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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의 2000승을 향하여
 

프로 바둑계 최다승 기록 보유자는 누구일까. 조훈현 九단이다. 2013년 5월 7일 기준(이하 동일)으로 총 2711국을 두어 1895승 9무승부 807패를 기록 중이다. 승률은 70.1%다. 한국의 최다대국, 최다승기록이고, 동시에 두 부문 모두 세계기록이다. ‘바둑황제’ 조훈현이 아니면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대단한 기록임에 분명하다.

조훈현의 이 기록은 한국과 일본서 반세기에 걸쳐 작성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62년 9세 7개월의 나이에 입단해 이듬해 일본 유학을 떠날 때까지 거둔 15승 7패, 일본서 거둔 118승 5무 41패, 그리고 군 복무를 위해 돌아와 72년 5월부터 최근까지 작성한 1762승 4무 759패로 구분된다. 프로활동 기간을 50년이라고 보면 대략 1년 평균 54판, 35승을 거둔 셈이다.

조훈현 九단의 다승 1위 기록이 누군가에 의해 경신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이걸 따져보려면 우선 2위 기록을 찾아보는 게 순서다. 2위는 이창호로 2182전 1634승 548패(승률 74.9%)를 기록하며 스승 조훈현을 쫓고 있다. 둘의 나이 차는 22년, 승수 차는 261승이다. 조훈현의 평생 라이벌 서봉수는 2407판을 두어 1520승 3무 884패(승률 63.2%)를 기록 중이다. 최다대국에선 2위지만 다승에선 3위로 밀려나 있다. 두 기사는 동갑(호적기준으로 둘 다 53년생)이다.

결국 서봉수의 1위 등극은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 이창호는 어떨까. 스승과의 간격이 따라잡을 수 있는 거리일까. 조훈현은 2011년만 해도 28승(16패)을 올렸으나 2012년 14승(14패)을 추가하는데 그쳤다. 올해 전적은 3승(5패)이다. 나이와 성적의 상관관계가 기하급수적으로 반비례함을 확인할 수 있다. 나이가 들면 성적이 떨어지고, 성적이 떨어지면 출전기회가 줄어들어 컨디션에 관계없이 승수 추가가 힘들다. 천하의 조훈현도 어쩔 수 없이 이런 과정을 겪고 있다.

이번엔 이창호를 보자. 그는 올해 14승 4패의 호조를 지속 중이지만 판 수 자체가 많지 않다. 바둑계의 상황도 승수 순위에 큰 변수인 것이다. 이창호가 만약 2011년(50승 28패)이나 2012년(33승 23패)의 페이스를 유지하고, 바둑계 환경이 지금 상태를 고수한다면 이창호는 스승과의 평생 다승 레이스에서 역전을 기대할 수도 있다는 결론이다.

요즘 1인자로 꼽히는 이세돌은 2011년 56승(23패), 2012년 65승(26패)을 마크했다. 하지만 올해는 현재 10승(7패)에 불과하다. 2012년 최다승의 주인공은 박정환으로 82승(27패)이란 무시무시한 승수를 수확했지만 올해는 18승(6패)에 그치고 있다. 모든 기사들의 대국수가 줄고 있다는 건 후발주자들의 선배 따라잡기가 갈수록 힘들어져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번엔 조훈현의 2000승 도달 가능성을 점쳐보자. 현재 1895승이니 앞으로 105승이 남았다. 60세의 조훈현이 80세까지 기사생활을 계속한다고 치면 얼추 20년 정도가 남았다. 20년 사이 105승을 거두려면 연간 평균 5승 남짓이면 가능하다. 물론 62세 때와 79세 때 같은 승수를 기대한다는 건 넌센스다. 또한 조훈현이라면 80세 너머까지 활동할 수도 있다. 필자에게 내기를 걸라고 한다면 나는 “가능하다”는 쪽이다. 아무튼 이 기록의 성사 여부는 장기적 안목에서 바둑계의 또 하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조훈현-이창호-서봉수를 잇는 역대 다승 톱10을 좀 더 살펴보자. 4위는 1182승(2무 640패)을 쌓아올린 유창혁이다. 1위 조훈현과는 무려 713승, 3위 서봉수와도 338승 차로 간격이 제법 크다. 5위는 1014승(5무 715패)의 서능욱. 여기까지 상위 5명은 40대 이상 노장(38세의 이창호는 특별한 경우다)들이 독점했다.

젊은 기사들의 이름은 6위(이세돌)와 10위(최철한)에서 비로소 보인다. 이세돌은 아직 불과 30세에 불과한데도 1010승(2무) 407패를 기록하며 당당히 6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세돌의 경우 저단시절 승단대회를 외면하면서 상당수의 판을 기권패 당했는데, 이런 허수가 없었다면 승수와 승률(71.3%)은 현재보다 훨씬 더 높아졌을 것이다.

국내 프로기사들 가운데 1000승 클럽에 오른 기사는 조훈현 이창호 서봉수 유창혁 서능욱 이세돌 등 앞서 거명했던 6명이다. 앞으로 1000승 등정을 눈앞에 둔 기사들은 누가 있을까. 일단 승수랭킹 7위는 한국기원 사무총장인 양재호(945승 2무 554패)九단인데, 기원 행정을 전담한 이후 일체의 대국을 중단한 상태여서 기록 달성은 뒤로 미루어진 상태다.

승수랭킹 8위 목진석은 924승(1무 405패)으로 1000승까지 72승을 남기고 있다. 목진석은 최근 3년 간 133승, 1년 평균 44승을 기록했다. 바둑계가 지금 상황을 유지하고 본인이 현재의 컨디션을 유지한다면 목진석의 1000승은 2년 내에 이루어진다는 계산이 나온다. 33세의 목진석은 30대에 들어선 뒤에도 가장 활발하게 기량을 유지하는 기사 중 한 명으로 꼽힌다.

9위 강훈은 911승으로 1000승까지 89승이 남았다. 강훈은 최근 3년 동안 합계 33승을 기록했다. 단순 계산으론 8년이 필요하지만, 56세의 나이를 감안한다면 그 시기가 좀 더 연장될 가능성이 높다. 85년생으로 아직 20대인 최철한의 경우는 그와는 대조적이다. 현재 876승(1무 373패)에서 남은 124승을 보태는 데까지 2년 남짓이면 가능하리란 계산이 나온다. 그는 최근 3년간 206승, 1년 평균 68승을 기록해 왔다. 이들 뒤로 안조영(822승) 조한승(788승) 김승준(697승) 박영훈(697승) 등이 ‘1000승 클럽‘ 가입을 향해 땀을 흘리고 있다.

젊은 준재들에겐 1000승에 앞서 500승 등정이 우선 목표다. 군 입대 중인 윤준상이 현재 496승을, 역시 현역 군인인 허영호가 491승을 기록해 연내 500승 달성 초읽기에 들어갔다. 그 다음이 역대 다승 통산 17위인데, 이 자리의 주인공은 여성기사다. 요즘 ‘맏언니’로 불리는 박지은이 475승으로, 25승만 보태면 대망의 500승 클럽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김지석도 500승에 필요한 26승을 올해 안에 채울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승에 관한 한 한국의 기록은 곧 세계의 기록이다. 중국은 프로 역사가 일천한데다 통계가 불확실해 이런 부문의 자료가 없다. 결국 일본만 남는데, 일본은 대국 수에서 한국보다 훨씬 적다. 현재 통산 최다승을 기록 중인 기사는 바로 한국 출신의 조치훈이다. 그는 1413승(766패 7무)으로 2위 린하이펑(林海峰)의 1381승을 32승 차로 앞서고 있다. 두 기사를 한국의 통산 다승랭킹에 대입하면 3위 서봉수 다음의 4위와 5위에 해당한다. 조치훈은 2012년 20승(14패)였고, 작년 일본 다승왕은 51승(12패)을 올린 이야마(井山裕太)였다.

프로야구 같은 종목은 승률보다 승수를 더 중요한 가치로 친다. 특히 투수부문이 그렇다. 예를 들어 7승 10패를 기록한 투수와 3승 무패를 기록한 투수가 있다면 7승 10패 투수를 더 값지게 여긴다는 뜻이다. 의미는 좀 다르지만 이런 경향은 바둑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많이 이기려면 많이 둘 기회를 잡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역시 많이 이기는 수밖에 없다. 승수(勝數)엔 승률(勝率)로 가름할 수 없는 승부사의 경륜과 역정(歷程)이 녹아있는 것이다.

바둑은 인류 문화가 만들어낸 최고의 작품으로 불린다. 만약 한국 프로바둑계에서 통산 2000승 기사가 배출된다면 개인이나 나라를 떠나 인류 전체의 기념탑이 될 것이다. 전설의 명투수 사이 영이 수립한 통산 511승(316패), 배리 본즈의 762홈런에 비견할 만 한 업적이란 얘기다. 바둑계의 갖가지 희귀기록을 독점하고 있는 조훈현 九단은 이 부문을 생애 마지막 소명으로 여기고 ‘화룡점정‘ 해주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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