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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집불통의 LG배
 
▲승자와 준우승자가 나란히 트로피와 상금증서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LG배 세계기왕전은 역시 개성이 뚜렷한 기전이다. 2월 말에 끝난 제15회 LG배에서 깨질 줄 알았던 몇 개의 징크스들이 이번에도 깨지지 않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절대 누구에게도 2연패(連覇)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전통을 또 한 번 고수한 것이다.

쿵제(孔杰)와 퍄오원야오(朴文堯)가 결승서 만났을 때 퍄오의 승리를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도 그럴 노릇이, 쿵제는 LG배뿐 아니라 후지쓰배와 TV아시아선수권을 한꺼번에 호령 중인 현역 세계 3관왕이었다. 공식 세계랭킹은 존재하지 않지만 쿵제가 세계 1위라는데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퍄오원야오는 그 쿵제에게 당당히 맞서 이겼다. 그것도 2대0 스트레이트였다. 퍄오의 중국 내 랭킹은 12위에 불과하다. 퍄오는 한 차례 세계대회 준우승(2009년 도요타덴소배)이 최고 성적이었을 뿐 우승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었다. 쿵제가 2연패 하리라던 전문가들의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간 것이다.

LG배는 15년 역사를 돌이켜 볼 때 2연패는커녕 같은 기사가 우승 다음 해 연속 결승에 진출하는 것에도 매우 인색했다. 우승 이듬해 또 결승에 올랐던 기사는 쿵제를 제외하면 이세돌이 유일했다. 2008년 제12회 우승자였던 이세돌은 이듬해에도 기세 좋게 결승고지를 밟고 2연패에 도전했지만 뜻 밖에 구리(古力)의 벽을 넘지 못했다.

LG배 최다 우승자인 이창호는 어떨까. 모두 4번이나 정상에 올랐지만 우승 다음 해엔 한 번도 결승에 진출하지 못했다. 왕리청(王立誠), 위빈(兪斌), 유창혁, 장쉬, 저우쥔쉰(周俊勳), 구리(古力) 등은 우승 이듬해 대부분 초반 탈락했고 기껏 올라가봐야 8강이었다. 자만심을 경계하는 대표기전이라고 할까.

연패(連覇)는 다른 기전에선 꽤 흔한 현상이다. 이창호의 경우 삼성화재배에서 3연패(連覇)를 기록했었고 동양증권배와 춘란배서도 2년 연속 정상등극을 경험해 봤었다. 국제대회 최다연패 기록 보유자는 일본 다케미야(武宮正樹)로, TV아시아선수권이 만들어지자 마자 1회부터 4회 대회까지 4기를 연속 제패했다.

조훈현과 이세돌도 삼성화재배와 후지쓰배서 각각 한 번씩 연패(連覇)에 성공한 기록이 있지만 LG배에선 그림의 떡이었다.
LG배의 또 하나 징크스는 다양한 국가에게 우승을 허용해 왔다는 것. 올해 대회서 새로운 국가가 우승국으로 추가 등록된 것은 아니지만, LG배는 아직도 여전히 가장 많은 나라가 돌려가며 우승한 대회로 남아있다. LG배는 올해 15회 대회까지 한국이 7회, 중국 5회, 일본 2회, 대만 1회 우승했다. 세계바둑을 이끄는 동양 4개국이 이토록 오순도순 ‘황금분할’을 해 온 기전은 오직 LG배 뿐이다. 불과 1개국 차이일 뿐이지만 이 기록은 당분간 여간해선 깨지기 힘들 것으로 관측된다.

그런데 역대 LG배 흐름을 계속 살피다 보면 또 하나 재미있는 현상이 발견된다. 바로 “LG배 결승전은 같은 혈족(血族)끼리 치른다”는 징크스가 언젠가부터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다. 2001년 제5회 대회 때 이창호와 이세돌이 패권을 다툰 이후, 2008년 이세돌-한상훈 간의 제12회 결승전까지 8년 연속 그런 현상이 빚어졌다. 이 기간 동안 한-한 대결이 5차례, 중-중 대결이 1차례였다.

나머지 두 번은 대만의 1인자 저우쥔쉰 대 중국 후야오위, 또 하나는 일본 바둑을 정복한 대만 출신 장쉬 대 중국 위빈 전이었다. 장쉬와 저우쥔쉰은 모두 중국 혈통이다. 이 같은 ‘동족 결승’ 현상은 13회(구리 대 이세돌), 14회(쿵제 대 이창호) 때 일단 주춤해졌다가 올해 15회 대회(퍄오원야오 대 쿵제)에서 다시 되살아났다. 물론 엄격히 말하자면 조선족인 퍄오원야오는 혈통적으론 여기에 포함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소속기원이나 국적은 똑같은 중국이어서 중-중 대결로 분류할 수 있다.

이러다 보니 LG배 패권도 특정한 국가에 오래 머무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2001년 5회 대회부터 4년 연속 한국이 가져갔다. 9회부터 12회까지 4년 동안은 일본 중국 대만 한국 순으로 이어져 모처럼 윤번제(?)가 정착하는 듯 했으나, 다시 13회부터 올해 15회까지 3년 연속 중국이 주인행세를 계속하고 있다. 한국기사로 2005년 제9회 이후 7년 사이 우승컵을 안아 본 기사는 이세돌(2008년 12회) 1명뿐이다.

하지만 LG배의 진짜 개성은 뭐니뭐니해도 정통파적 대회진행방식을 면면히 고수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대회방식이 해마다 달라지는 다른 대회와 달리 LG배는 아마예선⟶통합예선⟶본선으로 이어지는 교과서적 운영패턴을 고수하고 있다. 제한시간도 처음 시작할 때의 3시간 그대로다. 2억 5천만 원이란 거액의 우승상금 역시 대회 권위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든든한 장치로 평가받고 있다.

요즘 다양한 형태의 국제기전이 많이 생겨나는 가운데서도 LG배에 각국 프로기사들이 남다른 애정을 보이는 데는 이처럼 여러 이유가 있다. 중국의 대표적 바둑사이트로 꼽히는 ‘기성도장’은 2009년 봄 세계기전 순위를 매겨 발표했는데 LG배를 단연 1등으로 올려놓았다. “모든 면에서 가장 공평한 대회이고, 상금도 연례대회 중엔 가장 많으며(최근엔 다소 변화가 있었다), 국가별 시드부여 숫자가 합리적이고, 매 라운드 추첨으로 동국인 대결을 피해 관전 재미를 극대화시킨 점 등 1위 기전으로 가장 적합하다”는 설명이 따랐다.

이토록 권위와 전통을 자랑하는 LG배지만, 한국의 성적 측면에서 본다면 올해 15회째 대회는 낯 뜨거운 기록을 남겼다. 결승전 아닌 4강에 조차 1명의 한국기사도 못 낀 국제 대회는 지난 20년 남짓한 기간 동안 총 여덟 번 뿐이었다. 거기에 포함된 것이다. 2000년 대 진입 이전, 한국 바둑이 아직 크게 약하던 초창기 후지쓰배 때의 4번을 제외하면 단 네 번뿐이었다.

그 결과 대회 분위기는 준결승 때부터 열기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진정한 팬들은 세계적 강자들끼리의 대결을 자체를 즐긴다. 하지만 한국기사가 빠진 경기는 아무래도 흥이 날 수 없었다. 어찌 보면 믿고 사랑받아온 우리 기사들이 팬들을 배반했다고 말해서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한 때 ‘한국바둑의 요람‘이라고까지 불리던 ’친한(親韓) 기전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하지만 이 정도라면 일단 바닥을 친 셈이며 다시 올라갈 때가 됐다. 곧 제16회 LG배가 다가온다. 5월초 통합예선이 끝나고 본선은 6월에 시작될 예정이다. 올해만큼은 한국 기사들이 드높은 기상을 뽐내는 LG배 무대가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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