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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팅위가 바꿔놓은 중국바둑 역사
 

▲ (좌) 박정환, (우) 판팅위

올해 중국바둑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단체전(농심배)만 한국에 내주었을 뿐, 금년에 열린 세계 개인타이틀전 결승 3개를 모두 가져갔다. 저우루이양(周睿羊)이 바이링배를, 스웨(時越)가 LG배를 제패한데 이어 3월 초 끝난 제7회 잉씨배는 판팅위(笵廷鈺)의 품에 안겼다.

판팅위의 우승은 저우루이양이나 스웨의 세계제패와는 몇 가지 점에서 의미가 다르다. 무엇보다 그의 나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저우와 스웨는 91년생 동갑으로 22세다. 세계적 스타들의 1인자 등정 평균연령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에 비해 판팅위는 96년 8월생으로 아직 만으론 채 17세에도 이르지 못했다.

정확히는 16세 7개월만의 ‘지구 정복’이다. 이는 세계바둑 사상 두 번째 연소 기록에 해당한다. 이창호(38)가 92년 1월 제3기 동양증권배를 사냥할 때의 16세 6개월에 비해 불과 1개월이 더 소요됐다. 이창호의 기록이 깨진 것은 아니지만, 영원히 난공불락일 것 같던 ‘16세 6개월’이 불과 한 달 차로 육박 당했다는 건 놀라운 사건이다.

바둑에서 어린 나이의 첫 타이틀 등정만큼 소중한 것도 없다. 수십년째 최연소 세계제패 기록을 지닌 이창호가 세계 최다우승(21회) 기록도 내주지 않고 있다는 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아무튼 판팅위가 최연소 세계우승 부문 2위로 끼어들면서 박영훈(19세 3개월) 이세돌(19세 5개월) 장웨이제(20세 4개월) 최철한(20세 5개월) 강동윤(20세 6개월) 등은 3~7위로 밀려났다.

두 번째 의미 역시 나이와 관련된 것이다. 이른바 ‘95후(後)’, 한국과 중국을 통틀어 1995년 이후 태어난 기사 중 세계를 정복한 최초의 기록을 판팅위가 수립했다. 세계바둑계는 쏟아져 나오는 10대 유망주들 중에서 누가 선두주자로 나설지 주목하고 있었다. ‘90후 시대’가 도래했나보다 하는 상황에서 ‘95후’의 전격 우승은 충분히 충격적이다. 한 중 양국의 모든 95년 이후 출생 꼬마천재들에게도 비상이 걸렸다.

세 번째는 중국의 두터운 선수층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이다. 판팅위는 중국 신인기전 3차례 우승 외엔 성인 무대에서 단 한 번도 ‘금메달’을 따내본 적이 없는 기사다. 역시 신인기전 1회 우승 경력이 고작인 스웨의 LG배 제패에 이어 중국의 저변이 얼마나 두터운지 ‘한 방’에 입증했다. 이런 식이라면 언제 어디서 어떤 기사가 또 불쑥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이 됐다.

네 번째는 판팅위가 대첩을 거둔 무대다. 잉씨배는 잘 알려져 있듯 대만 재벌 바둑광이던 고 잉창치(應昌期)가 만들었다. 생존 시 잉씨는 우승컵이 한국 기사들에게만 돌아가며 안기는 모습을 볼 때마다 큰 안타까움을 드러내곤 했었다. 조훈현 서봉수 유창혁 이창호 최철한 등 과거 열렸던 6차례 대회 중 5회를 휩쓸어 잉씨배는 ‘한국 1인자 세습기전‘이라고까지 불렸었다. 그 역사의 고리를 판팅위가 깼다. 게다가 최고상금의 국제대회(우승 40만 달러)라는 상징성까지 띤 무대다.

중국 바둑계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슈퍼스타 부재를 탄식했었다. 선전(善戰)하는 듯해도 항상 마지막 고비에 이르면 우승은 한국 차지가 된다는 탄식이었다. 사실 1990년대 중반 이후 최후의 승자는 항상 조훈현 이창호 유창혁 이세돌 박정환 등이었다. 16세 ‘다윗 소년’ 판팅위는 이 같은 중국의 간절한 염원을 메워줄 ‘결정적 한 사람’으로 등록했다는 분석이다.

중국은 세계대회에서 우승하면 무조건 九단을 인증하는 규정이 있다. 三단이던 판팅위는 이번에 무려 여섯 계단을 건너뛰어 九단이 됐다. 물론 중국 최초의 일이다. 세계적으로도 2003년 LG배 우승으로 九단이 된 이세돌 三단 딱 1명에게 그런 전례가 있었다. 지금까지 중국 최연소 九단 기록은 천야오예(陳耀燁)의 17세 5개월이었는데 이것 역시 단숨에 경신됐다.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兵家)에선 늘 있는 일이라지만, 판팅위를 영웅으로 만들어 준 상대역이 다른 기사 아닌 박정환이란 사실은 많이 씁쓸하다. 93년 1월생인 박정환은 이세돌에 이은 한국 현역 랭킹 2위이며, 이창호에 이어 최연소 세계 정복 2위(18세 7개월, 2011년 제24회 후지쓰배) 기록 보유자였다. 국내 ‘90후’로는 유일하게 세계 최정상 무대에서 활약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패배는 특히 뼈아프다.

또 있다. 박정환은 초년병 시절 신예기전서 단 한 차례 준우승했을 뿐 결승만 올라가면 우승을 양보한 적이 없었다. 이 ‘결승불패’기록이 이번에 깨졌다. 또한 그는 국내외 무대를 통틀어 자신보다 어린 기사에게 패점을 안은 경우가 거의 없었다. ‘꼬마황제’의 이미지로 선배들을 씩씩하게 무찔러 오던 박정환이 3년 아래 ‘더 꼬마’에게 당한 것은 상서로워 보이지 않는다.

결승전 5번승부의 내용도 찜찜하다. 2012년 말 벌어졌던 1, 2국은 서로 백번(白番)을 완승하며 한 판씩 나눠가졌다. 올 3월 속행된 3국서 흑번으로 완패한 박정환은 이틀 뒤의 4국서 백으로 필승의 형세를 구축하고도 귀신에 홀린 듯 역전패, 준우승이 결정되고 말았다. 이 같은 결승시리즈의 흐름은 승부사로서의 두 사람 이미지에 직결될 수밖에 없고, 더구나 앞으로의 재회 때 하나의 트라우마로 작용할 여지도 없지 않다.

이번 잉씨배 결과가 한-중 양국의 패권다툼 흐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주목해야 한다. 연초 바이링배와 LG배를 내주었지만 단체전인 농심배를 되찾아 온 직후여서, 만약 잉씨배를 확보했을 경우 중국의 한국에 대한 두려움은 계속됐을 것이다. 그 반대의 결과가 나오는 바람에 중국의 기세는 드높아졌고, 한국은 당분간 위축된 분위기에 시달릴 가능성이 있다.

판팅위의 우승 과정을 돌아봐도 기분이 언짢아진다. 일본의 다카오(高尾神路)를 첫 제물로 삼은 뒤 이세돌 탄샤오(檀嘯) 셰허(謝赫) 박정환 등 한-중의 기라성 같은 맹장들을 헤쳐나왔다. 특히 이른바 한국의 투톱으로 불리는 이세돌과 박정환이 포함돼 있다는 점을 간과하기 힘들다.

이처럼 어떤 측면에서 들여다봐도 꼭 이겨야 할 일전이었고, 또한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승부였음에도 패했다. 그래서 아쉬움이 더 진하게 남는다. 농심배에 이어 잉씨배까지 이어서 치르는 해외 장기체류 일정, 그로 인한 컨디션 상실 등 다양한 원인분석도 나오고 있다.

판팅위의 기세가 어디까지 뻗어갈지, 그에게 제동을 거는 한국기사가 나올 경우 박정환일지 다른 10대 유망주일지, 한-중 전면전은 앞으로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모든 궁금증이 숙제로 남았다. 한국 바둑으로선 최근 20년래 다른 어떤 시절보다도 중요한 길목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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