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스승은 어깨너머

본 코너를 위해 숱한 프로, 아마 심지어 재야의 숨은 고수들까지 속속들이 찾아 다니며 쥐재를 해오는 동안 그들 사이에서 묘한 공통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바둑을 배운 시기도, 공부방법도, 열정도 모두 달랐지만 이것 하나 만큼은 열이면 아홉은 공통분모를 보이니 참으로 신통방통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많은 고수들의 첫 스승이 한결 같았다는 점. 충암도 기타니(木谷實)도장도 감히 비견할 수 없는 고수배출의 본산(?)이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이 엄청난 위업을 이룬 주인공이 바로 '어깨너머'이다.

지금에야 곳곳에 어린이 바둑교실이 있고, 웬만한 초등학교에는 바둑특활부가 있어 어린이들이 쉽게 바둑을 배울 수 있지만 예전에는 무조건 어른들의 '어깨너머'가 첫 바둑선생이었다. 놀라운 점은 이 '어깨너머'의 교육적 효과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 위력을 조금도 상실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다른 일도 그렇지만 특히 바둑은 옆에서 보고 있는 것이 묘하게도 수가 잘보인다. 그러길래 '바둑은 9급인데 관전은 1급'이란 말도 있지 않던가?. 실전에서 진흙탕을 구를지언정 세계정상 이창호의 기보도 놓아보면 대충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던가?

바둑판만 대하면 무조건 손이 근질거려 15분에 한판씩 두들기고 봐야 속이 후련하다는 실전 추앙파들이 많지만 그런 이들일수록 '만년5급'을 벗어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보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땅에 존재하는 별 같은 고수님들의 첫 스승이 '어깨너머'였다는 점을 다시 한번 인식하여 초발심(初發心)으로 돌아가 다시 한번 시작해 보자.

기원을 이용하라


평소 잘가지 않는 기원이지만, 오늘은 휴일. 맘잡소 한번 기원에 나가보자. 뭐니뭐니 해도 바둑은 땀 냄새(좋게 말해 승부의 향기) 풀풀 풍기며 마자 앉아 따악 따악 두들기는 맛이 제맛이다. 이 뜨거운 승부의 현장을 슬슬 오가며 구경하다 보면 그 재미가 여간 아니란 걸 알게 될 거다. 아무렴 TV 중계와 축구전용구장에서 직접 보는 축구가 같겠는가?

짜릿짜릿한 자장면내기 입회인도 되어보고, 훈수하다 싫은 소리도 듣다보면 어느덧 하루해가 뉘엿뉘엿 기운다. 그런데 기원을 나오며 기료를 건네니 원장이 손사래를 친다. 뭐? 구경만 하면 하루종일 공짜라고?

인터넷은 관전의 천국

신사체면에 공짜 기원이용이 아무래도 신경이 쓰인다면 인터넷의 심해를 탐사하자. 한국기원의 추천하는 공식 인터넷 바둑 서비스 싸이트인 사이버오로(Cyberoro)에만 접속해도 배가 터질만큼의 포만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관전할 때 중요한 것은 지나치게 자신의 급수에 비해 높은 기력자들의 대국을 관전하는 것보다는 중상급자(3,4급 정도)의 대국이 공부에 효과적이라는 점. 고수들의 대국에서 볼 수 없는. 그러나 책에는 빈번하게 등장하는 온갖 맥점과 사활이 곳곳에서 터져나와 박진감 넘치는 감상을 즐길 수 있다.

이런 맥점들은 사실 프로의 기보에서는 발견하기 어렵다. 상대에게 이런 맥점을 한 방 당할 경우 그대로 바둑을 그르치게 되기 때문에 프로의 대국에서 통쾌한 맥점이 작렬하는 순간을 보기란 월간[바둑]에서 탈자를 찾아내는 것 만큼이나 (사실은 종종 발견되고 있어 문제이지만) 어렵다.

인터넷에서 대국을 감상하는 요령을 설명하자면 일단 접속한 뒤 대국이 벌어지고 있는 방을 기력별로 정렬시키는게 첫 순서이다. 다음 현재수가 몇 수가 진행되고 있는지를 확인한다. 몇몇 사이트에서는 아직 이런 기능을 제공하고 있지 않은데 이왕이면 제공해 주는 사이트를 찾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잔뜩 기대를 가지고 들어가 보니 한창 중반전이거나 아예 끝내기까지 마치고 공배를 메우는 중이라면 얼마나 맥 빠지는 일이겠는가?

관전중 다른 사람으로부터 날아오는 대국신청에 방해받고 싶지 않다면 [대국불가] 세팅을 해두는 것도 잊지 말것.

또 하나의 경험 생중계

사이버오로(www.cyberoro.com)에서는 주요 프로대국을 시시 때때로 인터넷 생중계를 하고 있다. (지금 이 원고를 쓰고 있는 순간에도 서봉수 9단과 이세돌 3단의 왕위전 본선대국이 인터넷 생중계 되고 있다.)

또한 국내에서 개최하는 세계기전의 주요 대국역시 TV에서 생방송을 한다. 따라서 바둑 생중계를 보기 위한 '인프라'만큼은 우리나라 만한 곳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중계를 보라. 보되 처음부터 끝까지 줄기차게 보라. 즉 프로의 승부호흡을 들숨날숨 하나 놓치지 말고 내내 지켜보라는 것이다. 틀림없이 반상에서 얻을 수 없는 소중한 무언가를 얻을 수 있게 되리라 장담한다.

생중계의 완전시청은 또 하나의 경험이다. 마라톤을 완주해 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인생관에 있어서부터 차이가 지듯, 프로의 바둑한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어깨너머로 지켜본 자와 아닌 자는 바둑관에서부터 다를 수 밖에 없다.

돌을 쥐는 타이밍

이제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할 때가 됐다. 그 것은 관전을 하는 시기에는 관전만을 철저히 하라는 점이다. 절대 관전을 하는 동안에는 바둑돌에 손을 대서는 안된다. 바둑이 늘기 위해서는 이것이 철칙이다.

'상실의 시대'라는 소설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소설가가 있다. 이 무라카미씨는 소설을 쓸 때 좋은 소재가 떠오르거나, 그냥 쓰고 싶다고 해서 작품에 착수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특히 장편소설에 손을 댈 때에는 '쓰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다' '소설이 쓰고 싶어 미칠 것만 같다'라는 수준에 도달할 때 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고 한다. 그렇게 해야만 비로소 마라톤 완주의 기나긴 장편소설 저작의 고통을 견뎌낼 수 있다는 것.

관전의 요령도 마찬가지이다. '두고 싶어 미치겠다' '손이 근질거려 두드러기가 날 지경이다' '바둑이 아니면 차라리 죽음을 달라'는 경지에 오를 때까지 참고 또 참으라는 것이다. 이 타이밍이 참으로 중요한데 지나치게 참아 이 단계가 넘어서 버리게 되면 아예 바둑에 대환 환멸을 느끼게 될 수도 있으니 지극히 조심해 주기 바란다.

이렇게 각고 끝에 돌을 잡게 되면 관전공부의 약효와 그동한 쌓이고 쌓인 바둑에 대한 갈증이 완벽한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확실한 기력향상을 보장해 준다. 요즘 같으면 지독한 가뭄끝의 한줄기 소나기. 반가운 우신(雨神)은 바로 당신 앞사람의 '어깨너머'에 있다.

( 양형모, 순도 100% 재롱 덩어리, ryuhon@baduk.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