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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무대 다관왕이 사라졌다
 


현역 세계바둑을 리드하는 1인자는 누구일까. 일단 세계타이틀 판도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타이틀 홀더 명단부터 살펴보자.

<현역 세계타이틀 보유자 명단>
LG배= 퉈자시
삼성화재배= 탕웨이싱
춘란배= 천야오예
잉씨배= 판팅위
백령배= 저우루이양
몽백합배= 미위팅
TV바둑아시아= 이세돌

메이저급 기전인 앞의 6개를 몽땅 중국이 가지고 있다. 비 중국세라곤 마이너급 대회인 TV바둑아시아선수권을 따낸 한국 이세돌 1명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그들 중국기사 6명 중 누가 최강이냐고 물으면 대답이 궁해진다. 6인6색, 모두가 거의 대등한 영토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중 누구를 콕 찍어 최강자라고 지목하기가 매우 어렵다.

타이틀전의 우승상금을 기준으로 1인자를 가린다면 잉씨배(미화 40만 달러)를 지닌 판팅위를 꼽아줘야 한다. 그러나 이것도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잉씨배가 타이틀 획득 과정의 난도(難度)에서도 1위냐는 의문이 따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잉씨배는 대회 주기가 4년이라서 유효기간(?) 문제도 따른다. 상금에 그토록 큰 비중을 둔다면 일종의 이벤트 기전이었던 이세돌 대 구리 간의 10번기서 승리한 이세돌이 1인자가 돼야한다는 말도 나올 수 있다(이세돌은 10번기 우승 상금으로 무려 8억 5000을 벌었다).

한국기원 랭킹위원인 배태일 박사는 매 3개월 단위로 세계랭킹을 발표하고 있다. 비공식 자료이긴 하지만 매우 합리적이면서도 과학적인 방법으로 집계한 것이어서 신뢰도가 매우 높다. 가장 최근 자료인 7월 랭킹에 따르면 상위 10명의 분포는 중국 6명, 한국 3명, 일본 1명이다. 1위와 2위는 박정환, 김지석 등 한국기사들인데, 현재 두 기사 모두 지닌 메이저 세계타이틀이 없다. 그들 뒤로 중국의 세계챔피언들이 줄줄이 뒤따르고 있다. 배태일 박사의 집계법을 충분히 존중하면서도 박정환 김지석이 과연 세계 1-2위 실력일까 하는 의문은 남는다. 타이틀이 주는 상징성은 그만큼 크다.

현역 메이저타이틀 홀더 6명이 현재 보유한 타이틀은 그들이 세계무대에서 따낸 유일무이한 왕관이란 공통점이 있다. 그들에게 복수(複數) 우승 또는 연패(連覇) 경험이 전혀 없다는 의미다. 국내대회 성적 등 다른 지표를 포함시켜 굳이 우열을 가를 수는 있겠지만 세계무대 기준으론 최강자 재단(裁斷)이 쉽지 않다. 이럴 때 편히 쓰는 말이 백가쟁명(百家爭鳴), 춘추전국(春秋戰國), 군웅할거(群雄割據), 백화제방(百花齊放)이다. 고만고만한 키의 작은 성주(城主)들이 바글바글 공존하는 구도다.

그런데 세계 바둑사를 되돌아보면 이런 경우는 과거엔 없었다. 과거엔 어느 시대건 확고한 1인자가 존재했었다는 얘기다. 그 기준 역시 세계 타이틀이다. 요즘처럼 단일 챔프가 아니라 멀티타이틀 홀더들이 항상 출현해 그 시대를 지배했었다. 천하통일(天下統一)까지는 아니더라도 군림(君臨)이나 석권(席捲)하는 절대강자들이 즐비했다. 이른바 다관왕(多冠王)이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 전성기가 지났지만 세계바둑 역사를 가장 화려하게 장식했던 기사라면 단연 이창호를 꼽는데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창호는 사상 최다인 무려 23회(비공식 2회 포함)에 걸쳐 세계를 제패했다. 그 이창호는 한때 세계 4관왕으로 지구촌을 지배한 기록이 있다. 98년 8월 1일 창하오를 눕히고 제11회 후지쓰배를 제패했는데, 그걸로 4관을 달성했다. 1기 LG배와 2기 삼성화재배, 9회 동양증권배도 그의 품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창호는 2004년 4월 1일 시점에 LG배를 따내면서 도요타덴소배, 춘란배, 그리고 4년 터울의 잉씨배까지 포함해 역시 4관왕을 성취했었다. 두 번에 걸친 4관왕 기사는 역사상 이창호뿐이다. 그는 96년 8월 시점엔 동양증권배, TV아시아, 후지쓰배를 동시 보유하면서 3관왕에 등극한 적도 있었다.

세계무대 4관왕 성공 기사는 이창호 외에도 몇 명이 더 있다. 이세돌은 2007년 1월 도요타덴소배 우승을 신호탄으로 TV아시아, 삼성화재배를 제패했고, 이어 2008년 2월 한상훈을 눕히고 제12회 LG배까지 품에 넣으면서 4관왕에 올랐다. 이세돌은 그에 앞서 2004년 12월부터 2005년 7월 사이 약 7개월 간 삼성화재배 도요타덴소배 후지쓰배를 차례로 정복, 한 차례 3관왕으로도 군림한 바 있다.

쿵제도 전성기 때 한 번 4관왕을 마크한 기록이 있다. 삼성화재배와 LG배, TV아시아에 이어 2010년 7월 제23회 후지쓰배 결승서 이세돌을 눕히고 4관왕을 완성했다. 그 이후 급격히 몰락의 길을 걷긴 했지만, 쿵제는 짧은 기간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쏟아 붓는 집중력으로 바둑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조훈현의 3관왕도 기념비적이다. 2001년 5월 TV아시아, 8월 후지쓰배, 12월 삼성화재배 우승으로 3관왕을 완성했다. 당시 그의 나이 48세였고, 세계 3관왕의 제물이 된 기사는 각각 아들 뻘인 목진석, 최명훈, 창하오였다.

그렇다면 세걔바둑 역사에서 동시 멀티타이틀 최고기록은 4관왕일까. 아니다. 5관왕이 한 차례 있었다. 그 주인공은 중국의 구리다. 구리의 5관왕 과정을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구리 5관왕 작성 과정


타이틀 보유기록은 차기(次期) 대회가 시작되기 직전까지 유효하기 때문에 이런 기록이 성립될 수 있었다. 춘란배는 2년 간격으로 치러지는 덕(?)을 봤다. 그리고 만약 5번째 타이틀인 비씨카드배 결승이 두 달만 늦게 열렸더라면 후지쓰배의 주인도 바뀌면서 4관에 그쳤을 것이다. 만약 두 달 뒤 후지쓰배서 우승했더라도 연속 우승 수는 늘어나지만 보유 타이틀의 연패(連覇)일뿐 다관(多冠) 수는 불변이다. 다관왕엔 이처럼 운(運)의 영역도 한 몫 한다.

90년대 중반 이후 2010년까지 약 15년 간 이창호 이세돌 구리 조훈현 쿵제 등 당대의 영웅들이 한데 어울려 각축하면서도 큰 교통사고(?) 없이 각자의 ‘다관탑(多冠塔)’을 쌓아갔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세계바둑 타이틀전 역사라고 해봐야 88년 후지쓰배를 효시로 올해까지 26년에 불과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팬의 입장에서 관전하는 재미로 따지자면 특정 강자의 독주는 바람직하지 않다. 치고받으면서 우열이 분명치 않아야 긴장감이 높아지고 다음번 대결을 기다리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같은 ‘도토리 키재기‘ 식의 정상권 판도가 지속될 경우 ’영웅의 실종‘도 각오해야 한다. 예전엔 모든 기사가 목표로 삼고 우러러보는 이창호가 있어서 한국과 중국 꼬마들의 롤 모델이 됐고 각국의 바둑 열기도 크게 높이는 기능을 했었다. 이세돌과 구리가 세계 무관(無冠)으로 떨어진 이후 그런 역할을 하는 우상이 사라져 버렸다.

지난 연말 탕웨이싱이 제18회 삼성화재배 결승서 이세돌을 제압, 중국에 6번째 현역 세계챔피언이 배출됐을 때 이야기다. 한국 임원들을 위로할 겸 가진 저녁 자리에서 중국기원 임원은 이렇게 말했다. “6명이면 뭐합니까? 전부 우승이 단 한 번뿐인 친구들이에요. 한국바둑 상심할 필요 없어요.”

그 대회는 중국에 막혀 1년 내내 고생했던 한국바둑의 입장에선 마지막 ‘확인사살’에 해당했다. 중국으로선 위로의 뜻도 있었겠지만 오히려 ‘세계 챔프 6명 보유’을 자랑하는 뉘앙스로 들렸다고 훗날 우리 임원이 회상했다. 한국기사들이 국제타이틀을 온통 휩쓰는 가운데 중국에서 단 1명의 챔프도 나오지 않아 애를 태우던 것이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은 시절 이야기인데 세상이 이렇게 바뀌었다.

세계무대 최정상권을 놓고 앞으로도 춘추전국 싸움이 계속될지, 이창호 구리 이세돌 시절의 다관왕 시대로 되돌아갈지는 쉽게 단언할 수 없다. 하지만 평준화 현상이 가속화되고 각국 고수들의 층이 두터워지는 추세를 볼 때 옛날처럼 동시 4~5관왕에 군림할 스타는 나오기 어려우리란 게 일반적 관측이다. 2014년 연말과 2015년에 이르는 1년 여 사이 각 타이틀전이 수확기를 맞고 최정상권 재편이 이뤄지면서 그 해답도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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