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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풍속도의 출발점 ‘7공자 1期’
 

▲ 왼쪽부터 입단자 류수항, 이범진, 김현찬.


이른바 ‘고시(考試)패스’는 지난 반 세기 동안 이 나라 젊은이들의 꿈이자 로망이었다. 판사 검사 변호사로 가는 길인 사법고시는 새 천 년 들면서부터 연간 1천 명이나 뽑고 있지만, 그래도 웬만한 사람들에겐 여전히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운 시험이다.

총 4차에 걸친 바늘구멍 시험을 통과해 합격한 예비법조인들에겐 똑같이 ‘사법연수원 ○○기’란 딱지가 붙는다. 연수기간 동안은 말 할 것도 없고, 졸업 이후 법조인의 길을 걷는 동안 평생 같은 숫자로 엮인다는 얘기다. 합격 후에도 그들은 사법연수원에서 2년에 걸쳐 피나는 경쟁을 또 다시 펼쳐야 한다.

고시 동기란 단어 속에는 그래서 유대(紐帶)의식과 경쟁의식이 함께 숨어있다. 어려운 관문을 함께 통과해 같은 기수(期數)를 부여받았으니 얼마나 가까운 동료들인가. 하지만 그들끼리의 경쟁에서 낙오되면 원치 않는 분야로 밀려나는 걸 각오해야 한다. 내가 그들을 타고넘지 않으면 그들이 나를 징검다리로 이용할 것이다. 피할 수 없는 경쟁자들인 셈이다.

최근 바둑계에 7명의 프로가 동시에 배출됐다. 이들 입단동기생들을 보면서 법조계를 떠올렸다. 원래 바둑계에 7명 동시입단 방식은 없었는데 한국기원의 제도개정에 따라 올해 처음 시행됐다. 앞으로 매년 연초엔 이번처럼 7명 정원으로 일반인 입단대회가 벌어진다. 과거 입단대회는 한 번에 1명 또는 2명을 뽑는데 그쳐 동기생 개념이 희박했었다.

박영롱 김현찬 류수항 이범진 김성진 박민규 황재연 등 7명의 새 얼굴이 프로에 상륙했다. 이들이 통과한 무대의 공식명칭은 제130회 일반인 입단대회다. 필자는 이들 7명을 ‘7공자(公子)’로 부르고 싶다. 매년 한 차례씩 7공자가 배출될 테니 이들은 말하자면 ‘7공자 1기(期)’다. 프로기사 생활을 하는 동안 이 1기라는 숫자는 평생 이들의 등 뒤에 백넘버로 따라다닐 것이다.
▲ 왼쪽이 박민규, 오른쪽이 김성진


7명의 복수(複數) 입단이 무슨 큰 의미가 있다고 호들갑일까. 필자가 보기엔 상당한 의미가 있다. 바둑 팬들에게 어필할 소재가 여럿 늘어났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흥행 요인이 추가로 발생한 것이다. 법조계에서 일반 국민들이 흥미롭게 지켜보던 항목들이 고스란히 재현될 판이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정말 기가 막히게 닮았다. 우선 합격 성적이다. 이번에 입단한 7명은 ‘합격자 서열’이 뚜렷이 드러난다. 스위스리그로 진행된 입단대회서 박영롱이 파죽의 8연승으로 가장 먼저 프로에 깃발을 꽂았다. 말하자면 그는 ‘7공자(公子) 1기’ 멤버 중 장원급제 또는 수석합격자다.

예전의 ‘학력고사 만점’을 연상시키는 이 경력도 평생 박영롱의 이력서 상단을 장식할 것이다. 사법시험 수석합격자는 모든 사람의 주목을 받는다. 그리고 선망의 대상이 된다. 이런 흥행요소는 많이 개발될수록 좋다. 박영롱이 입단한 바로 다음날 김현찬 류수항 이범진도 8승(2패)째를 채우면서 프로에 진입했다. 말하자면 동점 차석(次席)합격 쯤 되는 셈이다.

대회는 3일째인 8월 19일 7승(3패)자 7명을 대상으로 계속됐다. 토너먼트 방식으로 2승자는 무조건 입단하게 돼 있는데 김성진과 박민규가 그 관문을 통과했다. 동률 5위 ‘급제(及第)’다. 남은 티켓은 단 한 장. 첫판을 부전승한 황재연이 20일 최우수와 마지막 대결을 펼쳐 7명 중 7위로 입단의 꿈을 이뤘다. 그것도 단 반 집 승부여서 더욱 극적이었다.

그런데 ‘꼴지’로 입단한 황재연은 오히려 이것이 재산이 될 수도 있다. 앞으로 프로 제도권 안에서 얼마든지 실력을 보여줄 수 있고, 그럴 경우 더욱 짜릿한 인기요인이 될 테니까. 법원이나 검찰 인사 때 고시 수석(首席)이 밀려나는 모습을 연상하면 된다. ‘7공자‘ 후배 기수가 선배 기수를 따돌리고 요직(타이틀)을 차지했다든지 하는 뉴스가 앞으로 많이 쏟아질 것이다. 7공자 입단제도 아니면 누릴 수 없는 흥행요소다.

고시 동기생들 사이엔 나이가 천차만별인데 이번 7명의 입단자들 역시 그렇다. 88년생 김현찬이 가장 많고 박영롱과 김성진이 그 보다 1년 아래다. 동기생 중 최고령자인 김현찬과 최연소인 황재연(95년생)의 나이 차는 무려 7살이다. 이것도 관객들에겐 흥미를 북돋워주는 요소다. 그들끼리 대국이 이뤄질 때면 언제나 언급될 소지가 많다.

7공자들은 출신도장도 저마다 다르다. 사법고시에서 출신교 별 합격자는 언제나 관심의 대상이다. 올해 배출된 7공자 1기의 경우 박영롱과 김성진이 장수영도장, 김현찬 황재연이 충암도장, 류수항 이범진 박민규가 양천대일도장 출신이다. 출신도장이 다른 동기생끼리 싸워도, 동기생에다 동문(同門)까지 겸한 기사끼리 격돌해도 모두 흥미롭다. 역시 관전 메뉴가 더 풍성해졌다는 얘기다.

아무리 바둑이 개인 종목이라지만 동기생들끼리의 동료의식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팬들이나 매스컴이 기수별로 비교하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7공자 그룹 중에는 4기 멤버가 최강이고 2기가 최약체“란 식의 소리를 듣고 기분 좋을 2기생은 없다. 몇 년이 지나면 기별 단체전 같은 이벤트 기획이 등장할 공산이 크다. 각 기수가 하나의 소세력으로 기능하리란 뜻이다.

이번에 단체로 입단한 ‘7공자 1기’ 멤버는 저마다 개성도 뚜렷하고 실력도 출중하다. 앞으로 바둑계의 소중한 자산으로 자리 잡을 인재들이다. ‘장원급제’ 박영롱의 경우 입단 전부터 ‘프로잡는 아마추어’, ‘괴물’ 등의 별명으로 불렸다. 프로기사와 총 12판을 겨뤄 9승을 따냈는데, 그에게 패한 프로 중엔 스타 중의 스타 최철한도 포함됐다.

대학생기사 김현찬(명지대 바둑학과)은 연구생 시절 4회 연속 리그 1위란 신화를 작성했던 강타자였다. 류수항은 2002년 제2회 대한생명배 어린이국수 출신. 이범진도 16회 삼성화재배 통합예선서 1승 1패를 기록하는 등 주목 받아왔다. 김성진은 올해 제18회 아함동산배서 거함 조치훈을 격침하는 등 엄청난 기세로 본선에 올라 일본 바둑계를 충격에 몰아넣었던 주인공이다. 연구생 서열 2위였던 고교생 박민규(동양공고 2년)도 발전 가능성이 무한하다.

황재연은 이번 ‘7공자 1기‘ 중에서 최연소라는 점, 마지막 기회를 반 집으로 장식하며 4패(7승)로도 입단 꿈을 이뤘다는 점, 프로기사를 상대로 한 통산승률(5승 1패)이 8할이 넘는다는 점, 지난 7월 명인전 예선 때 세계최강자 이세돌을 꺾었다는 점 등에서 동기생들 중 특별한 주목을 받을 가능성이 보인다.
이번 ‘7공자 1기’ 중 현역 연구생은 박민규 황재연 2명뿐이고 나머지 5명은 이른바 ‘퇴출자’겸 ‘재수생’들이다. 발군의 실력을 갖추고서도 좁은 입단관문에 막혀 연구생 상한연령을 넘긴 아픈 과거의 소유자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증거다. 이 모든 사연들이 앞으로 펼쳐질 흥미로운 드라마의 극적 장치들이다. 새 제도 도입으로 과거 방식에 비해 실력파들이 많이 구제됐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7명의 평균연령은 20세.

2기 7공자는 내년 1~2월에 선발한다. 7~8월엔 부문별 입단대회를 통해 영재 2명, 여성 2명, 지역연구생 1명을 뽑는다. 물론 부문별 대회도 그 나름 흥미롭고 기대되지만 ‘소그룹’이 지니는 재미까지 추구할 수는 없다. 올해 입단자 12명은 지난 9월 초 프로 면장(免狀)을 받고 정식으로 프로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바둑과 법조계가 다른 점도 하나 있긴 하다. 고시 합격 후에도 2년 간 연수원서 공부해야 하는 법조계와 달리 바둑은 바로 실전 참가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7명의 새내기 프로들은 3개월의 연수기간 동안 주말에 바둑 규칙, 행정, 서예, 외국어 등을 배우는 것으로 연수를 대신한다. 연수기간 6개월 간 발이 묶였던 과거와 달리 대회엔 곧바로 출전할 수 있도록 조정된 것이다. 이 점에서 7공자 1기 멤버들은 참 복도 많다. 그들이 향후 우리 바둑계를 이끄는 막강한 소집단이 될 것을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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