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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단장한 LG배, 새 기왕은 누가 될까
 

매년 LG배는 만물이 소생하는 봄과 함께 오픈된다. 올해도 어김없이 새봄은 찾아왔고 LG배도 때맞춰 새로운 레이스를 시작했다. 18기째를 맞는 올해 LG배는 유독 주목을 요한다. 규정의 일부를 뜯어고쳐 새 시대에 걸맞은 모습을 갖추고 새로운 우승자를 맞기 위한 차비를 마친 것.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가장 큰 변화는 상금이다. 32강이 토너먼트를 벌여 우승자를 가려내는 본선 상금 총액이 지난해까지는 5억 2200만원이었으나 6억 2800만원으로 늘어났다. 인상율이 20.3%에 이른다. 우승상금이 2억 5000만원에서 3억원으로, 준우승상금도 8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인상됐다. 혹시 우승을 못하더라도 결승에만 오르면 웬만한 국내 타이틀 3~4개를 손에 넣는 대규모 행사로 커진 것.

하지만 이것은 본선에 진출한 32명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다. 올해부터는 예선 대국료가 없어졌기 때문. 본선에 나가려면 시드(16명)안에 들거나, 통합예선을 거쳐 16명 안에 뽑혀야 한다. 지난해까지는 통합예선에서도 30만원~160만원의 대국료가 지급됐었다. 부익부(富益富) 빈익빈(貧益貧)이 심화됐다고 투덜댈 일이 아니다. 어차피 승부의 세계는 실력 중심이며 약육강식의 전쟁터다.

강자 우대정책이 강화됨으로써 출전자들의 우승을 향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겨 올라가야 하는 이유, 즉 동기(動機)가 좀 더 선명해졌기 때문이다. 상금이 클수록 더 힘을 내는 게 프로의 기질이다. 예선에서 탈락하지 않고 본선에 오르기 위한 중위권 기사들의 생존경쟁도 훨씬 더 가열될 수밖에 없다.

통합예선은 총 6일, 중간 하루 휴식일까지 치면 꼬박 1주일에 걸쳐 진행된다. 외국기사들이나 지방 거주 한국기사들은 교통비(항공비)및 숙식비가 소요되므로 자칫 예선서 탈락할 경우 마이너스 수입을 피할 수 없다. 바둑을 두어 생활비를 버는 프로들 입장에선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이 때문에 한국, 외국 가릴 것 없이 실력이 좀 떨어지는 중하위권 기사들의 출전율이 대폭 떨어지리란 게 당초 예상이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출전 희망자를 마감한 결과 총 365명이나 신청한 것이다. 이 숫자는 지금까지 사상 최다였던 지난 해 17회 대회 때의 353명을 능가하는 역대 신기록에 해당한다. 한국(233명→222명)과 일본(44명→36명)이 소폭 줄어든 대신 중국(55명→81명), 대만(13명→18명)이 감소분을 메우고도 남은 것.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프로들이 대회에 출전하는 목적이 꼭 ‘돈벌이’에만 있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중도에 탈락하는 일이 있더라도 세계 각국 프로들과 기량을 겨루고, 그 과정에서 실력을 연마하는 과정을 수입 못지않게 중시한다는 해석이 가능해 보인다. 실제로 각국 젊은 기사들은 최근 자비를 들여 팀을 구성, 외국 원정에 나서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LG배는 야심 넘친 각국 청소년 기사들에겐 최고의 ‘훈련장’이고 ‘연마장’이기도 한 것이다.

대회 명칭도 종전의 ‘LG배 세계기왕전’에서 ‘LG배 조선일보 기왕전’으로 변경됐다. 대회 협찬사인 LG그룹과 주최사인 조선일보의 이름을 병기하기로 한 것. 세계 기전 사상 처음 있는 시도로, 주최사의 바둑 행사에 대한 적극적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조선일보사는 74년부터 95년까지 기왕전이란 이름으로 국내 타이틀전을 운영하다가 96년 이를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세계 기왕전’으로 확대, 협찬사 이름만 넣은 ‘LG베 세계기왕전’ 명칭으로 17년 동안 대회를 주최해 왔다.

경기 규칙 중에서는 시간 조항만 일부 바뀐다. 초읽기의 경우 1분 5개에서 40초 5개로 변경된다. 본선전의 경우 시작 시간이 종전 오전 10시에서 9시로 1시간 앞당겨졌다. 또 점심 휴식시간도 종전 오후 1시부터 1시간이던 것을 정오부터 45분으로 단축하기로 했다. 원활하고 신속한 진행으로 좀 더 박진감을 높이기 위한 조치들이다.

그러나 1인당 3시간씩 주어지는 기본 프레임은 달라지지 않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제기전은 1인당 3시간짜리가 대세였으나 요즘은 상당수가 2시간 안팎으로 단축됐다. 충분히 시간을 제공해 양질의 기보(棋譜)를 이끌어내겠다는 생각이 ‘3시간 바둑 고수(固守)’ 방침에 깔려 있다. 현존 국제기전 중 1인당 3시간짜리 대회는 춘란배와 LG배 등 단2개뿐이다.

‘제18회 LG배 조선일보기왕전’ 본선은 6월 10일 1차전(32강전 및 16강전)으로 시작된다. 이에 앞서 8명을 뽑은 아마추어 예선과 통합예선은 4월 23일까지 모두 종료됐다. 2차전(8강전 및 준결승)은 11월 10일부터 거행되고, 결승 3번기는 2014년 2월 10, 12, 13일로 예정돼 있다. 본선 및 결승전 장소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바둑계의 관심은 역시 새롭게 단장한 18회 LG배에서 과연 누가 정상에 서느냐 하는 것이다. 한국 바둑계의 입장에서 올해 대회 패권의 향방은 과거 어느 해보다 관심의 표적으로 떠오르고 있다. 2009년 제13회 이후 지난 해 17회 대회까지 무려 5년 연속 중국이 연패(連覇)하고 있기 때문. 한 때 ‘한국기사 전용기전‘이라던 전통이 무색하게 분위기가 일변했다. 중국 독식의 최근 흐름을 한국이 바꿀 수 있을지가 올해 대회 최고의 관전 포인트다.

양국 출전기사 수는 통합예선이 끝나봐야 안다. 총 32개의 본선 자리 중 절반인 16개는 시드제에 의거해 이미 주인이 결정돼 있지만, 나머지 16개는 통합예선 결과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지난 해 17회 대회의 경우 한국은 시드 6명과 예선 통과 4명을 합해 10명이 출전, 총 17명(시드 5, 예선통과 12명)의 중국에 비해 불리한 출발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일본과 대만은 예선서 전멸, 각각 4장과 1장의 시드만으로 팀을 구성했었다.

올해 시드를 받은 기사는 한국이 원성진 이세돌 박정환 김지석 박영훈 조한승 등 6명, 중국은 스웨(時越) 구리(古力) 천야오예(陳耀燁) 저우루이양(周睿羊) 판팅위(笵廷鈺) 등 5명이다. 한국은 투톱 이세돌 박정환을 선봉장으로 최강의 라인업을 구성했지만 중국의 진용도 만만치 않다. 스웨는 LG배 디펜딩 챔피언이고, 저우루이양(바이링배)과 판팅위(잉씨배)도 현역 세계타이틀 보유자다. 일본은 1인자 이야마(井山裕太), 대만은 샤오정하오(蕭正浩)가 주역이다.

LG배는 17년의 역사를 쌓아오는 동안 떠들썩한 ‘대수술’ 대신 항상 의미있는 새 제도를 도입하며 변화를 선도해 왔다. 96년 제1회 대회 때 뉴욕에서 8, 4강전을 치른 것은 한국 주최 국제대회 사상 최초의 해외 나들이였다. 흑이 부담할 덤이 5호반이던 시절, 제2회 LG배는 1998년 과감하게 덤 6호반 제도를 채택했고 이는 이후 각종 국내외 대회의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지금은 상당수 국내외 기전이 따라온 ‘흑백 선택제’ 역시 2005년 9회 LG배가 그 효시였다.

넉다운제 토너먼트 방식, 결승 3번기, 1인당 3시간 등은 평범하지만 국제기전의 ‘정통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 전통 속에 숱한 명승부와 대스타가 끊임없이 배출됐다. 20년 가까운 세월 세계 바둑의 발전과 중흥의 중심에 LG배가 자리했다는 뜻이다. 새 단장을 마치고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한 이번 ’제18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에선 또 어떤 화제꺼리가 등장할지, 본선 개막을 기다리는 팬들의 가슴이 봄바람처럼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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