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으로선 정말 십년은 감수할 만 한 사건이었다. 메이저급 타이틀전에 한국 아마추어 2명에게 자칫하면 타이틀을 내줄 수도 있는 아찔한 순간을 맞았기 때문이었다. 그들로선 천만다행으로 최악의 ‘비극‘은 아슬아슬하게 빗나갔다. 지난 7월 25일 도쿄 일본기원서 벌어진 제18기 아함동산배 전일본 속기오픈전 본선 8강전 한국 하성봉(30) 대 일본 프로 9단 야마시타 게이고(山下敬吾)전 이야기다.
200수 만에 백을 쥔 야마시타가 백으로 불계승하면서 올해 봄부터 계속돼 온 한국 아마추어들의 ‘공습’이 가까스로 진압됐다. 야마시타마저 뚫렸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야마시타는 그 전주(前週)에 끝났던 제66기 본인방전서 2년 연속 우승을 장식했던 일본 간판 중의 간판. 통산 우승회수가 20회에 이르고, 전년도 아함동산배 우승자이며, 용성전을 포함해 현역 2관왕으로 군림 중인 1인자다.
그런 그가 한국의 일개 아마추어에게 질 리가 있을까? 물론 그게 지금까지의 ‘상식’이었다. 하지만 하성봉은 지난 봄 이후 몇 달 동안 ‘상식’을 거스르는 괴력으로 연승을 거듭했다. 마치 날쌘 자객 한 명이 철통같은 경계를 뚫고 일본 바둑계 ‘황궁‘의 최 근접지역까지 접근해가는 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아함동산배는 우승상금이 1000만 엔, 우리 돈으로 약 1억 4000만 원짜리 대형기전이다. 아마추어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하는 일본 유일의 타이틀전이기도 하다. 그러나 프로와 달리 아마추어들에게는 단 20개의 자리만 제공한다.
20명의 아마추어를 포함한 프로들은 예선을 치르는데 그 과정이 산 너머 산이다. 예선 C와 예선 B, 예선 A 과정을 모두 통과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지금까지 이 대회에서 아마추어 기사가 가장 많이 진격한 것은 예선 A에 간신히 도달한 기록이었다. 현역 기성(碁聖) 타이틀 보유자로 아마추어 때 맹위를 떨쳤던 사카이(坂井秀至)조차 아마추어 시절 수차 이 대회에 도전했었으나 최종예선을 밟아보지 못했다. 그 좁은 문을 하성봉과 함께 또 한 명의 한국 아마기사 김성진(22)이 동시에 돌파한 것이다.
A B C 3단계 예선에서 하성봉과 김성진은 내로라하는 일본 프로들을 상대로 각각 5연승씩 기록했다. 이런 과정을 통과한 기사가 총 28명. 이들은 다시 35명이 겨루는 최종예선에 나가 11장의 본선티켓을 놓고 또 격돌했다. 하성봉과 김성진은 이 과정 마자 각각 2연승으로 돌파, 본선토너 티켓을 손에 넣는데 성공했다.
▲ 이야마 9단(왼쪽)이 승리했지만 김성진 아마가 선전하며 일본팬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 과정이 진짜 볼 만 했다. 김성진은 예선 결승 1회전서 거함 조치훈을 완파한 것이다. 일본 최다 타이틀 획득 기록(71회) 보유자 조치훈을 격파했다는 소식은 한 일 양국은 물론 세계 바둑계에 큰 쇼크를 던졌다. 그런 뒤 김성진은 가토(加藤充志) 8단마져 제치고 대망의 본선 무대에 상륙했다. 가토는 군소기전이긴 하지만 JT배를 차지했던 타이틀 홀더 출신의 강자. 하성봉도 야나기자와(柳澤理志) 3단과 후루야(古谷裕) 8단을 따돌렸다.
두 한국 아마기사의 본선행 과정에서 각각 10명에 가까운 일본 프로기사들이 제물이 됐다.
16강이 토너먼트로 겨루는 본선은 일본 바둑계의 핵심들이 총 집결한 무대다. 여기에 한국 아마추어 2명이 당당히 끼인 것이다. 그런 기세라면 우승까지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일본 바둑계가 초긴장할 만 했다.
본선서 먼저 대국을 가진 것은 김성진이었다. 첫 상대는 이야마(井山裕太) 9단. 김성진은 소신껏 분전했으나 결국 일본 명인의 벽을 넘는데는 실패했다. 일본 최연소 타이틀 기록 보유자로 자국 팬들로부터 엄청난 기대를 짊어지고 있는 이야마는 대국 후 “내가 졌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을 만큼 고전했던 바둑”이라고 실토했다. 조치훈까지 눕혀 김성진에 대한 경계심이 극한에 달했던 일본은 안도의 한숨을 쓸어내렸다.
뒤이어 하성봉이 나섰다. 본선 첫 상대는 미조카미(溝上知親) 8단. 하성봉이 이겼다. 일본 신인왕 출신에 견조한 중견기사로 활약 중인 미조카미는 솔직하게 “내가 시종 나빴다. 힘을 써보기도 전에 당했다. 그는 매우 강하다”고 했다. 하성봉은 여세를 몰아 야마시타까지 눕히려 나섰지만 4강 진입엔 실패했다. 대어(大魚)가 눈앞에 어른거리면서 몇 차례 찾아온 찬스를 살리지 못한 채 마지막 피리어드를 찍고 만 것.
한국 아마추어에게 8강 고지를 내 준 일본 바둑계는 놀라움과 부러움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한국의 프로가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여러 수 아래로 봤던 한국 아마추어들에게 조차 최정상을 내줄 뻔 했으니 그 충격이 엄청났을 것이다. 일본엔 100명이 넘는 9단을 포함해 400명이 넘는 프로기사가 활동 중이다.
문제는 하성봉 김성진 수준의 아마추어가 한국에는 한 두 명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두 기사 모두 한국기원 연구생으로 몇 년 동안 프로의 문을 두들기다가 뜻을 이루지 못한 채 ‘19세 정년‘ 규정에 의해 퇴출당한 기사들이란 점이다. 프로 입단의 문이 워낙 좁아 입단대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그냥 아마추어로 활동하는 수밖에 없다. 뛰어난 실력을 갖고도 이렇게 아마추어 ’낭인‘으로 떠도는 고수들의 수가 수 십 명에 달한다.
한국 ‘바둑 이무기’들의 파워는 이미 국내외 대회에서 여러 차례 입증된 바 있다. 심지어 지구상 최고수 대열에 드는 이창호, 이세돌조차 아마추어에 패하는 수모를 맛 봤을 정도. 제2회 비씨카드배 본선 1회전서 이창호가 한태희(현 프로 2단)에게, 얼마 전에는 이세돌이 명인전 예선서 연구생 황재연에게 각각 한 칼씩 맞았다. 윤준상 목진석 이영구 등 내로라하는 프로 최고수들도 저마다 숨기고 싶은 기록을 하나씩 갖고 있다.
이번 사태에서 느끼는 교훈은 크게 2가지다. 하나는 한국 프로 입단의 문이 지나치게 좁아 뛰어난 실력자들을 너무 도태시키고 있지는 않으냐는 것. 이런 지적이 타당성을 인정받으면서 입단의 문호도 조금씩 넓어지고 있는 추세다. 내년부터 바뀌는 입단대회 요강을 보면 특히 어린이 유망주들을 조기 입단시키는 방안이 눈에 뜨인다. 제한적이긴 하지만 각종 프로대회에 아마추어 일부를 출전시켜 소정의 입단점수를 축적하게 하는 제도는 이미 실시되기 시작했다.
또 하나는 일본 바둑의 몰락이다. 수 백 년 간 국록(國祿)을 주어가며 어전(御前)서 대국하는 등 국책으로 바둑을 키워왔던 일본은 20세기 종반까지만 해도 세계가 인정하는 바둑 선진국이었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 대만 등의 바둑 영재들은 일본 유학을 가야만 1류로 성장한다는 것이 공식으로 통하던 시절이 있었다.
일본바둑의 급격한 몰락 원인에 대해선 여러 설이 있다. 각종 스포츠와 전자게임, 장기(將棋) 등 대체(代替) 오락에 점유율을 빼앗겼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오지만 검증된 학설은 아니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일본의 바둑만큼 최 융성기를 누리다가 단시간 안에 하류국으로 전락한 문화는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이것은 바둑 실력을 뜻하는 것일 뿐, 타이틀전 구조나 규모, 각급 대회 시스템, 운영체계 등 바둑 인프라까지 포함하는 지적은 아니다.
이번 사건은 한국 바둑으로선 보기 드문 쾌거였지만 역설적으론 타산지석의 의미도 있다. 일본 바둑의 급격한 몰락이 우리 바둑계의 전조(前兆)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재들의 조기 발굴과 집중 조련, ‘두뇌 전쟁‘ 차원에서의 국가 지원, 한국기원 등 바둑 행정기관의 현대화 등 우리 바둑계가 할 일은 산적해 있다. 더불어 동양 3강의 정립(鼎立) 균형 차원에서 일본 바둑이 좀 더 힘을 내야 한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