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 19세 소년 박정환이 6월 랭킹에서 1위로 올랐다. 한국바둑랭킹이 2005년 8월 처음 시행된 이후 7년 사이 처음 발생한 사건이다.
박정환의 1위 등극은 곧 그 동안 부동의 1인자였던 이세돌의 상대적 퇴보를 의미한다. 이세돌은 6월 랭킹에서 9754점을 획득, 박정환(9782점)에 28점 뒤져 둘이 자리를 바꿨다. 전월 대비 박정환은 52점 상승, 이세돌은 22점 하락이다.
그간 바둑계의 ‘지존’으로 군림했던 이세돌의 오랜 왕조가 일단 깨졌다는 점이 충격적이다. 이세돌은 한국기원이 랭킹제를 도입한 이후 가장 오래 1위 자리에 올랐던 기사다. 총 83개월 동안 통산 58회에 걸쳐 1위를 차지했다. 또 지난 달(5월)까지 27개월 연속 선두 자리를 놓치지 않아왔었다.
박정환의 랭킹 곡선을 보면 한 두 걸음 하향(下向)한 적이 없지는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완벽한 상승커브를 보여준다. 2006년 5월 입단 후 이듬해 10월 43위로 처음 랭킹에 ‘입적(入籍)’했다.
그 뒤 상승을 거듭하다 2010년 1월 처음 10위권 안으로 진입했고, 다음 달에는 무려 4위까지 도약했다. 그 뒤 2위~6위 사이를 오가다가 2011년 9월 2위로 복귀, 9개월 간 선두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더니 기어이 톱랭커에 등극한 것.
이세돌은 4월 랭킹 발표 때 2위 박정환에게 9점 차까지 쫓겨 자칫 한국 톱랭커 자리 교체가 2개월 더 앞당겨질 뻔 했다. 이세돌은 4월 치러졌던 GS칼텍스배 준결승 맞대결서 박정환을 제압, 5월 랭킹서 46점 차로 차이를 벌림으로써 한숨 돌렸지만 5월 크게 부진했다. 박정환이 8전 전승의 쾌조를 보인 사이 3승 3패의 범작(凡作)에 그쳐 마침내 보좌(寶座)를 내주고 만 것.
그렇다면 ‘박정환의 시대’는 막이 올랐다고 볼 수 있을까. 이 질문에 한 마디로 답변하기란 쉽지 않다. 아마도 ‘큰 흐름으론 그렇다고 말 할 수 있고, 단기적으론 단정할 수 없다’가 정답이 될 것이다. 바둑계는 조남철 김인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 등이 역대 1인자 계보를 이어왔고, 대다수 전문가들은 박정환을 큰 산맥의 다음 주역으로 점찍어 왔다. 따라서 박정환의 이번 1위 등극은 바둑사적으로도 상당한 의미를 띠고 있다.
하지만 중·단기적으로 박정환이 완전히 한국 1위 자리를 꿰찼다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다. 불과 28점 차로 권좌를 내 준 이세돌이 6월 한 달 맹활약을 펼치면 7월 랭킹에서 얼마든지 재역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세돌 뿐만 아니고 원성진 박영훈 최철한 백홍석 등 3~6위권 기사들에게도 기회가 열려있다. 한국바둑랭킹은 전월(前月) 점수를 바탕삼아 이번 한 달 성적을 합산, 다음 달 5일 발표하는 방식이다.
올해 29세인 이세돌의 기세는 아직 흔들림 없이 등등하다. 한국은 물론 세계대회에 나오는 외국기사들도 가장 경계하는 대상은 여전히 이세돌이다. 그는 얼마 전 비씨카드배 우승벨트를 풀었지만 아직도 국제대회인 춘란배와 국내 타이틀인 올레배, GS칼텍스배를 가지고 있다. 이 중 올해 우승컵을 받아든 대회는 GS칼텍스배 하나다.
박정환은 지난 해 생애 처음으로 국제대회 우승을 안겨줬던 후지쓰배에다 올해 바둑왕전과 맥심배 우승컵을 연속 따냄으로써 역시 3관왕으로 군림하고 있다. 한국 엔 일당백의 톱레벨 기사들이 여럿 있지만 복수(複數) 타이틀 보유자는 이들 2명 뿐이다. 이 대목에서도 두 기사의 경합은 한 치 양보 없이 팽팽하다.
둘 간의 맞대결 성적은 어떨까. 이세돌이 5승 1패로 박정환에 크게 앞서 있다. 이 점 때문에 이세돌을 박정환의 뒷 순위에 자리매김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앞서도 말 했듯 랭킹은 전월(前月) 점수를 기준으로 최근 한 달 성적을 가산(加算)하는 방식이다. 5승 1패라는 맞대결 성적은 최근 한꺼번에 작성된 것이 아니었다. 이세돌의 위상이 박정환의 그것보다 훨씬 위였을 때부터의 대결 결과가 모두 누적된 것이 통산 상대전적이란 뜻이다.
둘은 2007년 처음 조우, 그 해 이뤄진 3판에서 이세돌이 모두 이겼다. 박정환은 2010년 5월 이세돌을 상대로 처음 ‘판맛’을 봤으나 이듬해 4월 열린 제3회 비씨카드배 준결승전서 다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올해 4월 제17회 GS칼텍스배 준결승서 또 한 번 이세돌이 승리했다. 최정상급 기사들 치곤 만남이 매우 뜸했다.
일단 지금까지의 성적만을 보면 이세돌이 더 세다는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박정환이 본격 2인자(랭킹 기준)로 올라선 것이 작년 가을로 아직 1년도 채 안 됐다. 게다가 두 기사가 타이틀을 놓고 격돌한 적도 아직 없다. 본격적인 영역싸움, 상금싸움, 랭킹싸움은 이제부터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보는 이유다.
이세돌의 전대(前代) 제왕이었던 이창호는 이세돌보다 8세 위인 37세다. 그의 랭킹 변화를 살펴보는 것도 참고가 될 것 같다. 이창호는 처음 랭킹제가 도입됐던 2005년 8월부터 10월까지 내리 3개월 톱랭커로 선정된 것을 포함해 2006년 2월~2007년 1월 사이 12개월 1위 자리를 지켰다. 2010년 2월을 마지막으로 물러날 때까지 통산 22회 랭킹 1위로 군림했었다. 2010년 3월 2위로.내려간 이창호는 이후 1위에 복귀하지 못한 채 서서히 내리막길을 걸어 올해 5월엔 11위까지 추락했다. 6월 한 단계 상승한 10위에 자리했다.
이세돌의 통산 우승 회수는 1995년 입단 이후 38회에 이른다. 조훈현(158회) 이창호(140회)에 이은 3위 기록이다. 38회 중 국제대회 우승은 15회로 이창호(21회·비공식전 2회 포함)에 이어 2위다. 이에 비한다면 현재의 박정환은 경력면에서 아직 이세돌에 필적할 정도가 못 된다. 총 우승 회수 8회, 그 중 국제대회는 단 1차례 뿐이다.
하지만 박정환은 이세돌과는 꼭 10살의 나이 차이가 있다. 2009년 4기 십단전부터 2012년 13기 맥심배까지 타이틀전 7연속 우승 행진 중이다. 13세 4개월 만의 입단, 14세 10개월의 첫 우승(6기 마스터즈 챔피언십),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2관왕, 국내 최연소 9단(17세 11개월) 등 앞서의 어떤 선배 거목(巨木)들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화려한 이력서를 만들어가고 있다.
랭킹제 확립 이후 총 83개월 동안 1위에 오른 회수는 이세돌(58회)이 압도적으로 많고 이창호(22회)와 최철한(2회)이 그 뒤를 따른다. 거의 7년 세월 동안 단 3명에게만 허용됐던 자리에 박정환이 처음 얼굴을 내밀었다는 사실은 중대한 의미가 있다. 게다가 그는 아직 채 스물도 안 된 10대 소년이다.
결국 나이라는 마지막 변수를 언급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을 것 같다. 조남철이 김인에게, 김인이 조훈현에게 지존 자리를 내주게 한 ‘원흉‘은 세월이었다. 조훈현은 이창호에게, 이창호는 이세돌에게 똑같은 과정을 거쳐 1선에서 물러났다. 그렇다면 이세돌은 최고봉의 자리에서 몇 살까지 버틸 수 있을까.
이창호의 경우 랭킹을 기준으로 한다면 2010년 35세 때까지 정상을 지켰다. 30대 진입 후에도 꾸준히 타이틀을 땄지만 영토(다관왕) 다툼에서 밀려나더니 2011년 2월 무관(無冠)으로 내려앉았다. 마지막 세계 메이저급 타이틀 획득(2005년 제5회 춘란배)은 30세 때 이뤄졌다.
이세돌 본인은 “서른다섯 살이 넘으면 내리막이 될 것 같다. 하지만 더 노력해서 앞으로 10년은 더 정상으로 버티고 싶다”고 말한다. 10년 뒷면 한국식 나이로 40세다. 박정환의 겸양과 엄살은 유명하다. “아직 실력이 안 되는데 1위에 올라 반성하고 노력하겠다”며 “이세돌 사범님께 계속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진짜 속 마음은 좀체 알 수가 없다.
결론적으로 이세돌과 박정환 두 기사는 앞으로 2~3년 정도는 최고 자리를 놓고 양보 없는 백열전을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세돌은 아주 완만한 하향커브를 각오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재능 외에 체력, 투지 등 승부사의 모든 조건을 갖춘 이세돌의 급격한 몰락은 상상할 수 없다.
이들 둘을 위협해 최선두권에 뛰어오를 제3의 인물은 현재로선 보이지 않는다. 이세돌의 독주시대가 막을 내리고 마침내 10살 터울의 이-박 세대전쟁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