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치훈과 고바야시 고이치(小林光一), 바둑 역사상 굴지의 호적수의 첫 만남은 두 소년이 기타니(木谷)도장에 입문하면서부터였다. 고바야시는 '지금의 내가 있었던 것은 조치훈의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확실히 말하고 있다. 같은 장소에서 숙식을 같이 하면서 함께 동고동락했다. 어떤 때는 조치훈이 고바야시의, 또 어떤 때는 고바야시가 조치훈의 뒤를 쫓으면서 안에서 투지를 불살라왔던 것이다.

두 사람의 공식 대국만도 100국을 넘는다는 것은 그만큼 정상에서 치열하게 부딪쳐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대가 바뀐 지금, 후학들에게 밀리고 있지만, 20세기 후반부 세계바둑계를 풍성하게 만들었던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1965년 소학교(초등학교)를 졸업한 고바야시는 홋카이도(北海道) 욱천(旭川)에서 상경하여 기타니 도장의 문을 두드렸다. 고바야시가 숙식하게 된 방에는 이미 도일 3년째를 맞는 조치훈이 있었다. 고바야시가 12살, 조치훈이 8살,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고향을 떠날 때는 자신만만했던 고바야시였지만, 초장부터 꺾이게 된다. 4살 연하인 조치훈에게 흑을 쥐었던 것이다. 입문과 동시에 원생이 된 고바야시는 7급이었고, 조치훈은 이미 5급이었기 때문이다.

고바야시는 '세계는 넓다고 생각했다. 선배나 동료들에게 패한 것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조치훈에게 패한 것은 충격이었다. 내가 이길 때도 기분이 좋지 만은 않았다.'라고 말했다. 당시 내제자로는 이미 입단해 있던 가토 마사오(加藤正夫), 이시다 요시오(石田芳夫) 등이 있었다. 학교에 다니고 있던 사람은 조치훈과 고바야시뿐이었다.

당시 도장의 최연소였던 조치훈은 상당한 악동이었다. 허리에 권총을 늘어뜨리고 도장내를 뛰어다니던 이 악동에게 고바야시는 결코 지고 싶지 않았다.

먼저 투지를 불살랐던 쪽은 고바야시였다. 지고 싶지 않다는 일념으로 고바야시는 맹렬히 공부했다. 4살 차이는 크다고 생각하자 자각도 달라졌다. 반년 후에 고바야시는 2급이 되었다. 조치훈과 어느새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이다.

'이 무렵인가, 조치훈과 치수고치기로 백번기를 둔적이 있습니다. 결국 60국 정도에서 그쳤지만, 서로 치열하게 뒀기 때문에 4점까지 내려가기도 했지요. 이 무렵은 이미 내쪽이 백을 잡는 일이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둘이 경쟁했다는 느낌은 별로 없습니다.' 당시를 회고한 고바야시는 이렇게 말했다. 당연할지도 모른다. 목표는 선배들을 포함해서 무수했기 때문이다. 단지 조치훈의 존재가 자극이 되었던 것만은 틀림없다.

1966년, 상경해서 불과 1년반만에 고바야시는 입단에 성공했다. 조치훈보다 1년 앞섰고, 승단도 조치훈보다 항상 빨랐다. 조치훈이 고바야시의 뒤를 쫓은 입장이 되었던 것이다.

( 유승필 사이버오로 컨텐츠 팀장 / spryoo@baduk.or.kr )

●... 이 글은 '역사상의 라이벌 조치훈과 小林光一' 이라는 제목으로, wegobaduk 에서 총18회 연재되었던 작품이다. 필자는 바둑신문 '바둑 361'에서 96년부터 취재기자로 다년간 근무했었으며, 이후 바둑 취재는 물론 웹싸이트 기획자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