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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렬의 바둑이야기
  최고 흥행카드로 떠오른 서봉수-조치훈 대결
 

“다른 바둑은 져도 돼요. 서봉수 선배한테만 이기면….”
20세기 최고 승부사 조치훈의 말이다. 올해 조치훈은 62세, 서봉수는 65세의 왕고참이다. 조치훈은 왜 서봉수를 무조건 이겨야 할 천적으로 꼽고 있을까.

그간 ‘빚’을 많이 졌기 때문이다. 총 여섯 차례 공식전서 마주쳐 서봉수가 5승 1패로 앞서고 있다. 조치훈의 상대 승률이 16.7%에 불과하니 차이가 제법 크 셈이다. 제3자가 볼 때 둘 간의 상대전적이 이 정도로 한쪽에 기울었다는 건 좀 의외다. 조치훈이 앞서 있거나, 최소한 백중하리란 짐작이 빗나갔다. 서봉수의 5승 1패 중엔 최근까지의 5연승이 포함돼 있기도 하다.

최초의 공식전 만남은 92년 11월 하순에 이뤄졌다. 제2회 잉창치배 준결승 3번기였다. 첫 판을 조치훈이 이겼는데, 이것이 서봉수에겐 평생 조치훈에게 당한 유일한 패점이었다. 서봉수는 이어진 2, 3국을 모두 이겨 준결승을 통과했고, 결승에서도 오다케를 물리치며 세계 최대 기전인 잉씨배서 대망의 우승을 차지했었다.

잉씨배 준결승 이후 조치훈의 패전은 96년 제1회 삼성화재배 본선 2회전, 그리고 20년을 건너 뛴 2016년 ‘한국바둑의 전설‘ 대결로 이어진다. 그는 다시 지난 해 11월 시니어리그서 설욕을 다짐했지만 이번에도 승자는 서봉수였다. 그러고 보면 92년 이후 20년이 훨씬 넘는 세월 동안 조치훈은 한 번도 서봉수를 이겨보지 못한 셈이다. 천하의 승부사 조치훈으로선 이 빚을 갚지 않고선 편히 다리 뻗고 잠을 잘 수 없을만 한 성적표다.

그런데 두 기사의 대결 역사는 이게 모두가 아니다. 비공식전 한 판이 더 있다. 1976년 3월에 이루어진 둘 간의 전화바둑이 그것이다. 서봉수 4단과 조치훈 7단이 각각 서울과 도쿄에 자리한 채 스태프들이 상대 착점을 전화로 전달, 수순을 이어주는 실험적 방식이었다. 주최사인 한국일보 앞에 대형 바둑파을 설치하고, 해설자가 사다리 위에서 옮겨 다니며 해설했다. 안국동 일대가 인산인해를 이룰 만큼 흥행은 성공적이었다.

이 대국에서 조치훈이 이겼다. 초반은 백을 쥔 초치훈의 우세, 중반 흑의 매서운 반격이 성공하면서 서봉수의 역전 리드, 막판 조치훈 특유의 맹추격으로 인한 재역전. 각자 20분에 30초 초읽기 1회씩 주어진 이 바둑은 2시간 20분 만에 끝날 때까지 접전의 연속이었다. 이 비공식전을 포함하면 서봉수 대 조치훈의 통산 전적은 5대2가 된다.

두 기사 모두 세계 바둑사에서 손꼽을 만 한 ‘레전드’들이다. 조치훈은 일본이 세계 바둑의 메카로 군림하던 20세기 중반 유학을 가 일본 열도 바둑계를 완전 평정했다. 11세 9개월 만의 최연소 입단(남성 기사)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았고 7대 기전 최초 그랜드슬램, 대삼관(大三冠) 3회, 단일기전 최장 보유(혼인보 10연패), 통산 최다 타이틀(75회) 등 일본 바둑계의 기록이란 기록은 다 갈아치웠다.

서봉수는 나이는 조치훈보다 3살 위이지만 각종 기록은 조치훈보다 늦고 내용도 덜 화려하다. 출발 시점 자체가 워낙 늦었기 때문이었다. 중학시절 뒤늦게 바둑을 배워 17세 때 프로가 되자마자 초단 신분으로 명인전 도전기에 올랐고, 도전기 도중 승단해 2단의 몸으로 조남철을 꺾고 명인에 올랐다. 18세 명인 등극은 당시로선 상상도 못 할 반역이었다.

서봉수는 이후 조훈현의 유일한 적수로 숱한 명승부를 연출하면서 다채로운 새 역사를 추가해 나갔다. 92년 제2회 잉창치배 우승, 94년 국내기사 최초의 1000승 돌파, 97년 국가대항 연승전인 제5회 진로배 9연승 행진 등 끝없이 화제를 이어갔다. 국내외 무대에서 서봉수가 따낸 통산 타이틀 수도 30회에 달한다.

▲ 제2회 응씨배 준결승

조치훈과 서봉수는 어떤 점은 닮았고 어떤 점은 대조를 이룬다. 라이벌이 될 조건을 갖췄다는 의미다. 조치훈은 조국인 한국에 대한 사랑이 유별난 사람이지만 ‘성분’을 따지자면 일본 바둑을 대표하는 존재다. 그의 대부분의 대국과 영광의 궤적이 일본을 무대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서봉수는 ‘된장 바둑’, ‘토종 바둑’이란 애칭으로 불리며 국민적 사랑을 누려왔다. 조남철 김인 윤기현 조훈현 하찬석 등 선배 대가들이 거친 일본 유학을 이수하지 않은 최초의 타이틀 홀더였다. 조치훈이 바둑 명가에 태어나 최고의 바둑 환경 속에서 성장한 엘리트라면 서봉수는 들판에서 홀로 자생해 꽃을 피운 야생화 같은 존재였다.

한국 바둑은 90년대 중반 이후 이창호 유창혁 이세돌 등을 앞세워 세계를 석권했다. 하지만 이런 르네상스가 그냥 우연히 찾아오는 법은 없다. 그 토양을 일군 기사가 바로 조치훈이었고, 조치훈 신화의 기점(起點)은 1980년 명인전이었다. 오다케 9단을 누르고 명인에 오른 조치훈은 고국을 방문해 훈장까지 받았다. 공전의 바둑 붐 속에 국내 어린 영재들이 대거 바둑의 길로 들어서면서 한국 바둑 전성기로 이어졌다.

그런데 명인전이라고 하면 서봉수하고도 인연이 깊다. 물론 전혀 별개의 타이틀 이름이긴 하지만 우연치곤 묘하다. 서봉수에게 명인은 최초의 출세 무대였으며, 명인을 텃밭으로 대성을 이뤘다. 팬들이 그에게 ‘명인전의 사나이’란 이름을 붙여준 이유다. 두 사람은 기풍과 스타일 면에서도 공통분모가 있다. 노골적 실리 취향의 바둑을 둔다는 점, 그리고 집요하고 끈질기다는 점이 닮았다.

둘 사이에 또 한 명의 천재 조훈현을 대입하면 묘한 삼각함수(?)가 등장한다. 조훈현은 조치훈과 일본 바둑계에서 경쟁 관계였고 서봉수와는 국내에서 거의 유일한 라이벌이었다. 조훈현-조치훈, 조훈현-서봉수의 라이벌 구도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서봉수와 조치훈이라고 해서 왜 서로 간에 호기심 또는 견제심리가 없었겠는가. 둘은 조훈현을 매개로 라이벌이 될 수 있는 또 하나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국제대회 외엔 칼을 섞을 기회가 없었던 조치훈과 서봉수 두 사람이 나이 60이 넘어 공통 무대를 만나게 됐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한국기원이 ‘죽지 않는 노병, 식지 않는 열정’이란 구호 아래 2016년 출범시킨 시니어 바둑리그가 그것이다. 만 50세 이상 왕년의 승부사들이 6~7개 팀으로 분산 배치돼 겨루는 단체전이다. 부산서 태어난 조치훈은 동향 친구의 요청으로 KH에너지 팀에 합류, 2년째 시니어리거로 뛰고 있다.

현재까지의 2008 시니어리그 성적은 어떨까. 서봉수는 4연승으로 개인 부문 1위를 질주 중이지만 그의 소속 팀인 상주명실상감 팀은 2승 2패로 중위권에 머물고 있다. 반면 KH에너지는 주장 조치훈이 일정 관계로 전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4연승으로 팀 순위 1위에 나서 있다. 조치훈은 개인 전적 3승으로 다승 순위 4위에 랭크돼 있다(7월 13일 현재).

시니어리그서 두 기사가 1대1로 만날 확률은 단정 짓기 힘들다. 두 팀이 맞닥뜨리더라도 오더가 일치해야 한다. 조치훈이 전 경기를 참석할 수 없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대회가 종반으로 갈수록 커지는 비중 때문에 조치훈의 서울행은 더욱 잦아질 것으로 보인다.

3대3 단체전에서 주장전이 이뤄질 경우 패하는 팀의 대미지는 매우 크다. 하지만 모처럼의 빅매치를 지켜보는 관중들은 열광할 것이다. 올해도 지난해에 이어 시니어리그에서 전설 간의 맞대결이 이뤄질까. 이뤄진다면 승리는 누구 몫일까. 비록 둘 모두 60대 노장이 됐지만 라이벌 대결만큼 흥미로운 구경꺼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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