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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끼띠가 그래도 가장 빠르겠지?
 
신묘(辛卯)년 새해, 2011년이 밝았다. 올해 바둑계에도 좋은 일만 꼬리를 물고 일어났으면 좋겠다. 우리나라 프로기사 수는 최근 홍종현 9단이 은퇴함으로써 총 249명으로 조정됐다. 프로기사도 인간인지라 제각기 12간지(干支)에 해당하는 띠를 가지고 있다. 올해는 토끼띠의 해. 이들이 바둑계라는 이름의 밀림에서 금년도 주인노릇을 할 수 있을까.

집계 결과 토끼띠 기사는 총 24명으로 나타났다. 전체의 10%에 약간 미달하는 수치다. 띠의 종류가 12개이므로 점유 비율은 평균치를 약간 상회한다. 우선 다른 띠를 지닌 유명 기사들을 대충 살펴본 뒤 올해의 주인공인 토끼띠 프로들의 면면을 확인해보도록 하자.


우선 자타공인의 이세돌은 무슨 띠일까? 날렵하고 예리한 행마로 볼 때 범띠나 말띠 쯤 될 것 같다고? 틀렸다. 이세돌은 83년생 돼지띠다. 첫 출발부터 띠의 이미지가 해당기사와 전혀 어긋날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 글은 새해를 맞아 그냥 재미로 읽어보는 정도에 그쳐야 한다는 얘기다.

바둑판 위에서 최고의 ‘빠른 발’을 자랑해 온 조훈현은? 발 빠른 속력행마로 봐선 토끼띠나 말띠 정도가 어울려 보이는데 53년생 뱀띠다. 하긴 뭐 뱀은 다리도 없으면서 초고속으로 움직이니 크게 부조화스럽지는 않다. 오죽하면 구렁이 담 넘듯 한다는 속담도 있겠는가.

만 20세 나이에 세계제패를 이뤘던 강동윤도 89년생 뱀띠다. 그러고 보니 뱀띠에 ‘인재’들이 제법 많다. 랭킹 최상위권을 점하고 있는 김지석과, 주목 받는 신예 진시영도 강동윤과 동갑이다. 그러고 보면 조훈현과 동갑나기 평생 라이벌로 유명한 서봉수 역시 뱀띠다. 권경언 백흥수(이상 41년생) 이형로 장두진 박종렬 임순택(이상 53년생) 이영신 서무상 김만수 이성재 류재형(이상 77년생) 박승화 조미경 최동은 홍기표 김대희(이상 89년생)도 같은 뱀띠다.



아예 자신의 띠를 간판(?)으로 살아온 기사들이 있다. ‘송아지 3총사‘라고 불리는 박영훈 원성진 최철한이 그들이다. 85년생 소띠인 이들 셋은 아주 어린 나이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엎치락뒤치락해 패키지로 이런 별명이 붙었다.

소띠라고 하면 뭔가 우직스럽고 성실한 느낌을 준다. 바둑은 빠르고 예리한 것도 좋지만 경우에 따라선 우직하고 미욱스러운 것이 미덕이 되기도 한다. 국내 현역프로 중 최연장자인 최창원 6단(37년생)이 소띠뿐 아니라 전체 기사 중 최고참이다. 양상국 김덕규 이상철(이상 49년생) 박성수 안관욱(61년생) 김승준 이상훈(73년생)이 소띠다. 막내인 85년 그룹엔 송아지 3총사 외에 이재웅 김진우 조혜연 백지희 김대용 김환수 김동희 이다혜 등이 뒤를 받친다.

바둑계에서 가장 인기 높을(?) 것으로 짐작되는 호랑이띠를 보자. 이기섭 유병호(이상 50년생) 두 9단을 필두로 윤현석 김영삼이 74년생 범띠다. 62년생으론 김종수와 장주주의 이름이 보인다. 86년생 그룹엔 요즘 한창 잘 나가는 허영호가 버티고 있다. 백홍석 김기용 진동규 배윤진 김혜민 송태곤 온소진도 같은 그룹이다. 어떤가. 호랑이 이미지하고 잘 어울리는 얼굴들인지? (아무리 봐도 12동물 가운데 가장 멋진 띠는 호랑이 띠다. 필자를 아는 사람들은 이 말에 공감한다^^)

바둑에선 쥐띠가 꽤 그럴듯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바둑은 무엇보다 영특하고 눈치가 빨라야 잘 두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누가 있을까. 랭킹으로만 보자면 뜻밖에도 상위 10위 안에 드는 기사가 없다. 가장 높은 기사가 16위 박정상, 다음으로 21위 홍민표다. 30위 김주호까지, 이들 84년생 트리오가 가장 큰 활약을 보이고 있다(2011년 1월 랭킹 기준).

쥐띠 중엔 승부 자체보다도 약간 다른 형태로 바둑계를 돕는 인물들이 많다. 한국기원 현, 전 사무총장인 한상열 유건재 사범이 그렇고, 국내 최고참 여성 기사인 조영숙 3단은 각종 국제 여성대회 단장으로 우리 선수들을 인솔해가기만 하면 우승을 휩쓸어오는 ‘복장(福將)’이다. 이들 모두 48년 생.

60년생인 박영찬, 북한 컴퓨터 대국프로그램 소개를 통해 바둑의 본질 규명에 진력 중인 72년생 김찬우도 쥐띠 그룹이다. 84년생 중엔 주형욱 윤현 박승현 이민진 윤재웅 등도 있다.

이번엔 용띠를 볼 차례. 사실 멋진 이미지로는 범띠와 함께 용띠가 쌍벽을 이룬다. 여의주를 입에 물고 오색찬란한 무지개를 배경으로 곧 승천할 것 같지 않은가. 12간지 동물 중 유일한 가상(假想)동물답게 신비감, 신통력 두루두루 갖췄을 것만 같다. 그런데 랭킹만 놓고 보자면 약간 좀…저조하다. 17위 한상훈(88년생)이 가장 높다.

그러나 랭킹이 전부는 결코 아니다. 심종식(40년생) 장수영 황원준 오규철(이상 52년생) 박승문(64년생) 김성룡(76년생)등 나름대로 바둑계에서 일가를 이룬 분들이 즐비하다. 88년생으로 내려오면 한상훈 외에도 김형우 김세실 최기훈 박소현 전영규 이하진 김은선 윤지희… 등 상당한 중견들로 포진해 있다.

말띠는 발 빠르고 정력적인 파워, 그리고 충직한 이미지를 풍긴다. 가장 잘 알려진 기사라면 66년생 유창혁을 꼽게 된다. 딱 중간 연령인 유창혁을 중심으로 선배 중엔 박진열 정동식(이상 42년생) 허장회 이홍렬 문명근 김준영(이상 54년생), 후배로는 김명완 백대현(이상 78년생) 권형진 윤찬희(90년생)등이 도열해 있다. 그런데 성적 면에선 30위권에 드는 기사가 한 명도 없다는 게 다소 의외다.

양띠는 순종적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바둑에선 그렇지도 않다. 우선 한국 국수(國手) 계보의 한 산맥을 잇는 김인(43년생)이 이 그룹의 리더다. 동갑내기 이준학 사범도 젊은 시절 소문난 강 펀처였다. 한철균 김철중 정수현(이상 55년생) 김원(67년생) 윤영선 이지현 한종진 안조영 김강근 김광식 현미진(이상 79년생)도 든든하다.



91년생 중에는 신예 여류강자들이 많다. 박지연 김미리 문도원 이슬아 김나현이 모두 동갑이다. 김정현 안성준 류민형 허진 김동호 등은 남자 91 양띠들. 이 중 현재 랭킹 기준으론 15위의 안조영이 가장 높다.

꾀로 말하자면 원숭이띠를 당할 자가 있을까. 얼마 전 장가를 든 목진석(80년생‧13위), 최근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김승재(92년생‧18위)가 가장 활발하게 뛰고 있는 ‘원숭이 기사‘들이다. 이관철 백성호 김학수 김일환 박상돈 김동면 차수권(이상 56년생), 유재성 이현욱 하호정 안달훈 권오민 최문용 강승희(이상 80년생), 이지현 안국현 이원영 이호범(이상 92년생)등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다.

닭띠 기사 중 요즘 가장 눈길을 모으는 기사는 박정환이다. 93년생으로 갓 18세를 넘긴 박정환은 최연소 9단 등정기록을 갈아치우며 이세돌에 이어 2위 자리를 지키는 등 최고 유망주로 각광받고 있다. 한태희 김기원 등 동갑내기들이 가세하면서 ‘세력’을 부풀리는 중이다.

고참급들 가운데선 김동엽 나종훈 장면한 정대상 권갑룡 김수장 강훈(이상 57년생), 김효정 이정우 박병규 홍장식 유경민 강지성(이상 81년생) 등이 포진해 있다. 필자 조사로는 68년생 원숭이띠와 함께 69년생 닭띠 기사는 한 명도 없었다. 박정환에 버금가는 톱랭커를 빨리 배출하는 ‘닭띠 팀‘의 과제.

다음 개띠다. 용맹하고 충성스러운 이미지인데, 해당 기사들의 면면을 보면 기재(棋才)가 번뜩이는 천재형 기사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58년생 서능욱, 70년생인 김영환, 82년생 조한승 등이 그렇다. 동갑내기 홍종현 사범의 은퇴로 이봉근(46년생)이 리더가 됐고 공병주(70년생) 옥득진 한해원 이용찬 권효진 이강욱 박승철 서중휘 이희성(이상 82년생)등이 군단을 형성하고 있다. 막내 김누리(94년생)의 도약도 기대된다.

앞서 이세돌 위주로 언급하다 중단한 돼지띠를 좀 더 살펴보면 천풍조(47년생) 김석흥 조대현 강만우 김기헌(이상 59년생), 노준환(71년생) 염정훈 김효곤 김선미 박지은 이용수(이상 83년생)등도 있다. 현역 최연소 남자기사인 95년생 나현은 이세돌 박정환을 이을 미래 유망주로 바둑계가 주목하고 있다.

서론(?)이 너무 길었나. 이제 올해의 주인공인 토끼띠 차례다. 토끼띠 프로기사 명단을 살펴보노라면 우리 바둑계의 중추(中樞)로 부족함이 없는 그룹이란 느낌이 저절로 든다. 성적이면 성적, 행정이면 행정, 지도력이면 지도력 모든 부문에서 A학점을 받을 만하다.

우선 이창호가 75년생 토끼띠다. 요즘 약간 주춤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창호는 여전히 우리 바둑계의 기둥 아닌가. 그가 기록한 국제대회 21회 우승은 여전히 난공불락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이창호라는 존재 하나만으로도 바둑계의 토끼띠는 가슴을 펼 수 있다. 그 이창호와 동갑인 윤성현 최명훈 양건 이상훈 이정원 남치형 등은 20대 시절부터 함께 우정을 나누며 ‘토끼회’란 친목그룹을 운영하기도 했다.

이중 윤성현은 광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코치를 맡아 한국팀의 전관 석권에 힘을 보탰고, 최명훈은 연구생 사범으로 많은 활약을 해왔다. 양건 이상훈 이정원도 후배들 지도에 큰 몫을 해냈다. 남치형은 학자로 위상을 높여가고 있다.

이들보다 12살 위로 올라가면 최규병과 양재호가 있다. 양재호는 광저우 아시안게임 싹쓸이의 야전사령관, 최규병은 그 대회의 후방 지원단장이었다. 최규병은 또한 지난해부터 한국기원 기사회장을 맡아 눈부신 개혁 작업을 진두지휘 중이다. 바둑리그 감독으로서도 3연패(連覇)라는 신화를 썼다. 헝가리 바둑계 개척에 나선 김성래, 중국 출신의 루이나이웨이도 63년생 토끼띠 프로기사.

다시 12세 더 위에는 노영하 차민수가 있다. 노영하는 70년대 이후 방송과 저술로 바둑 보급에 한평생을 바친 기사. 차민수는 세계적 포커 플레이어이자 드라마 ‘올인’의 실제 주인공이다. 바둑에서도 국제대회서 두 차례나 8강에 들 만큼 녹록치 않는 실력을 떨쳐왔다. 이들보다 12살 위면 72세다. 고재희 김학수(5단) 두 고참기사가 토끼띠의 양대 좌장을 맡고 있다. 고재희 사범은 왕년에 한국기원 선수권전을 3기 연패(連覇)했던 강자였고, 김학수 사범도 한국기원 이사로 많은 활약을 했었다.

그러나 토끼띠의 ‘전위부대‘를 꼽는다면 역시 87년생들이다. 윤준상(랭킹 11위) 이영구(12위) 고근태(23위) 홍성지(28위) 등이 이창호(7위)를 엄호하고 있다. 넷 모두 이미 크고 작은 타이틀을 손에 넣어 본 스타들이다. 여기에 서건우 손근기 배준희 김수진 최병환 등이 가세하면 다른 어떤 띠그룹도 도전하기 어려울 정도다.

토끼띠 프로기사 24명의 평균 단위는 6.4단이나 되고, 최고단인 9단만 8명에 이른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최고 화력을 갖췄다. 그런데 구성원들의 면면이 토끼를 닮긴 닮은 것 같은가? 빠르고 영리한 사람들만 모아 놓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토끼띠 기사들이 자신들의 해를 맞아 더 도약하고, ‘토끼같은’ 새 토끼띠 식구도 영입하는 2011년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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