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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바둑계 10대 뉴스
 
▲자랑스런 10명의 태극전사와 코칭스태프


2010년은 바둑계로서도 과거 어느 해보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 성취와 보람, 좌절과 눈물이 1년 내내 교차됐다. 지난 한 해 바둑계 10대뉴스를 정리해 봤다. 참고로 아이템 선정과 순위는 필자 개인의 견해에 의한 것임을 밝힌다.

➀아시안게임 전종목 석권
바둑천하를 놓고 한국과 중국 두 나라의 팽팽한 기 싸움이 계속되는 가운데 광저우에서 양국이 정면 격돌했다. 이번엔 아시안게임을 통해 스포츠 방식으로 전면전을 펼친 결과, 한국은 3개 전 종목을 모두 석권하는 예상 밖의 대승을 거두었다.

세부규칙과 심판 배정 등은 일방적인 중국 주도로 적용됐다. 개인전 없이 단체전과 페어 종목만 치러진 것도 중국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중국은 3종목서 모두 한국에 패하며 은메달 3개에 머물렀다. 일본과 대만이 동 1개씩으로 체면치레를 했다.

한국의 대승은 치밀한 준비와 전략의 소산이었다. 가장 먼저 치러지는 페어종목을 최대 승부처로 보고 주력한 것이 적중했다. 주도권을 잡은 한국 선수들은 마음 편히 경쟁국들을 몰아쳤고, 부담감이 커진 중국은 단체전에서도 지리멸렬을 거듭했다.

매 경기 과정도 드라마의 연속이었다. 페어종목 결승에선 상대 반칙에 따른 공제(控除)에 의해 극적으로 메달 색깔이 뒤집혔다. 여자 팀은 거의 매 경기를 2대1로 이겨 결승에 오르더니 중국과의 최종전마저 2대1로 역전승해 대미를 장식했다. 한국 바둑의 싹쓸이 때문에 중국은 금메달 총수 200개에 단 한 개가 모자랐다.


②인천 아시안게임 바둑종목 탈락
하지만 광저우 대회 출전 선수단 환영행사 바로 다음날 바둑계는 4년 뒤 인천서 열릴 차기 아시안게임의 바둑 종목 배제 확정이란 소식을 접해야 했다. 금메달 싹쓸이의 감격이 채 가시기도 전 들려온 이 비보는 모든 바둑인들과 팬들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인천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 등 체육계 쪽 이야기에 의하면 이 결정은 번복되기 매우 힘들 전망이다. 대한바둑협회와 한국기원의 “OCA(아시아올림픽평의회) 헌장 상 최종결정 시한은 아직 2년이 남아있다”는 얘기는 미련으로 그칠 공산이 크다.

이번 사태로 “바둑이 과연 체육 맞나?“는 근본적 의문에 다시 휩싸이게 됐다. 동시에 명분과 실리 모두 놓칠 위기에 처했다. 2001년 바둑계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스포츠로 변신했지만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입상자에게 인정하는 병역특례를 누릴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바둑은 스포츠에 진입한지 10년이 넘도록 아직 전국체전 정식종목에도 들지 못했다. 여기에 자국 개최 아시안게임서도 퇴출됨으로써 마치 길 잃은 미아 꼴이 됐다.

바둑 지망생들의 격감이 우려된다. 병역을 아직 못 마친 젊은 프로기사들의 낭패감을 어떻게 달랠지도 걱정이다.
바둑의 인천 아시안게임 진입 실패는 준비 부족, 행정기관 간의 불화가 원인이었다. 계획도 열정도 사명감도, 그리고 협조 의식도 없었다. 이제 바둑이란 과연 무엇인지, 예술 도(道) 문화 게임 학문 노름 스포츠 중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지부터 확실한 규명이 필요해졌다.


③영재입단대회 도입과 연구생제도 개편
반세기 가까이 금과옥조처럼 보호받아 왔던 입단제도 방식이 대폭적인 수술대에 올랐다. 연간 8회에 걸쳐 지루하게 계속되던 입단대회는 2011년부터는 연 4회로 축소된다. 또 매년 10명(특별입단 제외)씩 선발하던 입단 인원수는 2명이 늘어나 최소한 12명의 수졸(守拙)을 배출할 예정이다.

종전 입단대회 방식은 매 대회 마다 입단 인원수를 1~2명으로 제한함으로써 최상위 실력자가 입단하지 못하는 의외성을 항상 안고 있었다. 새 입단대회는 이 같은 문제점을 없애기 위해 동시에 7명을 선발하기로 규정을 바꿨다.

더욱 주목할 것은 영재 입단대회를 치르기로 했다는 점이다. 만 15세 미만 영재들만 출전하는 이 대회를 통해 매년 2명의 꼬마 초단이 탄생하게 됐다. 이로써 발전 가능성이 높은 어린 소년들에게 입단 메리트를 부여, 뛰어난 영재 육성에 크게 재미를 보아온 중국처럼 한국도 장래성 높은 영재들의 조기 입단이 현실화될 전망이다.

한편 기존의 연구생 제도는 논란 끝에 형태를 바꿔 존속시키기로 했다. 연구생 자체 입단대회 및 내신 입단 등은 폐지된다. 기존 연구생들은 정기 입단대회 때 본선시드를 부여받는다. 지역 연구생 입단대회, 오픈기전 포인트로 입단하는 ‘특별 입단’등은 그대로 유지된다.

④쿵제, 세계 최강자 자리매김
이창호 이세돌 구리 등으로 이어져 온 세계바둑 최강자 계보가 중국 쿵제(孔杰)로 넘어갔다는데 아무도 이의를 달지 못할 것이다. 28세의 쿵제는 2010년 한 해 동안 제14기 LG배(2월), 제22기 TV아시아선수권(6월), 제23회 후지쓰배(7월) 등 3개 대회서 우승했다.

쿵제는 2010년 말 현재 세계 3관왕이다. 연말 구리(古力)가 새로운 삼성화재배 주인으로 입적(入籍)하기 전 쿵제는 삼성화재배 포함 세계 4관왕이었다. 쿵제의 뒤를 이세돌(비씨카드배) 최철한(잉씨배) 창하오(춘란배) 구리(삼성화재배) 등 4명이 세계타이틀 1개씩 지닌 채 추격하고 있는 양상이다.

쿵제는 제15회 LG배를 놓고 2011년 2월 퍄오원야오(朴文堯)와 결승전을 치른다. 하지만 그는 전기(前期) LG배 우승자여서 15기 대회를 연패(連覇)하더라도 4관왕이 되지는 않는다. 역대 세계 최다관왕 기록 보유자는 중국 구리. 그는 2009년 5월 비씨카드배를 품에 안으면서 전무후무한 5관왕에 올랐었다. 이창호 이세돌 쿵제는 4관왕까지 올라 보았다.

2010년 말 현재 세계 메이저급 타이틀전 국가별 판도는 중국이 한국을 5대2로 압도하고 있다. 남녀 단체전인 농심배와 정관장배, 여성 세계기전인 궁륭산배(박지은)까지 포함하면 양국이 5대5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긴 하다. 새해엔 개인 메이저 타이틀에서 한국이 열세를 벗어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

⑤휴직복귀 이세돌 단숨에 3관왕 등극
2009년 하반기 반 년 동안 이세돌이란 이름은 국내외 바둑계 명부(名簿)에서 사라졌었다. 전무후무한 휴직 파동 때문이었다. 그 이세돌이 2010년 시작과 함께 복귀, 단숨에 최고봉의 위용을 되찾음으로써 “역시 이세돌”이란 찬사를 이끌어냈다.

복귀 하자마자 이세돌은 24연승을 내달렸다. 중국 창하오를 결승서 완봉하면서 국제대회인 비씨카드를 차지하는가 하면 물가정보배, KT배까지 석권함으로써 순식간에 3관왕으로 올라섰다.

국내 랭킹서도 10개월 연속 2위와 큰 점수 차 속에 1위를 질주했다.올 해 기록 부문서도 이세돌의 석권이 유력하다. 다승과 연승은 이미 1위로 확정됐고, 승률 부문도 이변이 없는 한 이세돌의 몫이 될 전망이다. 기록 부문 3관왕이 거의 떼놓은 당상인 셈이다(12월 18일 현재).

⑥이창호, 최악의 부진 속 결혼 골인
이창호에겐 빛과 그림자가 교차된 1년이었다. 사생활에선 결혼을 통해 최고의 한 해를 보낸 반면 성적 상으론 데뷔 이래 가장 저조한 한 해였기 때문. 바둑계 ‘총각기사’의 대명사였던 이창호는 우리 나이 36세도 거의 저물어가던 10월 하순 오랜 총각의 굴레를 벗었다.

11살 아래의 새 신부 이도윤씨는 인터넷 바둑사이트 기자 출신으로, 둘은 2008년 취재원과 기자의 관계로 처음 만나 2년 5개월여의 교제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비공개, 주례 없는 혼례방식도 큰 화제를 남겼다.

하지만 이창호의 세계대회 정상복귀는 올해도 이뤄지지 않았다. 2005년 제5회 춘란배 우승을 마지막으로 이후 9번에 걸친 세계대회 결승서 한 번도 승리하지 못했다(2007년 우승한 제3회 중환배는 중국기사들이 불참한 군소기전으로 제외함). 2010년 이창호는 제14회 LG배 결승서 쿵제에게 0대2로 패퇴했다.

하지만 이창호가 갖고 있는 21회 세계 우승 기록은 아직 꿈쩍도 않고 있다. 이 부문 2위 이세돌(13회)이나 조훈현(11회) 구리(7회) 다케미야(6회)등과도 큰 차이다. 한창 기세를 떨치고 있는 쿵제도 아직은 5회 우승에 불과하다.

만 5년이 넘도록 세계무대 정상복귀에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이창호가 새해엔 징크스를 떨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큰 과업(?)이었던 결혼 문제가 해결된 만큼 심기일전, 곧 옛 위용을 되찾을 것이란 게 바둑계의 기대다.

⑦새바람 불기 시작한 여성 바둑계
백가쟁명 속 남성 쪽과 달리 여성바둑계는 오랫동안 침체에 빠져 있었다. 루이나이웨이란 독보적 강자가 철혈통치를 거듭해왔기 때문이었다. 47세의 그녀는 1999년 한국에 정착한 뒤 국내 타이틀만 무려 18개를 독차지했다. 루이가 결승 맞대결을 벌여 패한 경우는 단 두 차례 뿐으로, 두 번 모두 조혜연에 의해 작성됐다.

루이는 올해 여름까지만 해도 여류국수 여류명인 여류기성 등 3개 여성기전을 독식하고 있었다. 그 루이가 올해 21세의 새 얼굴 김윤영에 의해 무너졌다. 지난 해 제4기 여류명인전 결승서 루이에게 분패, 준우승에 그쳤던 김윤영은 올해 5회 때는 루이를 1회전서 만나 설욕에 성공했다. 계속해서 김혜림 박지연마저 눕히고 생애 첫 우승을 일궜다.

여류기전에서 루이 박지은 조혜연이 아닌 ‘제4의 얼굴‘이 우승한 것은 무려 10년 만이었다. 김윤영의 여류기성 등극으로 루이의 전관(全冠) 퍼레이드는 막을 내렸고 새로운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김윤영은 제16기 여류 국수전서도 결승에 진출, 내년 초 2관왕을 노리게 됐다.

김윤영 외에 박지연 이슬아 등 신예 여류들의 대두가 두드러졌다.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대비, 2009년 말부터 실시한 여류기사 단체훈련이 큰 효과를 만들어냈다는 분석이 공감을 받았다.

⑧본격 해외보급 시작한 한국 프로기사들
2010년은 한국바둑의 세계화에 한 획을 긋는 원년으로 기록될 것이다. 대한바둑협회와 한국기원이 시행해 온 ‘바둑종주국화사업’을 통해 국내 프로기사와 아마추어 사범들이 속속 지구촌 곳곳을 찾아 나섰기 때문이다.

파견대상 국가는 중국 일본 대만 등 프로기사제도를 운영 중인 나라를 제외한 ‘바둑 개발도상국’ 또는 ‘바둑 후진국’들이다. 1년 기준으로 프로기사는 1800만 원, 아마추어 사범은 900만 원을 지원받는다. 2010년 프로 아마추어 각 9명씩이 외국에서 한국바둑을 심기 시작했다.

독일 함부르크에서 활약해 온 윤영선 5단, 미국 LA 터주대감 김명완 8단, 호주 시드니에 터를 닦은 안영길 6단과 유경민 5단 등 그간 해외에서 활동해 왔던 기사들이 포함됐다. 여기에 올해 헝가리로 진출한 김성래 4단 이영신 5단 고주연 4단, 싱가포르와 베트남으로 조미경 초단과 이강욱 2단이 건너갔다. 전원이 현지 팬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20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바둑의 세계보급은 사실상 일본의 전용 사업이었다. 한국 프로들도 가끔 미국이나 유럽 콩그레스에 사범으로 동참하긴 했으나 1회용에 머물렀고 해외 상주(常駐)는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한국 바둑이 세계 곳곳을 파고들면서 국가 위상을 높이고 우리 바둑의 영향권을 확대할 수 있게 됐다. 기사들에겐 취업 확대의 의미도 있다. 한국기원은 이들의 보급 활동에 좀 더 힘을 실어주기 위해 단위도 대폭 올려 ‘파견단위‘를 부여했다. 김명완은 9단, 나머지는 모두 8단으로 활동 중이다.

⑨다시 제기된 바둑 규칙 재정비 필요성
올 한해엔 국내외 기전에서 바둑 규칙을 둘러싸고 유난히 시비가 많이 발생했다. 제15회 삼성화재배 통합예선 여자부 김은선 대 루지아 전이 대표적인 케이스. 한 중 양국의 룰 차이로 인해 계가 때 분쟁이 일어났고 재대국까지 치렀던 사건이었다. 지지옥션배 김윤영-안관욱 전에서의 옥집 사건도 크게 주목받았다.

스포츠의 일환으로 치러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선 더 큰 혼란이 빗발쳤다. 이른바 ‘타임아웃’제를 적용하면서 심판이 승패를 판정해버린 일은 오랫동안 논란이 됐다. 남북한 여자단체전에선 계시기를 “눌렀다”, “안 눌렀다”를 놓고 승강이를 계속했다. 이밖에도 국내 대국에선 상대방의 시계를 대신 눌러준 행위의 반칙 여부, 계시원의 의무와 책임한계 등을 놓고 1년 내내 시끄러웠다.

바둑은 지구 상 심판이 필요없는 유일한 게임이라고 자랑만 할 일이 아님이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다. 심판 유무에 앞서 규정 자체가 많이 미비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 중 일 3개국의 상이한 룰 통일과 함께 계시기 사용규칙, 이석(移席)할 때와 착점 및 돌 따낼 때의 규정 등 명문화해야 할 대목이 산적해 있음이 확인됐다.

⑩사상 최대 9개 팀으로 늘어난 한국바둑리그
2010 한국바둑리그는 역대 대회 중 가장 많은 9개 팀이 참가, 이 대회에 쏠린 바둑계의 높은 관심을 비춰 주었다. 9개 팀이 더블리그를 펼침으로써 정규시즌 총 대국수만 무려 360국에 이르렀다.

바둑리그는 국내 기전들 가운데 규모에서 가장 크고, 팀 대항 단체전이란 점에서 유일하다. 지역연고제와 드래프트에 의한 선수 선발, 감독제 정착 등 본격 스포츠로서의 운영 틀을 갖추는데 성공했다. 2003년 드림리그를 출발점으로 10년이 채 안 돼 한국을 대표하는 기전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하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은 숙제들도 있다. 팀이 고정화되지 않고 매년 일부가 바뀌고, 그 때문에 선수들과의 계약제 운영을 여전히 실시 못 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점이다. 매년 소속 선수가 바뀌는 것은 단체경기로선 치명적 약점으로 지적된다. 중국리그는 이 점을 해결해 한국바둑리그와 차별화에 성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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