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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렬의 바둑이야기
  '대기만성' 이영구를 말한다
 
" 뒤로 가는 모습은 보이지 않겠다. 나는 전진하고 있다. 우승과 준우승 같은 '결과'는 부차적인 것이다." -이영구 8단의 인터뷰 中

이영구 8단을 인터뷰하고 왔다는 말을 듣자마자 한국기원의 한 직원은 "이영구 사범 너무 착하죠?"라고 묻는다. 매일 프로기사와 접하며 실무적으로 충돌(?)해야하는 한국기원 직원에게 '겸손'의 대명사 이창호 9단을 제외하고 '성격좋고 착하다'는 말은 처음 들어 본 것 같다.

'이기는 것'을 지상 최고의 명제로 삼는 승부사라는 직업은 긴장감의 연속이고 무던한 사람도 '예민'하고 '까칠'해지는게 정상인데 그 예외 중 한 사람이 바로 프로기사 이영구 8단이다.

이영구 8단은 2001년 15세의 나이에 입단했다.

나이는 25살이지만 이제 입단 10년 차의 어엿한 중견기사다. 2011년 9월 한국랭킹은 7위. 하지만 다승과 승률면에서는 46승 14패, 승률 77%로 현재 1위에 랭크되어 있다.

아직 이렇다 할 우승은 없었지만 성실함과 꾸준한 성적으로 바둑팬들에게도 은근히 인기있는 기사다.

추석 전후로 한국물가정보배 결승시합과 중국갑조리그 참가등의 바쁜 일정 속에서 잠시 짬을 내준 이영구 8단을 신사연구실에서 만나보았다.

- 이번 주말에 중국리그에 출전한다고 들었다. 이영구에게 '중국리그'란?

"바둑을 둬야 프로기사다. 일단 기사로서 바둑을 둘 기회를 찾는 것은 당연하다. 중국리그는 수입적인 면도 무시할 수 없지만 여러가지면에서 도움이 많이 된다."

추석연휴 후에는 한국물가정보배 결승 2국이 기다리고 있다. 그 다음 날은 주장을 맡고 있는 한국바둑리그 시합이다. 최근 대국도 많은데 중국리그까지 참가하는 건 힘들지 않나?

"요즘 들어 대국이 많긴 했는데 주로 속기기전이 많았다. 속기는 아무래도 깊게 생각하기보다는 감각에 의존하게 되서 실력향상에 크게 도움이 되지가 않는다.

중국리그는 제한시간 2시간40분의 장고대국이고 주장전만 출전하기 때문에 승패를 떠나 강자와 대국할 기회가 많다는 점에 메리트가 있다."

국수전을 제외하고는 모든 시합이 2시간 이하로 제한시간이 줄었다. 개인적으로 느끼는 적정 제한시간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나?

"약간 부족하긴 하지만 생방송을 보는 팬을 고려하면 2시간이 적당한 것 같다. 갈수록 제한시간이 짧아지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3시간 이상의 대국은 대충 생각할 수 있는 장면은 모두 확인 해 볼 수 있다. 동료들과 3시간이면 볼 수 있는 수를 2시간 대국에는 못 봤다는 이야기도 가끔한다. 일본처럼 이틀걸이 바둑은 의문이지만 아무래도 질적인 면을 보면 시간은 많을 수록 좋은 것 아닐까? "

그러면 평소 연구실 리그전은 제한시간이 얼마를 주고 하는지?

"연구회의 누군가가 중요한 시합이 있으면 주로 그 시합의 제한시간에 맞춰서 두게 된다."

1년에 20번 이상 중국에 간다고 들었다. 자주 가기 때문에 중국어도 잘 할 것 같다.

"아니다. 그렇게 많이는 못 간다. 기본적으로 중국리그 시합이 22번인데 1년에 많으면 15번정도 가는 정도 일까? 처음에는 통역을 붙여줬지만 이제는 혼자가 더 편하다. 중국어는 아주 기본적인 것은 알아 들을 수 있다. 매 번 듣는 말이 똑같아 시합하는 데는 지장은 없다."

올해 김주호 9단과 입단 동기 홍민표 7단이 군대에 갔다. 군 문제도 고심하고 있을텐데?

"지금 한국외대 일본어과 4학년에 재학 중이다. 이번 2학기가 마지막 학기라서 내년에는 가야할 것 같다. 공익판정을 받았다. "

일본어실력은 어느 정도인가? 4년 간의 대학생활은 어떠했는지?

"MT는 가본 적이 있지만 시간이 없어 많이 동기들과 많이 어울리지는 못했다. 일본어는 학교에서 배운 것 외에 1년 정도 개인과외도 받기도 했다. 일본에 시합이 있을 때 가면 일본기사와 의사소통 정도는 가능하다."

바둑은 처음에 어떻게 접했나?

"목동에 있는 집 앞 바둑교실에서 처음 접했다. 다른 아이들처럼 피아노, 태권도, 웅변학원등 학원을 다양하게 다녔는데 그 중 바둑이 가장 재미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때 부모님이 그만두라고 해서 한 3개월 정도 바둑을 쉬었는데 내가 졸라서 다시 시작하게 됐다.

그 때부터 권갑룡 바둑도장에서 수학했다. 당시에 이세돌 9단과 최철한 9단이 도장에 있었지만 실력 차이가 너무 나서 함께 바둑을 둬 보지는 못했다. 주로 홍석이형(백홍석 8단)과 천스위엔과 함께 생활한 것이 기억난다."

▲7살 차이 나는 형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기숙사생활한 탓에 집에서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지는 못했다.

입단 10년차다. 현재 바둑계에 느끼는 점이 많을 텐데?

"신예기전이 너무 없다. 아까도 말했지만 프로는 바둑을 둘 수 있어야 한다. 연구생 때는 대국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꾸준히 바둑을 둘 수가 있다. 하지만 막상 프로가 되서는 한 달에 한 두번 대국하기가 힘들어진다.

대국여부와 관계없이 자기 관리는 스스로 해야하는 것이 프로지만 아무래도 기회가 없어지면 마음도 느슨하게 된다. 그래서 상금은 적더라도 이번에 새로 신예기전이 생겨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내가 입단했을 때는 신예기전만 3개였다. 그 당시에 입단했던 허영호, 윤준상등의 또래 기사와는 서로 '우리는 운이 좋은 세대'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상금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신예들이 일찍 우승경험을 할 수 있는 다양한 무대가 마련되었으면 한다. 신예기전은 작은 액수로도 만들 수 있지 않은가?

저변 환경을 무시할 수 없다. 이런 면에서는 중국이 더 좋은 환경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중국리그는 선발전 없이 팀이 선수를 바로 지명한다. 유망하기만 하면 어린 신예기사도 다양한 기사와 많은 시합경험을 가질 수 있다.

자고 깨기만 해도 실력이 느는 시기에 이런 환경에서 생활하는 것은 차이가 크다. 실제로 중국에는 어린 유망주로만 구성된 팀도 있는데 상위권까지 치고 올라가지는 못해도 중간 이상의 성적을 내고 있다."

한국바둑의 노령화나 보급문제가 한국기원의 화두다. 현재 대학바둑보급이나 군 부대 방문 등의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근본적인 대책이 없을까?

"일본에 시합을 가면 매 번 느끼는 부분인데 일단 해설장에 젊은 사람들이 거의 없다. 한국도 그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초등학교 때의 첫 배움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학 바둑동아리에서 바둑을 처음 접한 사람은 10명 중 9명은 조금 있다가 떠난다고 들었다. 하지만 초등학교때 바둑을 접했던 이는 80%이상 남는다고 한다.

그 만큼 어렸을 때 바둑을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재미있게 잘 가르쳐야 한다. 이런 면에서 교육자의 자질도 중요하기 때문에 대바협이나 한국기원이 이런 부분을 잘 시스템화 했으면 한다.

바둑을 배우는 것은 일반 입시공부에도 큰 도움이 된다. 일반적으로 '바둑을 두면 머리가 좋아진다'라는 개념으로만 접근하는데 제일 효과를 받는 것은 '집중력'과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바둑을 두면 앉아있는 습관이 생긴다. 자유 분방한 어린 나이에 가만히 앉아서 집중하는 습관이 들여주는 것은 후에 다른 공부를 할 때도 큰 도움을 준다. 설령 바둑을 그만두더라도 공부하는 습관이 몸에 배기 때문에 학습능력이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

영화배우 실베스타 스텔론은 많이 닮았다. 혹시 '록키'라고 불리지 않는가? 실제 동료들이 붙여준 별명이 있나?

"이전에 세돌이 형이 한 번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은 있다. 동료들은 그냥 '맹구'라고 부른다. 영구라는 이름에서 연상되기도 하고 그냥 편해서 그렇게 부르는 것 같다."

운동을 좋아할 것 같다. 특별히 즐기는 운동이 있나?

"개인적으로는 농구를 가장 좋아한다. 가끔 연구회 동료들과 서울숲이나 인근 한강공원에 나가서 운동을 한다. 작년에는 족구가 유행이었는데 올해는 뜸한 편이다. "

입단 이후 10년의 프로생활을 했다. 그동안 얼마나 강해졌다고 생각하는지?

"입단 당시보다 선에서 두 점 정도는 세졌다고 생각한다. 지금 같았으면 입단하기 힘들었을 지도 모르겠다.

연구생시절 권도장 수업은 실전위주였다. 그리고 주로 사활쪽에 집중해서 공부하는 방식이었다. 최철한, 박정환, 백홍석, 김지석 등 권도장 출신기사의 기풍이 필연적으로 전투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입단 이후는 기보검토 위주로 공부방법을 바꿨다. 영훈이(박영훈 9단) 형의 영향이 컸다. 특히 이세돌 9단의 기보는 모두 다 봤다. 기보를 거의 외울 정도로 무한반복하기도 한다. 대충 모양만 봐도 언제 둔 어떤 대국인지 알 수 있을 정도다.

일반 기사들의 기보는 '잘 둔'는 느낌보다는 '실수가 없구나' 정도로 느껴지는데 세돌이형이나 구리 9단의 대국은 정말 잘 둔다는 느낌이 확 온다. 일반 바둑팬들도 그 정도는 느낄 것이다."

▲제7기 한국물가정보배 결승1국에서

조한승 9단이 군입대 전에 '2% 부족'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이영구 8단도 준우승이 많은데 그런 면은 어떻게 생각하나?

"그건 다르다. 한승이형은 정말 잘 두는데도 그런 말이 나온 것이다. 나는 아직 잘 못두기 때문에 비교대상이 아니다.

지는 것은 빨리 잊는 편이다. 1국은 실력발휘를 다 하지 못해 아쉽긴 하지만 패배에 대한 아픔은 없다.
좋게 말하면 대범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근성 부족이다. 이번 한국물가정보배 결승 1국에서도 "왜 그렇게 빨리 던졌냐고" 노회장님한테 한 마디 들으며 혼났다.

좋은 성격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승부사로는 단점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천성이 그런데..."

여자친구는 있나?

"소개팅은 3번 정도 받았는데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아직은 있어도 없어도 그만이라는 생각이 큰 것 같다. 따로 이상형이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편안한 느낌의 여자였으면 한다."

이영구 8단을 좋아하는 팬들이 은근히 많다. 마지막으로 바둑팬들에게 인사말 부탁한다.

" 뒤로 가는 모습은 보이지 않겠습니다. 우승 등의 결과는 언젠가는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추석명절 잘 보내시고 연휴 다음 날 열리는 한국물가정보배 결승에서 많은 응원 바랍니다."

원래 의도는 바둑관련 내용보다 '청년' 이영구를 조명해보려는 생각이었지만 만나자마자 시작된 일정이야기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대화의 주제가 계속 바둑이야기로 되돌아가 버렸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는 4글자가 떠올랐다. 이영구 8단은 자신의 느긋함을 '천성'이라고 표현하며 승부사로서는 큰 '약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약점이라고 말한 부분이 늘 지치지 않고 전진할 수 있는 성실함의 근원이 아니었을까?

▲'진정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신사연구실 보드판에 쓰인 문구와 태극기는 P 9단의 작품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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