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인 9단
바둑의 최고단위가 9단이라는 건 누구나 안다. 2006년 조남철 9단 타계 이후 국내 9단들 가운데 최고참은 단연 김인이었다. 김 9단은 1943년 생으로 올해 만 69세다. 김인은 나이뿐 아니라 1958년 만 15세의 나이에 프로가 돼 프로 경력으로도 후배들을 압도했었다.
하지만 최근 김인의 최고령 9단 기록은 박진열에게 넘어갔다. 1942년생인 박진열 8단이 지난 3월 20일 승단했기 때문이다. 박진열은 1975년 프로에 데뷔, 김인에 비해 경력에선 무려 17년이나 뒤지지만 나이는 한 살이 더 많다(물론 기사서열은 입단연도를 우선시한다).
이런 현상이 생길 수 있는 것은 초단부터 8단까지는 소정의 자격요건을 갖춰 승단하지만 9단에 이르면 더 이상의 승단이 제도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김인의 경우 83년 9단이 된 뒤 29년 째 그 자리에 묶여있다. 반면 이번 ‘최고령 9단’ 자리를 꿰찬 박진열은 프로데뷔 이후 9단이 되기까지 37년이 걸렸고, 8단에서 9단까지 소요된 기간은 8년이었다.
바둑의 단위에 상한(上限)이 있다 보니 뒤늦게 쫓아간 박진열의 최고령 9단 진입이 가능했던 셈이다. 김인보다 한 해 먼저 82년 9단에 올랐던 조훈현 또한 30년째 변함없이 9단이다. 이런 여러 데이터들은 앞으로 갈수록 9단의 숫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음을 말해준다. 9단은 프로 단위의 종착역이란 점이 핵심이다.
실제로 9단 숫자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박진열의 뒤를 이어 4월 안달훈 8단이 승단하면서 국내 입신(入神‧9단의 별칭) 숫자는 꼭 60명째를 채웠다. 이는 국내 프로기사 총수 268명 중 22.4%에 달하는 숫자다. 8단 22명, 7단 18명, 6단 21명, 5단 28명, 4단 28명, 3단 36명, 2단 26명, 초단 29명 등 다른 단위 숫자를 압도한다.
21세기 초까지만 해도 승단제도는 연공서열 개념이 강했다. 성적을 기준으로 하되 선후배의 순위가 뒤바뀔 정도의 파격은 막았다. 한꺼번에 몇 계단씩 뛰어올라 고참 선배들을 뛰어넘는 경우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런데 2003년부터 새로운 승단규정이 만들어지면서 세계대회 우승은 최고 3계단까지 점프하는 규정이 만들어졌다. 그 후 놀라운 일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1995년 입단 후 초년병 시절 승단대회를 외면했던 이세돌은 입단 8년이 지난 2003년 초까지도 3단에 머물러 있다가 6개월 사이 단숨에 9단이 됐다. 별도의 승단대회가 폐지된 상황에서 제7회 LG배 제패로 6단에 올랐고, 다시 잇단 우승행진 속에 7월 9단에 골인한 것이다.
노장 스타들만의 터전으로 인식되던 ‘9단 클럽‘은 새 승단제도 도입 이후 노장과 소장들이 함께 기거하는 새로운 풍속도를 만들어냈다. 김인 조훈현 유병호 노영하 서봉수 등으로 내려오는 50~60대 원로 9단들과, 이세돌 조한승 최철한 박영훈 원성진 등 30세 이하 젊은 9단들이 동서(同棲)하는 무대로 바뀐 것이다.
최근엔 한층 더 젊어졌다. 갓 스물을 넘긴 강동윤(22) 이영구(24) 윤준상(24)같은 새파란 청년들이 9단성(城)에 대거 입성했다. 1993년생으로 만 19세인 박정환 9단도 이 무리에 포함돼 있다. 10대들의 파워가 갈수록 맹렬해져가는 게 바둑계의 흐름이고 보면 ‘미성년자 입신(入神)’은 앞으로 더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
현역 9단 60명의 연령대별 분포를 보면 흥미진진하다. 1940년대 출생자부터 1990년대 출생자까지 6개 그룹이 빠짐없이 망라돼 있기 때문(40년대 3명, 50년대 21명, 60년대 4명, 70년대 13명, 80년대 18명, 90년대 1명). 최고령 박진열과 최연소 박정환의 나이 차는 무려 51년에 달한다.
결국 ‘9단 클럽‘은 시간이 흐를수록 몸집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박진열처럼 고참 기사들은 수십년 간 축적된 점수를 활용해서, 입단한지 얼마 되지 않는 기사들은 발군의 기량을 활용한 건너뛰기로 속속 9단 성(城)에 합류해 올 것이기 때문이다. 9단은 다른 어떤 단위보다도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오직 9단들에게만 출전자격을 주는 ‘맥심배 입신최강전‘의 연도별 참가규모에서도 놀라운 세포분열(?)의 실상이 실감난다. 첫 대회가 열렸던 1999년엔 총 20명의 9단 가운데 18명이 참가했는데, 올해 초 우승자를 가려낸 제13회 대회 출전자 수는 54명이었고 현재 9단 수는 60명이다. 13년 만에 꼭 3배로 불어난 것이다.
출전자가 해마다 늘어나면서 2008년 제10회 맥심배 때부터는 결국 예선제도를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지금처럼 9단의 증가속도가 빠르다면 맥심배 운영방식은 또 한 번의 변신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단일 제한기전인 맥심배야 어떤 방식으로건 지속 운영이 가능할 것이다. 문제는 전체 프로기사에서 9단의 점유 비율이 30%를 넘고 머릿수가 100명에 육박하는 초 매머드 집단으로 군림하게 될 경우다. 전체 기전 경영에 상당한 부담이 작용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먼 훗날의 얘기가 아니며 몇 년 안에 현실화된다.
연령만 이질적인 게 아니다. 바둑은 언젠가부터 젊은 날의 총기(聰氣)를 주무기로 겨루는 게임으로 변해버렸고, 그 결과 요즘엔 9단 내에서도 노장층과 젊은층의 기전 성적표는 완벽한 2원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상층부 절반은 사실상의 개점휴업(開店休業), 하층부 절반은 절정의 주연배우로 갈리는 모습이다.
10여년 전만 해도 상당수의 타이틀전들은 예선을 치를 때 고단진에게 혜택을 주었었다. 4단 이상은 2차예선부터, 7단 이상은 3차예선부터 참가시키는 식이다. 물론 지금은 꿈도 꿀 수 없는 옛 얘기가 돼 버렸다. 최고등급인 9단 내의 실력 불일치는 결국 전체 단위에 대한 신뢰도 저하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새로운 승단제도 도입에도 불구하고 단에 대한 불신이 여전한 이유다.
권위를 잃은 단위의 기능을 일부나마 대치하고 있는 것이 랭킹제도다. 2005년 도입한 랭킹제는 각종 타이틀전 운영의 기초자료로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국내외 대회 모두 최상위권 랭커들은 시드나 분리 편성으로 보호받고, 불필요한 예선을 생략할 수 있어 생산적이다. 하지만 랭킹이 단위제도의 미흡함 모두를 커버해 줄 수 없음은 물론이다.
‘9단 마을‘에서 동거(同居) 중인 노장들과 소장들 간의 여러 간극은 구성원들 모두를 불편하게 만든다. 노장들은 젊음을 바쳐 한국바둑을 여기까지 끌고 왔다는 자부심에 큰 상처를 받고 있고, 젊은 층은 젊은 층대로 대선배들 앞에서 처신하기가 쉽지 않다. 어떤 체제건 밸런스가 무너질 때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
차제에 9단의 벽을 허물고 10단 이상도 허용하는 게 어떠냐는 제안도 조심스럽게 등장한다. 8단까지 적용되는 승단점수를 9단에게도 적용해 10단 이상을 인정함으로써 9단의 지나친 비대화, 연령 및 성적의 양극화 현상으로부터 탈피하자는 제안이다. 무한정 승단의 폐해가 우려되지만 올라갈수록 높은 승단점수를 요구하면 막을 수 있다. 검토해 볼 만 한 안이다.
아무튼 바둑계는 그래도 기존 승단제도를 고수해 ’9단 반, 비9단 반‘ 시대를 맞을 것인지, 그리고 9단진 내부의 심화돼 가는 분화현상을 외면할 것인지 등에 대해 한 번쯤 ’점검‘이 필요한 시기를 맞았다. 가장 동경의 대상이 돼야 할 최고단 조직이 부조화와 어색함의 대표집단으로 굳어버린다면 바둑계 전체의 심각한 이미지 실추가 불가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