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사(癸巳)년 새해가 밝았다. 세계 바둑계가 완전히 한국과 중국 두 나라의 경쟁터로 탈바꿈한지도 벌써 여러 해 째다. 올해 두 나라의 승부에선 어느 쪽이 웃을까. 또한 세계 최정상의 자리엔 어떤 얼굴이 자리하게 될까. 새해 세계대회 일정을 정리해 본다.

첫 테이프 끊을 LG배 결승전
새해 국제대회 첫 테이프는 전통의 기전 제17회 LG배 세계기왕전이 끊는다. 2월 18일부터 강원도 태백시 소재 오투리조트에서 결승 3번기가 치러질 예정. ‘출연배우‘는 한국의 원성진(28) 九단과 중국 스웨(時越․22) 五단으로 잡혀있다.
이 대결이 특별히 주목받는 것은, 최근 4년 간의 LG배에서 한국기사가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하고 중국이 4연패(連覇)를 기록 중이기 때문이다. 2008년 제12회 대회 때 이세돌이 정상을 밟은 것이 마지막이었다. 이후 구리(古力) 쿵제(孔杰) 박문요(朴文堯) 장웨이제(江維杰)가 차례로 우승컵을 가져갔다.
원성진은 이번 대회 본선에서 탄샤오(檀嘯) 최기훈 이영구 최철한을 꺾고 올라왔다. 스웨는 일본의 유키(結城聰) 이세돌 나현 강동윤을 순서대로 제쳤다. 둘이 맞대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원성진은 지난 2011년 제16회 삼성화재배서 한 차례 세계 제패를 경험한 바 있다. 1월 초 군에 입대할 예정이었으나 LG배 결승에 오르면서 2개월 간 입영을 연기했다. 멋진 피날레를 장식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입대하겠다는 각오가 대단하다. 1월 한국 랭킹은 4위.
스웨의 우승경력은 2009년 자국 신인왕전뿐이다. 국제대회서도 돋보이는 성적을 올리지 못했으나 이번 LG배를 통해 크게 도약했다. 자국 랭킹은 2011년 12월 5위, 2012년 4월 5위, 같은 해 8월 3위를 거쳐 12월 2위까지 수직상승 중이다(중국은 매 4개월, 1년에 3회 랭킹을 발표한다).
이 대회 우승의 향방은 올 한 해 세계 판도에 나침반 구실을 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중고참 원성진으로선 중국의 신예를 반드시 막아내야 할 사명이 있다. 한-중 결승 4연패(連敗)의 수모를 더 이상 계속해서도 안 된다. 2억 5000만원의 ‘외화유출‘ 역시 더 지켜볼 수 없는 일이다.
제1회 바이링배 저우루이양 품에
일정상으로만 보면 올해 첫 세계대회는 바이링(百靈)배가 맞다. 그럼에도 2번으로 돌린 것은 한국기사가 빠지고 중국 대 중국으로 결승전이 치러졌기 때문. 아무튼 중국이 춘란배 이후 모처럼 만에 주최한 이 기전엔 180만 위안(약 3억원)의 묵직한 우승상금이 걸려있다.
올해 22세인 저우루이양(周睿羊)은 천야오예(陳耀燁‧24)를 상대로 1월 10, 12, 19일 벌어진 결승5번기 1~3국서 모두 승리, 3대0의 일방적 스코어로 초대 바이링배 우승자가 됐다. 2008년 제13회 삼성화재배 3강이 최고성적이었던 중국 청년이 올해 첫 세계챔피언 등극의 영예를 차지한 것이다.
저우루이양은 1년 여 전 랭킹 1위까지 오르기도 했으나 현재는 10위에 자리잡고 있다. 반면 천야오예는 현역 중국랭킹 1위에 올라있는 기사다. 아직 세계대회 제패 경험이 없는 천야오예는 2006년 제10회 LG배와 2007년 제19회 TV아시아선수권 준우승 이후 또 한 차례 준우승을 추가하는데 그쳤다.
저우루이양은 규정에 따라 五단에서 일약 九단으로 승단하며 180만 위안(약 3억원) 우승상금도 획득했다. 한국은 이 대회에 87명의 기사가 통합예선에 출전, 시드자 4명을 포함해 총 16명이 본선 64강에 진출했지만 박정환의 8강이 최고 성적이었다. 4강 이후부터는 중국기사들이 독점했다.
잉씨배 박정환이냐, 판팅위냐
4년 간격으로 열리는 잉씨배의 일곱 번 째 주인도 3월 중 판가름 난다. 한국의 박정환(20) 九단과 중국 판팅위(笵廷鈺․17)三단의 결승 5번기는 현재 3번기로 좁혀진 상황. 앞서 지난 연말 싱가포르에서 벌어진 1, 2국서 한 판씩 사이좋게 나눠가졌기 때문이다.
박정환은 한국랭킹 2위로 이세돌과 함께 양대 간판스타로 군림중인 강자. 2012년 중반 무렵엔 이세돌을 따돌리고 5개월 동안이나 한국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작년엔 다승, 승률, 연승 등 3개 기록부문을 독식할 만큼 맹위를 떨쳤다. 이미 후지쓰배를 통해 세계 제패를 경험해보기도 했다.
판팅위는 중국 신예돌풍의 핵(核)이다. 이른바 ‘95후(後)’로 불리는, 95년 이후 출생한 중국 최신예 그룹에서도 가장 돋보인다. 잉씨배 외에도 삼성화재배 8강, 바이링배 32강, 비씨카드배 32강 등 어린 꼬마라고는 볼 수 없는 무서운 기량을 과시 중이다. 최신판 중국랭킹엔 9위로 돼 있지만 체감 실력은 그보다 훨씬 높다.
결승 3∼5국은 3월4일부터 6일 사이 중국 상하이에서 치러진다. 잉씨배는 제1회 대회 이후 조훈현 서봉수 유창혁 이창호가 4회까지 연패(連覇)한데 이어 6회 대회를 최철한이 보유하는 등 한국 기사가 5차례나 정상에 올랐던 친한(親韓) 기전. 그 전통을 박정환이 이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번 결승은 세계바둑 사상 최연소 세계타이틀전이기도 하다. 우승 상금은 40만달러.
춘란배 결승 이세돌 VS. 천야오예
뒤이어 제9회 춘란배 결승 3번기가 바통을 이어받는다. 한국의 이세돌과 중국 천야오예(陳耀燁)가 정상을 놓고 우열을 가릴 예정이다. 아직 확실한 일정은 나오지 않았으나 대체로 5월~6월 사이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만 30세가 되는 이세돌은 지난 연말 제17회 삼성화재배 제패로 세계대회 우승 회수를 16회로 늘렸다. 뒤이어 명인전 결승서도 극적 역전 우승을 거두는 등 가위 욱일승천의 기세다. 연말엔 3년 연속 국내 최우수기사에도 선정됐다.
이에 비해 천야오예(24)의 기세는 다소 주춤하고 있다. 바이링배 결승서 후배 저우루이양에게 패배, 첫 세계제패의 기회를 놓친 아픔이 크다. 천야오예는 2006년 제10회 LG배를 비롯해 2007년 제19회 TV아시아선수권 등서 연속 준우승에 그쳐 우승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갖고 있다.
이 대결이 주목되는 또 다른 이유는 두 기사의 양국 랭킹이다. 이세돌은 부동의 한국 톱랭커로 군림 중이고, 천야오예는 지난 해 8월 발표 때에 이어 12월 발표 랭킹에서도 1위 자리를 지켰다. 양국 1위끼리의 정면 격돌이란 상징적 의미만으로도 흥미 만점이다.
이세돌은 춘란배의 디펜딩 챔피언이기도 하다. 이번에도 우승할 경우 2연패(連覇)가 된다. 총 8회까지 치르는 동안 한국이 5회를 석권한 춘란배 전통이 계승될지도 관심사. 이세돌은 천야오예를 상대로 통산 3승 1패로 앞서 있다. 2006년 첫 대결서 패한 뒤 내리 3연승 중이다. 우승상금은 미화 15만 달러.

상반기 러시 이룰 단체전
이상 메이저급 개인전 외에 단체전도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우선 한 중 일 3개국 단체 연승전인 전통의 제14회 농심배 최종 3라운드가 2월 26일부터 3월 1일까지 중국 상하이에서 벌어진다. 한국은 최철한과 박정환 2명, 중국은 천야오예 셰허(謝赫) 장웨이제 3명이 남아있다. 일본은 전원 탈락했다.
농심배는 총 13년 간 대회를 치른 결과 한국이 10회에 걸쳐 우승, 압도적 강세를 보여왔다. 하지만 지난 해 우승 팀은 중국(통산 2회)이었다. 타이틀 탈환이 지상과제란 이야기. 일본은 2005년 딱 한 차례 우승을 맛봤다.
한 중 일 3개국 대표 각 5명씩이 연승제 방식으로 패권을 겨루는 기전은 여자 쪽에도 있다. ‘여자 농심배’로 불리는 황룡사쌍등배다. 올해는 중국 장쑤(江蘇)에서 2~4월(1라운드) 및 4~6월(2라운드) 사이 벌어질 예정. 한국은 지난 해 대회 때 출전기사 5명이 단 1승도 거두지 못하는 졸전으로 망신당한 바 있어 설욕이 기대된다.
제3회 초상부동산배는 3월 19, 21일 역시 중국에서 벌어질 예정이다. 한국과 중국에서 각 5명씩의 대표가 출전, 1인당 2국씩 두어 2개라운드 성적으로 우승국을 결정짓는 방식이다. 중국이 2년 연속 우승을 독식해 역시 한국 대표로 나갈 기사들의 분발이 요구된다.
새해 새로 시작될 메이저급 세계타이틀전들
제18회 LG배 세계기왕전은 4월 통합예선에 이어 6월 경 본선에 돌입할 전망이다. 제18회 삼성화재배는 8월과 9월 각각 통합예선 및 본선 개막 계획을 잡아놓고 있다.
또한 제25회 TV아시아선수권은 6월, 단체전인 제15회 농심배는 7월 국내 선발전에 이어 10월 새 대회에 돌입한다. 중국 주최의 제2회 바이링배도 올해 시작되는데 아직 정확한 일정은 나오지 않았다. 4년 주기의 잉씨배, 2년마다 열리는 춘란배는 올해는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