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도 벌써 절반이 지나갔다. 그 사이 적지 않은 바둑이 두어지고, 제법 많은 일화가 쏟아졌으며, 새로운 영웅들이 거푸 탄생했다. 지나간 반 년을 회고하면서 상반기 결산을 정리해 본다.
우선 기록 부문. 바둑은 숫자 친화적 게임이지만 기록이 다양한 편은 못 된다. 각종 데이터의 홍수 속에 ‘기록의 게임’이라고 불리는 야구에 비할 바 못 된다. 바둑에서 가장 기본적인 기록 장르라면 다승 승률 연승 정도. 야구 투수의 다승 승률 평균자책점 탈삼진, 타자의 타율 타점 홈런 정도에 해당한다.
올 상반기 다승 부문 1위에는 신예 변상일(17) 三단이 올랐다. 변상일은 38승 18패를 기록했다. 2위 나현보다 무려 7승이나 앞선호기록이다. 변상일의 38승은 전년 상반기 때의 최다기록인 이동훈의 33승보다도 5승이 많은 기록. 2013년 1년간 최다승은 박정환의 77승이었는데, 변상일이 하반기에 피치를 올려 지난 해 최다 기록을 넘어설 수 있을지 주목된다.
다승 부문에선 이밖에 박정환 조한승 이원영 민상연이 28승으로 공동 3위 그룹을 형성했다. 한국 랭킹 3위 이세돌은 전반기에 27승을, 2위 김지석은 24승을 각각 기록했다. 올타임 연간 최다승 기록은 목진석이 97년 수확한 93승(29패)로 17년째 깨지지 않고 있다.
다음은 승률 부문이다. 야구에 빗대자면 타율 또는 평균자책점에 가까울 것이다. 이 부문 1위에 박진솔(28) 六단이 오른 것은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간 두드러진 실적이 없었던 데다 현재 랭킹도 47위(2014년 7월 기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
하지만 알만 한 사람들은 모두 박진솔의 숨은 실력을 인정한다. 좀체 무너지지 않는 강인한 기풍이란 얘기. 올 상반기 그는 기라성 같은 강자들을 제치고 76.0%(19승 6패)의 최고 승률을 마크했다. 박진솔 뒤로 진시영 안성준 김지석이 75%대의 고공 승률을 올렸다. 1인자 박정환은 73.7%로 공동 5위. 지난 해 상반기 최고 승률은 김지석의 80.0%(28승 7패), 2013년 전체 최고 승률은 박정환의 79.4%였다.
올해 상반기 최다 연승의 영광은 진시영(25) 六단이 차지했다. 3월 5일부터 4월 18일까지 40여일 동안 15연승을 질주했다. 국내 톱스타 박정환은 진시영에 1승이 모자란 14연승으로 이 부문 1위를 놓쳤다. 3위 민상연의 13연승도 돋보인다. 2013년 상반기 연승 1위는 이희성으로 17연승이었다. 한국 바둑 역대 최다연승 기록은 41연승으로 1990년 이창호가 수립했는데 24년 째 철옹성이다.
다승 승률 연승은 상호 보완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이기는 비율(승률)이 다승보다 더 가치 있는 것 같지만 주 활동무대의 품질이 문제가 된다. 바둑승부는 자꾸 이길수록 더 높은 난도(難度)의 무대로 옮겨가게 돼 있다. 다승에는 승률이 담지 못하는 무대 수준 메시지가 포함됐다는 뜻이다. 연승은 기사의 꾸준함과 장악능력을 보여주는 숫자다. 하지만 역시 ‘무대 수준‘이 문제가 될 수 있는데 이를 승률이나 다승이 메워준다.
한 가지 더 꼽는다면 최다대국이 위의 세 항목에 대한 보완 자료로 기능한다. 최다대국은 다승 개념과 상통하지만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 이 둘의 관계를 보완해주는 것이 바로 승률이다. 최다대국은 대국 기회를 잡아채는 빈도, 다승은 승리 숫자다. 승률은 승리 숫자를 대국수로 나눈 것이다. 올 상반기 최다대국 1위는 다승 1위 변상일과 동일 인물이다. 나현 조한승 이세돌 신진서 신민준을 포함해 올 상반기 40승 이상을 기록한 기사는 6명으로 나타났다.
기사의 활약상을 파악함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수입, 즉 얼마나 벌어들였냐 하는 것이다. 프로의 세계에서 돈은 가장 확실한 능력의 척도다. 올해 상반기 상금왕은 박정환이었다. 2억 3000만원을 벌었다. 이세돌의 1억 7000만원(추정)에 비해 5000여 만원을 더 챙겼다. 박정환의 올 상반기 수입액은 지난 해 같은 기간 박정환 자신이 기록했던 2억 7000만원보다 약간 적다. 박정환은 지난 해 1년 합계 8억 2000여 만원을 벌어들여 생애 처음으로 상금 1위에 등극했었다.
역대 연간 상금 랭킹 베스트5를 살펴보면 이창호의 이름이 4번 나온다. 1위부터 3위까지, 그리고 5위가 이창호의 차지다. 박정환이 지난 해(2013년)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4위에 랭크됐다. 역대 1위는 이창호가 2001년 벌어들인 10억 2000만원. 한국 바둑역사에서 한 사람이 한 해 동안 10억원 이상의 수입을 올린 경우는 이것이 유일하다.
하지만 그 기록이 13년 만인 올해 경신될 가능성도 제법 크다. 변수는 현재 한창 진행 중인 이세돌-구리 간 10번기. 이 이벤트의 승자에겐 무려 500만 위안(약 8억 2000만원)이 돌아가게 된다. 이걸 차지한다면 이세돌은 상반기 상금만 보태도 10억원 선의 수입이 확보된다. 사상 최다 연간상금, 사상 두 번째 10억 돌파 등 눈부신 뉴스들이 연말에 쏟아질지 모른다.
2014년 상반기에 치러진 메이저급 세계대회 중 우승자를 가려낸 대회는 제18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이 유일했다. 퉈자시와 저우루이양 등 23세 동갑내기 중국 기사들이 ‘형제 대결’을 편 끝에 퉈자시가 2대1로 승리, 세계 우승자 명단에 처음 이름을 올렸다. 일본이 의욕적으로 창설한 신예기전인 제1회 글로비스배 역시 주최국 기사들끼리 결승전을 펼쳐 이키리키 료가 첫 패권을 잡았다.
국내 기전에선 이세돌이 바둑왕전과 맥심배를 따내 상반기 유일의 ‘다수확’ 기사가 됐다. 이밖에 박정환이 천원전, 김지석이 GS칼텍스배, 조한승이 국수전, 최정과 김채영이 여류 명인전 및 여류 국수전을 각각 품에 안았다. 변상일은 신인왕전 2연패, 신진서는 미래포석열전 정상에 올랐다.
마지막으로 랭킹을 보자.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상반기 6개월 동안 박정환이 한 번도 빠짐없이 1위 자리를 고수했다. 지난해부터 따지면 8개월 연속이다. 수입과 랭킹을 모두 거머쥐고 있으니 명실공한 한국 톱스타인 셈. 1위만이 아니고 2위부터 5위까지의 서열이 6개월 내내 김지석 이세돌 최철한 박영훈 순으로 일사불란하게 유지됐다.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프로기사들의 기록, 수입, 랭킹, 타이틀 등 여러 각도의 성적표를 살펴보았다. 하반기 역시 적지 않은 무대들이 전사(戰士)들을 기다리고 있다. 7월 말 농심배와 여류명인전 예선을 마친데 이어 삼성화재배, 합천 미래포석열전, 대주배, GS칼텍스배, 시니어바둑클래식 등의 대회들이 줄을 이을 예정. 국수전, 명인전, 지지옥션배, 물가정보배, 레츠런파크배, 국수산맥 등의 대회들도 파란을 잉태한 속개될 참이다. 올 연말 최고의 무대를 품에 안을 진짜 바둑 영웅은 누구일지 기대가 크다.