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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센 세대교체 바람 예고한 2014년
 

2014년도 저물어간다. 올 1년 동안엔 유난히 많은 새 얼굴들이 등장, 세대교체를 선언하고 나섰다. 지명도나 과거 경력만을 언제까지나 누릴 수 없는 것이 승부세계의 특성이다. ‘하룻강아지’로 보이던 젊은 신예들이 숱한 이변을 창조하면서 바둑계 기존 질서도 많이 허물어졌다.
그 첨병에 섰던 기사를 꼽으라면 95년생 나현이다. 이른바 ‘95후(後)’, 95년 이후 태어난 신예그룹의 에이스답게 나현은 올해 생애 첫 우승의 염원을 이뤘다. 한국 ‘95후(後)’ 중에서 타이틀을 획득한 기사는 나현이 처음이다. 이 같은 맹활약에 힘입어 나현은 1류 기사의 커트라인으로 불리는 랭킹 10위권 이내에 처음 진입했다. 나현이 국제무대서도 2011년 제16회 삼성화재배 4강, 이듬해 17회 LG배 8강의 과거 최고성적을 넘어서는 활약을 펼칠 수 있을지 새해가 주목된다.

98년생 이동훈의 도약도 눈부셨다. 만 16세에 불과한 이동훈은 제42기 명인 타이틀을 놓고 대선배 박영훈과 숨 막히는 공방을 펼쳤다. 비록 경험 부족으로 미세한 균열을 노출함으로써 1대3으로 패퇴, 준우승에 그치긴 했으나 이미 정상권 실력에 도달했음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이동훈은 올해 명인전서 5연승으로 예선을 통과한 뒤 본선에서 안성준 강동윤 이세돌 등 기라성같은 강자들을 제치고 결승에 진출했었다. 올해 바둑왕전 승자 4강에도 올라있어 무섭게 폭발할 가능성이 보인다.

한국 여류바둑계의 새로운 리더로 떠오른 96년생 최정(18)의 도약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제5회 궁륭산병성배서 차오유우인(曹又尹) 루자(魯佳)를 제치고 결승에 오른 뒤 오랜 기간 세계 여성바둑을 지배해왔던 여제(女帝) 루이나이웨이(芮乃偉)마저 눌러 역사적 과업을 완수했다. 최정은 올해 바둑리그서 유일한 여성 선수로 참가, 놀랍게도 한국바둑 서열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강타자 김승재를 격파하는 등 활약했다. 이런 활약으로 그녀 자신의 랭킹도 수직 상승 중이어서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변상일(97년생)은 올 시즌 다승(多勝) 랭킹 2위 자리를 놓고 이세돌 나현 등과 경합 중이다. 다승 타이틀에 도전하려면 우선 폭넓은 활약이 절대 필요한데, 다승 선두권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점 자체가 변상일의 활동상을 웅변해 준다. 신인왕전 2연패(連覇), LG배 16강 진출 등이 올해 변상일의 주요 전적. 여기에 농심배 한국대표로도 뽑혔고, 천원전서는 거함 이세돌을 침몰시키며 8강에 올라있다. 레츠런파크(Let‘s Run PARK)배서도 16강까지 진출했다.

김명훈이란 이름도 생소한 팬이 많을 것이다. 97년생인 그는 입단 22일 만인 올해 1월 바둑왕전 예선을 통과, 우리 바둑계 최단 기간 본선기록을 갈아 치웠던 주인공이다. 김명훈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한국마사회 주최 레츠런파크 오픈서 예선 포함 5연승을 내달려 팬들을 흥분시켰다(희생자 중엔 거목 박영훈 이원영 등이 포함돼 있었다). 마치 ‘흙속에 숨었던 진주’가 세상에 나와 찬란한 빛을 발하는 형상이랄까. 아직 대국 수 부족으로 랭킹에도 들지 못했지만 행보가 심상치 않다.

박민규(20)도 기억해 두어야 할 신인이다. 최고(最古) 전통의 국수전에서 강호 최철한을 넘고 도전자 선발토너 4강에 진출, 박정환과의 대결을 기다리고 있다. 예선부터 계산하면 6연승 행진 중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레츠런파크배에서 또 한 번 일을 냈다. 원성진 신민준 송상훈을 제치고 8강에 합류하더니 젊은 맹호 김승재마저 눕히고 4강 고지를 밟은 것. 어떤 기성(旣成) 강자와 견줘도 부족하지 않은 실적이다.

영재입단 1호인 2000년생 신진서는 실질적 2년차인 올해 글로비스배와 한중신예대항전 등에서 눈부신 활약을 보이며 벌써 랭킹 30위 이내 그룹에 진입했다. 국제 성인 무대인 바이링배 본선 64강, 전통의 국수전 8강 등 착실히 전진 중이다. 14세 소년에게 바둑리그 3지명을 맡겼다는 것만 보아도 바둑계가 그에게 어느 정도의 기대와 신임을 보내고 있는지 짐작할 만 하다.

영재입단 2호로 신진서와 라이벌 관계인 신민준(1999년생)도 꾸준히 성장하는 1년을 보냈다. 물가정보배, 레츠런파크배, 천원전이 주로 활약했던 무대. 특히 천원전에선 조훈현 최철한을 연파하고 가장 먼저 4강에 선착해 있어 두 번의 고비만 더 넘기면 결승 무대에 진출하게 된다. 중국 을조리그에 참가, 6승 1패의 호성적을 거둬 국제무대서도 주눅 들지 않는 기량을 과시한 것도 수확이다.

95년생 김민호는 올해 1월 입단한 신인. 다른 대회 성적은 평범한데 유독 바둑리그에선 펄펄 날아 주목받았다. 2부리그 격인 퓨처스리그 용으로 선발됐지만 정규리거 최정상급 기사들을 상대로 3승 2패를 기록했다. 더욱이 3승 상대가 한국바둑 최고수 박정환, 랭킹 2위 김지석, 지난해 바둑리그 MVP 김정현이어서 갈채를 받았다. 한국의 ‘양 날개’ 박정환과 김지석에 승리할 때의 집차는 모두 반 집이었다. 김민호 역시 기본 대국수 부족으로 아직 랭킹에 들지 못했다. 이밖에 김채영(96년생)은 지난 봄 여류국수에 오르며 여성 바둑계 새 판도 형성에 한 몫을 맡기 시작했다.

신인이라고 하기엔 나이(23)는 꽤 많지만 박창명도 올해 크게 어필한 ‘새 얼굴’이었다. 물가정보배서 예선 5연승 포함 9연승으로 결승에 올랐는데, 입단 8개월 만의 결승 진출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비록 나현에 0대2로 패해 준우승에 그쳤지만 그 과정에서 원성진 김승재 조한승 등 강자들을 연파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보다 한 달 전 열린 삼성화재배 통합예선 때는 현재 바이링배 결승서 대기 중인 중국의 17세 처재 커제(柯潔)를 눌러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국과 라이벌 관계인 중국의 경우에도 금년 한 해 신예 돌풍은 거셌다. 중국은 96년생 판팅위(范廷鈺)와 미위팅(羋昱廷)은 이미 세계 타이틀을 따낸 기성스타들인데 2014년 각자의 아성을 더욱 단단하게 다졌다. 최고상금 국제대회인 잉씨배를 보유 중인 판팅위는 9월 중국 최고 타이틀전인 란커배 결승서 랭킹 1위 스웨(時越)를 일축하고 정상에 섰다. 그 과정에서 커제 미위팅 탕웨이싱(唐韋星) 등을 모조리 눕혔다. 무시무시한 연승행진이었다.
올 한 해 중국바둑계에서 가장 떠오른 예비스타는 커제였다. 그는 삼성화재배 현역 챔프 탕웨이싱과 아함동산배를 놓고 결승서 겨뤄 승리, 생애 첫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커제는 또 거대 국제기전인 제2회 바이링배에서 김승재 판팅위 왕야오 최철한에 이어 박정환을 2대0으로 셧 아웃시키고 결승을 기다리고 있다. 추쥔(邱峻)과 겨룰 마지막 한 고비만 넘기면 17세 세계 왕자가 탄생할 판이다.

커제보다 한 살 더 어린 98년생 양딩신(楊鼎新)은 중국 최대기전인 창기배를 품에 안았다. 결승에서 퍄오원야오를 2대0으로 무릎 꿇렸다. 양딩신이라면 9세 9개월 때 중국 바둑 사상 최연소 입단 기록을 세우고, 2012년 13세 때 리광배를 거머쥐면서 최연소 우승 기록까지 달성했던 괴물이다. 이번 대회에선 리저 류싱 구링이를 연파한 뒤 결승서 중국 랭킹 1위 스웨를 2대1로 물리쳤다. 중국에는 양딩신에 버금가는 셰얼하오 리친청 등 동갑나기 ‘98년생 트리오’가 경쟁적으로 성장 하면서 한국을 위협하고 있다.

바둑은 다른 어떤 승부보다도 나이와 큰 상관관계를 입증해온 분야다. 젊은 신예들은 이제 ‘미래의 병기’가 아니라 ‘현재 즉전력’이 돼가고 있다. 눈부신 세대교체 분위기 속에서 어느 새 80년대 출생자들이 눈에 띠게 밀려나고 90년대, 심지어 2000년대 출생 기사들이 득세하기 시작했다. 2015년 새해엔 이들 앞서 달리는 신예들이 어떤 고지에 오르고, 또 어떤 뉴 페이스들이 새 무대를 장식할지 사뭇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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