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회 영재입단자 - 신진서(좌), 신민준(우)
바둑은 연령제한이 없는 게임이다. 유치원 어린이와 80대 노인이 함께 마주 앉아 즐기는 유희는 지구상에서 아마 바둑 밖에 없을 것이다. 가위 노소동락(老少同樂)의 대표적 게임이다. 하지만 그건 일반 동호인들 이야기이고, 일인자를 다투는 프로세계로 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다른 어떤 승부종목보다도 전성기가 짧은 게 바둑이더란 얘기다.
바둑의 경우 나이 서른에 육박하면 제 아무리 뛰어난 스타라 해도 내리막길에 들어서게 마련이다. 마흔 살에 가까운 스포츠 스타들이 그라운드에서 펄펄 나는 광경을 볼 때마다 너무도 대조적이란 생각이 든다. 결국 두뇌세포가 팔다리 근육세포보다 훨씬 빨리 노화하는 셈이다.
두뇌세포는 그러나 빨리 노화하는 대신 개화(開花) 시기도 다른 어떤 승부보다 빠르다. 바둑뿐 아니라 주산 컴퓨터 체스 등 머리로 하는 게임은 시작이 이를수록 빠른 속도로 실력이 붙는다. 똑같은 재질을 가지고 있어도 다섯 살에 입문하는 사람과 일곱 살에 입문하는 사람의 발전 속도는 판이하다.
세계적 스타기사들은 거의 대부분 다섯 살 전후 바둑돌을 처음 쥐었다. 그리고 10대 중반에 이르기 전에 프로 자격증을 획득했다. 재주가 뛰어나 빨리 입단한 것일 텐데, 빠른 입단은 동시에 대성(大成)의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세계바둑에 큰 족적을 남긴 스타들의 입단 시점을 보면 예외 없이 놀라울 만큼 빠르다.
세계 최연소 입단기록 보유자는 조훈현 九단이다. 9세 7개월 때 프로가 된 그는 157회나 우승컵을 들어 올려 이 부문 세계 최고기록을 가지고 있다. 일본 역시 최연소 2위 입단기록(11세)과 최다우승(72회) 기록을 갖고 있는 기사는 조치훈이란 동일인물이다. 현재 일본 일인자로 나선 23세 청년 이야마는 12세, 대만 출신으로 각종 기록을 양산한 대스타 린하이펑도 12세에 프로가 됐다.
한국 최연소 입단 베스트 10을 표로 보면 다음과 같다.
여성 기사 3명이 포함됐다. 이들을 모두 최고 난도(難度)의 입단대회 조기 통과자 10명에 포함시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여성은 여성끼리 별도의 입단대회를 치러 입단했기 때문이다. 이들을 빼고 본다면 모두가 한 시대를 풍미한 희대의 스타들이었다.
하지만 입단 문호가 너무 좁다보니 뛰어난 영재들이 바둑을 버리고 아예 학업으로 돌아버리는 일이 잇달았다. 각 바둑도장 사범들이 천재성에 반해 ‘필생의 작품‘으로 공을 들이려했는데, 그들이 비전이 안 보이자 바둑을 떠남으로써 사범들을 허탈하게 만든 예가 허다했다. 좁은 문을 뚫고 간신히 입단은 했지만 기력이 소진돼 정작 프로세계에선 뻗어나가지 못하는 경우도 속출했다.
한국과 비슷한 상황이던 중국은 영재들에게 일정부분 혜택을 주는 방식을 2006년 처음 도입했다. 입단대회 출전을 남자는 17세, 여자는 20세 이하로 못 박았다. 그리고 매년 한 차례 20명(남자 17명 여자 3명)의 프로를 뽑는데, 남자의 경우 상위 13명까지만 성적 순으로 입단시켰다. 나머지 4명은 15세 미만의 어린 출전자에게 입단 우선권을 주었다.
이런 방식을 통해 놀라운 재주를 지닌 영재들이 속속 발굴됐다. 올해 초 세계바둑계를 강타한 중국 소년군단의 이름을 대략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씨엘얼하오(1999)
양딩신(1998)
리친청(1998)
천시엔(1997)
황윈송(1997)
미위팅(1996)
통멍청(1996)
판팅위(1996)
당이페이(1994)
마루롱(1994)
타오신렌(1994)
이들의 활약상은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양딩신은 지난 4월 리광배를 제패, 이미 정상을 정복했다. 13세 6개월의 정상정복은 이창호의 14세 1개월을 능가하는 세계 최단기록이다. 판팅위도 지난해 가을 중국 개인전과 마인드스포츠 개인부 우승을 거머쥐었다. 당이페이는 올해 국제무대에서 눈부신 연승가도를 달리며 제4회 비씨카드배서 준우승의 실적을 올렸다. 한국의 내로라하는 강자들이 잇달아 중국의 10대 소년들에게 일격을 당해 탈락했다.
연간 12명(플러스 알파)을 기계적으로 입단시키던 한국도 이에 자극을 받아 지난 2010년 영재 입단대회 도입을 결정했다. 영재의 정의는 ‘시행연도 기준 14세 이전, 1월 1일 이후 출생자’다. 그 규정에 따라 올해 7월 7일부터 17일까지 제1회 영재입단대회가 열렸다. 98년 1월 1일 이후 출생자 107명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2003년 출생한 9살짜리 소년이 3명이나 있었다. 최연소 출전자는 2004년 1월에 태어난 초등학교 2학년생 박지웅 군이었다.
대회는 예선부터 출전자들을 한 조에 4명씩 집어넣고 패자부활제를 가미해 2명씩 다음 라운드에 올리는 이른바 더블 일리미네이션을 택했다. 승자는 승자끼리, 패자는 패자끼리 붙여 2연승자가 다음 라운드에 올라가고 1승1패자가 최종 티켓을 다투는 방식이다.
최종 4강전서 신진서가 2연승으로 먼저 입단 관문을 뚫었고, 패자전에 나간 신민준이 1승 1패 동률의 이어덕둥을 꺾어 역시 프로 면장을 손에 쥐었다. 신진서는 2000년 생으로 초등학교 6년생, 신민준은 1999년 태어난 중학교 1년생이다. 한국도 마침내 2명의 영재입단자를 갖게 된 것이다.
8일 동안 하루 2판씩 두는 강행군이었는데 신진서 12전 전승, 신민준 12승 1패로 둘 모두 체력도 합격점임을 과시했다. 정확한 나이를 따지면 신진서는 12세 4개월, 신민준은 13세 6개월이다. 앞의 표에 대입하면 신진서는 이세돌과 동률 5위에 해당한다. 두 신 초단의 입단연령을 한국바둑의 신병기로 한창 이름을 떨치고 있는 ‘형’들과 비교해 보자.
◇신예스타들의 입단연령
박정환 13세 4개월(93년 1월생, 2006년 5월 입단)
나 현 15세 4개월(95년 1월생, 2010년 5월 입단)
이동훈 13세 3개월(98년 2월 생, 2011년 5월 입단)
최 정 13세 7개월(96년 10월생, 2010년 5뤌 입단)
변상일 15세 0개월(97년 1월 생, 2012년 1월 입단)
신진서와 신민준은 최고의 활약을 보이고 있는 현역 영재프로들에 비해 전체적으로 더 이른 나이에 입단했음이 확인된다. 물론 이번 입단대회는 98년생 이후만을 대상으로 치러진 관계로 기존 신예스타들보다 상대적으로 혜택을 받은 게 사실이다. 입단 직전 연구생 랭킹에서 신진서는 2위, 신민준은 15위를 기록 중이었다.
하지만 신민준 신진서 두 신예 초단의 빠른 성장을 의심하는 전문가는 한 명도 없다. 입단은 바둑 지망생들에게 거대한 벽이자 스트레스다. 이 부담감을 조기에 떨쳐내고, 최고 무대에서 선배 프로들에게 담금질 당하다 보면 무섭게 성장하는 것이 지금까지 여러 차례 입증됐다. 중국만 해도 영재코스로 조기 입단한 꼬마초단들은 처음엔 저조했지만 곧 무서운 속도로 스타덤에 올랐었다.
왕년의 이창호 역시 이 같은 사실을 입증한 바 있다. 한국기원은 86년 여름부터 입단대회 방식을 개혁, 일반인을 제외시키고 연구생 리그를 통해서만 프로를 뽑았다. 연구생 1기로 등단한 이창호는 별로 강하지 못했다. 심지어 제1회 프로신예 대 아마 최강 대결서 안관욱 아마6단에게 호선으로 패했을 정도였다. 이창호가 13세, 二단 시절 얘기다. 하지만 그는 불과 1년 뒤 바둑왕전 우승으로 세계 최연소 타이틀획득 기록을 세웠다.
여러 정보를 종합하면 신진서 신민준 두 꼬마는 프로무대에서도 결코 녹록치 않은 실력을 선보일 전망이다. 올해 초까지 독학으로 공부하다 충암도장에 내던져진 신진서는 프로 신예들에 전혀 뒤지지 않는 기량을 보여왔다는 것. 또 이들 2명이 입단하기 전까지 ‘최연소 기사‘ 타이틀을 보유했던 이동훈은 1년 아래 신민준과 양천대일도장 시절 라이벌이었다.
프로에 발을 들여놓은 둘은 쉴 틈 없이 곧바로 프로기전에 출전하게 된다. 가장 임박한 삼성화재배는 대진 추첨이 끝난 관계로 9월에 시작될 신인왕전 또는 원익배가 둘의 데뷔무대가 될 공산이 크다.
중국의 소년부대가 각종 국제대회를 휘젓기 시작했을 때 우리 바둑계는 얼마나 낙심했었던가. 그리고 부러웠던가. 온몸에 재주와 투지를 주렁주렁 매단 채 프로무대에 등장한 신진서 신민준 두 꼬마가 천군만마처럼 든든하다. 무럭무럭 커서 자신들이 목표로 한다는 ‘박정환급’으로 하루 빨리 자리잡기를 기원한다. 그들의 성공은 곧 영재대회와 한국바둑계의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