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대가 유난히 주목받고 있는 요즘이다. 현역 복무 중인 사병들의 생활이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이 시점에 맞춰 프로기사로 활약하다 군에 입대한 청년들의 근황을 알아보았다. 현역 군인으로 국방 의무에 충실히 복무 중인 프로기사는 모두 15명에 달한다(2014년 8월 17일 현재).
◇현역 근무 중인 프로기사 명단(입대일 순)

이들 15명 가운데 가장 먼저 입대한 기사는 이상헌(26) 2단이다. 전역일자도 가장 빨라서 오는 12월 2일 ‘민간인 신분‘으로 복귀하게 된다. 지난 해 12월 3일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를 시작한지, 정확히 2년이 되는 날이다. 지난 해 1월 해군에 동반 입대했던 백홍석(28) 9단과 허영호(28) 9단, 윤준상(27) 9단은 오는 12월 6일 같은 날 군복을 벗게 된다.
현역 복무 중인 프로기사 15명 중 ‘최연장자’는 원성진(30) 9단이다. 원래 백홍석 허영호 윤준상 등과 같은 날 입대할 예정이었으나 제17회 LG배 세계기왕전 결승전에 오르는 바람에 2개월 여 입대를 연기했었다. 당시 원성진은 중국 스웨(時越)와의 결승전서 석패했다. 현역 군인 프로기사 중 최연소자는 김원빈(21) 초단으로, 톱랭커 박정환 9단과 같은 93년생이다. 15명 중엔 최기훈(26) 5단이 가장 최근인 8월 5일 입대했다.
군별 분포를 보자면 사회복무요원이 3명으로 전체 15명의 20.0%, 육군이 3명으로 역시 20.0%를 점한다. 나머지 9명은 해군으로 점유율이 60.0%에 이른다. 해군은 장병들의 여가 선용 및 정서함양을 위해 2012년 4월부터 바둑 특기자를 선발, 복무시켜왔다. 대상 범위는 10명. 손근기 홍민표 전영규 김현섭 고근태 진동규 등 이미 제대한 프로기사들이 해군 바둑 특기자 1기에 해당한다.
해군에 소속된 프로기사들은 1년에 6개 대회까지 기전 참가가 가능하다. 물론 부대 형편에 따라야하며 무조건 나갈 수 있는 건 아니다. 같은 부대 내에서 복무하는 바둑 특기병이 함께 동시에 자리를 비우는 것도 불가능하다. 국내 기전 대부분이 여러 달에 걸쳐 단계별로 치러지기 때문에 6개 기전 모두를 완벽하게 참가하긴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렇긴 해도 해군의 이 같은 바둑에 대한 배려는 이 제도가 생기기 전과 비교하면 파격적인 것이다. 육군에 속한 프로기사들이 오직 휴가 때만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것과 비교된다. 대신 복무기간은 해군이 23개월인데 반해 육군은 2달이 적은 21개월이다.
해군 소속 프로기사들의 출전 가능 범위가 6개 기전이라지만 국제대회는 포함되지 않는다. 바둑리그 같은 단체전도 참가할 수 없도록 돼 있다. 국제대회 출전기회 봉쇄는 기사 개인의 아쉬움에만 그치지 않고 중국과 경쟁 중인 한국 바둑계의 큰 전력 손실로도 이어진다. 선수 저변에서 중국에 크게 밀리는 한국 바둑으로서도 다소 고민스런 대목이다.
현역 복무 중인 프로기사들이 우리 바둑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한 마디로 팬들이 느끼는 체감 정도보다 훨씬 더 높다. 8월 랭킹을 기준으로 보면 백홍석(7위), 원성진(8위), 이영구(10위) 등 10위권 안에만 3명이나 들어있다. 모두가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핵심 전력으로 활약해 왔던 기사들이다. 윤준상(12위), 홍성지(21위), 허영호(23위) 역시 한국 바둑계의 ‘기간요원’으로 통해왔던 강자들. 이춘규(43위), 온소진(59위), 이원도(60위), 이상헌(65위), 최기훈(73위), 강창배(76위), 이범진(80위) 등도 충분한 잠재력을 인정받아 왔다. 입단한지 얼마 되지 않는 강훈과 김원빈만 아직 대국수 부족으로 100위권 밖에 랭크됐다.
현역 장병으로 복무하면서 가장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는 프로기사는 세계 챔프 출신의 원성진이다. 지금 진행 중인 제10기 물가정보배에선 신민준 이세돌 등을 연파해 조 1위로 8강에 안착한 상태다. 맥심배서는 동갑내기 친구 최철한을 제치고 4강까지 오르기도 했다. 바둑왕전서도 본선서 활약하는 등 올해 총 10승 4패, 승률 71.4%(이하 8월 17일 현재)의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또 다른 ‘전직 세계챔피언’ 백홍석도 레츠런파크배 대회서 본선 32강, 42기 명인전 본선 8강에 올라 더 높은 곳을 겨냥 중이다. 승률도 75.0%(6승 2패)에 달해 15명 중 가장 높다. 윤준상은 맥심배서 이창호를 제물로 8강에 오른 뒤 박정환에게 막혔으나 컨디션이 상승세다. 이영구가 19기 GS칼텍스배 8강, 홍성지가 58회 국수전 8강, 허영호는 GS배 16강을 각각 정복했다. 이런 저런 제약이 따른다는 걸 감안하면 입대 전의 기량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선전(善戰)이다.
과거 바둑이 문화로 취급되던 당시엔 잉씨배 등의 국제대회 결승진출로 병역특례 혜택이 주어졌었다. 그랬던 것이 스포츠로 전환하면서 막상 아시안게임 및 올림픽에 바둑 종목이 빠졌고, 결과적으로 대회 성과를 통한 특례의 기회가 봉쇄돼 버렸다. 과거 방식에 의해 병역특례 혜택을 받은 기사는 이창호 최철한 박영훈 박정상 송태곤 박정환 조한승(1년 현역 복무 후 혜택) 등 모두 7명이다. 한국기원 자료에 따르면 나머지 정상권 기사들 중 이세돌 김지석 강동윤 등은 면제자로 기록돼 있다.
청년기가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중요한 바둑세계에서 한시적이나마 바둑에 전념하지 못한다는 것은 입대 프로기사들에겐 큰 아쉬움이다. 특례 또는 면제된 경쟁권 동료들이 부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병역은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신성한 의무이자 권리다. 조국을 지킨다는 기쁜 마음으로 2년여를 복무해 충전 기회로 삼는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정상권 선배기사들 대다수가 그런 담금질 과정을 거쳐 대스타의 길을 다졌다.
고 조남철 9단은 6.25 동란 중 다리에 총상을 입고 제대한 뒤 혼신의 노력을 쏟아 성적과 보급 양면에서 한국바둑의 개척자로 우뚝 섰다. 김인 9단이 조남철 9단의 아성을 처음 무너뜨렸을 때, 또 김인시대를 종식시킬 당시의 조훈현도 모두 현역 군인 신분이었다. 서봉수 유창혁은 방위로 복무하면서 대업을 이뤄갔다. 미국 영주권 보유자로 입대를 피할 수도 있었던 김성룡은 자진 입대로 병역을 마치고 28세의 나이에 생애 유일의 우승컵을 안았다.
지금은 조련사로 더 유명한 옥득진이 제대 후 승승장구, 왕위전서 준우승(2005년)을 차지한 일도 유명하다. 항상 ‘2% 부족’이란 소리를 들었던 조한승은 군 생활 1년 간 강인한 정신력을 충전하면서 아시안게임 우승에 기여했고 그 공로로 제대증을 받아들였다. 모두 제 하기 나름이란 얘기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가고 선선한 바람이 불면 새로 군문을 향해 떠나는 기사들이 등장할 것이다. 한국기원의 담당 직원에 따르면 바둑리그가 끝나는 연말 무렵 입대 지원자들이 쏟아진다고 한다(2년 복무 후 새로운 바둑리그 시즌을 겨냥하는 의미가 크다) 군대에 가있는 프로, 그리고 입대를 앞둔 프로 모두에게 행운이 깃들었으면 좋겠다. 머지않아 제대할 현역 장병 기사들이 복귀 후 예전보다 더 무시무시한 파워를 내뿜는 모습을 기대한다. 중국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한국바둑 전체를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