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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출발선상에 선 16회 LG배
 

LG배 세계기왕전이 다시 스타트라인 앞에 선다. 어느덧 16기째다. 세계열강 32명이 경기도 광주(廣州) 곤지암리조트에 집결, 6월 13일과 15일 이틀간의 열전으로 우선 8강까지 추려낼 예정이다.

LG배는 오랜 역사, 정통적인 운영방식과 함께 명국의 산실(産室)로 세계 바둑계에 굳건한 지위를 확립해 왔다. 각국의 숱한 신예 유망주들이 이 기전을 통해 잔뼈를 굳혀 오늘날 세계 최고레벨의 스타로 맹활약 하고 있다.

비근한 예로 이세돌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오늘날 세계 최고 톱스타 중 하나로 군림하고 있는 이세돌의 LG배 데뷔(?)는 독특한 모습으로 이루어졌다. 1996년 벌어진 제1회 LG배 개막식장에서 13세 소년 이세돌 초단은 조훈현과 대국했다. 치수(置數)는 이세돌의 정선(定先). 공식전 아닌 LG배 창설기념 특별대국이었다.

LG배 주최사인 조선일보는 과거 20년 동안 거행해오던 국내기전 기왕전을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LG배 세계기왕전으로 대체했다. ‘마지막 기왕‘ 조훈현은 본선 32강전 첫 판을 면제해주기로 했다. 1회 대회 본선 멤버 수가 31명이었던 이유다. 당대의 거장 조훈현과, 내일을 촉망받는 이세돌 소년 간의 대국은 본대회 공식전 이상으로 장안의 화제를 모았다. 일이 극적으로 되려고 그랬는지 그 바둑은 빅(화국)으로 끝났다.

LG배의 15년 역사를 돌이켜 보면 시기별로 뚜렷한 흐름을 갖고 있었다. 8회 대회까지 전반부가 한국바둑 도약을 위한 토양제공의 무대였다면, 그 이후 9회부터 지난 해 15회까지는 한국 바둑계에서 분발을 촉구하고 자극을 주는 시기였다. 총 15년 동안 국가별 우승회수는 한국이 7회, 중국이 5회, 일본 2회, 대만 1회다. 주최국 한국이 약 절반을 점유하고 나머지를 동양 3개국에게 골고루 분배한 절묘한 황금비율이었다. 이들 동양 4개국이 빠짐없이 LG배를 소유해 본 국제기전은 LG배가 유일하다.

개인별로는 이창호가 4회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이 이세돌 및 구리(古力)의 2회. 복수(複數) 우승 경험자는 이들 3명뿐이다. 그 어떤 기사도 연속우승을 맛보지 못했다는 것도 오직 LG배만의 전통으로 남아있다.

주목해 볼 것은 최근 몇 년 간 결승전의 결말이다. 2009년 제13회 대회 이후 중국세가 한국세를 압도하며 3년 연속 우승을 휩쓸어갔다. 가장 최근 대회인 15회 때는 2006년 10회 때에 이어 사상 두 번째로 아예 중국기사끼리 결승 잔치를 펼쳤다. 15년 LG배 역사 중 후반부 절반에 해당하는 7년(9회~15회) 동안 한국이 우승한 것은 딱 한 차례(2008년 12회 대회 이세돌) 뿐이었다. 그 이전 전반부 8년(1~8회) 동안 한국이 6회를 휩쓸었던 것과 정반대의 흐름이다.

올해 제16회 대회의 초점은 당연히 한국세의 부활 여부로 모아진다. 전반부 8년간 보여주었던 절대강세 기조를 되찾을 것이냐, 후반부 7년간의 부진이 이번에도 계속될 것이냐. 한 때 ‘한국 전용기전’이란 소리까지 들었던 LG배로선 매우 중요한 전환점을 맞는 셈이다.

일단 전조(前兆)는 밝다. 우선 올해 16회 대회 출전기사 수가 한국이 17명으로 절반이 넘을 만큼 압도적이다. 최대 경쟁국인 중국은 10명, 일본 4명, 대만 1명으로 구성됐다. 한국의 이 같은 수적 우세는 전초전에 해당하는 통합예선 때의 호조에 기인한다. 총 16명을 선발하는 통합예선서 대거 11명의 한국기사가 결승관문을 통과했다. 2006년 제10회 LG배 때 통합예선 제도가 도입된 이후 가장 좋은 성적이다.

중국기사들의 4강 독점이란 첫 기록이 수립됐던 지난해의 경우 통합예선 성적은 거꾸로 11대 5로 중국이 한국을 압도했고 그것이 결승전까지 이어졌었다. 일단 올해 한국의 우세를 점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본선 멤버 32명 중 가장 주목을 모으는 기사는 역시 이창호다. 그는 올해 랭킹이 하락하면서 국가시드에 포함되지 못한 채 역대 LG배 사상 처음 통합예선부터 출전해야 했다. 국가시드는 이세돌 최철한 박정환 허영호 원성진 강동윤 등 후배 6명이 가져갔다. 통합예선을 처음 밟아보는 이창호는 얼마나 어색하고 당혹스러웠을까.

하지만 그는 이내 승부사기질을 발휘, 5연승을 거두고 기어이 LG배 본선으로 되돌아왔다. 통합예선 과정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으나 그의 투지가 빛을 발했다. 16년 LG배 역사에서 단 한 명뿐인 ‘개근생’이자 최다 우승자인 이창호가 올해 어떤 성적표를 받아들지 주목된다.

이세돌은 최근 비씨카드배 2연속 우승으로 건재를 확인한 바 있다. 15개월 연속 랭킹 1위란 ‘품질보증서’도 든든하다. 잉씨배 보유자인 최철한, 사상 최연소 입신기록 속에 고속 성장 중인 박정환, 최근 각종 국제대회서 잇달아 세계 4강권 진입에 성공한 허영호도 대회 개막을 벼르고 있다.

GS칼텍스배를 갖고 있는 원성진은 생애 첫 세계제패 꿈에 부풀어있고, 강동윤은 2009년 후지쓰배 우승에 이어 또 한 번 세계대회 우승 사냥에 나간다. 이들 시드멤버 외에 ‘통합예선파’의 각오도 어느 때보다 단단하다.

어느 새 고참급이 된 조한승(29)은 과거 LG배서 두 차례나 4강까지 진격하고도 결승 진출에 실패했던 아픈 과거가 있다. 3년 만의 LG배 방문 결과가 주목된다. 박영훈은 통합예선 결승서 중국 왕야오를 만나 전년도 본선 1회전 패배를 설욕하고 7년 연속 LG배 출전 티켓을 거머쥐었다.

2년 만에 LG배에 돌아온 윤준상, 지난 해 대회서 아쉽게 16강에 그쳤던 김지석, 5년째 연속, 통산 11회째 본선에 오른 8회 LG배 준우승자 목진석, 후지쓰배를 통해 세계제패 경험이 있는 박정상도 지켜봐야 할 강자들. 이밖에 박승화 한웅규 이원영 김동호 등 4명은 올해 LG배 첫 입성의 감격을 누렸다.

중국에선 전기(前期) 우승-준우승 멤버인 퍄오원야오(朴文堯)와 쿵제(孔杰)가 자동 출전한다. 조선족 퍄오가 LG배 최초의 2연패(連覇) 달성을 이룰지, 지난해까지 세계 최다관왕으로 군림했던 쿵제가 실지(失地)회복에 성공할지도 관심사. 이밖에 구리(古力) 셰허(謝赫) 추쥔(邱峻)이 국가시드를 받고 나온다.

중국의 통합예선 통과자는 저우허양(周鶴洋) 천야오예(陳耀燁) 장웨이지에(江維杰) 왕시(王檄) 탄샤오(檀嘯) 등이다. 예년과 달리 올해는 ‘소수 정예’ 모드여서 한 명, 한 명이 모두 만만치 않은 전력을 갖고 있다. 특히 20세의 새로운 중국 명인 장웨이지에, 중국 전문가들로부터 최고의 유망주로 촉망받으면서 LG배에 첫 선을 보이는 18세 탄샤오의 ‘도착지’가 관심을 끈다.

통합예선서 29명이 출전했던 일본과 6명이 나왔던 대만은 결국 한 명도 생존하지 못했다. 일본은 4년 연속, 대만은 5년 째 연속 전멸해 국가시드(일본 4명, 대만 1명)만으로 버텨야만 하게 됐다.

일본은 2005년 9회 LG배 우승자 장쉬(張栩), 최연소 명인등극 기록을 세웠던 이야마(井山裕太), 40을 바라보는 나이에 뒤늦게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유키(結城聰․39)와 사카이(坂井秀至․38)가 내한하는 등 나름대로 최정예로 구성했다. 대만은 한국서 입단했던 천스위안(陳詩淵)이 단신으로 내한, 5년 전 저우쥔쉰(周俊勳)의 우승신화 재현에 도전한다.

1회전 대진 추첨은 6월 12일 개막식 때 함께 거행될 예정. LG배에선 각 라운드 종료 때마다 다시 추첨을 실시, 동국인끼리의 대결을 가급적 피하는 방식으로 대진표를 결정해 왔다. 첫 발자국을 잘 찍어야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다고 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17명의 전사들이 올해는 최근 몇 년 간의 부진을 극복하고 첫 스타트부터 선전할 것을 기대해 본다. 2억 5천만 원의 상금과 세계 최고 전통기전의 영광이 걸려있는 제16회 LG배 출발 총성(銃聲)이 곧 미명(未明)의 정적(靜寂)을 깨뜨릴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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