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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렬의 바둑이야기
  상담기, 어떤 방식인가
 


바둑 동네에서 상담기(相談棋)가 갑자기 떠오르고 있다. 막강 실력의 알파고에게 인간이 그나마 대적해 볼 수 있는 최선의 대국 방식이 상담기란 이야기가 나오면서부터다. 그렇다면 상담기란 무엇이고. 어떤 역사적 배경과 특징이 있을까.
상담기는 글자 그대로 자기편끼리 상담 과정을 통해 최선의 수를 골라 착점하는 방식이다. 양쪽 팀 모두 복수(複數) 멤버로 구성될 수도 있고, 어느 한 팀은 혼자서 싸울 수도 있다. 집단 대 집단, 또는 집단 대 개인의 대결이다. 상담기에 나오는 한 팀이 몇 명으로 구성되느냐 하는 것은 정해진 게 없다. 다만 3명이 넘으면 경기 진행이 산만해지므로 2명 또는 3명이 보통이다.

집단 대 집단의 상담기일 경우 양 팀은 각각 별도의 방에 분리 수용된다. 각 팀은 동료들과 함께 바둑판 위에 돌을 놓아보면서 여러 변화를 검토한 뒤,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수를 메신저에게 전달한다. 메신저는 이를 다른 방에 자리잡은 상대 팀에게 전달하고, 그 팀도 똑같은 상담 과정을 거쳐 메신저에게 응수를 통보하는 식이다.
상담바둑의 가장 큰 특징은 두 집단이 지닌 바둑 실력의 총화(總和)를 비교해 길고짧음을 겨룬다는 점이다. 구성원들의 장점을 모아 극대화한 팀 전력을 비교한다는 묘미가 있다. 국가 대 국가, 기업 대 기업, 기우회 대 기우회 등 경쟁 관계의 두 집단이 겨루는데 안성맞춤이다.
인간들이 알파고나 딥젠고 같은 인공지능에 대항해 상담기 팀을 만들어 대결할 수도 있다. 상담기엔 실수 없는 바둑을 두고 싶다는 인간의 오랜 꿈도 녹아있다. 제 아무리 뛰어난 기사라고 해도 실수는 등장한다.이런 실수를 없애거나 최소화해 보자는 게 상담바둑을 만든 인간의 꿈이다.

하지만 상담기라고 만능은 아니며 약점도 있다. 완벽한 팀플레이와 협업 정신이 전제되지 않으면 오히려 혼자 싸우는 것보다도 못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소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들끼리 한 팀을 이뤄 출전하면 배가 산으로 가는 경우가 생긴다. 1+1+1<3도, 1+1+1>3도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선수 구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연령이 월등하게 높은 대선배, 고집이 세서 남의 의견을 잘 듣지 않는 배타적 성격의 기사, 지나치게 튀는 기풍의 소유자 등을 상담바둑 멤버로 기용하는 것은 그래서 위험하다.
상담기는 이미 공식 국제대회서도 몇 차례 선을 보인 바 있다. 지난 2013년 말 광저우(廣州)서 벌어졌던 제1회 주강배 결승전이 국제무대서의 효시였다. 한국과 중국이 3대3 상담기로 맞붙어 한국이 승리, 우승했다. 당시 마련된 두 개의 대국실엔 각 팀 출전자 3명과 심판 2명이 들어갔다. 한 팀 당 4시간 반의 시간이 주어졌고, 일반 바둑에 보편화돼 있는 초읽기는 적용하지 않은 채 타임아웃제를 적용했다. 이 아이디어는 중국에서 유망주 조련사로 유명한 우자오위(吳肇毅) 9단의 작품이었다고 한다.

2013년 주강배 결승전은 상담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둘도 없는 역사적 ‘교과서’로 이야기된다. 팀워크와 분위기가 상담기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적나라하게 보여준 행사였기 때문이다. 한국은 박정환(당시 한국랭킹 1위), 최철한(4위), 강동윤(6위)으로 구성해 나갔는데, 농담까지 주고받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최대의 시너지 효과를 내며 완승을 거두었다.
반면 중국은 일관성 없는 행마와 의문수가 속출한 끝에 자멸했다. 중국 멤버는 천야오예(당시 중국랭킹 1위), 스웨(2위), 저우루이양(5위)으로 전원 세계타이틀 보유자였다. 이들이 각자 강한 자존심을 억제하지 못하고 분열됨으로써 바둑도 지리멸렬을 거듭했다. 막판 형세가 완전히 기운 상황에서 중국의 한 선수가 매우 못 마땅한 표정으로 천정을 바라보는 사진이 국내에까지 전해지기도 했다.

당시 이 대회에 참가했던 세계적 거장들도 상담기 방식에 대해 각자 흥미로운 소감을 말했는데 소개한다. 일본의 고바야시(小林光一)는 “3명이 함께 생각하므로 실수와 악수를 크게 줄일 수 있다. 당연히 기보의 질도 매우 높아지게 마련”이라며 누구보다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다케미야(武宮正樹) 9단은 “보는 사람들에게 전율이 일 만 한 재미있는 방식”이라면서도 “기풍이 이질적인 사람들끼리 한 팀이 되면 좀 혼란스러울 것”이란 우려를 표시했다.
일본 팀으로 출전한 조치훈 9단도 “팀원들끼리의 기풍과 인성이 서로 얼마나 조화를 이루느냐의 여부가 관건”이란 분석을 내놓았다. 다케미야의 별명은 ‘우주류’, 고바야시는 ‘지하철 바둑’이다. 둘의 기풍이 극단적으로 대비된다. 또 조치훈은 실리를 잔뜩 땡겨 놓은 뒤 상대의 거대한 세력에 뛰어들어 살면 이기고 잡히면 패하는 전법을 즐겨 써서 ‘폭파 전문가’란 별명을 갖고 있다. 기풍이란 이처럼 천차만별이다.



주강배가 끝나고 2년 뒤인 2015년 12월 2회 대회가 열렸다. 대신 스폰서가 바뀌면서 대회 이름도 금용성배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장소는 이번에도 광저우(廣州)였다. 그리고 이 대회 우승도 한국이 차지했다. 한국 멤버는 박정환만 1회 때에 이어 연속 출전했고 김지석과 이동훈이 처음 참가했다. 중국에선 세계 바둑계에서 샛별로 등장한 커제가 천야오예를 밀어내고 들어섰다. 나머지 2명은 스웨와 저우루이양으로 1회 때와 같았다.

이번에도 한국 우승의 원동력은 팀워크였다. 특히 대회 셋 중 나이가 가장 고참인 김지석 9단의 중간 역할이 컸다. 박정환과 이동훈은 둘 모두 말수가 적고 자기 고집을 내세우지 않는 기사들로 유명하다. 17세(당시) 이동훈으로선 특히 선배들 앞에서 의견을 내놓기가 얼마나 조심스러웠겠는가. 김지석이 이 난점을 미리 파악하고 미리부터 교통정리를 확실하게 했다는 후문이다. 축구로 말하면 링커, 농구라면 가드의 역할이었던 셈이다. 철저한 팀플레이 속에 한국은 극적인 반집 승을 기록하며 또 다시 상담기 최강국의 자리를 지켰다.

상담기의 역사와 기원(基源)은 분명치 않다. 한국에선 1979년 한국기원 기관지 ‘월간 바둑’의 특별기획이 그 효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월간 바둑’은 그 해 9월호부터 4개월에 걸쳐 프로 1명 대 아마 정상 2명의 상담기 4판을 연재했다. 1대2의 상담기였다. 특집 첫 판서 강훈 四 단을 상대로 아마추어인 황경준 4단과 신병식 5단(이상 당시 단위)이 힘을 합쳤다. 아마추어 측은 정선에 덤 5집을 받는 방식으로 나섰지만 패했다. 두 사람은 훗날 “훈련이 안 돼 있던 탓으로 상담기 효과는 별로 보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앞으로 인간이 팀을 이뤄 기계(인공지능)과 대결하는 상황이 펼쳐진다면 상담기 역사에 새로운 페이지가 열리게 될 것이다. 인간끼리의 대결이 흥행적으로 한계를 노출하고, 기계 대 인간의 1대1 대결도 이미 기계 쪽 우세로 많이 기울어진 흐름이어서 인공지능이 인간 연합팀을 상대하는 장면은 자주 등장할 가능성이 보인다.
막강해진 실력으로 표정 하나 없이 강펀치를 휘둘러대는 인공지능의 ‘기계적’ 이미지와, 그 기계에 밀려나지 않기 위해 여러 명의 최고수들이 한데 모여 땀 흘리며 다음 수를 찾는 프로기사들의 ‘인간적’ 이미지야 말로 얼마나 대조적인가. 앞으로 이런 그림이 바둑계의 새로운 풍속도로 자리잡게 될지 모른다.

상담기는 또 바둑의 경기 형식 다양화에도 큰 방점 역할을 해줄 수 있다. 전통적 1대1 대면 방식을 떠나 입체화, 대형화, 군집화 현상을 가져오는 효과도 있다. 또 바둑에 대한 이해도가 상대적으로 낮았던 서구권에서도 바둑이 뿌리를 내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서구권이 바둑 시장에 포함될 경우 바둑 산업은 자본주의적 스포츠 종목들이 부럽지 않은 대형 흥행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된다. 상담기는 어쩌면 벽에 막힌 바둑이 난국을 타개하고 비상(飛翔)하는 절묘한 묘수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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