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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렬의 바둑이야기
  바둑 랭킹의 세계
 

한국에 처음 바둑랭킹이 도입된 시기는 2005년이었다. 이런 움직임이 일자 상당수 기사들은 불쾌한 표정을 지었었다. 바둑은 승부인 동시에 예술이기도 한데, 예술가들을 한 줄로 세워 순위를 매긴다는 것이 영 마뜩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각자 나름대로 신격화돼 있는 프로의 입장에서 자신의 성적과 순위가 팬들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는 건 최상위권 몇 명을 제외하곤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랭킹 산정작업에 대한 신뢰도도 문제였다. 어떻게 무슨 기준으로 매기느냐 하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했다. 하지만 통계 분야에 상당한 조에와 식견을 가지고 있는 재미 과학자 배태일 박사가 가세하면서 기술적 부문도 크게 개선됐다. 한국 바둑랭킹은 배박사 주도로 2009년부터 승률 기대치와 기전 가중치를 점수화하는 최선진 통계 시스팀으로 정착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랭킹은 매달 달라지는 프로기사들의 순위를 지켜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운 구경꺼리다. 현재 한국의 프로기사 수는 300명도 훨씬 넘지만, 요즘엔 하위권 기사들의 체면을 고려해 100위까지만 오픈한다. 가장 최근인 2018년 3월 랭킹을 보면 박정환이 선두 자리를 52개월째 연속, 통산 61회에 걸쳐 지키고 있다. 박정환의 랭킹 점수는 10,070점으로 사상 최고점에 해당한다.

신진서는 16개월 째 연속 박정환에 이어 2위에 랭크되고 있다. 3월 랭킹 점수는 9,837점으로 1위 박정환에게 233점 뒤져있다. 신진서가 처음 2위에 올라 박정환의 추격자로 등록했던 2016년 12월 이후 둘 간의 가장 큰 점수 차이다. 박정환의 ‘1인 독재‘가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는 의미다. 신진서에 이어 이세돌 김지석이 각각 3, 4위에 자리 잡았다.

연속 1위 회수는 박정환(52개월)이 최장이지만 랭킹 1위에 오른 총 회수는 좀 다르다. 합계 67회 1위에 오른 이세돌이 이 부문 최강자다. 그 뒤를 이창호(22회), 최철한(2회)이 따르고 있다. 한국 바둑의 1인자 재위기간이 가장 길었던 이창호 조훈현 등이 랭킹 부문에서 1위를 기록하지 못한 이유는 뻔하다. 그들의 전성기 때는 바둑랭킹이 아직 없었거나 본격 실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기원은 지난해부터 여자 랭킹을 매달 별도로 집계, 발표하고 있다. 3월 순위표에 따르면 여제(女帝)로 군림 중인 최정이 추격자들을 현격한 차이로 따돌리고 선두를 고수하고 있다. 최정의 뒤로 오유진 김채영 조혜연 김다영 오정아 김혜민 박지은 김윤영 조승아가 10위권을 형성하고 있다.

중국의 랭킹제 도입은 1997년으로 한국보다 빨랐다. 세계 최초였다. 중국 국가대표 감독이면서 컴퓨터에 능한 위빈 9단이 개척자다. 당시엔 3개월마다 한 번씩, 1년에 4번 분기별로 발표하다 2013년 2월부터 매달 발표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한국이 100위까지만 발표하는 것과 달리 중국은 소속 기사 전원의 성적표를 고스란히 공표한다.

중국 랭킹의 최신 3월 랭킹을 보면 많은 사람이 짐작한 대로 커제가 1위에 자리 잡고 있다. 30개월 연속 톱이다. 하지만 커제의 랭킹 점수는 그의 30개월 1위 재위 기간 중 이번 달이 가장 낮은 점수다. 30개월에 걸쳐 선두를 지키고는 있되 그 독점도가 조금씩 무너져 가고 있다는 의미다. 하락세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커제의 뒤를 스웨 미위팅 렌샤오 퉈자시 천야오예 탄샤오 구쯔하오 판팅위가 추격하고 있다. 중국은 한국에 비해 기사층이 두터워서 40~50위권까지도 무시할 수 없는 실력자들이다. 지난 달 LG배 조선일보기왕전 우승으로 세계를 정복한 셰얼하오가 아직도 15위에 그치고 있을 정도다. 올해 농심배 국가대항전서 중국대표로 나와 5연승으로 유일하게 분전한 당이페이는 33위다. 여자기사 중엔 군계일학 격인 위즈잉이 전체 63위, 여자 기사 중에선 29개월 연속 1위를 내달리는 중이다.

한국 중국과 함께 세계 바둑의 3대 축을 이루는 일본엔 아직 개인 랭킹이 없다. 일본은 대신 타이틀전을 서열화하고, 그 타이틀 보유자로 개인 랭킹을 대신한다. 하지만 현재 일본은 톱스타 이야마 유타가 1위부터 7위까지 메이저 7대 기전을 독식 중이어서 그나마 개인 서열이 더 희미해졌다. 1위 이야마만 분명하고 나머지 2위 이하는 누가 주인인지 알 수 없는 안갯속 프로바둑계가 돼버린 것이다.

일본이 한국 및 중국과 발맞춰 개인 랭킹제도를 도입한다면 그런대로 통일된 세계 랭킹을 산정하고, 그것을 토대로 여러 사업을 벌일 수 있을 텐데 아쉽다. 일본은 3국 가운데서도 바둑을 승부보다는 예술 속성을 가장 높게 인정하는 나라다. 바둑을 수 백 년 동안 예(藝)와 도(道)로 받들어왔던 보수적 전통 때문에 과감한 개혁이 어려운 처지다. 최근 한국과 중국이 통릴 랭킹 제정안을 논의하면서 일본에도 공동보조를 요청했지만 시원한 대답을 얻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바둑이 한 층 더 도약하려면 한 중 일 3국의 연합 랭킹이 가장 시급한 과제다.

세계 레이팅이 정식 도입될 경우 예상되는 활용도는 매우 넓다. 랭킹을 기준으로 단체전도 할 수 있고 특정 순위 간의 치수고치기도 가능해진다. 세계 대회가 급히 만들어질 경우 예선을 생략하고 랭킹 기준으로 행사를 치를 수 있다. 실제로 한국에선 급히 해외 출전 기사를 뽑아야 할 경우 국가대표들 간의 4강전, 또는 8강전으로 대신하는데 그 기준은 랭킹이다. 팬들은 랭킹과 관련해 1위 총 재위 기간, 연속 재위 기간, 최대 상승, 최대 하락, 최대 폭 하위랭커의 반란 등 흥미로운 기록들이 쏟아질 때마다 열광할 것이다.

‘배태일판’과 ‘고레이팅’ 등 2개의 세계 랭킹이 존재한다. 하지만 둘 모두 공식 순위가 아니다. 배태일 판은 한국랭킹을 정립한 배태일 박사가 설계, 주도해 온 것이지만 지난 해 9월 이후 반년이 지나도록 새 랭킹이 발표되지 않았을 정도로 발표 시점부터 들쑥날쑥하다. 고레이팅은 바둑 전문 랭킹사이트를 표방하고 있지만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고레이팅의 3월 기준 랭킹 1~10위는 박정환 커제 신진서 김지석 이야마 이세돌 미위팅 구쯔하오 스웨 렌샤오 순이다. 배태일판은 지난 해 9월 기준으로 커제 박정환 미위팅 신진서 스웨 리쉬안하오 퉈자시 천야오예 탄샤오 판팅위가 1~10위를 점하고 있다. 시점이 달라서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상당한 시각 차이를 보인다. 배태일 박사가 28위로 산정한 이야마 유타를 고레이팅은 5위에 올려놓는 식이다.

세상은 온통 숫자로 뒤덥혀 있다. 경쟁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순위 꼬리표가 따라붙는 법이다. 스포츠의 세계는 말할 것도 없고 글로벌 기업, 세계 대학, 미인 대회 등 모든 분야가 순위를 가린다. 자동차 하나만 해도 브랜드 가치, 연비(燃比), 판매량, 주가(株價), 경영 실적, 소비자 만족도, 최고 속도 등 끝없이 이어진다. 바둑이 올림픽에도 상륙하고 글로벌 이벤트로 자리를 굳히는 등 꿈을 성취하려면 적어도 통일된 세계 랭킹 정도는 우선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바둑이 최고의 컨텐츠를 지니고도 상품적 가치를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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