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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력향상 길라잡이

  조훈현-이창호의 10년 사제대결 (2)
 

▲사진출처/ 월간바둑


불사조

흐름으로, 기록으로 보면 90년대 사제대결은 제자의 일방적 승리로 보인다. 하지만 ‘순국산' 서봉수 九단이 끝없이 얻어터지면서도 오뚝이 같은 불굴의 투지로 전관왕 조훈현의 독주에 태클을 걸었듯이 조九단도 불사조처럼 투혼을 살랐다. 승부세계의 장강의 앞물결은 한번 흐르면 다시 거슬러 오르지 못한다. 그 정도의 내상을 입으면 재기하지 못하는 게 상식이다.


▲제자에 의해 20년 만에 무관으로 전락하는 순간. 허망한 스승.
무관전락을 확인하는 마지막 공배 메움. 95년 12기 대왕전 도전4국 모습.


그런데 조훈현 九단은 달랐다. 그는 확실히 특별한 승부사다. 그의 트레이드마크 같았던 담배를 끊고 틈날 때마다 북한산을 오르내리며 체력을 다졌다. 마음도 달리 먹었다. 지난 15년 세월 그는 아래를 굽어보았을 뿐 쳐다볼 일이 없었다.

90년부터 하나둘 타이틀을 내주며 실지(失地)하기 시작한 조훈현 九단은 92~95년 대회전에서 참패하며 대장정에 돌입해야 했다. 조九단이 향한 대장정은 세계대회였다. 해외 거점을 마련해 재기의 발판을 모색한 것.

94년에는 사제도전 27번기에서 참패를 당해 국내 거점이 붕괴직전에 처했으나 5회 동양증권배와 7회 후지쯔배를 석권, 세계기전에서는 제자를 능가했다. 이 해에는 단체전인 진로배 우승까지 견인해 89년 우승한 응씨배를 포함, 세계최초로 세계대회 사이클링히트를 기록했다. ‘망명객' 소리를 들었지만 해외 거점을 기반으로 대대적인 항전에 돌입했다.

95년 초 무관의 수모까지 겪었던 조九단은 1년 만(96년 3월말)에 패왕을 탈환했고 이어 5월 비씨카드배와 6월 기왕전까지 단숨에 치고들어가 국내기전 3관왕에 복귀하며 화려하게 재기했다.

96년에는 제자와 11승 13패로 대등한 접전을 펼쳤다.

97년에는 다시 동양증권배를 우승했고 바둑왕과 배달왕기전을 추가하며 6관왕에까지 올랐다. 놀라운 분전이었다. 98년 11월에는 91년 탈환했다가 93년 0-3으로 내준 국수를 5년 만에 되찾기도 했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무리의 지도자는 늘 젊은 경쟁자의 도전을 받고 언젠가는 자리를 내주게 된다. 조九단 역시 자신이 키운 제자에게 일인자 자리를 빼앗겼다. 동물의 세계에선 리더 자리를 빼앗긴 왕은 그 순간 무리를 떠나거나 철저하게 도태되지만 조九단은 포기하지 않았고 사라지지도 않았다. 제자에게 숱하게 꺾이면서 더 강해졌고 아킬레스건이었던 끝내기 실력도 늘었다. 라이벌 서봉수와 경쟁하면서 늘었듯이 제자와 10년 전쟁을 벌이면서도 끝없이 의문을 품고 공부했던 것이다.

▲월간『바둑』 92년 11월호 박수동 만평.


90년대 중반 대규모 사제대결에서의 과다출혈 이후 전략도 바꾸었다. 국내기전 공략은 게릴라 전법으로 대체했고 대신 상금도 많고 단기간에 치러 체력부담이 덜한 세계기전에 전력을 다했다. 이것이 90년대 중반 이후 세계대회에서 자주 우승할 수 있었던 숨은 동력이다.

다시 천재론을 들먹여 본다. 격투기 무대처럼 숨돌릴 틈 없이 돌아가고 있는 요즘 바둑세계에서 나이 예순에 이르도록 이처럼 짱짱하게 활약하고 있는 기사가 조훈현 말고 누가 있는지. 타고난 감각에 전류보다 빠른 두뇌회전, 치열한 승부근성 따위의 수사를 나열할 것도 없다. 라이벌로 거명되던 고바야시 고이치 九단도 녜웨이핑 九단도, 한참 연하인 마샤오춘 九단조차 존재감이 사라진 마당이다. 이 하나의 사실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비록 도전무대에서 시나브로 비껴나고 있지만 조훈현이란 이름 석 자는 우리 가슴에 영원한 승부사로, 반상의 불사조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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