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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환 “1위는 괴로워”
 

박정환 九단이 마침내 제19회 LG배를 품에 안았다. 세계 제패는 2011년 여름 제24회 후지쓰배 이후 3년 반 만이자 개인 통산 두 번째다. 김지석과 워낙 처절하고 극적인 결승 과정을 거친 터여서 기쁨이 더 큰 듯 했다. 우승 인터뷰 내내 박정환은 함박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박정환의 국내외 위상으로 볼 때 3년 반 동안이나 세계 타이틀 추가가 없었다는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었다. 한국바둑은 2012년 말 이후 만 2년 동안 세계 메이저 무관(無冠)이란 암흑시대를 보냈다. 중국이 6개 메이저 국제기전을 독식하는 동안 박정환은 잉씨배 준우승, TV아시아 준우승, 바이링배 4강, 삼성화재배 4강에 머물렀다. 정상 일보 전까지 잘 올라가다가도 마지막 한 두 고비를 넘지 못하고 주저앉곤 했다.

심리적인 이유도 크게 작용했다. 그는 19회 LG배 우승 인터뷰에서 “많은 부담감에 시달렸다“고 털어놓았다. 부담감이란 한국랭킹 1위가 주는 압박감을 말한다. 박정환은 2013년 12월 이세돌을 2위로 밀어내고 1위에 오른 후 꼬박 15개월 째(2015년 2월 현재) 국내 톱랭커로 군림해 왔다. 한국 바둑이 국제무대에서 극도로 부진한 가운데 팬들의 원망스런 시선이 자기에게만 집중적으로 쏠린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얘기다.

랭킹 1위나 주장(主將)이란 감투가 주는 중압감은 아마추어 팬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고 한다. 최근 천원전 우승으로 물가정보배에 이어 2관왕으로 올라선 신예 스타 나현은 지난 시즌 바둑리그에서 주장을 맡은 뒤 ‘당연히 이겨주어야 할 몫’이란 중압감에 눌려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든 바 있다. 바둑리그에선 이 같은 현상을 겪는 주장들이 해마다 두어 명씩 나온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라면 랭킹 1위에서 스스로 내려오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부담이 됐다.” 박정환의 말이다. 결국 ‘권좌’보다는 ‘도전자’가, 수성(守成)보다는 추격하는 쪽의 마음이 훨씬 더 편한 것이다. 프로야구 1위를 달리는 팀, 타율 1위 또는 평균자책점 1위에 올라있는 선수는 단 하루도 긴장을 풀 수 없다. 1위란 승부세계 모든 구성원들의 공동 타깃이기 때문이다.

스피드스케이팅의 5000m, 1만m 등 장거리 종목엔 ‘책임선두제’란 게 있다. 한 번에 여러 명이 싱글트랙서 레이스를 벌일 때 선수들은 서로 견제하면서 선두에 나서기를 꺼리게 되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모든 출전자들에게 정해진 횟수만큼 선두로 통과하도록 규정한 제도다. 만약 이 선두책임을 완수하지 못하면 1위로 골인하더라도 인정받지 못하고 책임을 완수한 2위 골인 선수에게 1위가 돌아간다.

박정환은 “세계대회에 나가서 중도 탈락했을 때 랭킹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강렬하게 들더라”고 했다. 이것은 이번 LG배 우승으로 부담감이 많이 줄어들었고, 앞으로 좀 더 편한 마음으로 세계무대에 나갈 수 있다는 의미도 된다. 스스로 “우승한 기세를 살려 편하게 도전하겠다”고 했다. “모든 세계 타이틀이 내 목표”란 말은 이번에 우승하지 못했다면 겉으로 드러내기 힘든 다짐이었을 것이다.

박정환은 나이는 22세에 불과해도 싫건 좋건 한국바둑의 ‘주장’을 떠맡은 분위기다. 본인도 그런 책임을 느끼고 있다. “숫적으론 중국을 따라갈 수 없으므로 랭킹 상위권 기사들이 더 열심히 해서 일당백의 기세로 맞설 수밖에 없다. 중국 기사들과 맞서서 대략 3승 1패, 적어도 2승 1패 정도의 승률을 올려주어야 한다.” 앞으로 중국과의 경쟁과 세계 판도에 대한 질문이 나왔을 때 박정환이 내놓은 답변이다. 이 ‘계산법‘대로라면 지난 1년 간 그의 대 중국기사 전적(14승 6패)은 우등상 감이라곤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낙제점도 아니었다.

한국이 국제무대 2년 공백에서 탈출하는 데는 박정환 못지않게 이번 LG배 준우승자인 김지석의 공도 컸다. 둘은 지난 해 11월 LG배 준결승서 나란히 승리, 한국의 ‘2년 무관 탈출’을 함께 결정했다. 이는 바로 이어진 삼성화재배 결승서 김지석이 탕웨이싱을 완파하고 우승하는데 심리적으로 큰 도움이 됐다. 삼성화재배 준결승을 먼저 통과했던 김지석이 “결승전 파트너로는 탕웨이싱보다 정환이가 올라와 한국기사끼리 결승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었다. 이 과정 속에서 두 톱스타가 한국바둑의 암흑기에 얼마나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는지 드러난다. 바둑은 기본적으로 개인 경기지만 국가 대항 분위기도 강해 특정인이 짐을 몰아 질 경우 엄청난 부담으로 연결된다.

한국의 국제무대 지분은 이제 LG배를 가진 박정환과 삼성화재배를 보유한 김지석의 쌍두마차 체제로 들어갔다. 마이너 기전인 TV아시아 우승자인 이세돌을 포함하면 3명이다. 대항세력인 중국은 미위팅(몽백합배) 잉씨배(판팅위) 커제(바이링배) 천야오예(춘란배) 등 4명의 현역 세계 챔피언을 거느리고 있다. 4명의 중국기사는 전원 세계대회 1회 우승이 전부지만 김지석과 박정환은 2개째 세계 타이틀이란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정환은 이제 갓 22세를 지났다. 통계적으로 보면 세계 정상을 거쳐간 초1류 프로들이 가장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 절정기가 10대 후반부터 25~6세까지의 6~7년간이었다. 초1류들의 첫 세계 등정 연령을 들춰보면 이세돌(19세) 박영훈(19세) 최철한(20세) 강동윤(20세) 박정상(22세) 원성진 백홍석(이상 26세) 등이 이 공식을 거쳤다. 구리(23세) 쿵제(23세) 저우루이양(22세) 퉈자시(23세) 천야오예(24세) 탕웨이싱(20세) 장쉬(25세)등 외국기사들의 첫 세계 제패도 이 나이 때 이뤄졌다. 물론 이창호(16세) 판팅위 미위팅(이상 17세) 유창혁(27세) 조치훈(35세) 조훈현(43세) 다케미야(48세) 등 예외도 있다. 아무튼 18세 때 세계 우승자클럽에 처음 등록했던 박정환에겐 황금 연령기가 도래했다.

숱한 영웅호걸들이 세계 정상무대를 거쳐 갔지만 세계타이틀 복수(複數) 정복자는 2012년 12월 이세돌(춘란배-삼성화재배) 이후 박정환이 처음이다. 그 2년 여 동안 9명의 기사들이 9개 대회를 차지하며 백가쟁명해 왔다. 현재 세계 챔프 중에서 2번 이상 정상을 밟아본 기사는 박정환 1명뿐이란 얘기다. 하지만 동시 2관왕의 꿈까지 달성하기 위해선 아직 2012년의 이세돌과의 사이에 2년 넘는 간격이 있다.

박정환의 이번 우승이 갖는 의미 중 가장 큰 것은 아무래도 중국의 LG배 6연패(連覇)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일 것이다. 박정환 덕분에 자칫 중국 청소년 기사들의 아지트로 변할 뻔 했던 전통 깊은 토종(土種) 국제기전이 우리 품으로 되돌아왔다. 박정환의 타이틀 창고엔 이제 15개의 우승 트로피(국내 13개, 국제 2개)가 쌓였다. ‘국내용’이란 오명을 벗고 모처럼 성큼 큰 걸음을 뗀 박정환의 바둑 인생은 이제 본격적인 중반전을 맞이했다. ‘선두 부담’을 떨치고 세계를 향해 힘차게 레이스 할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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