정과 위즈잉은 한국과 중국을 대표하는 라이벌이지만 묘한 동지적 관계이기도 하다. 두 기사 모두 바둑으로 여권 회복(?)을 겨냥하고 있다. 여성의 상대적 열위(劣位)를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 편견을 깨 보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최정은 한 동안 여성들만 별도로 치르는 몇몇 예선을 사양하고 혼성조를 자원했다. 여성 우대를 걷어찰 만큼 자존심과 자신감이 강하다는 증거다. 전설의 여성 스타 루이나이웨이를 목표로 매진하고 있다는 것도 두 여전사의 공통점이다.

세계 프로바둑 사설 레이팅 기구로 ‘고레이팅’이란 게 있다. 비공인 사이트지만 워낙 세계바둑 자료가 없다보니(공식 세계프로 단체도, 랭킹도 없다) 참고자료로 가끔 인용된다. 고레이팅 최시판(2018년 9월 6일)을 검색해본 결과 다음과 같은 서열이 매겨져 있었다.

최정(한국) 81위
위즈잉(중국) 120위
오유진(한국) 155위
김채영(한국) 156위
후지사와(일본) 338위

이 순위를 보면서 여성의 세계 메이저 4강 진입이란 참으로 어려운 목표란 생각이 또 한 번 들었다. 하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최정이 여성 그룹 중 최일선에 나서 있다는 점은 흐뭇하다. 지금과 같은 기세가 계속된다면 일단 8강 정도까지는 못 넘을 벽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최정의 뒤를 이어 이름을 올린 오유진 김채영 등도 든든하다. 오유진(20)은 최근 지지옥션배에서 한국 바둑의 영원한 전설 이창호를 눕히는 등 승승장구 중이다. 최정과 동갑인 김채영은 올해 열렸던 제1회 오청원배서 우승, 세계 정상의 일각으로 우뚝 섰다.

이 랭킹 표에서 루이나이웨이는 251위에 올라 있다. 바둑과 나이 간의 역(逆) 상관관계를 감안할 때 환갑이 내일 모레인 그녀가 아직도 그 위치를 지키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루이가 아니라면 꿈도 못 꿀 일이다. 그녀는 80년대 초반 이후 고레이팅 순위에서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줄곧 여성 1위를 지켰던 기사다. 전성기 시절엔 남녀 통합 랭킹 20위권을 오르내렸었다.

30년 전과 지금의 성적 또는 순위를 단순 비교한다는 건 무리다. 기사층의 두께 등 지형(地形)이 워낙 달라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바둑은 한 세대 차이는 같은 잣대로 실력을 비교할 수 없는 분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루이나이웨이는 여성 암흑기에 시대를 앞서간 선각자 같은 존재였다. 천부의 재능이 그녀의 독주를 가능케 했다.

최정을 선봉으로 하는 세계 바둑 여전사들이 루이에 버금갈 만 한 실적을 올리고, 여성의 재주가 남성 못지않음을 보여주면서 남녀가 세계 정상을 동등하게 겨루는 광경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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