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이징에 위치한 중국기원, 3월 10일 중국기원 대회장에서 바이링배 통합예선모습
중국 바둑이 올 들어 엄청난 힘을 폭발시키고 있다. 최근 몇 년 간 팽팽하던 한-중 간 세력 균형을 깨고 성큼성큼 앞서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 구조를 곰곰이 살펴보면 중국 주니어 유망주들의 무서운 상승세가 원인임을 알 수 있다.
최근 열렸던 제1회 바이링(百靈)배와 제4회 비씨카드배가 이를 확인시킨 무대가 됐다. 바이링배 통합예선 결과 한국 출전선수 87명 중 본선 64강을 밟은 기사는 고작 12명에 불과했다. 37명이 올라간 중국에 비해 3분의 1에도 못 미쳤다.
숫자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름도 생소한 중국 소년들이 대거 본선 명단을 차지했다는 사실이었다. 통합예선을 통과한 중국기사 중 90년대 출생자가 무려 22명에 달했다. 한국(5명)의 4배가 넘었다. 95년 이후 출생기사 수도 중국이 8명, 한국은 아마추어 1명을 포함해도 2명 뿐이다. 중국이 눈부신 속도로 세대교체를 이뤄가고 있다는 생생한 증거였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톱스타들이 줄줄이 낙마했다. 랭킹 4위, 5위인 강동윤과 원성진, 10위 허영호 등이 1회전서 사라졌다. 최근 절호의 컨디션을 보여오던 6위 김지석도 본선행에 실패했다. 모두가 무명에 가까운 중국 소년들이 휘두른 한 칼에 희생됐다.
비씨카드배에선 한국의 10위까지의 톱랭커 중 9명이 32강 대열에서 탈락했다. 한국은 물론 세계 1인자로 추정되던 이세돌을 필두로 박정환 최철한 원성진 강동윤 김지석 조한승 이영구 이창호가 줄줄이 낙마했다.
한국 기성스타들을 탈락시킨 중국 유망주들의 출생연도를 보면 입이 딱 벌어진다. 1999년생인 씨에얼하오(謝尒豪)를 필두로 양딩신(楊鼎新)과 리친청(李欽誠)이 1998년생이다. 미위팅(羋昱廷) 판팅위(笵廷鈺) 등 2명의 96년생은 이미 각종 국내외 대회서 이름을 떨치고 있다. 90년~95년 사이 태어난 유망주들은 셀 수도 없이 많다.
10대 중후반 연령대의 중국 소년들은 이제 더 이상 한국에 대해 미래 아닌 현재의 위협으로 떠올랐다. 지난 해까지만 해도 그저 유망주로만 불렸던 그 앳된 소년들이 아니었다. 어떻게 이토록 빠른 성장이 가능했을까.
답이 바로 나온다. 중국 특유의 조기입단 제도 효과다. 이것은 상대적으로 한국 입단제도가 미흡했다는 얘기도 된다. 중국은 바둑이 나이의 게임임을 일찌감치 간파, 어린 프로 지망생들에게 특별한 혜택을 주는 방식을 써왔고 그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입단제도를 오늘날처럼 개편한 것은 2006년부터였다. 우선 남자는 17세, 여자는 20세를 넘은 사람은 프로 입단대회에 나올 수 없게 했다. 매년 여름 한 차례 남자 17명, 여자 3명 등 총 20명 정도를 선발한다. 각 성(省) 선발전을 거친 유망주들이 모여드는데 그 수가 600명을 넘곤 한다. 자체로 엄청난 열기다.
남자의 경우 17등 안에 든다고 무조건 입단하는 게 아니다. 상위 13명을 입단시키고, 14~17위 사이에 든 지망자 중 15세를 초과한 선수는 탈락시킨다. 15세 미만의 차 순위 어린이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이렇다 보니 해마다 입단자 연령분포는 9세~15세 사이에서 형성된다. 입단자 중 3분의 1, 즉 6~7명은 10세 이하일 경우가 많다.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의 나이에 프로가 된 중국의 어린 영재들은 처음엔 기대했던 만큼의 성적을 내지 못한다. 기량이 아직 설익은 채 프로가 됐기 때문이다. 중국의 2단 이하 저단자들이 제대로 프로 대접을 못 받아온 이유다. 그러나 입단에 대한 두려움을 일찌감치 떨친 이들은 프로 선배들 사이에서 부대끼며 눈부신 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 요즘 성적을 올리는 10대 스타들 대부분이 이런 과정을 거쳤다.
중국 바둑계가 나이에 얼마나 민감한지 엿보게 하는 사건이 몇 년 전 발생해 큰 화제를 낳았었다. 한 소년이 입단대회를 신청했는데, 중국기원이 그의 뼈 나이(骨齡)를 검사한 뒤 출전 상한연령을 초과한 18세로 나왔다며 출전을 허가하지 않은 사건이었다.
중국기원이 이처럼 나이에 엄격한 것은 일정 연령이 넘으면 대성할 수 없어 입단을 시켜주더라도 당사자에게나 중국 바둑계로나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한 때문이었다. 반면 학부모들은 어렵게 바둑에 투신한 자녀가 나이 초과로 테스트조차 못 받는 상황을 맞는 것은 너무도 끔찍한 일이어서 종종 호적 조작 사건이 발생한다는 것.
뼈 나이까지 검사할 정도로 규제하는 것은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런 주도면밀함이 아니었다면 오늘날 중국 소년들의 도약 또한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이 사건은 프로지망생과 부모의 바둑에 대한 열정, 허술한 호적 관리, 중국기원의 확고한 의지 등 다양한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입단제도는 어떤가. 연간 12명 플러스 알파를 뽑는다. 연초에 벌어지는 일반인 입단대회서 64강 스위스리그 방식으로 상위 7명이 프로가 된다. 그리고 여름에 영재 대회 2명, 여자 대회 2명, 지방연구생 대회 1명 등 5명이 수졸(守拙)로 탄생한다.
이 방식은 지난 2010년 12월 제정, 발표됐다. 핵심 포인트는 영재들만의 별도 입단루트가 만들어졌다는 대목이다. 영재의 정의는 ‘시행연도 기준 14년 이전 1월 1일 이후 출생자’로 돼 있다. 2012년 7월 첫 적용될 올해 영재 입단대회의 경우 98년 1월 1일 이후 태어난 어린이, 즉 만 14세 이하 소년들이 해당된다.
‘알파’는 이른바 ‘포인트 입단’으로 불리는 특별입단제도를 의미한다. 아마추어도 출전할 수 있는 오픈대회에서 소정의 성적을 올렸을 경우 받는 포인트를 합산, 소정의 점수를 넘겼을 때 입단을 허용하는 방식이다. 기존에 시행하던 것을 더 확대했다. 얼마 전 조인선 아마가 이 방식으로 프로가 되는 최초의 수혜자가 됐다.
매년 만 14세 이하의 영재 2명을 입단시키기로 한 것은 종전에 비해 큰 혁신이었다. 그 이전엔 나이에 대한 배려 장치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의 그것에 비한다면 크게 부족하며 더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올해의 경우엔 신민준(99년생) 오유진(98년생) 신진서(2000년생) 등이 유력한 영재입단 후보로 꼽히는 중이다.
돌이켜 보면 98년생 이동훈도 그랬고, 나현(95년생) 최정(96년생)도 중국처럼 조기 입단 혜택을 주어 프로에서 일찍 단련시켰으면 지금쯤 훨씬 더 성장했을 가능성이 있다. 93년생으로 13세에 입단한 박정환 역시 마찬가지. 이들은 그나마 행운(?)의 케이스들이었다. 국내 프로 기사들 대부분은 지옥같은 입단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온몸의 진기를 몽땅 뺀 뒤, 정작 입단 뒤엔 힘이 빠지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일본의 경우도 참고가 된다. 일본기원은 매년 6명이란 적은 숫자를 프로로 받아들인다. 전체 기사 수가 너무 팽창한데 대한 부담감 때문이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입단대회 출전 상한연령이 무려 23세란 점. 바둑의 성패가 ‘어린 나이’에 있음이 갈수록 확인돼 가는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일본바둑의 추락은 오히려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기성(旣成) 스타들의 예를 보더라도 빠른 나이의 입단은 출세의 보증수표다. 조훈현은 9살, 조치훈은 11살, 창하오(常昊)는 10살에 프로가 돼 일세를 풍미했다. 이세돌 최철한도 12세에 입단 관문을 뚫었다. 중국의 초단~4단 사이 저단진 수는 거의 200명에 육박한다. 전체 565명의 약 35%선. 그 중엔 나이든 고참도 일부 섞여있지만 대부분이 중국 바둑계의 시책에 힘입어 10세 전후에 프로가 된 총기(聰氣) 넘치는 신예들이다.
이들을 상대로 한국 바둑이 얼마나 더 버텨줄 지는 두고 볼 일이다. 최근 몇 년 사이 팽팽하던 양국 각축전이 올 들어 눈에 띠게 중국 쪽으로 기우는 인상을 준다는 건 심각한 일이다. 결국 승부처는 어린 꼬마기사들의 싸움터로 모아진다. 한국바둑계도 꼬마 영재를 발굴, 육성할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할 시점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