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English LG
LG Home English Chinese

생중계
뉴스
기보보기
기보해설
대회개요
대진표
선수소개
역대 우승자 보기
기력향상 길라잡이

쏙쏙바둑정보
에피소드
이홍렬의 바둑이야기
2017/05/31
[LG배 16강]
김명훈 vs 양딩신
(대국실중계)
2017/05/31
[LG배 16강]
이원영 vs 탕웨이싱
(대국실중계)
2017/05/31
[LG배 16강]
김지석 vs 셰얼하오
(대국실중계)
2017/05/31
[LG배 16강]
최철한 vs 천야오예
(대국실중계)
  한국-싱가포르 가교 역할 맡겠다는 열혈 청년
 
대니얼을 처음 봤을 때 한국인인 줄 알았다.

외모가 동남아시아 쪽 같지 않았고 얼핏 봤을 때 그저 20대의 한국 청년이었다.
가끔 바둑대회에 관전하러 오는데, 주로 혼자 앉아 있고 과묵하게 보였다. 솔직히 나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게 맞을 것 같다. 어느 날인가는 그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앗! 한국말이 아니라 영어였다.

유학을 생각해 봤다거나 토익ㆍ토플 등의 영어관련 시험류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는 나는 한국의 중고교 학습 시스템이 만들어 준 정도의 회화력으로 ‘떠듬떠듬’ 대답했다. 대화 내용은 별것 없었다. ‘지금 두 대국자 중 어느 기사가 유리하냐?’ ‘흑이 괜찮은 것 같다고 한다’ 이런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니얼이 명지대학교 바둑학과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뭐, 바둑학과엔 바둑에 매료된 여러 나라의 학생들이 배우러 온다. 대니얼에게 많은 것을 묻지 않았다.

1년쯤 지나 우연히 또 대니얼을 봤다. 바둑TV스튜디오 지하에서 마주쳤는데, 오랜만이라서 나는 척 알아보지 못했다. 대니얼이 반갑게 말을 건다. 물론 영어로. 그래서 알았다. 대니얼이었군.
한방에 알아보고 인사하지 못해 약간 미안했다.

대니얼은 컵 하나를 들고 있었다. 바둑판 바둑알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텀블러’라고 하는 컵이다. 워낙 세상사에 관심이 없는 나는 이런 컵을 텀블러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대니얼이 알려 줘서 처음 알았다. 그런데 대니얼이 요즘 그 텀블러를 제조해서 팔고 있다고 말한다. ‘오잉?’

대학생 아니었냐고 다시 묻게 됐다. 그는 당연히 대학생 맞다고 한다. 학생은 학생이지만 색다른 경험을 해보고 싶어서 바둑 액세서리 판매를 해보고 있다고 했다. 색다른 경험치고는 많이 특이해 보였다. 평범한 알바는 분명 아니다. 대니얼은 텀블러 말고도 바둑과 관련된 무늬의 열쇠 고리와 아주 얇은 보조가방도 판다.

나중에 다시 이에 대해 말하겠지만 대니얼은 비즈니스 관념이 아주 강한 사람은 아니다. 미래의 사업을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판매자 대열에 나선 것은 아니라는 것.

대니얼은 25살의 젊은 나이지만 싱가포르 바둑협회 임원이다.

2009년엔 여자프로기사 조미경이 싱가포르에 바둑을 보급하러 왔는데 그때 여러 가지 도움을 준 이가 대니얼이다. 대니얼은 싱가폴에 바둑보급을 오려는 한국기사들을 상대로 참조사항을 이야기했다. 당시 싱가폴 바둑보급에 관심을 갖던 프로기사로는 김성룡도 있었다. 김성룡은 한동안 싱가포르에 오고 싶은 마음을 거의 굳혀가는 듯싶더니 갑자기 마음을 돌렸고 조미경은 지금도 싱가폴에서 바둑을 널리 알리고 있다.

▶ 싱가포르에서 바둑을 알리고 있는 조미경 프로.

대니얼이 조미경에게서 느낀 첫인상은 ‘남성스러움’. 한국에서도 숱한 이들이 조미경으로부터 느끼는 인상은 싱가포르 사람인 대니얼에게도 다르지 않았다.

‘청년이 머리를 단정하게 한 것처럼 쇼트컷에 바지를 입고 다니는 조미경은 차림이 그래서 그렇지 미모가 뛰어나기 때문에, 머리를 기르면 아주 여성스러울 것 같다’고 대니얼은 말한다.

조미경은 싱가포르에 온 초기, 정착에 무척 어려움을 느꼈다. 1년간 방을 세 번이나 옮겼다. 첫 번째 세 든 곳은 욕실에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았다. 다시 말해 늘 찬물로 샤워해야 했다. 여기에 이사 갈 확신을 더한 것은 얼마 뒤 같은 집에 세 들어 살게 된 필리핀 청년이었다. 덩치가 엄청나고 어딘지 음침한 구석이 있는 청년이 이웃해 있다는 사실은 부담됐다. 조미경은 무언가 불안감을 느꼈다. 결국, 옮겼다.

새로 간 곳은 한국 아주머니가 집주인이었다. 시설상의 문제는 전혀 없었으나 너무 엄격했다. 빤 옷을 바깥에서 말리지 못하게 해서 방 안에만 널 수 있었다. 쨍쨍 내리쬐는 싱가포르의 그 좋은 햇볕은 그림의 떡이었다. 방금 이야기만으로도 유추가 가능하지만 아주머니는 이것 말고도 시시콜콜 잔소리가 한없이 많았다. 화끈한 성격의 조미경은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다시 떠났다.

세 번째 정주하려고 한 곳은 다시 싱가포르인의 집. 이번엔 별다른 문제가 없는 듯했지만 에어컨이 문제다. 싱가포르는 위도가 위도인 만큼 덥다. 에어컨이 이 집에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용 시간을 주인은 쥐꼬리만큼만 허용하고 있었다. 답답할 노릇.

결국, 대니얼이 나섰다. 대니얼이 한국 유학길에 오르기로 했기에 대니얼의 방은 빈다. 그곳에 조미경이 왔다. 이렇게 집 문제가 해결됐다.

조미경은 처음에 영어 때문에 고생했다. 손으로 말한다는 바둑의 속성상 굳이 말로 많이 설명하지 않아도 해결될 수 있는 영역이 컸지만 그래도 말을 하지 않을 순 없다. 언어라는 게 빨리 느는 게 아닌데, 어린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질문은 많이 들어오고, 속수무책이었다.

조미경은 기지를 발휘해 “지금은 해설 중간이니까 나중에 한꺼번에 질문을 듣겠다”고 말하면서 위기를 벗어나곤 했다. 나중엔 질문 시간엔 어떻게 하느냐 묻는다면…아이들은 잘 잊어버린다.

하지만 이건 다 초창기 얘기다. 지금은 능숙하게 아주 유창하게 영어로 강의한다.


▲ 대니얼이 직접 디자인한 텀블러들.

이와 정반대로 한국으로 온 유학 온 대니얼은 오래도록 고생했다. 싱가포르는 4개의 공용어(말레이어, 영어, 타밀어, 중국어)를 사용하지만 공식 언어는 영어다. 싱가포르인의 마음속 깊이 영어는 모국어다.

대니얼은 한국에 올 때 한국어를 배워 놓을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다. 한국은 영어를 아주 잘하는 나라일 것으로 알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대니얼만이 생각한 것이 아니라 대니얼의 친구들과 부모님까지도 다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이 대목에서 무척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왜?

그러자 대니얼은 시원하게 대답한다. “한국은 미국의 맹방이지 않나”
- 헉

“내가 한국 유학길에 오를 때 친구들은 부러워했고 부모님은 자랑스러워했다”(대니얼)”
- 왜?

“K-POP의 본산지이지 않나”
- 헉


▲ 싱가포르의 밤.

싱가포르에 한국드림은 생각보다 짙게 퍼져 있다. 가보지 않아서 더 확인할 수는 없지만 대니얼의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어느 정도 그쪽 상황이 그려진다.

대니얼인 한국에 오자, 한국인이 ‘대체로’ 영어에 능통할 거라는 대니얼의 예상은 완전히 깨졌다. 학교생활이 힘들었다.

“수개월이 지나도록 같은 반 학생들은 나를 슬슬 피했다. 나는 내가 무슨 잘못을 많이 하고 있는 줄 알고 우울증에 걸릴 지경이었는데, 그게 아니고 영어로 이야기하는 것이 싫어서 나를 피한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한국에 온 지 1년 반 된 대니얼은 졸업까지 한 학기를 남기고 있다. 언어 장벽 탓에 한국에서 배워가려던 걸 이루기엔 너무 늦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대니얼은 열심히 하고 있다. 아무것도 손에 넣지 못한 채 부모님을 다시 뵐 순 없다는 각오다.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고 있다. 그의 꿈은 싱가포르 바둑계의 분위기를 쇄신하는 것이다.

- 싱가포르 바둑계의 분위기를 바꾼다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
“나는 싱가포르 바둑협회 총무(secretary)다. 협회장(president), 부협회장에 이은 세 번째 직위다. 한데 급료를 받지 않는다. 급료를 받는 직위는 매니저다. 하지만 매니저는 너무 많은 걸 한다. 강사를 섭외하고, 대회를 조직하며, 클럽을 관리하는 외에도 수많은 잡다한 걸 한다. 좀 과장해 말하면 ‘모든 걸’ 한다. 이래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나는 한국에서 교육ㆍ운영에 관한 지식을 습득해서 본국으로 돌아가 스스로 ‘마켓 매니저’가 되려고 한다. 종전의 매니저가 하던 일을 세분화하고 집행부를 급료를 받는 전문인력들로 구성할 것이다. 후원자들을 끌어모으고 할아버지나 하는 게임, 마니아만 즐기는 게임이라는 인식을 바꿀 것이다.”

그럼 텀블러는 왜 팔았을까? 본격적인 비즈니스에 더 관심이 있을 줄로 알았는데.
대니얼은 지난여름 방안에 누워있다가 ‘번쩍’하고 떠올랐다. 스타벅스 텀블러를 사람들이 수집하지 않나, 그런데 바둑 무늬의 액세서리는 왜 발달하지 않았을까. 그 누구도 안 하고 있는 거를 당장 내가 해보자 생각했다.

◀ 대니얼의 홈페이지.

바둑알 바둑판을 형상화한 디자인을 직접 했다. 디자인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첨단 디자인 소프트웨어를 활용하지 못했지만 워드프로세서 마이크로소프트 워드의 표그리기와 기호삽입만 가지고 수작업했다. 무척 원시적으로 보이는 이 작업에 수반된 또 하나의 ‘노동’은 십수만개에 달하는 텀블러 들어갈 ‘무늬’를 일일이 가위로 오렸다는 것. 공장에서 원했다고 한다.

처음엔 중국 공장하고 거래할까 하고 생각했다가 제품을 보고 그만두었다고 한다. 한국 공장보다 제작비가 3배 싸지만 불량률이 컸다. 텀블러 1개 가격은 6500원으로 매겼는데, 더 내릴 생각이라고 한다. 판매해 보니 적자다. 홈페이지를 만들어 온라인으로 파는데 유럽 같은 곳은 제법 반향이 있는데 한국은 비싸다는 반응뿐이라고 한다. 대니얼은 학교 졸업과 동시에 판매를 중단할 생각이다. 어차피 돈벌려고 한 게 아니라 경험을 쌓으려고 한 거였다. 거창한 비즈니스도 개념도 아니었고 단지 생소한 분야를 몸으로 느껴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대니얼은 요즘 김승준ㆍ디아나 프로가 운영하는 블래키 바둑도장에 나가는 한편 열심히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 싱가포르에 돌아가면 마켓 매니저의 꿈을 계속 키워나갈 것이다. 지난 9월 26일엔 제8회 응씨배 결승전이 올해 말 싱가포르에서 열리기로 정해졌다는 반가운 소식이 대니얼에게 들렸다. 박정환과 판팅위가 싱가포르로 오는 것이다. 대니얼은 앞으로 한국과 싱가포르의 가교 역할을 하겠다고 한다.


▲ 대니얼의 텀블러에는 심오한 내용이 실려 있기도 하다 ^^


▲ 국제페어바둑대회에 선수로 참가했던 대니얼과 파트너가 일본 정상급 프로기사 하네 나오키와 기념 촬영을 했다.


▲ 박정환 프로가 텀블러를 들고 있다. 어떻게 된 것일까. 물어보았더니, 그냥 들고 찍어달라고 대니얼이 부탁했다고 한다. 박정환 자신은 왜 들고 찍는지 잘 몰랐다고 한다. 대니얼은 가끔 자세한 내용을 설명하기도 하지만 워낙 내용이 길어져 버려서 언제부턴가 설명은 안하고 그냥 사진 부탁을 했다고 한다.


▲ 박정환과 응씨배 4강전에서 격돌했던 이창호 프로. 예전에 찍은 사진이다.


▲ 한국에 와서 대니얼이 사귄 친구들.


▲ 싱가포르 바둑협회 건물 내부다.


▲ 바둑 대회에 참가하고 있는 대니얼.
Top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