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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구장이 베트남 바둑 영재 '녁밍'과 이강욱
 
베트남 소년을 본 날 아침은 장맛비가 흩뿌렸다.

방배동의 권갑용 바둑도장을 찾아갔을 때 베트남 소년은 연기바둑을 두고 있었다. 베트남 소년이 권갑용 원장과 한팀이 되고 상대들은 권갑용 바둑도장에서 최강의 실력을 자랑하는 소년들이었다.

10살치고는 키가 작은 편인 이 소년의 이름은 보녁밍(VONHATMINH). 녁밍 군은 대국에 관심이 없는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큰 눈으로 도장의 이곳저곳을 훑어보고 있었다. 호랑이 선생님과 같은 편이 되어 바로 옆에 앉았는데 말이다.

녁밍 군이 이곳이 정확히 어떤 곳인지 파악하는 건 쉽지 않았다. 베트남엔 이창호니 이세돌이니 하는 프로가 없다. 바둑 도장도 없다. 녁밍도 바둑을 배우긴 하지만, 프로가 되기 위해 아침 9시부터 9시간 이상씩 고된 바둑 훈련을 하는 한국 어린이들이 신기하기만 하다.


▲ 권갑용 바둑도장에서 녁밍 군이 권갑용 원장과 한팀이 되어 연기 바둑을 두고 있다.

도장 가운데 마실 것이 있는 응접실에서 이강욱 프로와 잠깐 앉았을 때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둑 유학생인가 보죠?”
“잠깐 와 있는 거에요. 일단 도장엔 3주 정도 있을 겁니다. 대한생명배 어린이 국수전에서 티오가 나와서 항공료가 해결됐습니다. 그래서 데리고 나왔습니다. 대한생명배 직전엔 세계 청소년 바둑축제가 있는데 거기에도 참가시킬 예정이에요.”

이강욱 프로는 베트남에서 2010년부터 바둑을 보급하고 있다. 이강욱 프로는 보급 활동의 거점으로 삼는 호찌민에서 가르치던 녁밍 군을 대회에 참가시키려 데리고 왔다.

- 실력은 어때요?
“한국으로 치면 아마추어 2~3단 정도에요. 초등학생 중에선 독보적인 실력이죠. 대회에 나가면 16세 이하 부문에서 우승을 놓치지 않습니다.”

- 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군요
“2010년 7월 경에 제가 베트남에서 호찌민과 하노이 중 어느 도시를 중심으로 바둑 보급을 시작할지 고민하던 때 마음에 확신을 준 소년이 녁민 군이었어요. 호찌민에 살고 있는 녁민군은 6살 때 바둑을 시작했어요. 8살인 동생 주이밍도 아주 바둑을 잘 둡니다. 그 밑에 막내 덕밍(DUCMINH)도 바둑을 배웁니다. 6살인데 꽤 영특합니다.”

- 녁밍 군 정도면 얼마나 잘 두는 건가요?
“도장 내의 대한생명배 최강부에 들 만한 어린이들과 대결해서 지금까지 2승 8패를 기록했어요. 그 바로 아래 부문 어린이들과는 서로 할 만한 것 같습니다.“


▲ "음... 바둑이 왜 재미있느냐 하면요. 그냥 재밌는데..."

- 베트남에선 일 주일에 몇 회 정도 가르치죠?
“하루 2시간 30분, 일주일에 3번 가르칩니다. 녁밍 군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녁밍 군의 가능성을 크게 보는 것도 거기에 있습니다. 그렇게 적은 시간을 공부했는데, 저 정도의 실력을 갖춘다는 게 놀라울 정도입니다.”

- 아예 한국에서 유학하게 할 생각은 없나요?
“아이의 가정 형편이 허락하지 않을 겁니다. 학원 영어강사인 홀어머니 슬하의 3형제가 모두 바둑을 배워요. 한국 가정들도 프로 수업을 받게 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만만하지 않은데, 녁밍 군 집으로는 더욱...”

- 녁밍 군은 프로가 되고 싶어합니까?
“그건 모르겠어요. 확실치 않아요. 일단 한국에서 유학을 할 수 있게 된다는 보장이 없고요. 실력이 빨리 는다고 장담도 할 수 없지요. 저야 녁밍 군이 유학을 하게 된다면 좋겠습니다만.”

- 재능이 있어 보입니까?
“사실 전 크게 재능을 발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회에서 입상을 하고 성적을 내는 것과 재능이라는 건 다른 차원이니까요. (분야 별로 나누어 설명할 수 없는 건가요?) 없습니다. 그냥 직관적으로 알아 보는 수밖에요. 그런데 저의 스승이신 권갑용 사범님께선 재능이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대국을 막 마친 권갑용 원장이 잠시 도움말을 주었다.
“재능이 있는 건 확실합니다. 그런데 너무 산만해요. 한 6개월 정도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태도를 바로잡아 주는 게 선행돼야 합니다. 저랑 연기바둑을 둘 때는 엉뚱한 수를 남발해요. 수읽기를 하긴 하는데, 전혀 흐름을 고려하지 않아요. 심지어는 자기 뜻대로 따라와 주지 않았다고 국후에 섭섭해 하더군요. 하하”


▲ 한 6개월 산만한 부분을 확 잡아주고 나면 녁밍 군이 재능을 한껏 발휘할 겁니다(권갑용 원장).

- 녁밍 군은 혹시 시 대표인가요?
“(다시 이강욱) 그렇습니다. 시 대표가 되면 다달이 훈련비를 받아요. 120불 정도. 베트남 대졸 회사원이 받는 평균 급료의 절반 수준이에요. 라이벌은 2명 정도 되지만 녁밍 군이 그래도 앞서 있는 편입니다. 그래서인지 다른 이유인지 몰라도 녁밍 군에겐 열정이 부족해요.”

- 바둑을 좋아하지 않나요?
“아뇨, 바둑을 무척 좋아합니다. 그치만 순수하기만 한 시골 소년 같아요. 바둑을 져도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전혀 괴로워하지 않아요. 이곳 한국의 도장에 와서도 한국 어린이들에게 질 때면 '아, 졌나 보다.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제가 데리고 올 때 의도했던 게 전혀 맞아 들어가고 있지 않아요”

- 한국 어린이들이 바둑을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군요.
“그랬습니다. 베트남 어린이가 프로를 지향한다는 것은 먼 나라 이야기일 수도 있고 해서 강요할 수는 없었지만, 저는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러니까 열정이 없는 것 말이에요. 선생님으로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열정이 없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인데 제가 딱 그런 환경에 놓여 있었어요.
녁밍 군이 훨씬 뛰어나지길 바랐고 더 열심히 해줬으면 했는데 도무지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아요. 이번 대회 참가도 그렇지만 내심, 한국 어린이들이 이렇게 열심히 바둑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자극 받았으면 했습니다.”


▲ 거리로 나온 녁밍 군과 이강욱 프로. 녁밍 군은 신나서 팔짝팔짝.


▲ 우왕~ 햄버거 진짜 맛있어요.

- 녁밍 군은 어떻게 해서 바둑을 시작했죠?
“저도 자세한 이야기는 듣고 있지 못합니다. 녁밍 군의 어머니는 교육열이 높으신데, 베트남에서는 대중적인 체스를 자식들에게 가르치다가 어느 날 바둑도 가르치기로 하셨다고 합니다. 지금은 체스는 잘 가르치지 않고요. 베트남에선 특이한 일입니다. 바둑을 아는 베트남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거든요. 전국적으로 바둑인구는 3000명 정도에 불과해요. 바둑이 뭔지 아느냐고 길 가다 물어보면 모른다고 대답할 사람이 훨씬 많겠죠.”

- 베트남에서 바둑을 배우는 학생들에겐 대체로 열정이 없나요?
“지금은 많이 좋아졌는데, 제가 처음 베트남에 갔을 땐 심각했습니다. ”

- 하노이에도 왔다 갔다 하시는 거죠?
“한 달에 일주일 정도는 하노이에서 바둑을 가르칩니다. 강의는 무료로 제공하고요, 체재비 교통비 등은 제가 다 준비합니다. 사이버오로∙ 대한바둑협회∙한국기원이 정부 예산을 통해 지원하는 지원금은 한해 2000만원인데 거기서 쪼개 써야 합니다.”

- 지원금으로 생활은 어떻습니까?
“빠듯합니다. 동남아라고 해서 생활비가 적게 들어가진 않습니다. 제가 외국인이기 때문인데요. 베트남에선 자국민에겐 뭐든지 싸게 해주지만 외국인들에겐 그 반대입니다. 어쩔 수 없이 한국 교민들의 자녀들을 상대로 바둑 과외를 하면서 모자란 돈을 보충하고 있습니다.”

- 하노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어느 정도 벅차겠군요.
“그렇긴 합니다만, 당초 베트남 전체에 바둑을 보급하는 게 제 목표였습니다. 대표적인 이 두 도시에서 계속 보급할 겁니다. 처음엔 하노이에선 제가 오는 걸 반대하기까지 했었어요”

- 왜죠?
“하노이와 호찌민은 라이벌 도시입니다. 제가 호찌민을 거점으로 삼고 있으니까 단지 그 이유 때문에 꺼린 겁니다. (프로기사인데도요?) 역시 베트남엔 그런 인식들이 약해요. 현지 선생님들이 어느 정도 나름대로 활동하고 있는 것도 있고요.”

- 나중엔 하노이에서도 잘 활동하게 된 것인데요?
“대회가 계기가 되었습니다. 1년에 한 번 전국대회가 있는데, 제가 가르치던 호찌민 시가 성인 남녀부 그러니까 최강부를 휩쓸었어요. 그때 하노이 시가 놀랐습니다. 그 후론 하노이 시에서도 제가 활동할 수 있게 해주었고, 제가 방문할 때 즈음 최강의 선수들을 모집해 놓습니다.”


▲ 바둑책 정말 많다 =.=

- 베트남에서 바둑을 교육해 보니 어땠습니까?
“ 척박한 환경에서도 열정적인 현지 지도자들의 노력으로 우수한 선수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본기에 문제들이 있었어요. 최강급 선수들이라면 있을 수 없는 실수가 나오는 걸 봤어요. 학습 교재가 잘 갖춰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최초로 정석책을 써냈을 정도입니다. 정석책이라고 해봤자 수순만 있고 설명이 적혀 있지 않긴 하지만요.
교수법도 체계적이지 않았습니다. 이를테면 단수를 익힌 다음 곧바로 회돌이축을 배우는 식이죠. 형세판단은 말할 것도 없고 '6사8활'이나 삭감법에 대한 이론이라든지 여하튼 모든 토대가 약했습니다. 그저 수읽기와 실전으로 부딪쳐 익히는 것이었죠.
녁밍 군도 많이 바로 잡았다곤 하지만 잘못 밴 습관을 빠르게 고쳐나가야 합니다.”

- 녁밍 군의 한국 일정은 어떻게 잡혀 있나요?
“14일에 들어왔고요, 3주간 사활문제 풀고 기보보고 실전하면서 지내다가 대회 장소로 이동하게 됩니다. 저는 24일에 베트남으로 돌아가고요, 8월이 되면 베트남에서 유이(DUY) 단장님이 오셔서 녁밍 군을 데리고 다닐 겁니다.
이번에 녁밍 군이 들어오는 데 필요한 비자 문제라든지 수속 등에 관해 대한바둑협회에서 도움을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또 권갑용 사범님께서 녁밍 군을 3주간 훈련받을 수 있게 해주셔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늘 프로들의 해외 파견 활동에 힘써 주시는 최규병 기사 회장님께서도 여러 도움을 주셨고 앞으로도 도움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

녁밍 군은 베트남 바둑의 미래다. 이제 곧 두 개의 어린이 대회에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이 소년의 이번 한국 방문은 천진난만하기만 한 이 소년의 바둑 인생이 전개되는 데 작지 않은 전환점이 될지도 모르겠다.


▲ 녁밍 군이 기보 공부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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