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English LG
LG Home English Chinese

생중계
뉴스
기보보기
기보해설
대회개요
대진표
선수소개
역대 우승자 보기
기력향상 길라잡이

  [바둑도서 리뷰]기경중묘[碁經衆妙]
 
기경중묘

‘고전(古典■classic)’이란 무엇인가? 왜 그토록 사람들은 고전 읽기에 열중하고, 권장하며, 매료되는가? 고전이 ‘고전’으로 대접받기 위해선 몇 가지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하지만 ‘그 질이 일류여야 할 것’이 최우선임은 물론이다. 단순히 ‘오래되었다’라는 것만으로는 결코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없다. 잘 하면 골동품으로 진열장에 전시될 수는 있겠지만.
확실히 옛 사람들은 글 한 줄을 쓰더라도 혼신의 힘을 기울여 적었다. 책 한 권을 내는 일은 한 개인 일생의 숙원이요, 가문의 영광으로 알았다. 그러기에 후손들은 고전들을 대할 때마다 행간에서 풍겨 나오는 선인들의 구도자적인 향기에 먼저 고개를 수그리게 된다.

「기경중묘(碁經衆妙)」는 얼마 되지 않는 바둑 고전물 중에서도 손꼽히는 고전이다. 본인방(本因坊), 이노우에(井上), 야스이(安井) 등과 함께 4대 바둑가문으로 이름을 떨친 하야시(林) 가문의 11대 이에모토(家元, 주: 우리의 문중과 유사한 개념) 하야시 겐비(林元美, 1778 ~ 1861)가 편찬한 바둑묘수풀이집이다.
「기경중묘」는 오늘날 초중급자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고전 바둑묘수풀이집의 대표선수격인 현현기경(玄玄棋經), 또는 「기경중묘」 이전에 나온 이노우에 인세키(因碩)의 「위기발양론(圍碁發陽論)」에 비해 난이도가 비교적 낮기 때문이다. 저자인 겐비도 “이 책을 통해 반드시 계발되는 바가 있을 것이다.”라 호언할 정도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유현(幽玄)의 경지에서 노니는 사활집

「기경중묘」 원본은 모두 4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상당히 방대한 양의 묘수풀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초판 발행은 1811년. 앞 3권은 문제, 제4권은 해답편이다. 원본에는 총 520문제가 실려 있으나, 워낙 양이 많아서인지 이를 모두 완역한 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늘 소개할 서림문화사간 「기경중묘」 역시 500여 쪽에 달하는 꽤 두꺼운 분량임에도 고작 150여 문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

서림문화사간은 일본의 프로기사 다카기 쇼이치(高木祥一) 九단이 해설해 놓은 일본판을 번역 출간한 것이다. 다카기 九단은 원전의 문제를 일일이 검토한 뒤 ‘가장 기경중묘답다’고 판단되는 150문제를 선택, 해답만 썰렁하게 실린 원전과 달리 상세한 정해도와 변화도를 덧붙였다. 원본의 해답에서 드러난 몇몇 오류를 정정하기도 했다.

「위기발양론」이 인세키의 완벽한 창작사활집이라면 「기경중묘」는 취재와 편집으로 이루어진 ‘짜집기’이다. 고래의 바둑책, 가문의 구전에 의한 맥, 사활, 묘수 등을 망라해 놓은 일종의 묘수사전이다.

저자는 원전의 서문에서 바둑이 늘기 위해서는 ‘바둑의 본질을 생각하며 두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하고 있다. 모두들 승부에만 얽매이고 바둑의 오묘함을 맛보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하는 현실을 개탄하며, 하루 종일 바둑판 앞에 앉아 있어봐야 소용없으니 한판을 두더라도 진지하게 둘 것을 준엄하게 지적한다.

“화신월선 적막무료(花晨月夕 寂寞無聊). 즉, 새벽에 꽃피고 저녁에는 달 밝아 온누리가 적막하여 왠지 적적하다. 이처럼 쓸쓸하고 무료할 때에는 시험삼아 책상을 대하며 이 책을 펼치기 바란다. 그러면 모든 망상도 사라지고 마음을 깊고 그윽한 세계로 인도해 주리라. 범인(凡人)에게 유현(幽玄)의 경지에서 노는 심정이란 모를 것이다.”

선인들의 독서자세는 사활집 한 권 대하는 데에서부터 요즘 후학들이 범접하지 못할 남다른 데가 있었던 듯싶다. 과연.

<양형모 기자/ryuhon@baduk.or.kr>
Top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