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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盤上의 마지막 황제들
 
▲ 후지쓰배 마지막 우승자가 된 박정환 9단

해마다 광복의 달 8월에 일본으로부터 전해져오던 낭보가 올해는 뚝 끊어졌다. 후지쓰배 우승 소식이 그것. 일본이 주최하는 유일한 세계기전인 후지쓰배는 매년 봄에 시작해 8월에 우승자를 탄생시켜왔다. 작년까지 총 24회 중 한국기사들이 10연패(連覇) 포함 15회를 석권했었다.

이세돌 박영훈 박정상 강동윤 박정환이 모두 첫 세계제패의 감격을 후지쓰배에서 맛 봤다. 한국이 너무 독식을 해 대회를 더 이상 계속할 의욕이 사라진 것일까. 그것도 하나의 이유가 됐을지 모른다. 아무튼 지난 해(2011년) 연말 후지쓰배 주최측은 ‘대회 폐지‘ 공문을 각국 바둑기관에 통보했다.

가장 섭섭한 사람은 아마도 박정환이었을 것이다. 세계타이틀 보유자 명단에 1년 동안 올랐던 이름이 사라지게 됐기 때문이다. 그냥 타이틀도 아닌 세계타이틀은 프로기사들에겐 그야말로 꿈이요, 로망이자 목표물이다. 후지쓰배 등 모든 세계타이틀은 보유자의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는 선수권제다. 그렇긴 해도 2연패(連覇), 3연패의 꿈을 기회도 없이 날려버린 아쉬움은 클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 부분은 정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다. ‘영원한 후지쓰배 우승자’로 남게 됐기 때문이다. 특정 성(城)의 영원한 성주(城主)로 이름 석 자가 남는다는 것도 기분 나쁠 일은 아니다. 적어도 후지쓰배에 관한 한, 그리고 그 대회가 다시 부활하지 않는 한 이 대회의 최고봉은 영원히 박정환일 수밖에 없다.

이런 예는 매우 많다. 바둑의 세계에서 기전(타이틀전)이란 생명체와 같아서 새로 태어나기도 하고, 수명을 다 마치고 사라져버리기도 한다. 기전이 문을 닫으면 마지막 기(期) 챔피언은 영원한 황제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 갖고 있던 타이틀의 폐지로 낙동강 오리알(?)처럼 남은 마지막 황제들을 살펴보려 한다. 한 두 해 열리다가 없어진 기전들은 부지기수이므로 여기서는 아예 뺐다.

20세기 말까지 대표적인 한국 주최 국제대회로 꼽혔던 동양증권배는 98년 제9회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누가 ‘라스트 챔피언’이었을까. 모두가 짐작하는 대로 이창호다. 9기 결승서 당시 라이벌 관계였던 유창혁을 3대1로 누르고 통산 최다(4회) 우승을 기록했다. 동양증권배는 사라졌으나 이창호의 명패(名牌)는 역대 대회 우승자 명단 제일 마지막 자리에서 여전히 반짝거리고 있다.

국내 타이틀 중 최고(最古)의 기전은 국수전이다. 올해 56기를 맞은 국수전은 도전자 선발을 위한 토너먼트가 한창 진행 중이다. 이 국수전과 쌍벽을 이루던 최고위전이 1999년 제38기를 끝으로 닻을 내렸다. 최고위 타이틀의 마지막 주인 역시 이창호였다. 무려 6기를 연패(連覇) 중이던 기전의 폐지 소식을 들었을 때 이창호의 심정은 어땠을까.

하지만 6연패 정도는 ‘새발의 피‘였다. 이창호는 역시 국내 굴지의 기전으로 꼽히던 왕위전에서 12년 연속 우승을 계속하던 중 기전 폐지 소식을 들어야 했다. 2007년 제41기 대회가 마지막이 됐다. 말이 쉬워 12연패(連覇)지, 그야말로 정든 고향집을 강제로 떠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이 기전이 더 계속됐더라면 그의 연패(連覇) 행진이 어디까지 계속됐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특정 기전의 연패(連覇)라면 이창호의 스승 조훈현이 기록을 갖고 있다. 그는 패왕전에서 78년 제13기부터 93년 28기까지 무려 16년 연속 군림했다. 패왕전은 2003년 37기로 문을 닫았다. 마지막 우승자는 유창혁이었다. 대회 폐지 소식에 조훈현은 유창혁 이상으로 서운해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밖에 96년 19기로 중단된 국기전, 97년 15기 만에 막후(幕後)로 사라진 대왕전의 임자도 이창호였다. 한 번 태어난 각종 바둑 타이틀전이 죽지 않고 계속됐다면? 그리고 이창호의 당시 파워가 계속됐더라면? 역사에 가정이란 부질없는 일이라지만 지금의 이창호는 우승 메달을 목에 주렁주렁 건 대략 20관왕 안팎의 초인으로 군림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창호나 조훈현, 유창혁 같은 베테랑급 강자들만 기전 폐지의 희생양이 됐던 건 아니었다. 젊은 층에도 있다. 대표적 기사가 박영훈이다. 그는 2005년 제16기부터 2008년 제19기까지 기성전을 4연패(連覇)하면서 ‘기성전의 사나이’로까지 불렸지만 20기는 영원히 열리지 않았다. 2008년이라면 박영훈의 나이 고작 23세에 불과했다.

어린 소년들의 꿈을 앗아간 무대들은 이밖에도 많았다. 이른바 신예기전들이다. 가장 긴 역사를 자랑했던 신인왕전의 경우 기라성 같은 차세대 거물들의 등용문으로 기능하다가 2008년 제18기로 문을 닫았다. 국제대회인 비씨카드배로의 발전적 해체라는 명분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아쉬운 일이었다. 이 무대의 ‘마지막 황태자‘는 김승재를 2대1로 꺾고 18기 우승을 장식했던 김기용이었다.

신예프로 10걸전도 비슷한 운명을 겪었다. 2008년 12기에서 김기용(대 박정환 2대1)을 마지막 우승자로 배출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김승재가 이원도를 제물로 정상에 선 신예연승최강전 역시 비슷한 무렵인 2008년 8기 대회가 마지막 잔치가 됐다. 3대 신예 기전이 거의 같은 무렵 약속이나 한 듯 사라진 뒤로 주니어 전문 타이틀전은 이후 신설되지 않고 있다.

비록 짧은 역사지만 특정 대회를 완전 석권한 예도 있다. 까마득한 옛날인 1969년 제1회 한국기원선수권전이란 게 열려 고재희가 김익영을 꺾고 초대 챔피언이 됐다. 이 대회는 기계(棋界) 파동으로 일단 중단됐다가 통합 이후 77년 부활, 2년 더 계속된 후 완전히 막을 내렸다. 2기와 3기까지 모두 고재희가 우승했다. 올해 73세의 원로기사인 고재희 8단은 ‘한국기원 선수권자’ 타이틀을 평생 누리고 있다.

요즘 기전들은 전년도 챔피언의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고 똑같은 자격으로 새 주인공을 뽑는 이른바 선수권제 방식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예전에는 타이틀 보유자가 도전자를 상대로 방어전만 치르면 됐다. 차기 연패(連覇)에 50%의 산술적 확률을 갖고 있었다는 뜻이다. 타이틀전 자체가 날아갈 경우 그 권리가 하루 아침에 사라진 셈이다. 정신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상당한 타격이었을 것이다.

최근 외신에 따르면 중국은 기성전이란 이름의 최고 타이틀전을 새로 출범시켰다. 우승상금이 60만 위안(약 1억원)에 이른다. 그런가 하면 일본의 최고타이틀 이름도 기성전이다. 올해 36기까지 치러 장쉬가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 측은 중국과 일본 기성전 우승자 간의 대결도 추진할 뜻이 있는 것으로 보도됐다.

한국 기성전이 사라진 것은 이 대목에서도 아쉽다. 한국의 기성전은 1990년 출범 당시만 해도 파격적인 상금 규모를 자랑했다. 한국 기전들이 오늘날의 상금규모나마 유지하게 된 출발점은 기성전이었다. 한국 기성전이 존속됐더라면 한 중 일 통합 기성전도 가능했을 것이다. 두 경쟁국이 최대타이틀 이름으로 쓰는 기전 이름이 한국에서만 사멸(死滅)했다는 사실이 좀 우울하게 느껴진다. ‘마지막 기성’ 박영훈이 특히 통탄할 일이다.

프로기전의 수명은 실물경제의 안정성과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 그래서 더 비감하고 애잔하다. 폐지된 기전들 중 상당수가 20세기 말 IMF시절 또는 2000년대 진입 후까지 이어진 경제난의 유탄을 맞고 사라져갔다. 지배하던 성(城)이 함몰된 허탈함에만 머물 틈도 없이 ‘폐왕(廢王)’들은 다른 기전을 향한 공성(攻城)에 나서야 했다. 그들은 때로는 더 융성하고 때로는 몰락했다.

중국 청대(淸代) 최후의 임금인 푸이(溥儀)가 떠오른다. 세 살 때 보위에 올라 2000년에 걸친 중국 황제 지배체제 종언의 중심에 섰던 푸이는 ‘마지막 황제’로 중국인들 가슴 속에 애틋하게 남아있다. 자신의 뜻과 관계없이 단 3년 만에 보좌에서 내려온 뒤 훗날 다시 만주국 황제로, 그리고 소련군 포로를 거쳐 종당엔 베이징의 기계수리 상점 점원에 이르는 파란만장한 삶이었다.

명멸(明滅)을 거듭하는 타이틀전 세계에선 앞으로도 끊임없이 ‘마지막 황제’가 출현할 것이다. 19세 나이에 본의 아니게 폐위(?)된 세계챔프 박정환의 예에서 승부세계의 덧없음을 아프게 실감한다. 진정한 의미로서의 영원한 황제, 세계 최고기사의 자리에 오르는 것으로 그 아쉬움을 대신하기 바란다. 지금껏 선대(先代) ‘폐왕’들이 그래 왔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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