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대회의 경우 보통은 국내기사와 외국기사 간의 대결이 동국인 기사 대결보다 좀 더 재미있다. 관전자의 입장에서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가 더 선명하게 갈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다. 동국인 끼리의 대결은 어떤 측면에서는 국제전보다 더 치열한 맛이 있다. 매일 보고 마주치는 동료이자 경쟁자이기 때문에 더욱 양보할 수 없는 심리가 작용한다. 국제 결승전에선 못 느끼던 묘미를 덤으로 제공받게 된다는 얘기다.
이런 쪽으로 가장 확실한 역사를 쌓아온 무대론 LG배 세계기왕전이 꼽힌다. 세계 최대 규모 급의 이 대회는 지난해까지 18년의 역사를 쌓는 동안 한국 기사끼리의 결승이 모두 여섯 번이나 성사됐었다. 2월 9일 강릉시 라카이샌드파인리조트서 시작될 19회 대회 박정환 대 김지석의 결승에 앞서 과거 LG배 한-한 결승 쟁투사를 되돌아보았다.
▨5회 대회(2001.4월. 이창호 3-2 이세돌)
이 대결은 세계바둑 번기(番棋) 사상 가장 격렬하면서도 드라마틱한 결승전 중 하나로 꼽힌다. 세계를 주름잡아온 26세 청년 최고수와 17세 소년 칼잡이가 펼친 쫓고 쫓기는 각축전 속에서 팬들은 환호와 탄식을 교대로 쏟아내며 열광했다.
당시 LG배 결승은 5번기였고 두 번으로 나뉘어 치렀는데 이것이 화약고 역할을 했다. 이세돌이 결승 1라운드에서 선제 2승을 올렸지만, 2개월 7일 만에 속개된 2라운드 세 판을 모조리 이창호가 이겨 대 역전극을 만들어낸 것이다. 만약 결승 5판을 한꺼번에 치렀다면 그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다. 시차(時差)의 마술이었다.
2라운드 재개를 앞둔 시점에서 팬들과 전문가들은 완전히 두 패로 갈렸다. 국내 2관왕으로 올라서면서 최강그룹의 일원으로 우뚝 선 이세돌의 우승이 떼놓은 당상이란 쪽과, 99회 우승(세계대회 12회) 관록의 이창호가 3국을 이긴다면 알 수 없는 흐름이 될 것이란 쪽의 논쟁은 후자의 승리로 판가름 났다. 그 과정에서 두 대국자가 보인 투혼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이창호는 판이 거듭될수록 냉정한 돌부처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반면 이세돌은 동점타와 역전타를 허용하는 동안 짐승의 단말마 같은 괴성을 끊임없이 토해냈다. 거의 손아귀에 들어왔던 3국을 내주고 드라마같은 역전극을 완성시켜 주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3대0으로 끝낼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아쉬움이 점차 초조함으로 변했고, 그런 심리는 4, 5국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 역사적 쟁기(爭棋)는 두 기사의 행보를 완전히 갈라놓았다. 이창호가 결승 3국 승리를 신호탄으로 국내외 무대서 18연승 행진에 나선 반면 대 역전패를 당한 이세돌은 내상(內傷) 후유증에 오랫동안 시달렸다.
▨7회 대회(2003. 3월 이세돌 3-1 이창호)
하지만 그로부터 2년 뒤 이세돌은 극적 반전 스토리의 주인공이 된다. 5회 대회 때 이창호에게 진 빚을 갚으며 LG배 첫 정상 등정에 성공한 것이다. 세계 바둑의 정점(頂點)에서 두 거인의 정면충돌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그리고 이미 28세로 최절정기를 지낸 이창호는 스무살 청년 이세돌의 강력한 펀치를 버거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지막이 된 4국이 기울자 이창호는 화장실에 가 얼굴을 씻고 온 뒤 잠시 뜸을 들인 후 패배를 선언했다. 세수는 이창호가 마음을 정리하고 기분전환을 시도할 때마다 택하는 의식(儀式)이다.
바둑계에 연예인 아이돌(idol) 현상을 가장 먼저 불러온 기사가 이세돌이었고, 이 무렵이 바로 그 시점에 해당했다. 중년 또는 노년 팬들의 박수가 고작이었던 바둑 대회에 여학생들이 꽃다발을 들고 찾아오는 현상은 ‘이세돌 이전’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었다. 이세돌 팬들과 이창호 팬들이 갈라져 논전을 펴고 대립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였다.
이세돌은 10대 후반 무렵까지 “내 적수는 이창호 사범님뿐” “실력으론 내가 일인자 같다”고 공개적으로 외치고 다녔다. 그랬던 이세돌이 막상 제7회 LG배서 이창호를 꺾고 세계 정상에 선 직후 “내가 일인자란 말은 거둬 들이겠다”라고 선언했다.
결승 기간 내내 매니저격인 큰형 이상훈 八단은 동생과 함께 어울리며 긴장을 풀어주면서 가족애를 과시했다. 대국 전날 마다 동생과 함께 TV를 봐주고, 맥주를 함께 마셔주고, 아침에 깨워주었다. LG배서 우승한 이세돌이 바뀐 규정에 따라 당시로선 세계 신기록(?)이던 3계단 승단(3단→6단)을 이룬 것도 이 대회 우승 전리품이었다.

▨12회 대회(2008.2 이세돌 2-1 한상훈)
승부세계에서 ‘영원한 영재‘는 없다. 눈부시게 빠른 속도로 신진대사가 이뤄지면서 더 젊고 더 초롱초롱한 영재가 새로운 변혁의 주역으로 등장한다. 7회 대회 때 약관의 나이로 이창호를 눕히고 LG배를 품에 안았던 이세돌은 그 당시 자신의 나이와 똑같은 스무 살 새싹을 만나 피할 수 없는 승부계의 윤회(輪廻)를 맛본다. 혜성처럼 출현한 소년 도전자의 이름은 한상훈이었다.
초단의 몸으로 국내외 선배 강호들을 볏단처럼 베고 올라온 그는 결승서도 당대 최고수 이세돌을 먼저 막판으로 몰아넣어 세계 바둑팬들을 경악시켰다. LG배서만 통합 예선 이후 파죽의 9연승 행진이었다. 인터넷 베팅에서 네티즌들은 초반 50수까지 한상훈의 31대 69의 절대 열세로 점쳤으나 바둑은 뜻밖에도 팽팽한 균형을 유지했고, 오후 대국부터는 한상훈 우세설이 나돌기 시작했다. 흑이 중앙 백 대마를 추궁해 오자 백을 쥔 한상훈은 오히려 역습을 통해 수습하며 승리를 결정해 버렸다.
프로기사들은 입을 모아 한상훈의 완승을 증언했다. 하중앙을 정리해낸 솜씨에 이성재 八단은 "놀라운 수읽기"라며 감탄했고, 강동윤 七단은 "초반 우변 타개로 백이 일찌감치 편한 바둑을 짰다"고 말했다. 김인 九단, 차민수 四단은 "입단 만 1년의 신인이라곤 믿기지 않는 침착함"이라고 칭찬했다. 한상훈은 대국 후 "초반부터 내 취향대로 풀려 편하게 짜나갔다"며 "오늘 이겼으니 모레 2국도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당찬 자신감을 보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한상훈의 반란은 성공하지 못했다. 이세돌이 2, 3국을 거푸 이겨 역전 우승했기 때문이다. 18세의 비교적 늦은 나이에 입단한 한상훈은 세계대회 사상 최저단 우승, 최단 코스 우승의 기회를 단 한 발 차이로 아깝게 놓쳤다. 한국 바둑도 ‘괴물 신인’의 출현으로 기대했던 새 물결이 일단 신기루가 돼버렸다.
▨6회 대회(2002.3월 유창혁 3-2 조훈현)
유창혁과 조훈현은 뚜렷한 연령 차에도 불구하고 어떤 측면에선 동병상련의 입장이었다. 이창호의 위용이 워낙 뛰어나 더 빛을 발하지 못한 공통점 때문이다. 특히 LG배 초창기 유창혁은 초반 4년 동안 3회나 결승서 패배, ‘준우승 전문’으로 불렸는데 이창호의 탓이 컸다. 조훈현은 이미 8번이나 국제대회 우승을 이뤄냈지만 유독 LG배에선 특별히 약한 징크스가 굳어가는 중이었다. 이 두 비운의 거장들이 6회 대회 결승서 격돌했으니 구경꾼들의 함성이 천지를 진동시킬 만 했다.
준결승서 제자 이창호를 따돌린 조훈현, 수직 상승 중인 후배 이세돌을 잠재운 유창혁이 펼친 결승 5번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박진감에 넘쳤다. 쉴 새 없는 강펀치를 교환한 끝에 1국은 유창혁의 백 1집 반 승, 2국은 막판 상대 실착을 틈타 대마 포획으로 조훈현의 역전승. 2월 28일 1대1로 1라운드를 마친 뒤 3월 27일 2라운드가 속개됐다.
역시 양보없는 난타전이었다. 3국은 조훈현의 흑 불계승. 4국은 백 대마가 절명하면서 105수만에 유창혁이 흑 불계로 이겼다(결승전 최단명국으로 기록됐다). 운명의 최종국은 사흘 전 4국을 13수까지 똑같이 재현하며 팽팽히 이어진 끝에 유창혁이 4집 반을 이기고 대미를 장식했다. 첫 LG배 사냥에 성공한 유창혁은 그때까지 존재하던 국제대회 그랜드슬램도 완성했다. 5판 모두 마지막 초읽기까지 몰리며 분전한 조훈현의 투혼, 역전을 거듭한 스코어, 격렬했던 대국 내용 등 역대 최고 결승전 중 하나로 꼽힌다.
▨1회 대회(97. 5월 이창호 3-0 유창혁)
원년 LG배 결승전은 이창호와 유창혁이 펼친 최초의 국제대회 결승 5번기였다. 둘은 친하면서도 라이벌이었다. 하지만 결승은 일방적으로 진행돼 이창호의 스트레이트 승으로 끝났다. 1회전부터 결승전 3판 까지 7전 전승의 퍼펙트 우승을 따내며 이창호는 단체전 포함 무려 세계 6관왕에 올랐다. 이창호 시대 선포식이었다고 할까.
유창혁의 이창호를 향한 전의(戰意)는 결승 2국 69번째 수에 무려 41분 18초의 기록적 장고를 치른 것만으로도 짐작이 된다. 첫 세계타이틀 맞대결 패배로 창끝이 무뎌진 유창혁은 두 번째 회전인 이듬해 제9회 동양증권배 결승서도 이창호에게 1대3으로 막혔다.

▨8회 대회(2004. 4.1 이창호 3-1 목진석)
1990년대와 2000년대 중반까지 만천하 젊은 기사들의 공적은 이창호였다. 이창호를 넘지 못하면 우승도 없었다. 2000년 KBS바둑왕전서 당시 젊은이들 중 가장 먼저 이창호 아성을 깨고 우승(2대1)했던 목진석은 8회 LG배에선 이창호와 세계 정상을 놓고 또 다시 도전했다. 첫 판을 이기고 한껏 고무돼 대국장을 나서던 목진석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하지만 이창호는 이후 내리 3연승하며 LG배 정상에 네 번째 깃발을 꽂았다. 목진석의 전무후무한(지금까지) 세계대회 결승전은 그렇게 끝났다.
▨2015년의 주인공은 누가 될까
12회 결승 이세돌 대 한상훈 전을 끝으로 한-한 형제 결승은 일단 막을 내렸고 이후부터는 중국 세상이 펼쳐졌다. 구리 쿵제 박문요 장웨이제 스웨 퉈자시에 이르기까지 6명이 릴레이 우승을 기록했다. 13기부터 18기까지 6기 우승자 명단에 한국기사의 이름은 없다.
그런 역사를 딛고 19회 대회에 모처럼 박정환과 김지석이 함께 결승까지 올라왔다. LG배 사상 7번째 맞이하는 한-한 형제대결이다. 한국이 7년만에 우승컵을 되찾아오게 됐다고 느긋해 할 분위기가 아니다. 둘의 각오와 기백이 서릿발처럼 차갑고 매섭기 때문이다. 이 승부는 단언컨대 역대 어떤 LG배 한-중전, 한-일전보다 치열할 것이다. 7번째 LG배 한-한 형제 결승대결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