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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렬의 바둑이야기
  함부르크, 잠은 진짜 잘 안오더라
함부르크에서의 3일
 
독일.

어린 시절, 독일은 지구 어딘가에 존재하는 선진국이자 일종의 제품 브랜드였다. 백인 하면 으례 미국인이겠거니 하던 시절이지만 독일 제품들은 좀 더 독립적으로 인상에 남아있다.

국민학교 1학년쯤이었을 무렵, 왠일인지 물 건너왔다는 독일 칼, 독일 가위, 독일제 손톱깎기는 일제 전자 제품들과 더불어 어른들이 좋아하고 아끼는 일종의 인기 품목들로 자리잡고 있었다. 잘 드는 독일 칼, 주부들의 로망(?)이었던 것 같다.

아마 그 시절 독일제 쵸콜릿과 더불어 독일제 생활용품들이 우리 주위에 보였던 것은 독일로 건너 간 한국 간호사들과 광부들이 있었기 때문일 거다. 그들이 한국에 다시 올 때마다 그런 것들을 선물로 가득 들고 오곤 했으니까. 독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예전에 독일로 건너갔던 그런 간호사 분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6월 10일, 독일 뮌헨행 루프트한자 비행기 안에서 독일 간지 40년 넘었다는 간호사 출신 여성분이 옆자리에 앉게 되어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나자신 그닥 사교적이지않아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지만, 이분은 68년 한국을 떠나, 현재는 독일 남부 도시 뮌헨과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고 했다.

독일 스튜어디스와 능숙하게 독일말을 주고 받기에 '뭔가?' 했더니 그런 사연이 있었다. 독일인과 결혼해 아이도 낳고 잘살고 있다는 이 여성분은 역시 '한국인'답게 옆자리 여행객에 대해 이것저것 호구조사를 하셨고 나 또한 그분에 대한 예의로서 간략한 호구조사를 마쳤다.

이분, 한국의 고향(경남)에는 3년에 한 번 정도 오신다. 독일에 처음 자리를 잡을 때, 한국이야말로 더욱 어려울 때라 한국에 가끔 오면 '나도 독일에 데려가 달라'고 애원하는 사람들도 많았단다. 내게 무슨 용무로 독일에 가냐 물으시길래 '출장'이라 하였더니 걱정을 해주신다.

- 독일어를 잘하나 봐요? "아뇨! 전혀 몰라요."
- 그럼 영어를 굉장히 잘하나 봐요? "음..사실, 굉장히 못해요"

이런 대화가 오고 가니 옆 자리의 동포청년에 대해 근심어린 얼굴을 하신다. 독일서 며칠 있느냐 길래 '3일 묵었다가 떠난다' 했더니 '그러면 굉장히 피곤할 거다'라고 말씀 하신다.

보시기에 요즘 오랜만에 본 한국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한국 물가가 이미 굉장한 수준이라 서비스 업종 빼곤 독일과 물가 차이가 별로 없다, 어떤 건 더 비싸다'고 하신다. 그리고는 '한국사람이 영어 못 하는 건 학교에서 시험을 치기위한 목적으로 영어를 가르쳐서 그래요. 그냥 영어로 말하고 듣고 쓰고 하는 것을 가르쳤으면 다들 지금보단 잘했을 거에요."라는 말까지 덤으로 해주신다.


▲ 함부르크, 물이 이렇게 많은데 물값은 맥주보다 비쌀 때가 많다. 또 파는 물에 탄산이 섞여있는 경우가 많아 맥주가 오히려 낫다는 느낌을 줬다.

○●... 물 대신 맥주

독일이 이렇게 먼 곳인줄 몸으로 알았다. 오래 앉아있다보니 엉덩이가 썩는 느낌이다. 뮌헨에서 목적지인 함부르크로 가는 독일 국내선으로 갈아탔다. 국제선보다 좌석이 크다. 그런 느낌이다. 함부르크에 가는 비행기안에는 체구가 큰 게르만 인종이 100%에 가깝고 동양인은 동행한 이세미씨와 딱 둘이다. 한국에선 유럽-인도어족에 속하는 사람들이라도 길에 지나가면 안그런척하면서도 신기하게 오래 보곤 했는데 여기선 우리같은 '몽골리안'들이 딱 그 꼴이다.

독일서 생활했던 황인성 아마 7단도 함부르크에 도착했다. 현재는 바둑세계화 사업의 일환으로 스위스에서 바둑보급중이다. 11일부터 13일까지 열리는 제3회 기도컵 최강부 영문해설을 맡았다. 2년전 황인성과의 인터뷰를 통해 현대 독일에 대한 이미지를 갖게 됐다. 이렇게 직접 독일서 만나게 될 일이 생길 줄은 몰랐다.

숙소에 조금 늦게 나타난 황인성이 엄청나게 반갑게 맞아준다. 나말고 나와 동행했던 이세미씨를.

"여기선 아침,점심은 커피와 빵, 저녁은 맥주로 채우게 될 수도 있어요."

황인성이 그런 말을 했다. 정말 그렇게 됐다. 물을 그냥 한 잔이라도 공짜로 주는 경우는 없어 무조건 사 먹어야 하는데, 그게 커피값이나 맥주값보다 그리 싼 편이 아니고, 맥주보다 비싼 경우도 종종있다. 약간 갈등을 했는데 물 대신 맥주를 택했다.

위도가 높은 곳의 여름에 온다는 백야현상은 처음이다. 도착하고 나니 현지시간 저녁 9시인데 그냥 오후 3~4시쯤라는 착각을 했다. 10시 11시쯤 되야 어두워 지는데 실제로는 가로등이 필요 없을 정도로 밝다. 피곤해 죽겠는데 한번 깨면 말똥말똥해진다. 독일에 있던 3일 내내 그러했다.

황인성은 유럽 바둑연맹의 랭킹 2인자다. 2005년 독일서 처음 바둑보급을 할 때는 한국에서 온 아마추어지만 자신이 상당한 실력을 가졌다는 것을 인정받기 위해 - 바둑의 '마스터'라는 느낌이 안 들면 당연히 보급도 힘들다 - 유럽의 여러 토너먼트에서 닥치는 대로 참가해 중국프로들을 포함한 현지의 강자들을 이겼었다. 최근에는 대회참여가 그 때 보단 적어진 편이다. 유럽바둑에 대해 더 많이 알게되면서 바둑밖에 모르는 현지의 강자들에 대한 어떤 미안함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유럽에도 수준급의 바둑'실력자'들은 있다. - 모르겠다. 황인성이 그런 미안함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지는. 다른 사람에 대한 미안함이나 배려심이 많은 바둑고수는 승부 자체로는 크게 빛을 보지 못한다는 말이 바둑계에 있다.

함부르크에서 꽤 괜찮은 것이 '사우나'이고 게다가 그 사우나가 '남녀혼용'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곳엔 반드시 가야한다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감'과 '불요불굴의 투쟁정신'이 몸속에서 작렬했지만 결국은 가지 못했다. 식사때 물대신 마시던 맥주 때문이었다. 맥주도 술은 술이라서 누적이 되면 피곤하다. '오늘은 피곤하니 그냥 자고 내일은 꼭 한 번 가리'이러다 보니 그냥 그렇게 금방 귀국행 비행기를 타게 됐다.

▲ 함부르크 시청앞, 동상처럼 움직이지 않는 퍼포먼스를 펼치는 예술가와 이세미씨, 동전을 통안에 넣어 주면 움직인다.

○●... 함부르크와 서울

산업이 발달한 독일, 그런 독일 제2의 대도시 함부르크는 매우 쾌적했다. 우리 한국의 대도시에 비교하자면 함부르크는 조용한 중소 도시의 느낌까지 난다.

도시전체가 서울에 비하면 낮은 건물이다. 건물의 끝을 보려면 목을 뒤로 꺾어야만 하는 마천루들이 잘 안보인다. 대신 3~4층 혹은 도심내 5~7층 정도의 건물이 주류를 이룬다. 도로는 2차선도 많고 인도가 있고 자전거가 많다. 대형차가 없다. 100% 중,소형차다. 카페가 많은 거리는 깨끗해 보이고 예뻐보였지만 자세히 보니 실제로는 담배꽁초도 많이 떨어져 있다. 그래도 크게 신경쓰일만큼 더럽다는 느낌까진 들지 않았는데, 도시전체에 먼지가 없고 공기가 좋기 때문이었다. 건물은 갈색도 많았지만 하얀색도 꽤 있었다. 역시 먼지를 많이 안탄다는 이야기다. 코가 상쾌하다.

눈도 편안하다. 건물이 낮기 때문이고, 건물에는 간판이 없기 때문이다. 조명도 거의 없다. 건물에 대한 규제가 엄청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신 함부르크에 거주하는 시민들과 이곳에 들른 관광객들은 눈과 코, 피부로 도시의 쾌적함과 편안함을 맛 볼 수 있다. 매일 같이 느끼면 그것도 좀 지겨우려나.

전 유럽을 무대로 활동했던, 특히 프랑스와 독일을 주 무대로 활동했던 앙드레 코스톨라니가 이런 의미의 말을 했다. " 가장 위험한 거짓말은 50%의 진실이 섞여 있을 때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거짓말이 가장 위험하다"

자본주의 산업사회의 대도시는 언제나 땅이 모자라다. 즉 도시에 집중이 되기 때문에 쓸 땅이 언제나 좁은 것이다. 한국에서 가장 많이 듣던 '이데올로기'중 하나가 바로 "땅이 좁아서 높이 져야한다"는 것이다. 함부르크에 와보니 이 말이 절반은 진실이 섞인 거짓말인 것을 눈과 코로 알겠다. 독일북부 물류의 중심도시이자 항구도시, 제2의 대도시 함부르크는 마천루 위주의 도심개발을 하지 않았다. -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가 말했듯이 '(한국에서 대단위 고층 아파트 방식처럼 고층위주로 개발하는 것은 그것이 모두가 아닌 어떤 누군가에게) 개발 이익이 가장 많이 나기 때문이다'.

독일은 고층 위주의 그런 개발방식을 택하지는 않은 것 같다. 황인성의 말로는 독일의 거의 모든 도시들이 비슷하다고 한다. 대체로 도시의 건물들이 높지 않은 것이다.


▲ 어린이 특별 시상. 각 부문에서 열심히 활약한 어린이들에게 부채 바둑판 학용품을 선물로 줬다.

○●... 3일간의 기도컵

아마추어 대회가 3일간이니 일종의 축제가 된다.

물론 11일부터 13일까지 3일간의 기도컵은 참가자에게도 경제적 부담이 될 수 있다. 가령 대국장인 하인리히 폴거스트 주변의 숙박시설에서 3일간 부부동반으로 지낼 경우 우리돈 50만원 정도는 필요하다. 이게 가장 편하고 좋겠지만 돈이 너무 없으면?

그래선지 개별적으로 침낭을 가져와 학교 체육관에서 씻고 자고 하는 참가자가 많았다. 끼니는 대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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