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2012년) 여름 제1회 영재 입단대회가 열렸다. 어린 나이 때 발굴해 프로로 육성해야 대성할 수 있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제3의 입단 등용문이었다. 출전자격은 만 14세(98년 1월 1일 이후 출생자)로 제한됐다. 이 관문을 뚫고 신진서(2000년 3월생)와 신민준(1999년 1월생)이 제1회 영재입단대회의 첫 ‘사관생도’로 임관됐다. 두 기사는 입단과 동시에 280명 국내 프로기사들 중 현역 최연소 1-2위로 등록했다.
프로세계 진입 과정에서 둘 중 더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꼬마는 신진서 쪽이었다. 무엇보다 진서는 국내 최초, 유일의 2000년대 출생기사였다. 입단 당시 유일한 초등학생이기도 했다. 또한 둘의 맞대결서 승리함으로써 신진서는 ‘장원급제’의 영광도 안았다. 신민준은 하루 뒤 바로 입단했지만 일단 아쉬움이 컸을 것이다. 올해 3월 신민준은 충암중 2학년에 진급하고, 신진서는 같은 학교 1학년에 입학한다.
두 ‘신씨’ 꼬마는 2012년 9월 도쿄에서 벌어진 국제신예바둑 대항전에 함께 출전했다. 비공식대회지만 둘에게 모두 프로데뷔전이었는데 둘 모두 기분 좋은 승점을 챙겼다. 이 대회의 성적도 둘이 사전 약속이나 한 듯 나란히 2승 1패였다. 아무튼 당사자들이 원하건 원치 않건, 의식하고 있건, 모르고 있건 둘은 어느 새 라이벌로 묶였다. 사람들이 “한국바둑의 미래는 ‘양신(兩申)’에 달렸다”며 둘을 사사건건 비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민준이와 진서는 올해 1월 초 두 번째 맞대결을 가졌다. 경남 합천군이 기획, 초청한 영재대결 이벤트에서였다. 변상일(97년생)을 포함해 3명이 풀리그로 기량을 겨뤄보는 행사였는데 진서가 1위, 민준이와 변상일이 각각 2-3위를 차지했다. 신진서가 신민준을 이긴 것이다. 비록 비공식전이긴 했지만 민준이로선 입단대회에 이은 또 한 번의 뼈아픈 패배였다.
합천군 행사는 그걸로 끝나지 않고 영재 대 정상대결로 이어졌다. 영재 3명이 정상권 프로들과 한 판씩 호선으로 겨루는 이벤트였다. 여기서 신진서가 이창호를, 신민준이 최철한을 각각 눌렀다. 정상 프로들의 입장에선 기를 쓰고 이길 마음이 없는 행사여서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다. 그렇다 해도 프로생활 반년 남짓의 14세, 13세 소년들이 거목들을 잡았다는 건 놀라운 사건이었다.
아무튼 신민준의 입장에서 신진서는 ‘손톱 밑 가시’처럼 보였을 것이다. 신경쓰이는 존재란 뜻이다. 데뷔 무렵 여러 데이터(나이, 학교, 입단 순위, 맞대결 전적 등)를 통해 자존심을 상하게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또 있다. 둘은 입단하기 전 나란히 대한생명배 세계어린이국수전 우승을 거쳤는데, 신진서가 2010년 10회 대회로 11회 우승자인 신민준을 1년 앞섰던 것. 이런 자료들만 놓고 보자면 신진서의 재주가 신민준보다 약간 앞서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반전(反轉) 자료가 또 있다. 프로 진입 후의 공식전 성적에선 반대로 신민준이 신진서를 뚜렷이 앞서 달리고 있는 것이다. 민준이는 2012년 10월 제8기 원익배 십단전서 예선을 돌파, 입단 3개월만에 첫 본선상륙을 달성했다(본선 첫판에선 이세돌에게 분패, 탈락함). 이어 최근 진행 중인 제1회 동아팜텍배 오픈신인왕전서도 본선에 오른 뒤 2연승, 준결승전을 기다리고 있다. 프로통산 전적은 8승 2패.
이에 비해 진서는 의외로 ‘발동’이 늦게 걸리고 있다. 지난 해 2패, 올해 1패로 프로에서 아직 ‘판맛’을 보지 못했다. 합천 이벤트의 영웅이라지만 그건 공식전엔 넣어주지 않는다. 라이벌 신민준이 벌써 2개째 본선 물고기로 헤엄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본인도 “빠른 시간 안에 본선에 올라가고 싶다”며 초조한 심정을 내비친 바 있다(2월 6일 충암 입단자 축하연).
철부지 어린이로만 보이지만 둘은 벌써 상당한 승부욕으로 무장돼 있다. 서로에 대한 팬들의 시선 때문에 스트레스도 꽤 많이 받는 게 확실하다. 입단 직후까지의 직, 간접 대결에서 신민준이 스트레스에 시달렸다면 프로 변신 이후엔 신진서가 마음고생(?)을 하고 있다. ‘양신(兩申)’은 아마도 평생 이렇게 밀고 당기며 끝없이 경쟁해 갈 것이다.
그런데 바둑계 꼬마 유망주군(群)엔 이들 ‘양신(兩申)’만 있는 게 아니다. ‘양신(兩申)’에 못지 않게 돋보이고 잘 나가는 꼬마의 이름은 이동훈이다. 이동훈은 신진서보다 2살, 신민준보다 1살 많은 98년생이다. 남자기사들만 따질 경우 국내 최연소 현역 3위에 해당한다. 그는 ‘양신(兩申)’보다 14개월 앞선 2011년 5월 프로가 됐다.
이동훈도 대한생명배 세계어린이국수전 우승자 출신이다. 2009년 9회 때 세계 정상에 섰다. 이 계보 상으론 신진서보다 1년, 신민준보다 2년 선배다. 프로생활 14개월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지금까지 이동훈이 보여준 활약상은 ‘양신(兩申)’보다 훨씬 뛰어나다. 2011년 말 벌어진 제1회 KC&A배 신인왕전서 준우승했고, 지난 해엔 놀랍게도 국가대표 5명(제14회 농심배) 안에 뽑혔다. 연말엔 소속팀의 우승 ‘결승골’을 넣으며 바둑리그 신인상도 품에 안았다.
이동훈은 지난 해 11월 이후 현재(2013년 2월 18일)까지 9연승 행진 중이다. 올들어만 4국을 두어 한 판도지지 않았다. 프로 통산전적은 54승 30패. 프로가 되기 전에 아마추어 신분으로 제15회 삼성화재배 통합예선과 2011 올레배 본선에 출전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스타로 자리 잡을 여러 조건들을 빠짐없이 갖췄다.
이동훈과 ‘양신(兩申)’과의 본격 대결사(史)도 슬슬 본격화될 조짐이다. 우선 동아팜텍배 오픈신인왕전 준결승서 그가 만날 상대가 바로 신민준이다. 둘은 양천대일도장 선후배 사이여서 서로 ‘손맛’을 충분히 본 사이다. 민준이는 “내가 4대6 정도로 밀렸고 이번에도 배우는 마음으로 두겠다”고 했는데, 그러나 이들 나이 때의 기량은 하루가 다를 정도로 급성장한다. 결과는 붙어봐야 안다는 뜻. 대국 날짜는 일단 3월 7일로 잡혔다.
바둑은 남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98년 이후 출생한 프로들 중엔 여성도 1명이 있으니 바로 오유진이다(98년 6월생으로 2월생인 이동훈보다 4개월이 어리다. 한국기사 전체에서 최연소 3위, 여성 1위다). 신진서와는 충암도장 동문으로, 신진서 신민준보다 2주 늦게 프로에 진출했다.
오유진의 진가가 확실하게 발휘된 것은 입단 직전 열렸던 제29회 세계청소년바둑대회 대표선발전 때였다. 한 중 일의 내로라하는 최고스타들이 거쳐 갔던 권위있는 국제행사다. 이 선발전서 뜻밖에도 오유진이 우승했다. 입단을 눈앞에 두었던 주먹 좋은 남성 강호들이 오유진 앞에 줄줄이 무릎을 꿇었다. 오유진은 결승서 박건호를 꺾었는데, 신민준이 박건호에게 준결승서 패하지 않았으면 둘의 대결이 이루어질 뻔 했다.
중국 허난성 뤄양(洛陽)시에서 벌어진 본 대회서 오유진이 거둔 성적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여성이 이 대회에 대표로 출전한 것은 한국으로선 처음이었고, 그 대회 전체로 보더라도 매우 드문 사례에 속했다. 오유진은 입단하기 전인 2101년 제10회 대한생명배 때 3위에 입상했는데, 전승가도를 달리다 우세한 판을 신진서에게 역전패함으로써 우승을 놓쳤다.
오유진의 프로 통산전적은 3승 4패. 작년 가을 열렸던 원익배 여류십단전을 통해 이미 첫 본선진입의 통과의례를 마쳤다. 올해 전적은 1패로, 동아팜텍 신인왕전 본선 첫 판서 동갑내기 이동훈에게 당한 것이다. 하지만 ‘신분’ 상 여자기사들과의 대국 비율이 커질 수밖에 없어 오유진의 승률도 크게 올라갈 게 분명하다. 전체적으로 여성바둑은 아직 남성보다 열세이기 때문이다.
이동훈 오유진 신민준 신진서. 현 시점 98년 이후 출생 프로기사는 국내에 이들 넷 뿐이다. 워낙 큰 기대가 걸리다 보니 인기도 높다. 동아팜텍배 주최측이 이동훈 오유진에게 시드를 준데 이어 2월 20일 예선에 돌입한 제32기 바둑왕전 주최자 KBS는 조훈현과 함께 신진서에게 본선 직행 혜택을 주었다.
상품가치가 높아가면서 이들에 대한 ‘특별손님 모시기’는 더욱 빈번해질 것이고, 이들 간의 상호 격돌 빈도 역시 갈수록 높아질 것이다. 이들이 속한 도장 등 주변의 선배 사범들은 이들의 빠른 성장속도에 일제히 놀라움을 표시하고 있다. 중국 95년 이후 출생 꼬마프로들의 인해전술이 무섭다지만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우리에겐 신진서 신민준 오유진 이동훈의 ‘98후 4인방’이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