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English LG
LG Home English Chinese

생중계
뉴스
기보보기
기보해설
대회개요
대진표
선수소개
역대 우승자 보기

  영원한 기록의 사나이 조치훈
 

일본에서 활약해 온 조치훈(56) 9단이 최근 또 하나의 금자탑을 세웠다. 지난 9월 27일 일본기원서 두어진 제38기 기성전 예선에서 고마쓰(小松英樹) 9단을 물리치고 1400승 고지에 올라선 것이다.

일본 프로바둑계에서 공식전 1400승을 달성한 기사는 조치훈이 처음이다. 10월 15일 현재 조치훈의 통산전적은 1400승 763패 3무승부다. 2위인 린하이펑(林海峰) 9단의 1376승(858패 1무승부)에 비해 24승 앞서 있다. 그 뒤에 고바야시(小林光一‧1315승) 가토(加藤正夫‧1254승) 오다케(大竹英雄) 등이 3~5위 그룹을 형성하며 쫓아오고 있다.

조치훈이 일본 최다승 레이스 선두에 처음 나선 것은 지난 2010년이었다. 그해 12월 23일 왕좌전 예선서 린한지에(林漢傑) 7단을 누르고 그 때까지 1위였던 린하이펑을 처음 제쳤다. 앞에서 살펴보았듯 가장 근접한 추격자인 린하이펑과의 격차가 현재 24승으로 벌어진데다, 린 9단이 나이가 들면서 대국 수 자체도 조치훈보다 줄어들고 있다. 둘 간의 재역전 가능성이 희박하리란 뜻이다. 린 9단은 조치훈보다 14살이 더 많은 70세다.

1400승은 일본바둑을 석권해 온 조치훈 기록역사에 있어 하나의 작은 정거장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1968년 승단대회 때 거둔 데뷔 첫 승리, 1999년 8월 제38기 십단전서 야마다(山田規三生)를 제물로 따낸 1000승, 2008년 6월 기성전 본선리그 대 왕리청(王立誠)전 때 기록한 1300승 같은 것이다. 그는 이제 일본 최초의 1500승 고지를 향해 새로운 행군을 시작했다.

조치훈의 인생여정은 곧 일본바둑계 기록의 역사이기도 하다. 1956년 부산서 태어난 조치훈은 만 5세 때 도일, 11세 9개월이던 1968년 입단했다. 이는 ‘괴물기사’ 후지사와 슈코(藤澤秀行)의 손녀이자 재일 한국인 기사 홍맑은샘 초단의 제자이기도 한 후지사와 리나(藤澤里菜)에 의해 2010년 깨지기까지 무려 42년 간 최연소 기록으로 남아있었다.

최연소 타이틀 획득기록도 장장 30년 동안 그의 소유였다. 조치훈이 1975년 첫 타이틀인 프로십걸전을 획득할 당시의 나이는 18세 10개월이었다. 이 기록은 2005년 이야마(井山裕太)에 의해 경신됐다. 프로십걸전 제패를 신호탄으로 조치훈이 보여준 영토 확장 속도는 무시무시했다.

▲ 80년 귀국한 조치훈 명인과 함께 한 故 김옥순 여사(왼쪽). 오른쪽은 조상연 5단

그는 2002년 제9기 아함동산배 우승으로 65번째 타이틀을 목에 걸면서 그때까지 최다 우승자였던 사카다(坂田榮男)의 64회를 제치고 일본 바둑사상 최다 타이틀 획득 기록을 경신했다. 2012년 10월 현재 조치훈의 통산 우승 회수는 72회에 달한다. 사카다가 2010년 타계하고 다른 추격자들이 까마득히 처져 있어 조치훈의 최다 타이틀 부문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세계무대서도 조치훈은 두 차례 우승했다. 1991년 제4회 후지쓰배, 2003년 제8회 삼성화재배의 주역이 조치훈이다. 올해(2012년) 여름엔 제7기 잉씨배 8강까지 진격하는 노익장을 과시했다. 젊은 시절 조치훈의 경합 상대였던 고바야시나 다케미야(武宮正樹), 이시다(石田芳夫)등은 꿈도 못 꾸는 활약상이다.

일본 타이틀무대에서는 기성전, 명인전, 본인방전 등 3대 메이저 타이틀 동시 석권을 ‘대3관’이라 해서 최고의 영예로 친다. 조치훈은 평생에 걸쳐 이를 네 차례나 달성했다. 83년 처음 신화를 쓴 뒤 이후 96년~98년 사이 3년 연속 대삼관 등정이란 불멸의 역사를 썼다. 긴 역사 속에 뛰어난 기사들을 다수 배출한 일본에서도 이 부문의 성취도는 조치훈이 단연 독보적이다.

3대 메이저기전은 7번승부로 벌어진다. 조치훈은 이 ‘대3관급’ 기전에 모두 38회 출전, 29회 우승했다. 29회 우승 중엔 0대3으로 뒤지다가 4대3으로 역전 우승한 경우도 세 번이나 있었다. ‘목숨을 걸고 둔다’는 그의 좌우명대로 모든 힘을 쏟아 붓는 승부기질이 이런 기적을 연출해 냈다.

일본 타이틀계의 ‘그랜드슬램’ 달성 역사도 조치훈이 열었다. 바둑에서의 그랜드슬램이란 일본의 7대 메이저기전을 모조리 한 차례 이상씩 쟁취한 경우를 말한다. 조치훈은 1987년 그 때까지 유일하게 미답(未踏) 상태였던 천원을 라이벌 고바야시로부터 탈취, 사상 첫 그랜드슬램의 위업을 달성했다.

일본 최고(最古)의 기전인 본인방전서 최장기간 정상을 지킨 기사도 조치훈이다. 그는 1989년부터 1998년까지 장장 10년 간 본인방의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밖에 2008년 8월 작성한 개인통산 2000국 돌파 기록도 일본 바둑 역사상 두 번째로 수립된 대기록이었다.

조치훈은 앞으로도 각 부문 기록경신 퍼레이드를 계속할 수 있을까. 그가 아무리 불꽃 투혼으로 무장한 불세출의 승부사라고 하지만 56세의 나이를 감안할 때 쉽지는 않아 보인다. 물론 최다승 부문은 조치훈의 몫으로, 자신의 기록을 계속 경신해 갈 것이다. 문제는 최다타이틀 부문. 여기서도 조치훈 스스로 자신의 기록을 좀 더 갈아치워 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일단 최근 1년간의 활약상을 돌아보면 상당히 희망적이다. 2012년 들어서서 조치훈은 무려 3차례나 각종 기전 결승에 올라 타이틀 접수 직전까지 가는 실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3월 17일 벌어진 제31기 NEC컵 결승에서 다카오(高尾神路 )에게 분패, ‘은메달’을 획득했다. 조치훈은 그 1주일 뒤엔 제7기 다이와(大和)증권배 패권을 놓고 이야마와 맞붙은 끝에 준우승했다.

7월엔 제2회 마스터즈컵 결승에서 왕밍완(王銘琬)9단에게 3집반을 패해 우승을 놓쳤다. 마스터즈컵은 50세 이상의 현역 중에서 7대 타이틀을 획득한 경험이 있는 기사들만 대결시키는 최고스타 경연장으로, 1년 전 벌어졌던 제1회 대회가 바로 조치훈의 72번째(마지막) 우승 무대였다.

마스터즈컵 결승에 오르기까지 조치훈은 요다(依田紀基), 다카오, 장쉬(張栩) 등을 꺾었으나 마지막 순간 이야마에게 막혔다. 일본을 대표하는 초1류들을 줄줄이 눕히는 솜씨는 전성기 못지않다. 조치훈의 타이틀 추가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유다. 조치훈 외에 1년에 3차례씩이나 결승전에 오르는 기사는 거의 없을 정도다.

아직 한참 후의 얘기가 되겠지만 조치훈의 최고령 타이틀 획득 도전 여부도 흥미롭다. 20세기 중 후반 일본 열도를 석권했던 사카다(坂田榮男)는 50이 넘도록 초1류 대열을 지켰고 53세 때 마지막 우승(십단)을 따냈다. 사카다 만큼 꾸준하진 못했지만 후지사와(藤澤秀行)는 66세 때, 구토(工藤紀夫)는 57세 때 정상의 일각을 정복하는 괴력을 보였다. 조치훈이 이 기록에도 도전할 수 있을까. 실력, 정신력, 체력 등 많은 것을 갖춘 조치훈에겐 도전해 볼 만 한 과제다.

끝으로 조치훈의 1400승과 비교해 한국의 다승 순위를 비교해 보자. 국내 최다승 기록 보유자는 조훈현으로, 1875승(9무 793패)를 기록하고 있다(2012년 10월 17일 현재). 2위는 1608승(540패)의 이창호, 3위는 서봉수(1507승)이다. 그 뒤로는 유창혁이 1166승, 서능욱이 1001승으로 뚝 떨어진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참고기록일 뿐이다. 한국과 달리 일본의 대국 수는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연간 최다대국자는 80~90국에 이르는 반면 일본은 50국 넘는 기사가 많지 않다. 대부분의 일본 기사들은 연간 30~40국에 그친다.
한국보다 프로 역사가 훨씬 긴 일본의 역대 통산 최다승 기록이 1400승에 불과하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런 대국 환경을 감안할 때 조치훈의 일본 바둑사상 첫 1400승 등정기록은 큰 의미를 인정받을 만하다.
Top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