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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렬의 바둑이야기
  기록賞 남녀 구분 문제 있다
 

지난 12월 28일 호암아트홀에서 2017 바둑대상(大賞) 시상식이 거행됐다. 한 해 동안 가장 좋은 성적을 올린 기사들을 격려하는 자리다. 이번에 상을 받은 사람은 모두 16명으로, 그 전 해에 비해 6명이 늘었다. 수상자가 늘어난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원칙과 명분에 근거하지 않으면 상의 권위와 의미가 퇴색되게 마련이다.

어떤 상이건 수상자 결정 기준은 크게 2가지로 대별된다. 하나는 성적 수치(數値)에 따르는 기록 부문이고, 또 하나는 실적의 계량화가 불가능해 선정인단의 투표 등을 통해 뽑는 방식이다. 전자가 객관적이라면 후자는 주관적 방식이다. 바둑대상이 두 방식을 병행해 운영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하지만 이것이 두 방식을 두루뭉술하게 적용해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객관성이 생명인 기록 부문은 모든 관객이 납득할 수 있도록 운영돼야 한다.

바둑대상 기록부문은 다승, 승률, 연승 등 3개 부문이다. 전년도까지 각 부문 최고 성적자 1명, 총 3명에게 상을 주었는데 이번부터 남녀를 별도로 각 1명씩, 수상자가 총 6명이 됐다. 남녀를 구분 시상키로 한 데 대해 한국기원의 명확한 설명은 없었다. 다만 여성 기사들만 출전할 수 있는 여자 대회의 승리 난도(難度)가 일반(혼성) 대회에 비해 훨씬 낮다는 점이 별도 시상으로 전환한 이유로 추측된다.

2018년 다승왕 부문은 56승의 박정환이 ‘남자 다승왕’, 61승의 오유진이 ‘여자 다승왕’으로 결정됐다. 예년 같으면 ‘전체 수석’ 상을 받아야 할 오유진이 ‘여자 수석’에 그친 것이다. 시상식 때 사회자가 이 점을 지적하자 오유진은 "원래 억울하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하니까 조금 아쉽다"고 애교 섞인 투정을 했다. ‘남자 수석’ 박정환은 "저한테는 잘 된 것 같다"며 웃었다.

2017년 전체 다승 1위 오유진의 경우 총 승수 61승 중 47승이 여자들만의 대회에서 거둔 것이다. 일반(혼성) 대회서 얻은 승수는 14승에 불과하다. 여성 대회서 몰표(?)를 얻어 한국 1인자 박정환(56승)을 따돌리고 전체 다승 1위를 한 셈이다. 남녀가 모두 출전하는 대회서 박정환이 거둔 1승과, 여성들만 출전하는 기전서 전체 승수의 30% 가까이를 수확한 오유진의 1승을 동가(同價)로 치는 것은 사실 문제가 있다. 최정의 승률 7할 8푼과 박정환의 8할도 마찬가지다. 12월 기준 한국 랭킹을 보면 여성 중 100위권에 드는 기사는 최정(53위) 한 명 뿐이고, 나머지 60명 가까운 여성 기사들은 전원 100위권 밖에 자리 잡았다.

하지만 남녀의 기력 수준 차이에 그렇게 의미를 둘 생각이라면 애당초 여성의 혼성기전 출전을 허용하지 말았어야 옳다. 한데 섞어 같이 경쟁시켜놓고 연말 집계에서 1승의 순도(純度)를 따진다면 원칙이 없는 것이다. 여성들은 여성 기전에만 출전하게 하고 남녀의 별도 랭킹, 별도 기록(다승, 승률, 연승)에 따른 시상을 해야 이치에 맞는다. 바둑을 제외한 다른 모든 스포츠 종목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 남녀 공학 학교에선 시험을 함께 친 이상 ‘남자 수석’과 ‘여자 수석’을 별도 시상하지 않는다. 어떤 분야건 1등은 한 명뿐이다.

여성 바둑은 축복과 한계를 동시에 안고 있다. 다른 어떤 종목보다도 여성의 남성 상대 경쟁력이 높다. 바둑계가 남녀를 한 울타리에 넣고 경쟁시킬 수 있는 것도 그 차이가 매우 적기 때문이다. 이것이 여성 바둑이 누리는 축복이다. 게다가 남녀가 함께 어울려 경쟁하는 모습은 매우 훌륭한 흥행 요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비록 미세하지만 양성 간의 실력 차이가 좀체 메워지지 않고 있는 것도 부인하지 못하는 한계다. 이 2가지 현상이 공존하는 것이 혼란의 원천이다.

바둑은 프로진출 문호부터 남녀가 다르다. 여성에겐 상대적으로 월등히 쉬운 뱔도의 진입 관문(여성 입단대회)이 제공된다. 그런데 일단 프로 울타리에 진입하면 울타리는 사라진다. 오히려 여성 기사들은 혼성(남녀 공용) 기전과 여성 전용기전 모두에 출전할 수 있다. 혼성 기전 출전만 허용되는 남성에 비해 훨씬 유리한 조건이다. 대국 기회와 타이틀 도전 기회, 승수 쌓기 등 모든 면에서 양성(兩性)은 평등하지 않다.

하지만 이런 불평등 방식은 지금까지 남성기사들의 양해 아래 공식적으로 시행돼 왔다. 여성들에 비해 역차별 받는다고 불평하는 남자 기사들은 보지 못했다. 바둑계에 여성들이 차지하는 기능과 중요도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뽑을 때는 남녀를 따로 뽑고, 줄곧 한 울타리에서 경쟁시켜 오다가, 상은 또 따로 주겠다는 이번 결정은 매우 혼란스럽다. 양성(兩性) 공동체로 운영되는 바둑계를 외부에서 어떤 조직으로 볼지 걱정된다. 기록 부문 남녀분리 시상은 이 같은 차별을 의식하고 남성 기사들에게 제공한 쓸 데 없는 보상(?)이란 느낌이다.

바둑의 여성 우대정책은 가치가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돼야 한다. 바둑의 위상을 제고하고 저변을 넓히며 상품성을 배가하는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다른 어떤 종목도 엄두를 못 내는 혼성 대결, 양성 경쟁의 이점을 살려가야 한다. 그러나 원칙과 명분은 지키는 게 중요하다. 주는 사람보다 받는 사람이 더 자부심을 느끼도록 만든 상이 좋은 상이다. 바둑 행정의 총괄 본부격인 한국기원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

프로와 아마추어 2개 부문에 여자 기사상을 별도로 주었는데 이것도 의문이다. 이 결정의 이면엔 ‘여자 바둑은 죽었다 깨나도 남성을 넘어설 수 없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걸출한 여성 프로가 탄생해서 남자 강호들을 따돌리고 1인자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그 때는 최우수 기사와 여자 기사상을 모두 여자 프로에게 주겠다는 건지, 최우수 밑에 남자 기사상을 따로 만들겠다는 뜻인지 잘 모르겠다.

거꾸로 인기상은 남녀를 구분해 따로 줄만 한 상이다. 팬들의 성(性)이 남녀로 나뉘고, 그들 나름대로 취향과 기호가 크게 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팬들과 프로들 간의 간격을 좁히려면 이런 정책이 바람직하다. 2007년까지는 남녀 인기상을 구별해 팬 투표에 의해 별도로 선정했었다. 그랬던 것을 2008년과 2009년 남녀 합해 인기상 1명 방식으로 바꿨다가 아예 없애더니 8년 만에 부활했는데 수상자는 1명(최정)뿐이었다. 역시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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