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요 우승은 내가 만들어 준 거나 다름 없다"
- 23일 LG배 결승2국에서 최철한 9단이 한 말
23일 동아일보사옥에서 국수전 시상식을 마친 최철한 9단, 같은 날 제15회 LG배 결승이 열리는 광화문역내 중화회를 찾았다. 두 장소는 가깝다. 국수전 시상식을 마치고 우승의 기쁨을 만끽한 최9단은 넥타이를 맨 차림 그대로 LG배 결승전 검토실을 찾았다. 박문요의 승리로 대국이 거의 끝나 갈 무렵이었다.
결승2국 검토실은 21일 열린 1국에 비해 기자들과 프로기사들이 많았다.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패배의 기록도 사람이 많다보면, 기록에 밝은 누군가는 바로 생각해 내기 마련이다. 바둑 필자 한분이 웃으며 최철한에게 물었다.
- 지금 이 자리에 박문요가 있기까지 최 9단이 보태준 거 아냐?"
최철한 9단, 아주 잠깐 샐쭉해졌다. 2010년 11월 8일에 열린 이대회 8강전에서 한국기사들이 모조리 탈락했기 때문이다. 8강에 올랐던 이창호 9단과 최철한 9단, 안조영 9단이 탈락했고 최 9단은 당시 박문요에게 졌다. 그 박문요가 결승까지 올라와서 콩지에를 거의 이겨놓고 있었다. 2-0의 결과로 우승컵이 박문요의 눈앞에 있다.
잊고 있던 패배를 일깨운 질문에, 최 9단은 순발력을 발휘했다. 박문요한테 졌지만, 지난 1월 20일 농심신라면배 최종국에서 콩지에를 잡아 콩지에의 기를 눌러놨다. 그래서 현재의 결과가 만들어졌으니 박문요의 우승은 '내 탓'이라는 내용.
"그러게요. 박문요 우승은 실상 내가 만들었어요. 내가 8강에서 져서 박문요가 결승에 올랐죠. 게다가 박문요의 결승 상대인 콩지에를 농심신라면배 마지막 판에서 만나 '석을 죽였잖아요'. 그러니까 박문요 우승은 내 작품이에요. 하하"

▲ "오늘 대국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마이크를 들고 인터뷰하는 사람이 노성해 CCTV 한국 지국장. 패자인 콩지에가 웃으며 대답하고 있다.
○●... "LG배 결승도 굉장히 중요해요" - CCTV 노성해 지국장
중국 CCTV 서울 노성해 지국장의 말이다, 23일 오후, 중국의 양제츠 외교부장이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을 방문했다. 양국간의 중요한 현안들이 논의 되었다고 뉴스를 찾아보니 나온다. 노성해 지국장은 이를 취재하고 곧바로 결승대국이 열리는 광화문으로 바삐 달려온 것이다. 중요한 취재 때문에 여기 올 시간이 없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고 '오늘의 바둑도 중요하다'며 답한 것.
노성해 국장은 복기하는 옆에서 패자부터 인터뷰를 시도했다. 중국바둑의 특징일까? 복기가 끝날 무렵, 패자에게도 인터뷰를 요청하고, 중국기사들은 이를 곧 잘 받는다. 콩지에는 지고나서 기분이 별로 좋아 보이지는 않았는데 아무튼 CCTV의 질문을 받고 곧바로 밝게 대답을 했다. 참고로 중국 소식에서 패자 인터뷰가 가장 많은 프로기사는 아마도 '구리'일 것이다. 꼭 한마디씩 하는 게 중국기사에 실려 있는데, 이는 구리가 인터뷰에 잘 응해주기 때문이다.

▲ "김성룡, 우리 딸 어디갔지? 김성룡 9단은 딸과 함께 검토실에 왔다. 초등학교 1년생인 딸이 자연스럽게 바둑에 관심을 가지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정작 초등학교 1년생은 아빠의 뜻과는 달리 어디론가 휘익~ 잠적했다.
○●...LG배는 3번기, 국내 천원전 준우승 이태현, 나는 5번기였는데...
이태현 4단은 박카스배 천원전을 준우승했다. 세계대회인 LG배가 상금이 훨씬 많지만 결승은 3번기로 치러진다. 검토실에서 5번기와 3번기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아 부끄러워,' 같이 검토를 하던 이태현은 천원전 결승이 5번기라 (너무 길어서) 부끄럽고 괴로웠다고 농담처럼 한마디. (국내 천원전에선 이태현과 겨뤄 3-0으로 최철한 9단이 우승했다. 최철한이 여럿을 죽이고 살린다.)
○●... 박문요 "나는 중국인, 또한 중국기사"
2월 27일 시나체육(weiqi.sina.com.cn 시나바둑 웹)에 게재된 인터뷰 모음 중 일부이다. 많은 질문이 있었는데 박문요는 인터뷰중 자신의 정체성이 중국임을 확실히 밝혔다.
- (중국기자)조선족의 아들로서, 한국에서 많은 응원(팬)이 있었다고 알고 있다. 많은 관심이 당신을 향했다.
" (박문요)그렇다. 나 또한 정말 감사드린다. 나는 조선족 사람으로 잘 알려졌다. 훨씬 친근감있게 느꼈을 것이다. 한국인인 경우 특히 더 친근하게 느꼈을 것이다. 단 한가지 공개적으로 말할 게 있다. 무엇보다 먼저 난 한 명의 중국인이다. 중국(프로)기사이다. 특정 소식에 쓰여진 것과 같지 않다. "
(박문요의 할아버지는 경상도 출생이라는 뉴스도 있었던 것 같다. 박문요는 아버지가 어렸을 때 일찍 돌아가셔서 그런 사실들을 스스로는 잘 몰랐다고 했으며 이야기를 들은 바도 없다고 했다. 박문요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모두 조선족이며 어머니 권순옥씨가 박문요의 뒷바라지로 많은 고생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 "그래요, 박문요 우승은 내가 만들었어요. 최철한 9단(우측)"

▲ 결승2국 후, 한국과 중국의 기자들이 박문요와 우승 인터뷰를 하고 있다.

▲ "복기하고 있는 박문요(좌측)와 콩지에 두 결승 대국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