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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바둑, 성적 따로 수입 따로
 


한국 프로기사들 중 2010년에 가장 많은 연간수입을 올린 기사는 이세돌로 5억 8000만 원 가량을 벌었다. 그 뒤를 이창호(3억 7600만 원), 박영훈(2억 2900만 원), 박정환(1억 8400만 원) 등이 뒤따랐다. 10위(박지은)의 수입은 8700여 만 원으로 1억 원에 미달했다.

일본의 2010년 수입액 집계도 발표됐다. 1위는 장쉬로 9050만 엔.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12억 2000만 원이다. 한국 1위 이세돌의 2배가 넘는다. 이세돌은 지난 해 세계 최고상금 대회 중 하나인 비씨카드배(우승 3억 원)서 우승했고 후지쓰배에서 준우승했다. 국내 무대서도 KT배와 물가정보배 등을 제패했다.

그 이세돌의 작년 수입을 일본 바둑계에 대입하면 2위 야마시타(8600만 엔‧11억 7000만 원), 3위 이야마(5650만 엔‧7억 6000만 원) 다음인 4위에 해당한다. 일본 20위 미무라(7435만 엔)조차 우리 돈 1억 원을 넘어 한국 10위 박지은을 압도했다. 박지은은 신설 여자개인전인 궁륭산배를 제패했고 정관장배 우승의 주역도 도맡았지만 일본 여류 4관왕 시에이민(1883만 엔‧2억 5000만 원)의 3분의 1 정도에 머물렀다.

일본 기사들이 한국 프로들을 수입액에서 압도한 것이 갑작스런 현상은 아니다. 해마다 양국 간 수입 격차는 컸다. 2009년의 경우를 보더라도 일본 최고소득자였던 장쉬는 7970만 엔, 우리 돈으로 약 10억 7600만 원(현재 환율 적용)을 벌어 그 해 한국 1위였던 최철한(6억 3200만 원)을 크게 앞섰다.

문제는 이들 각국 스타기사들의 수입액수와 실력이 어느 정도나 비례하느냐이다. 실력을 비교하려면 공통무대인 세계대회 활약도가 기준이 될 수밖에 없는데, 수입액과 실력은 완전히 따로 놀고 있다. 2008년의 경우 세계 3관왕이던 한국 1위 이세돌은 7억 4000만 원, 역시 세계 3관왕에 올라섰던 중국 구리는 7억 7000만 원을 벌었다. 반면 당시 세계무대 결승이라곤 구경도 못했던 일본 1인자 장쉬는 무려 16억 원이 넘는 거액을 챙겼다. 양국 간 물가(物價)수준이나 화폐 구매력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친 불균형이다.

중국의 경우 기사 수입액 계산법은 좀 다르다. 2009년 무렵 세계 4관왕을 구가하던 구리는 그 해 우리 돈 12억 원(9859만 엔)을 벌어 중국 최고기록을 수립했다. 그러나 중국의 프로기사들은 국가 공무원 신분이어서 한국이나 일본처럼 상금을 전액 개인이 가져가지 않는다. 획득상금의 32%만 수령하고 나머지는 국가에 바친다. 대신 국가로부터는 별도의 보조금을 받는다.

아무튼 일본 기사들의 높은 수입은 한국 프로들로선 부러움과 질시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일본바둑계 고소득의 비결(?)은 무엇일까. 세계무대에만 나오면 죽을 쑤는 실력으로 어떻게 다른 나라 기사들이 부러워할 만큼 두툼한 지갑을 소지할 수 있는 것일까.

현문(賢問)에 우답(愚答)이 따라온다. 일본 국내기전의 상금이 월등히 높기 때문이다. 기성전(棋聖戰) 우승상금은 무려 4500만 엔에 달한다. 현재 환율로 따지면 6억 원이 훌쩍 넘는 거액이다. 국제대회 중 최고 우승상금을 자랑해 온 4년제 잉씨배(40만 달러‧4억 4000만 원)조차 얼씬도 못 할 정도다. 명인전과 본인방전도 각각 3700만 엔, 3200만 엔이나 된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 주최의 세계기전인 후지쓰배 우승상금이 1500만 엔(약 2억 원)에 불과하다는 점. 지금은 폐지된 도요타덴소배의 우승상금도 ‘고작’ 3000만 엔에 불과했었다. 국내기전보다 국제기전 우승상금을 훨씬 적게 설정한 대목에 일본 바둑의 시각과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핵심은 바둑문화에 대한 일본인들의 뿌리 깊은 자부심, 자존심이다. 수 백 년 간 최고 권부 내에서 어성기(御城棋)를 펼치고, 1백 년 이상 세계 바둑보급에 홀로 진력했던 일본은 바둑을 자기네 고유의 국기(國技)라고 여기고 있다. 그런 마당에 잠시(?) 세계 주도권을 잃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판을 걷을 수는 없다는 자존심이 깔려 있다. 세계대회는 바둑의 국제화를 위한 작은 수단일 뿐, 정통성을 가진 적자(嫡子)는 일본 타이틀전이란 고집이다.

물론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 국제무대에서의 부진에 대한 힐책과 자조의 소리가 안 나오는 것은 아니다. 심할 때는 ‘전범(戰犯)’이니 ‘할복(割腹)’이니 하는 끔찍한 용어까지 등장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바둑을 후원하는 언론사나 기업들의 자세는 꿋꿋하다. 기성전 우승상금은 2년 전까지만 해도 4200만 엔이었으나 일본 바둑의 추락이 한창 가속화하던 2009년 제34기부터 오히려 300만 엔을 증액했다. 무시무시한 자존심이다.

한국에선 ‘상금제 방식’이라 해서 예선전 대국료는 점차 없어져가는 추세인데 일본은 그렇지 않다. 예선전에서도 꼬박꼬박 대국료를 지급한다. 명인전의 경우 단위 등으로 예선을 3등분해 1국 당 20만 엔(270만 원)~40만 엔(540만 원)의 대국료가 주어진다. 이렇게 해서 본선리그에 오르면 8판(9인 리그)이 보장된다.

본선 대국료는 승자 80만 엔, 패자 66만 엔이다. 설혹 전패를 하더라도 우리 돈으로 7000만 원이 확보된다. 물론 도전권을 얻거나 명인 타이틀을 따면 거의 ‘팔자’를 고치게 된다. 2위 기전이 이 정도니 1위 기성전은 더 말 할 것도 없다.


한국에서 가장 크다는 명인전과 KT배의 우승상금은 각각 1억 원. 그 뒤를 잇는 GS칼텍스배 및 원익배 우승상금은 일본 명인전 본선리그서 전패를 하고 도전무대에서 멀어진 기사의 상금보다도 적은 5000만 원이다.

일본도 시대적 추세를 외면만 할 수는 없었는지 지난 연말 아시안게임 바둑경기에 출전했다. 그러나 일본의 바둑관은 예나 지금이나 도(道) 또는 예술 쪽에 가깝다. 바둑의 그 같은 위상을 지키는 방편은 결국 2가지다. 하나는 ‘품위 유지용’ 상금, 또 다른 하나는 한 판 바둑에 혼을 불 살릴 수 있는 넉넉한 제한시간이다.

국제무대에서의 부진에도 아랑곳없이 기성 명인 본인방전 등 3대 기전은 여전히 이틀에 걸쳐 한 판을 완성한다. 웬만한 기전의 1인당 제한시간은 4시간이고, 3대 기전 최종예선은 아직도 5시간을 준다. 1시간~3시간씩 할당되는 세계기전 추세와는 맞지 않는다. 이 같은 제한시간 차이를 일본바둑 부진의 이유로 꼽는 분석이 잇달아 나오지만 3대기전 제한시간을 줄인다는 생각은 꿈에서도 않고 있다.

국제와 국내 간 상금액 괴리를 메우는 길은 국가 간 장벽을 철폐하고 전 세계를 하나의 무대로 만드는 것이다. 일본 명인전이나 기성전, 한국 KT배나 중국 창기배 등에 제한을 두지 않고 누구나 참가할 수 있게 만들면 각국 프로들은 정확하게 실력과 비례해 수입을 올릴 것이다. 한국바둑계 일각에서 실제로 이런 제안이 나온 적도 있었지만 일본은 이를 묵살했다. 만약 국경을 허물어 누구나 참가하도록 허용할 경우 최고 상금의 일본 타이틀은 거의 모두 한국과 중국 기사들에 의해 점령될 것이다. 그래도 남아날 기전이 있을지 사실 장담하기 힘들다.

결국 한국과 일본은 현해탄을 사이에 둔 ‘바로 옆집’의 관계임에도 2원화된 상금체계에서 각자 살아갈 수밖에 없어 보인다. 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에 이처럼 실력 따로, 수입 따로 체제로 움직이는 동네가 바둑 외에 또 있는지 궁금하다. 세상 어떤 분야를 보더라도 스타플레이어들의 몸값은 국가나 지역, 인종에 따라 변함이 없는 ‘공정가격’으로 ‘거래’되고 있지 않은가.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바둑 게임이 동양 3개국에서만 머문 채 세계화에 실패한 것은 일원화되지 못한 상금체계가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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