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철 九단의 바둑개론

「바둑개론」이란 이름은 한국바둑출판사상 가장 무거운 이름일 것이다. 적어도 그 동안 국내에서 출판된 바둑서적을 통틀어 단 한 권을 채택, '바이블'의 월계관을 씌울 수 있다면 그 이름은 단연 「바둑개론」에 돌려져야 마땅하다.

40대 이상의 나이에 바둑돌 한번 잡아본 사람치고 이 책의 혜택을 받지 않은 이가 있을까? 기자가 초등학교 시절 10급 두시던 아버지의 서재에서 발견했던 괴이한(?) 그림책이 다름아닌 「바둑개론」이었음을 깨달은 것은 근 10년 뒤의 일이었다.

「바둑개론」은 국내 최초의 현대바둑서이다. 초판 발행은 1955년 1월. 당시 여건으로 보아 바둑책의 출간은 출판계에서도 파격적인 기획이었다. 「바둑개론」은 주변의 예상을 깨고 2, 30판을 거듭 찍어낸 초 베스트셀러가 됐다.(초판 당시 창원사에서 「위기개론(圍碁槪論)」이란 제목으로 출간됐던 「바둑개론」은 우여곡절 끝에 64년 11월 출판사를 현재의 법문사로 바꿔 「신편 바둑개론」이란 이름으로 다시 초판을 인쇄하게 된다)

「바둑개론」의 진정한 위대성은 내용의 질적 차원을 벗어나 한국바둑의 종합적 기틀이 채 250쪽 분량도 안되는 이 한 권의 책으로부터 세워졌다는 사실이다. 한국 바둑 용어의 정립도, 대국규정도 따지고 보면 모두 「바둑개론」한 권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부작용도 없지 않았다. 44년 일본에서 돌아와 바둑보급에 힘을 기울이던 조남철 九단이 당시만 해도 우리 글과 말의 구사에 애를 먹었다는 점. 따라서 일본의 바둑용어를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매끄럽지 못한 구석이 있었다.

"'귀에 걸치다'는 '싸움을 걸다'는 뜻의 '걸다'가, '빵때림'은 '빵따냄'이 옳아. 지금도 가끔씩 TV를 보다 '걸치다', '빵때림'이라는 용어가 들릴 때면 낯이 후끈 달아오르곤 하지."책이 나온 지 10년이 지나서야 뒤늦게나마 이를 바로잡느라 동분서주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하도 속이 타 지금은 고인이 된 시인 박재삼 씨에게 사정을 털어놓았더니 이렇게 답하더란다.

"시도 그렇지만 말이란게 한번 굳어지면 그걸로 끝이더군요.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양형모 기자/ryuhon@baduk.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