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LG배 세계기왕전 우승자는?
숱한 국제기전이 펼쳐지고 있고 그 모든 대회마다 제각기 특성이 있지만, 가장 정통적 본격 형식 아래 치러지는 국제제전은 역시 LG배 세계기왕전이다. 각국 최정예 32명으로 시작한 올해 제15회 대회는 지난 봄 8강으로 좁혀졌고, 다음 달이면 준준결승(8강전)과 준결승(4강전)을 거행하게 된다.
11월 8일 이창호 대 왕야오, 최철한 대 퍄오원야오, 안조영 대 멍타이링, 쿵제 대 후야오위 간의 준준결승이 열린다. 승자 4명은 대진 재추첨을 걸쳐 10일 결승진출이 걸린 4강전을 갖게 된다. 장소는 모두 중국 상하이 한국문화원.
8강전에 앞서 네 판의 승패를 점검해 본다.
<이창호 대 왕야오>
이창호(35)는 새삼스럽게 소개한다는 것이 쑥스럽다. 통산 우승회수 138회, 그 중 세계제패가 21회에 달한다. 지구상 누구보다도 많이 세계 정상에 서 보았던 이창호의 승리를 점치는 것이 상식일 것이다.
하지만 이창호에 대한 신뢰가 예전에 비하면 다소 떨어진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그는 2005년 제5회 춘란배 우승 이후 만 5년 동안 세계대회 9연속 준우승에 머물고 있다. 그 기간 중 2007년 중환배서 우승한 적이 있지만, 그 대회는 경쟁자들이 몰려있는 중국기사들이 불참한 마이너급 대회였다.
게다가 LG배만 놓고 봐도 이창호는 2004년 9회 대회부터 직전대회인 14회 대회까지 번번이 중국기사에게 고배를 마셔왔다. 9회 때는 위빈(4강전), 10회 때 천야오예(16강전), 11회 때 후야오위(8강전), 12회 때도 후야오위(32강전), 13회 때는 준결서 구리에게 잡히더니 14회 때는 결승서 쿵제에게 무릎을 꿇었다.
국내 무대서도 최근 썩 좋은 컨디션이라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다. 올해 상반기 바둑왕전과 국수전을 손에 넣었지만 이후 명인전, GS칼텍스배, 물가정보배 등서 정상 등극에 실패했다. 이렇게 본다면 이번 LG배는 이창호에게 있어 올해 겨냥할 수 있는 마지막 목표물이 될 것이 확실홰 보인다.
이번 8강전 상대인 왕야오(王堯) 6단은 1983년 생으로 올해 27세다. 이창호보다 여덟 살이 젊다. 11살 때인 94년 프로가 돼 2004년 6단에 오른 걸 보면 기재는 만만치 않다. 그러나 경력은 별 게 없다. 99년 전국개인전 3위 정도가 고작이다.

이번 대회 통합예선에서 왕야오는 서봉수 이원영 루이나이웨이를 거쳐 결승서 조훈현을 반 집 차로 꺾고 본선에 상륙했었다. 본선에선 1회전서 박영훈, 2회전서 김지석을 따돌리고 다시 이창호와 대좌하게 됐으니 한국기사와 7연속 대결(루이 포함)하게 되는 셈이다.
왕야오는 수읽기가 빠르고 정확하지만 다소 경솔기가 있고 대국매너도 좋은 편이 못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국 때 상대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습관에 질렸다는 한국 기사들이 많다.
이창호는 한국 3위(10월 랭킹 기준), 왕야오는 21위. 두 기사가 대좌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상대전적이 없다. 일단 52대 48 정도로 이창호의 우세를 점쳐본다.
<최철한 대 퍄오원야오>
랭킹부터 살피면 한국이 꼭 이겨주어야 할 조합이다. 최철한은 10월 랭킹에서 이창호를 따돌리고 이세돌에 이어 2위로 올라섰다. 이세돌이 1회전서 구리에게 패해 탈락한 마당이어서 최철한은 이번 8강전의 한국 선수 중 최고 랭커다.
퍄오원야오를 한문으로 쓰면 朴文堯다. 조선족 기사여서 국내에선 박문요로 친근하게 부르는 팬들이 많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의 국적은 중국이고, 동시에 최철한이 꼭 넘어야 할 목표물이란 사실이다. 퍄오는 중국 10위에 랭크돼 있다.
기사의 무게로 비교하더라도 최철한이 위다. 그는 지난 해 4년제 대회인 제6회 잉씨배를 제패함으로써 현재도 당당한 현역 세계타이틀 보유자 명단에 올라 있다. 마이너급이긴 해도 2005년 제2회 중환배를 차지하는 등 세계제패 경험도 2회나 된다.
이에 반해 퍄오 5단의 국제대회 성적은 지난 해 제4회 도요타덴소배 결승서 자국 선배 구리에게 패배, 준우승을 거둔 것이 최고다. LG배에선 2006년 10회 때 4강에 진출한 적이 있다.

최철한 12세, 퍄오 11세 입단으로 모두 기록적인 입단나이를 자랑한다. 올해 나이는 최철한이 25세, 퍄오는 22세. 이번 15회 LG배엔 두 기사 모두 자국 시드를 받아 통합예선을 거치지 않고 무혈입성했다. 두 기사는 2007년 6월 제19회 TV아시아선수권 본선 1회전과 제6회 잉씨배 본선 8강전(2008년 5월) 두 차례 맞붙어 두 판 모두 최철한이 흑으로 불계승한 바 있다. 최철한의 53대 47 우세.
<안조영 대 멍타이링>
안조영은 79년 생으로 만 31세. 이번 대회 8강 중 이창호(35)에 이어 두 번째 고참이다. 기량과 노련미가 농익어 최고의 관록을 보여줄 수 있는 나이이다. 하지만 또 한 편으론 각국 바둑계를 주름잡고 있는 스무살 전후 젊은 사자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슬슬 한 물 가고 있는(?) 노장 정도로 비쳐질 수도 있다.
바로 이 점이 이 판의 승패를 점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안조영은 꾸준하고 성실한 자세로 여전히 한국 최상층부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10월 랭킹 14위다. 다른 기사들 같으면 내리막에 해당하는 28세 때(2007년) 첫 본격 타이틀인 제2기 원익배를 통해 국내 정상을 밟기도 했다.
93년 입단, 올해로 프로기사 생활 17년을 채운 안조영은 ‘반집의 승부사’로 불린다. 침착함과 안정감, 그리고 계산 능력은 손꼽을 만큼 탁월하다. 이런 기풍으로 그는 올해 초 제2회 비씨카드배 대회서 당시 세계 최강으로 꼽히던 구리를 반 집으로 보냈다.
LG배 2회전서 중국 26위 펑첸을 일축한 안조영은 2회전서 다시 구리를 만났다. 결과는 안조영의 백 불계승. 그 판 역시 내용적으론 반 집승이었다. 아무리 흔들어도 역전 가능성이 안 보이자 반 집이 뒤진 상태에서 구리가 돌을 거두었던 것. 이 같은 끈기와 집요함으로 안조영은 이번 LG배서 통합예선 포함 6연승의 순풍을 타고 있다.
멍타이링 5단은 우리에게 매우 생소한 기사다. 87년 생으로 올해 23세. 2001년 입단, 2005년 5단. 2005년 제4회 전국 신수(新秀)배 우승. 이것이 그에 대해 알려진 약력의 전부다.
멍타이링의 통합예선 통과 과정은 파란만장했다. 첫 판서 자국 동료 쑨리(孫力)를 꺾은 뒤 2회전서 한국 청년 강호 중 하나인 백홍석을 물리쳤다. 그리곤 온소진과 조경호를 다시 연파하면서 대망의 첫 세계대회 출전권을 거머쥐었다. 본선 첫 판에선 허영호, 2회전에선 운 좋게도(?) 자신보다 7살이나 어린 자국 동료 렌샤오(連笑)를 제물로 일약 ‘세계베스트 8‘까지 올랐다.
앞서도 말했듯 31세 안조영과 23세 멍타이링은 몇 살 차이 안 나는 것 같지만 이 연령대의 8살은 간단히 볼 게 아니다. 선배의 노련미와 후배의 패기 어느 쪽이 더 힘을 받을지 속단할 수 없다는 뜻.
하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멍타이링의 전력은 아직 위협적인 수준은 아니다. 자국 랭킹도 23위(이번 8강전에 나오는 중국 선수 중 최저)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승부 예상은? 51대 49로 안조영의 승리를 기대한다. 둘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이다.
<쿵제 대 후야오위>
쿵제 9단과 후야오위 8단은 82년생 동갑이다. 한 살 아래의 구리 9단과 더불어 3명을 묶어 중국 바둑계는 이들이 10대 초년병이었던 시절부터 ‘3총사’란 이름으로 부르며 주목했다. 한국에만 (송아지) 3총사가 있었던 게 아니었다.
한국의 송아지 3총사가 그랬듯 이들 중국판 3총사들도 그동안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경쟁을 계속해왔다. 구리를 빼고 둘만 비교해도 그렇다. 후야오위는 쿵제에 비해 1년 빠른 93년 입단했고, 신인왕도 99년에 올라 쿵제(2003년)를 훨씬 앞섰다.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둘의 경쟁은 격화됐지만 초반은 역시 후야오위 쪽이 더 화려했다. 쿵제가 제2회 춘란배 3위(2000년), 제2회 도요타덴소배 4강(2004년)에 그친 반면 후야오위는 제8회 삼성화재배 4강(2003년), 제5회 춘란배 4강(2004년), 제10회 삼성화재배 4강(2005년)을 거쳐 11회 LG배(2007년)에선 준우승까지 했다.
그러나 밀리는 듯하던 쿵제는 2009년부터 대폭발했다. 그 해 초 13회 삼성화재배 준우승을 시작으로 TV아시아대회와 14회 삼성화재배를 거푸 접수하며 9단에 먼저 올랐다(후야오위는 아직 8단이다).
쿵제는 2년 4개월 만에 자국랭킹 1위에 오른 여세를 몰아 계속해서 제14회 LG배(2010년), 제23회 후지쓰배(2010년)도 석권했다. 두 대회의 결승 상대는 한국의 이창호와 이세돌이었다.
쿵제의 요즘 컨디션은 그러나 나는 새를 떨어뜨릴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최근 삼성화재배 32강전서 이세돌에 지고 패자전서 회생한 뒤, 16강전서 이창호를 눌렀으나 8강전서 한국 김지석에게 역전패하며 탈락했다. 쿵제 스스로 “컨디션이 들쑥날쑥”이라고 한탄할 정도다. 삼성화재배 탈락으로 그는 현역 세계4관왕에서 내년 초부터는 수중에 LG배, 도요타덴소배, TV아시아 등 3개만 남게 된다. 무엇보다 LG배를 지키고 싶은 생각이 강렬할 것이다.
후야오위는 이번 통합예선에서 4연승하고 본선에 올랐는데, 그 희생자 중엔 강동윤과 류싱(중국 13위)이 포함돼 있다. 본선에선 이희성과 창하오를 제치고 8강에 안착했다. 현재 중국내 랭킹은 쿵제가 1위, 후야오위는 다소 충격적인 18위다.
최근의 성적이나 순위만 놓고 보면 결과는 뻔할 것 같지만 승부란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다. 동갑 라이벌로 치열하게 경쟁해 온 두 사람의 맞승부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속단할 수 없다. 일단 쿵제의 53대 47 우세로 점쳐보지만 기계적, 자료적 데이터일 뿐이다. 쿵제의 난조가 계속된다면 침착한 기풍의 후야오위에게도 충분히 찬스가 있다.
중국 5명, 한국 3명이 일단 4강 4자리를 다툰다. 지난 봄 통합예선 종료 시점 때 중국 11, 한국 5명의 분포를 이뤘던 때를 상기하면 한국이 많이 추격한 셈이다. 본선은 시드 멤버를 합해 한국 11, 중국 16, 일본 5명으로 출발했었다.
한국 출전선수 3명 중 2명만 이기면 이틀 뒤 열리는 준결승의 한-중 분포는 2대2가 된다. 하지만 2명 미만이 되면 중국 잔치를 피할 수 없어진다. 중국은 8강전 후야오위-쿵제 전으로 인해 4강 한 자리를 미리 확보했다.
LG배 우승컵은 13회 때 구리, 14회 때 쿵제가 가져가 3년째 중국에 머물고 있다. 한국이 올해는 우승컵과 함께 2억 5000만 원의 우승상금을 되찾아올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