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놀랐다.
제18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 본선 32강전에서 일본은 4명 중 3명이 16강에 진출하는 좋은 성적을 냈다. 지난 달 국가대표팀‘고고자판(GO,碁, ジャパン)’을 창설한 일본에게, 팀 창설 후 처음 맞이하는 세계기전 LG배는 변혁 이후의 첫 시험 무대가 되는 셈이었는데 기분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낸 것이다.
10일 강릉 라카이샌드파인 리조트 특별대국장에서 열린 본선 32강전에서 일본은 국가시드를 받아 출전한 이야마 유타 9단, 다카오 신지 9단, 고노 린 9단, 하네 나오키 9단의 4명 중 이야마, 다카오, 고노의 3명이 한·중의 기사들을 꺾었다.
이 중 가장 놀랄 만한 결과는 고노 린이 응씨배 우승자 판팅위를 꺾은 것이다. 중국에서 1990년 이후 출생한 기사들은 따로 세대를 분류할 만큼 활약이 대단한데 판팅위는 그 ‘90후’의 일원으로서 그 중에서도 더 주목받는다. 판팅위가 지난 3월 박정환 9단을 응씨배 결승에서 3-1로 무너뜨린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야마는 중국의 장타오를 꺾었다. 장타오는 그리 유명 기사는 아니지만 지난 통합예선에서 양딩신, 판페이 같은 강자들을 물리쳤던 강호다. 다카오는 홍성지를 꺾었다. 초ㆍ중반 홍성지는 아주 우세해서 착수도 리듬을 타고 있었는데 다카오가 끈기 있게 기회를 엿보다 역전했다. 일본기사 중 유일하게 진 하네 나오키는 목진석에게 반집패했다. 초반은 목진석이, 후반은 하네가 유리했는데 치열한 끝내기를 거쳐 목진석이 이겼다. 야마시로 히로시 일본 감독은 “햐아~ 정말 아까웠습니다. 하네 9단이 다 잡은 승리였는데 놓쳤어요.”라며 아쉬워했다. 일본 팀으로서는 만족스러운 결과였을 것이다.

▲ 좋은 성적을 내면서 활기에 찬 일본.
12일 16강전에서 이야마 유타는 이영구와 대국하며, 다카오 신지는 중국 궈위정과 8강을 다툰다. 궈위정은 32강전에서 조한승을 탈락시킨 20살의 중국 신예. 고노 린은 중국랭킹 2위 천야오예와 맞붙게 됐다. 야마시로 감독은 “그래도 아직 32강전을 지났을 뿐 16강전에서도 일본 선수들이 힘을 내주기 바랍니다.”고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일본은 그동안 일본바둑에 생소했던 단어 ‘감독’을 사용한다. 감독이 국가대표팀을 이끈다. 국가대표 선수 선발 방식은 크게 바뀌었다. 기존엔 상금 랭킹 상위자 중 참가희망자를 받아 일정 조정에 무리가 없는 기사를 출전켰는데, 이젠 국가대표팀 소속 기사 중에서 감독이 선발한다. 현재 국가대표팀은 전년도 상금 순위 상위자, 신예대회 우승자, 여류 선수들을 포함해 총 30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야마시로 감독은 코치 3명을 임명했는데 장쉬 9단, 다카오 신지 9단, 장리요우 8단이다. 세계기전에 내보낼 선수를 선발할 때 판단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인물들로 선정했다고 한다. 몽백합배 일본 대표 선발은 이 같은 감독과 코치의 판단에 의해 이루어졌다(다만, 이번 LG배 선수 선발은 새 선발 방법이 적용되지 못했다. 그러기엔 워낙 본선 개막이 다가와 있어 시간이 촉박했다.)
일본기원의 부이사장이기도 한 야마시로 감독은 국가대표팀 창설을 추진한 주인공이다. 일본기원 이사회는 국가대표팀 창설안을 무리 없이 통과시켰다. 국제기전 성적이 좋지 않은 일본엔 ‘변화가 필요하다’‘어떤 처방이라도 해 보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 일본 바둑 최초의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 야마시로 히로시 9단은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웠을 것이다.
국가대표팀은 6월부터 빠르게 훈련에 들어갔다. 매주 2회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 7시 대표팀은 온라인 연습대국을 한다. 국가대표팀 결성까지의 과정이 워낙 빠르게 진행되는 바람에 결정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 다른 훈련 방법도 추가로 논의될 예정이다. 농심신라면배와 같은 대회를 앞두고는 합숙훈련도 할 계획이다.
일본 팀은 LG배 32강과 16강이 사이의 휴식 날 검토실에 모였다. 대국 날이 아니라서 검토실은 조명이 반쯤 켜져 있고 고즈넉하다. 탁자엔 종이 기보들이 몇 장 보인다. 간간이 일본 대표선수들이 기보 내용에 관해 의견을 나누는 목소리와 바둑알 놓이는 소리가 들린다.
물론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국가대표팀의 훈련 덕택에 일본이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일본 바둑의 마음가짐은 어느 때보다도 달라져 있다. 일본 바둑팬들은 지금까진 없었던 국가대표팀이라는 형태를 신기해하면서도 응원을 보내고 있다. 감독과 선수들의 표정은 자신감에 넘쳐 보인다.

▲ LG배 본선 32강전에서 일본 기성 이야마 유타(왼쪽)가 중국 신예 장타오와 대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