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바둑이 세계를 리드해 온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의 얘기다. 90년대 중반 이후 한국기사들은 각종 국제대회에서 중국과 일본을 압도해왔다. 최근 중국의 추격을 받고 있긴 하지만 한국의 아성은 흔들리지 않고 있다.
각국 프로들이 실력을 견주어보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국제대회들이다. 이런 무대를 많이 마련해주는 나라가 바둑세계화의 은인이다. 이 방면은 어떨까. 역시 한국이 압도적이다. 규모나 전통, 권위 등에 있어 경기력보다 훨씬 더 높은 비율로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결국 모든 면에서 한국은 세계 바둑의 중심국가로 자리 잡았음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물론 국제바둑대회라고 다 똑같은 것은 아니다. 세계 최강자를 가리는 정통기전도 있고, 국가별 단체전과 여성기전도 있다. 현재 치러지고 있는 국제바둑 개인전 중 LG배 세계기왕전,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비씨카드배 월드바둑챔피언십(이상 한국 주최), 후지쓰배(일본 주최), 잉씨배(대만 주최), 춘란배(중국 주최) 등을 메이저급 정통기전으로 꼽는다.
메이저급 개인전 현재 제16기 대회가 진행 중이다. 대회 방식도 통합예선→32강 토너먼트→도전기로 이어지는 가장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해 왔다. 우승상금 2억 5000만 원 포함 총예산 13억 원의 대회규모도 이 대회의 권위를 빛내 온 요인. 제한시간이 줄어드는 추세지만 1인당 3시간 규정은 16년째 변함이 없다. 연패(連覇)기사가 1명도 안 나올 만큼 명승부의 산실로 유명하다.
<삼성화재배> 1996년 LG배와 거의 동시에 출범, 두 기전이 경쟁관계를 형성해 왔다. 연간 총 예산규모도 13억 원으로 LG배와 같다. 우승상금은 2억 원. 통합예선을 거친 뒤 본선 1회전을 더블 일리미네이션 방식으로 치르는 점, 1인당 2시간씩 제공하는 점 등 매년 다른 대회들과 차별화에 노력해왔다. 8월 제16회 대회 본선에 돌입할 예정.
<비씨카드배> 2009년 출범, 올해 3회 대회까지 마쳤다. 한국의 이세돌이 2연패(連覇)를 기록 중이다. 총 규모는 LG배 및 삼성화재배와 같은 13억 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우승상금 3억 원, 본선 출전규모 64명, 결승전 5번기 등에선 한국 주최 메이저기전들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제한시간은 1인당 2시간제를 채택하고 있다.
<춘란배> 중국이 주최하는 유일한 정통스타일 메이저 기전이다. 두 달 전 8회 대회까지 마쳤다. 한국의 3대 메이저기전이 연례행사인 것과 달리 춘란배는 매 2년 터울로 벌어진다. 우승상금은 15만 달러, 총 예산규모는 40만 달러다. 환율에 따라 입상자의 상금이 가변적이란 점이 특이하다. 본선전은 24강 토너먼트로 거행되며 1인당 3시간씩 사용할 수 있다. 중국식 룰에 따라 한국주최 대회보다 1집이 더 많은 7집 반의 덤(공제)이 흑에게 부과된다.
<잉씨배> 대만의 재벌이자 바둑광이었던 고 잉창치씨가 만든 국제대회. 매 4년마다 벌어진다는 점, 1인당 3시간 30분의 최장 시간이 주어진다는 점 등 개성이 가장 강한 기전이다. 흑이 부담하는 덤 8집, 전만법이란 이름의 계가 방식 등은 독특한 잉씨 룰의 적용을 받는다. 본선 24강전을 거쳐 결승 5번기로 이어지며 총규모는 115만 달러, 우승자는 40만 달러를 받는다.
<후지쓰배> 1988년 잉씨배보다 간발의 차이로 먼저 출범,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국제기전으로 불린다. 회수도 올해로 24회째를 맞는데, 금년의 경우 일본 동북지역의 대지진 여파로 4월에 개최되지 못하고 8월로 연기해 놓은 상태다. 작년까지와 달리 올해부터는 32강전, 제한시간 2시간, 1회전부터 결승까지 동시 진행 등으로 운영방식을 바꿨다. 우승상금 1500만 엔.
국가대항 단체전
<농심배> 한국 중국 일본 3개국서 각 5명씩의 대표가 출전, 3각 토너먼트 방식으로 우승을 겨루는 한국 주최의 국제대회다. 93년부터 97년까지 5회를 치르고 종료된 진로배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아 99년 첫 대회를 치렀다. 올해 초 12회 대회까지 종료됐는데 그 중 10회를 한국이 우승했다. 단체 우승상금 2억 원을 포함해 대회 총 예산은 10억 원.
<정관장배> 한국인삼공사가 후원하는 대회로 형식은 농심배와 똑같으며 차이점은 여자기사만 출전한다는 점이다. 총규모 7억 원, 우승 팀 상금 7500만 원이다. 대회 원년인 2002년과 이듬해 2003년엔 토너먼트 개인전으로 치르다가 2004년 3회 때부터 현재 방식으로 변경했다. 하지만 주최 측은 현재 이 대회를 폐지하고 정통 국제전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어서 주목된다.
공동주최대회 한국 KBS, 중국 CCTV, 일본 NHK 등 3개국 방송사가 주최하는 TV 속기타이틀전 우승자와 준우승자들이 모여 토너먼트로 패권을 가리는 미니 국제전이다. 동양 3강이 윤번제로 개최하는 세계 유일의 공동주최 기전이기도 하다. 1분 초읽기 10회가 주어진다. 대회가 일본 주도로 창설되는 바람에 우승상금도 일화(250만 엔) 기준이 됐다. 23회까지 마쳤다.
이상 살펴본 대로 한국의 국제대회 개최 비율은 압도적이다. 없어진 대회를 비교해도 마찬가지. 정통스타일의 동양증권배(89~98년), 국가단체전 진로배(93~97년), 여성 정통기전인 보해배(94~98년)와 흥창배(2000년~2011년)등이 바둑의 세계화에 기여했다.
일본은 CSK배(2002~2006년), 도요타덴소배(2002~2009년) 등을 만들어 후지쓰배와 함께 세계 프로기사들의 대결무대를 제공했으나 두 대회 모두 지금은 중단된 상태다. 특히 도요타덴소배는 2년 간격으로 벌어지는 대형 정통기전으로 상당한 호응을 얻고도 4기만에 중단되는 단명 신세를 면치 못했다.
대만은 잉씨배 1개에만 그치지 않고 2005년 중환배를 창설, 운영했는데 중국기사들이 불참하는 등 몇 가지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채 2007년 3회 대회를 끝으로 문을 닫았다.
중국의 경우 지금까지 만든 메이저급 국제기전은 98년 출범시킨 춘란배가 유일무이하다. 2000년 이후 창설한 동방항공배 호작배 등 4개 여류기전은 아쉽게도 모두 1회를 끝으로 사라져 버렸다. 중국은 대신 최근 들어 특징 있는 몇 개의 마이너급 행사를 꾸준히 개최하기 시작했다.
올해 치른 초상부동산배는 한 중 양국대표 5명씩 출전, 두 차례 맞대결로 양국의 우열을 가리는 단체전 방식이었다. 우승국 상금 60만 위안은 중국에 돌아갔다. 지난 해 1회를 치렀던 궁륭산병성배는 세계 유일의 여성개인전으로 주목받았고, 올해 4월엔 한 중 일 대만 4개국을 대상으로 한 여자단체전 황룡사가원배를 열어 흥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전례로 보아 이들 여성대회가 올해 2회 대회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아직 단언하기 힘들다.
세계 바둑대회에 대한 스폰서들의 투자 효과는 여러 형태로 입증이 됐다. 따라서 한 중 일 대만 4개국은 앞으로도 다투어 국제기전 창설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점유율’이 이미 압도적으로 높은 한국에서도 몇 개 기업이 대형기전 창설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 바둑계에선 경제력에서 월등한 중국이 좀 더 대형기전 쪽에 ‘분담율’을 높여주었으면 하는 희망을 표시한다. 눈부신 경제성장을 기록 중인 중국은 60개 팀 200여 명의 프로가 활동하는 바둑리그를 운영하면서 특급 용병에게 한 판당 10만 위안(약 1800만 원)의 승리수당을 지급할 만큼 풍성한 자금력을 자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