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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렬의 바둑이야기
  “어서 와. 신선세계는 처음이지?”
 


바둑에서 가장 높은 정점은 9단이다. 프로기사 9품계와 단위 제도를 가장 먼저 정립한 것은 막부 시대의 일본이었다. 하지만 당시 9단은 그 시대의 최고 고수(명인) 단 1명에게만 인정했다. 마땅한 후보가 보이지 않을 경우엔 억지로 채워넣지 않고 그 자리를 비워놓았을 만큼 9단의 권위는 확고했다.

9단의 별칭이 입신(入神)이다. 인간세계를 완전히 마스터 함으로써 어느덧 신의 경지에 들어섰다는 의미이니 최고의 자리임이 분명하다. 9단에 오른 프로기사들이 입신 증서를 들고 신들이 사는 동네에 들어섰다고 상상해 보자. 선배 신들은 이렇게 반겨주지 않을까. “어서 와. 신선세계는 처음이지?”

1927년 일본에 처음 승단제도가 도입됐고 후지사와 호사이(藤澤朋齊)가 1949년 세계 최초, 유일의 9단으로 탄생했다. 한국 최초의 9단은 1982년 만 29세의 조훈현이 올랐다. 조훈현보다 한 세대 쯤 위인 개척자 조남철은 주변의 명예 9단 추대를 사양하다 조훈현이 입신 등정에 성공한 뒤 비로소 수락, 국내 9단 2호가 됐다.

하지만 9단이 쏟아져 나오면서 권위도 약간씩 떨어져 갔다. 9단이라고 꼭 최고의 기량을 갖춘 건 아닌 시대가 열린 것이다. 대국료도 없는 승단 대회에 불참하는 기사들이 발생하자 한국기원은 이를 없애고 새로운 승단 규정을 만들었다. 몇 차례 업데이트를 거쳐 2016년 4월부터 현재의 승단대회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그 뼈대는 공식대국의 성적을 승단 기준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핵심적인 것은 세계 대회서 우승할 경우 무조건 9단으로 인정한다는 대목이다. 제한기전 우승 1계단, 국내대회 우승 시 2계단, 세계 대회를 제패하면 3계단을 올려주던 기존 규정을 확대한 것이다.

중국은 우리나라보다 한 발 빠른 2002년 국제기전서 우승하거나 준우승을 두 차례할 경우 무조건 9단을 인허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한국에 이어 2003년부터 자국 3대 메이저 기전 우승자나 세계대회 우승자에게 9단을 주는 등 ‘당근’ 확대 정책을 채택했다. 소속국에 관계없이 세계를 한 번이라도 정복하면 9단에 오르는 시대가 뿌리를 내린 것이다.

현재 한국기원에 소속된 9단의 숫자는 75명이다. 이는 전체 기사 351명 중 21.4%에 달한다(2018년 2월 12일 현재). 대략 프로기사 5명 중 1명 꼴이다. 한 중 일 대만의 9단을 모두 합하면 줄잡아 300여 명에 이른다.

실력과 단위를 연동시키기 시작하면서 9단들의 수준은 다시 올라갔다. 경력이나 나이는 일천해도 충실한 실력을 갖춘 젊은 프로기사들이 대거 입신 진영에 합류하기 시작한 것이다. 종전 규정 상으론 아무리 빨리 단위가 올라도 15년(양재호)이 걸렸는데 그 절반 기간만 활동하고도 입신에 오르는 기사가 속출했다.

입단한 뒤 최단코스로 9단에 오른 한국 프로기사는 박영훈이다. 4년 7개월 28일, 날 수로는 1673일로, 이는 현재 세계 최단 기록이기도 하다. 박정환(1684일)일보다 11일 빠르다. 박정환은 8단이던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우승하면서 입신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박영훈을 넘지 못했다.

9단에 오른 나이, 즉 최연소 입신 등정기록 싸움은 위의 최단코스와는 구별된다. 현재 최연소 9단 국내 기록은 박정환의 6554일. 신진서가 2월 11일 끝난 제1회 크라운해태배서 우승했더라면 6541일로 박정환의 기록을 13일 단축하며 새 기록 작성이 가능했는데 불발로 끝났다. 세계적으론 판팅위(6057일), 커제(6375일), 천야오예(6389일)이 최연소 9단 기록 1~3위를 차지하고 있다.

새해로 접어들면서 젊은 남녀 스타기사들이 다투어 9단으로 승단해 바둑계에 활력소가 되고 있다. 바로 최정과 나현이다. 두 기사 모두 어릴 적부터 장래를 촉망받으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강자로 성장해온 기사들이다. 비슷한 위상과 이미지를 지닌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입신의 대열에 합류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최정은 1월 28일 끝난 제22기 여자 국수전 우승으로 8단에서 9단 승단의 요건을 채웠다. 만 21세3개월 16일의 나이로 국내 일곱 번째로 빠른 입신이다. 여성 기사 중엔 박지은 조혜연에 이은 세 번째 9단 등정이며, 셋 중 가장 빠른 나이에 9단의 꿈을 이뤘다. 이미 라이벌인 중국 위즈잉을 포함해 국내외 경쟁자들을 모조리 진압, 여성 세계 최고수에 등극한 실력을 단위로도 증명한 셈이다.

최정이 프로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2010년 5월이었다. 여성 대 시니어 단체 대결장인 지지옥션배에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첫 선을 보였던 모습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이다. 그로부터 벌써 7년 8개월이 흘렀다. 8년도 못 되는 짧은 시간에 최고 단위를 정복했으니 대단한 스피드다. 국내 여덟 번째 최단 기간 입신에 해당한다.

최정보다 한 살 많은 나현 또한 90년대 중반 출생 유망주 그룹을 대표하는 기사였다. 한화생명배 세계 어린이 국수전 우승을 통해 화려하게 데뷔했고, 2010년 프로 진입 후 단 7년 8개월 만에 최고 단에 우뚝 섰다. 이미 물가정보배, 천원전 등 국내 무대를 정복한데 이어 지난 해 마이너급 세계 타이틀인 TV아시아선수권서 우승해 탄탄대로를 예고하고 있다.

신진서는 박정환이 보유한 최연소 9단 기록 경신의 기회를 놓쳤지만 여전히 가장 주목받는 기사다. 앞으로 국제 대회서 우승하거나, 최소한 제한기전서 우승해도 바로 9단이 된다. 그 경우 국내 프로들 중 가장 나이 어린 현역 입신이 될 것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젊은 유망주들이 착착 ‘신들의 동네’에 발을 들여놓는 모습은 참으로 보기 좋다. 새해 벽두에 골인 테이프를 끊은 나현과 최정의 뒤를 이어 속속 탄생할 ‘벼락 입신‘들이 기다려진다. 신민준 안성준 변상일 김명훈 송지훈 최재영등 후보들이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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